〈 12화 〉 몰락한 남해 보타암의 마지막 제자 설지연
* * *
“결국 상단전의 힘을 이용하여 세상의 모든 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말도 안 되는 신공이군요.”
“바로 그거야. 혼원대공은 중단전과 상단전을 모두 사용하는 천고의 절학이란다. 천이 넌 머리도 참 좋구나. ”
“제가 머리가 좋기는요. 좋은 사부의 쉬운 설명 덕에 겨우 이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복잡했던 혼원대공의 요해에 관한 암기와 이해가 드디어 끝났다. 이 무공을 완벽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요원할지도 모르나 따뜻한 국밥을 먹기라도 한 듯 마음만은 든든했다.
‘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두 가지 신공 중 하나를 가진 남자야!’
든든하지 않다면 거짓일 수밖에 없다.
“천아 항상 명심해. 현경을 넘어서지 못한 혼원대공의 흡수에는 부작용이 있어.”
“부작용이요?”
“응.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힘의 공백이 발생할 거야.”
“공백이라 하면?”
“흡수하려는 힘의 정도에 따라 일시적으로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겨.”
“아. 그렇군요.”
나의 모든 힘이 새로운 힘을 녹이는 것에 투입되어 일시적으로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 모양이다. 현경에 도달했다면 순식간에 흡수가 가능하겠지만 그전에는 그럴 수 없는가 보다.
“혼원대공을 사용하여 무언가의 힘을 흡수할 때에는 반드시 무공을 펼칠 수 없는 틈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사부!”
사부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갑갑하게 전각에 앉아 외우기만 하는 수련은 그만하고 다시 몸을 움직이는 수련을 하자.”
“예. 사부.”
사부의 훈련은 아주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다. 마치 나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듯 그녀의 무공은 배려로 시작하여 배려로 끝난다.
영약을 구하기 전에는 내공심법에 관하여 알려주지 않았으나 진기가 생기는 순간 어떻게 이끄는지부터 알려주어 내가심법의 이해를 쉽게 만들며 순식간에 기틀을 잡아주었다. 물론 그전에 몸을 키우고 뼈대를 만드는 기본의 과정 역시 본인이 다 알아서 했으며 이 과정마저 이미 검법에 대한 감각이 무의식에 쌓이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나는 분명 평범한 사람이 맞을 텐데 검후 설지연 사부에게 배우고 있으려니 대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녀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연무장으로 나온 나와 사부.
나는 무정칠십이검의 중18검을 배울 생각에 들떠 있었다. 지금까지는 방어를 위한 전18검의 응용을 위주로 배웠던 탓에 공격에 관해서는 감도 잡지도 못하고 있는 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야. 자고로 사람은 막아서는 것보다 두들겨 패고 봐야지. 암! 이게 좋은 거야.’
나는 사부에게 배운 무공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상대를 찍어 누르는 나의 늠름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아. 예전부터 꼭 가르치고 싶었던 건데, 이제야 가르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아.”
“오늘 배울 건 검이 아닌 가 봅니다.”
“응! 나는 천이가 위험을 피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부의 마음. 그저 감사합니다.”
“부끄럽게 왜 그래?! 다..당연한 거잖아. 내공이 생기면 칠성풍운보부터 가르쳐주려고 단단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지금 칠성풍운보를 가르쳐 주겠다는 겁니까?”
나는 오늘도 느꼈다. 검후 사부는 나에게 언제나 진실하고 최선인 사부가 분명하다.
칠성풍운보
검후를 상징하는 보법으로 유명하다.
이 보법은 칠성의 방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보법이나 그걸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일곱 걸음에 천하를 농락한다.
발끝에서 바람과 구름의 조화가 시작된다.
이런 찬란한 말들은 모두 칠성풍운보를 지칭하는 말로 무정검과 함께 검후를 상징하는 무공이다.
“당연하지! 넌 나의 유일한 ...이잖아.”
분명 제자가 아닌 뭐라고 한 거 같은데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라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설마 낭군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탈태환골에 성공한 내 귀가 이상할 리 없잖아?’
사부는 내가 칠성풍운보를 배워 혹시 모를 위기가 생겨도 잘 대처하여 무사하길 바란다.
‘사부의 이런 마음은 너무 감동적이야! 근데 이거 엄청 어려운 무공이라고 들었는데 어쩌지?’
칠성풍운보는 무의식마저 지배해야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감각의 보법이라고 소설에 서술되어 있다. 하여 배우는 과정의 고통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검을 단련하는 시간보다 보법을 배울 때가 더 괴롭고 짜증이 났다.
검후가 칠성풍운보를 두고 회상하며 했던 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죽어나는 시간인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제자가 아둔하여 칠성풍운보를 배우는 과정에서 사부에게 실망을 안기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내 밑천이 고스란히 사부에게 드러나겠구나!’
이건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수련이 분명하다. 나의 부족함이 사부에게 그대로 전해져 실망감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근데 사부가 실망할 모습을 보는 게 왜 이렇게 싫지? 아아 무슨 방법이 없잖아. 그저 최선을 다하자.’
“후후. 걱정하지 마. 칠성풍운보를 익히는 과정은 어렵지 않을 거야! 천이 너라면 아마도 좋아하지 않을까?”
“조..좋아 한다고요?”
사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아니다. 그렇지만 과정이 어렵지 않을 거라는 사부의 말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표정이 다시 밝아지는 나.
“응! 기대하라구!”
사부의 밝은 표정과 강인한 자신감을 보니 칠성풍운보를 익히는 그 끔찍한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사라진다. 천하의 검후가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터. 믿습니다. 사부!
“역시 검후가 최고입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사부!”
“몸을 돌려 앞을 봐!”
“했습니다.”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려 앞을 보며 힘을 주어 말했다.
“다리에 힘을 줘. 태산이 짓눌러도 버틴다는 마음으로 말이야.”
“태산은 못 이기겠지만 사력은 다하여 보겠습니다.”
“그런 자세는 좋아. 이제 간다.”
‘간다? 뭐가 간다는 거지?’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뒤로 다가온 사부가 나의 목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더니 점프를 하며 두 다리로 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사..사부?”
“뭐해? 나를 받쳐야지!”
“아..예”
나는 그렇게 얼떨결에 뒤로 손을 내밀며 사부를 업게 되었다.
“천이 넌 나를 업고 돌아만 다녀. 그럼 사부가 너의 발걸음에 대한 기본적인 습관을 모두 고쳐줄 거야. 이러면 자연스럽게 칠성풍운보를 금방 익힐 수 있어.”
“사..사부!”
한마디로 내 등에 올라타서 나의 걸음을 자신의 내기로 이끌어가며 직접 섬세하게 다듬어 주겠다는 거다. 이런 일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노력이 필요한지 구태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사부는 언제나 무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본인이 자청하고 있어.’
솔직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사부라 하여도... 세상에 어떤 사부가... 이렇게까지 제자를 위할 수 있을까 싶다.
“천이 너 감동한 거야?”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와락. 사부는 자신의 볼을 나의 볼에 가져다 놓고는 살짝 비비며 더 강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그럼 됐어. 난 그걸로 충분해.”
*****
천하의 검후 사부가 이따금씩 땀을 흘리는 때가 있다. 그만큼 칠성풍운보를 가르치는 일은 검후 사부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그런데. 사부는 이 수련이 아주 마음에 드는지 내 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부를 업고 있는 과정에서 이따금씩 사부의 엉덩이 감촉이 전해져 민망하여 부끄러운데... 사부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여자인 사부도 신경을 쓰지 않는데 남자인 내가 신경을 쓰면 이건 오바야!’
탈태환골을 하여 힘이 강해졌다. 무겁지 않은 가벼운 여인 하나를 업고 다니는 게 당연히 힘들지는 않다. 그래서 사부를 업을 때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가장 스트레스인데 이제 그것에 관하여 신경을 쓰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천아. 너 그거 알아?”
“어떤 거 말입니까?”
“결혼한 사이거나 결혼할 사이가 아니면 이렇게 업어주는 건 잘못된 거야.”
“예에?”
“너 이렇게 업어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야!”
“까짓 거 책임지면 되죠!”
나는 사부가 나에게 농담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사부가 짓궂은 농담으로 저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은가 본데, 저는 현대인. 순진한 총각을 놀리는 이런 가벼운 장난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너..너..너. 책임이 무슨 말인지 알고 그러는 거야?”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 성인입니다. 성인. 모를 리 없죠!”
‘역시 시대가 시대라 나의 드립을 사부가 이길 수는 없지!’
최근 사부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허둥거리는 모습도 더러 보였는데 이렇게 당황한 사부를 보게 되니 기분이 좋아졌다.
“너 그러면 진짜 책임져!”
“물론입니다.”
뭔가 분위기가 살짝 이상하지만 장난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끝까지 가는 놈이 이긴다.
‘사부도 강하게 나오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은데... 아마도 제가 이길 겁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한 번 가보죠!’
내가 강하게 나가자 사부가 나를 더 꼭 안았다. 평소와 달리 사부의 몸이 상당히 뜨겁게 느껴지는데 이건 아마 내가 농담을 하느라 부끄러워 뜨거워진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옛날로 왔더니 옛날 사람이 다 되었구나. 고작 이런 장난에 이렇게 몸이 뜨거워지다니 말이야.’
이후 사부는 말이 없었다. 배우는 제자가 마냥 신이 나서 혼자 떠들 수는 없는 일.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직도 아침인데 어쩌지?’
사부는 나에게 업히는 칠성풍운보의 수련이 무척 힘들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친다.
얼마나 열심히 가르쳐주시는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식사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에게 늘 업혀 있고는 했다.
‘집중력의 끝판왕 같은 분이야!’
그런데 생각을 하니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하루 종일 업고 있는 건 너무 무료하고 따분했다.
“저 사부?”
“왜?”
“날도 좋은데 사부를 업고 경치 좋은 곳 구경이나 가고 싶어서요.”
“소풍을 가고 싶은 거야?”
“사부와 그런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아아. 그렇구나. 나야 완전 좋지!”
“그럼. 맹을 벗어날 때까지만 부탁을 하겠습니다.”
사부의 외모는 나의 동생이라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어리게 보인다. 그렇지만 미모가 워낙 뛰어나 무림맹에서 검후 사부를 대번에 알아보지 못하는 자는 없었다. 사부의 위상을 고려한 나는 조용히 맹을 나간 후 한적한 곳에서 그녀를 업고 가려고 했다.
“나를 업고 있는 걸 사람들이 보는 게 부끄러워? 책임진다고 했잖아!”
‘이래서 노강호, 관록의 무인이 무섭다고 하는구나.’
사부는 조금 전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던 그 농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사부의 위상이 저와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으니 이건 무조건 제가 더 유리합니다.’
“저야 뭐 사부를 업고 다닌다는 걸 알릴 수만 있다면 그저 영광입니다.”
“너..너 나를 책임지는 게 부끄럽지 않다는 거야?”
‘그러면 그렇지. 사부는 당황했구나. 이런 뻔뻔함은 역시 현대인이 갑이지!’
“저는 사내대장부입니다.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아. 난 몰라. 너무 좋아!”
‘뭐지? 제자가 남자답게 구는 게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막상 밖으로 나오려니 예상처럼 부끄러워하는 사부로 인하여 우리는 사부의 능력을 이용하여 조용히 맹을 빠져나왔다.
한적한 산길에서 사부를 업고 나아가는 나.
내 등에 업힌 사부는 나의 승차감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지 지금까지 힘들다는 소리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만발한 화려한 산의 풍경을 보자 서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나는 지난번에 이야기를 하다 중단한 걸 물어보기로 했다.
“사부. 저번에 말했던 검후의 의미 말입니다.”
“그..그거?”
“예. 저는 사부를 책임지기로 했으니 저에게 다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사부에 대해 다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이야기해주겠지?’
나는 아주 좋은 타이밍을 잘 파고들었다고 자신했다.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내 부군이 될 천이가 이렇게 원하니까... 이야기할 게.”
‘부..부군? 아. 사부는 다시 밖에 나오니 나를 이기고 싶은가 보군!’
“네 좋습니다. 이제 이 부군에게 다 이야기를 하세요. 사부.”
그렇게 사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