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새로운 천마
* * *
쿠르르릉 쿵. 콰아앙.
자연재해라도 발생하려는지 땅이 울리고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산에 모인 많은 마인들이 갑작스러운 현상을 느끼고는 밖으로 나왔다.
“철마 대호법. 이 소리는 분명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제가 잘못들은 겁니까?”
“아닙니다. 환마. 이건 분명 천마오관에서 나오는 소리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천마오관이 깨졌다는 소리기도 하지요. 어서 서둘러 중극봉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요.”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나타나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는 검마.
안대를 차 한쪽 눈만 보임에도 그녀의 눈은 다른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교의 모든 자들은 들어라. 지금 즉시 중극봉으로 모여라. 새로운 천마가 나타나셨다.
검마가 웅후한 내공을 이용하여 육합전성을 펼치자 그녀의 말이 멀리까지 퍼지며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신교의 여기저기에서는 난리가 났다. 새로운 천마가 나타났다는 소리에 모두 중극봉으로 향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드..드디어 신교의 주인이 나타나셨다.
어서 서두르자. 늦으면 곤란해.
꾸물거리지 마. 빨리 가야 한다고.
신교의 많은 자들이 서둘러 밖으로 나와 천산의 가장 높은 곳에 하나인 중극봉을 향해 내달렸다.
지난 수십 년 간 나오지 않았던 신교의 주인 천마가 다시 도래했다는 사실에 신교의 교인들은 환호하며 열광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중극봉으로 향했다.
“근데 최근에 천마오관에 도전한 분들은 없지 않아?”
“그러게 이상하네. 도대체 어떤 분이 천마오관을 통과했지?!”
“설마... 그분은 아니겠지?”
“그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야?”
“전대 교주님의 사생아 따님이 한 분 계셨잖아. 그 오 년 전에 홀로 천마오관에 들어가셨던 분 있잖아. 내가 알기로 그게 마지막 천마오관의 입관자야.”
“아아. 자결을 하려고 들어갔다는 천미영님을 말하는 거야?”
“어. 맞다. 천미영님이다. 그분이 아니라면 천마오관에 도전한 분은 없어.”
천마오관은 천마신교의 자랑이자 절망이기도 했다. 천마오관을 통과하면 세상과 싸울 위대한 천마가 완성되지만 무수한 천마신교의 기재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잔혹한 관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천마오관의 벽이 너무 높기에 신교에는 항상 천마가 없는 시절이 당연하다는 듯 존재했다.
수십 년 만에 드디어 나타난 새로운 천마. 신교는 열광하며 그들의 지존인 새로운 천마를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신교의 많은 사람들이 넓은 공터에 모여 중극봉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퍼엉.
가공할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하늘 높이 힘차게 솟구쳤다.
그것은 높게 올라갔다가 아주 천천히 하강했다.
검은색의 무복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투명할 정도로 시린 피부를 지닌 하나의 인형. 피보다 더 붉은 입술을 가진 젊은 여인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천마가 돌아왔다. 모두 꿇어라.”
분명 속삭이는 듯 작은 소리였으나 모두의 귀에 아주 크게 들리는 소리였다.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 그녀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신교의 많은 자들을 무릎 꿇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이것은 천마군림보! 진정한 천마가 분명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발밑에 꿇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 바로 천마군림보. 이 무공은 상대를 짓누르고 위에 올라타려는 성질을 가진 무공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만마군림. 천마를 뵙습니다.”
신교의 대호법인 철마가 크게 외치며 증극봉에 나타난 자가 천마가 맞음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자 뒤에 있던 모두가 그의 말을 따라하며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공중에 떠있는 도도한 천마 천미영.
그녀는 신교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본 천마의 위대한 힘을 너희에게 보이도록 하겠다. 천마의 힘을 검증할 자는 앞으로 나와라!”
자신의 신위를 과시하려고 마음먹은 천마. 천마를 제외한 신교 최강의 고수인 십마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 여인을 향하고 있었다.
안대를 찬 십마의 최강자 검마 한비연이 그 주인공이다.
‘이 새끼들 꼭 힘들고 어려운 건 나를 시켜. 난 도전정신이 뛰어나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쉰 검마가 일어섰다. 그녀는 마치 허공에 계단이라도 있는 듯 하나씩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놀라운 능공허도의 경공술이다.
“검마 한비연이 천마의 영광을 재현함에 일조하고자 합니다.”
두 손으로 인사를 했으나 검마 한비연의 눈에서는 강한 승부욕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검마 한비연. 너를 넘어서야 진정한 천마라 할 수 있지. 나는 오랜 시간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천마께서 그리 말씀하여 주시니 저에게 더 없는 영광입니다.”
“검마 한비연답지 않게 혀가 간사하구나. 덤벼라.”
“저는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합니다.”
“천마를 상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 그 자체로 죽음이다.”
검마 한비연이 두 팔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 주변으로 무수한 검은색의 강기들이 검의 형상을 만들며 생겨났다.
“전력을 다한 검마의 만검출행이구나. 기꺼이 받아주마.”
여유로운 표정을 보이는 천마.
‘나는 검마. 오로지 나만의 길을 걷는 무인이다.’
천마 천미영을 의식하면 스스로 위축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검마 한비연은 오로지 자신의 검을 펼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제 간다!’
검마 한비연이 빠르게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그녀보다 더 빨리 무수한 검의 형상들이 함께 천마를 향해 날아갔다.
사천당가 최후의 비기인 만천화우보다 더 촘촘한 공격이라 알려진 검마의 만검출행.
하늘에서 검은색의 검이 비를 뿌리듯 쏟아진다 하여 천흑검우라 불리기도 하는 검마의 만검출행이 펼쳐진 것이다.
쉬잉. 쉬잉. 쉬잉.
무수한 검의 강기가 오로지 천마 천미영 하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몹시 위험한 상황. 하지만 천미영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내가 존경하던 검마 한비연. 과연 대단하구나. 하지만 내가 이긴다. 너의 검을 내가 무너뜨려주마.’
천마 천미영은 천마신공의 능력 중 하나인 천마벽을 펼쳤다.
천미영의 몸에서 어두운 기운이 나와 그녀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색 무복보다 더 짙은 검은색의 기운이 그녀를 뒤덮자 천미영의 모습은 사라지고 온통 검은색의 갑주로 무장한 여인 하나만이 남아 홀로 허공에 떠있을 뿐이었다.
“와라!”
팅. 팅. 팅. 팅.
무수한 검이 천마 천미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어떠한 검도 천미영의 천마벽이 만든 어둠의 갑주를 뚫지는 못했다.
“저의 최후의 공격입니다. 천마!”
만검출행의 마지막 비기를 펼치는 검마 한비연. 이 공격은 검마 자신이 하나의 예리한 검이 되어 날아가는 필살의 공격인 일신검행이다.
천마가 암흑의 갑주를 둘렀듯 검마 한비연 역시 어두운 검의 형상으로 변하여 천마를 향해 날아갔다.
검이 된 검마가 천마의 가슴을 노리며 날아들 때. 천마벽을 두른 천마의 양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천마의 암흑명륜공이다. 영광으로 알아라. 검마!’
천마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검마의 검이 가진 기운을 무너트려나갔다.
팅. 팅. 팅. 팅. 팅.
검마의 검이 천마의 천마벽을 무너트려가며 그녀의 가슴을 뚫기 위해 조금씩 나아갔다.
‘됐어! 아무리 천마라도 정면으로 나의 일신검행을 막는 건 무리야!’
최선을 다한 검마 한비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기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형상이 사라진 천마.
‘허상?’
갑작스러운 상황에 검마 한비연이 당황하고 있을 때. 허공에서 불쑥 나온 손 하나. 그것은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너는 더 성장했구나. 검마. 하지만 나는 천마다.”
퍼엉. 검마의 목을 잡은 천마가 그녀를 멀리 날려버렸다.
빠르게 뒤로 날아간 검마는 나무 몇 그루를 무너트리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천마의 배려로 인하여 몸의 고통은 크지 않았으나 패배의 고통은 아무리 상대가 천마라 하여도 쓰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검마 한비연이다.
“와아아. 새로운 천마 만세!”
“천마께서 다시 신교를 위해 나타나셨다.”
새로운 천마를 향한 신교 마인들의 열렬한 환호성이 들리며 검마 한비연을 더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런 한비연을 쳐다보는 천미영.
‘드디어 내 꿈의 하나를 이뤘구나. 장하다. 내 자신!’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하며 자살에 가까운 도전이라 했다. 그렇지만 꿈이 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스스로를 믿고 도전한 천마오관. 그 죽음의 관문을 보란 듯이 통과한 천미영. 그녀는 결국 천마가 되어 마도의 진정한 하늘이 되었다.
*****
나는 요즘 혼란스럽다.
함께 있어본 결과 검후 설지연 사부는 진심으로 나에게 다정다감하고 언제나 진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과장되게 꾸미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부가 끝판 보스인 거야?’
새로운 황제의 즉위와 홍수 등 굵직한 일들이 현실이 되어 발생하는 일이 없었다면 나는 이 소설의 전개를 도저히 믿고 싶지 않다. 그 정도로 사부가 소설에서 묘사한 그 잔혹한 악녀로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 사부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천아.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 내가 있는데 고민이 있어? 나 섭섭하다고!”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부.
그녀는 다정하고 편하게 무공을 가르쳐 주며 영약마저 챙겨주었다. 내가 이런 걸 받았기에 그녀를 좋게 보려는 건 물론 있겠지만 이게 전부는 결코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부의 이런 행동은 진심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 그런 잔인한 존재가 된다는 걸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제자는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검후 사부가 혹시라도 변하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내가 벼..변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지금의 사부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부의 모습을 평생 보고 싶은데 세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면 어쩌나 한숨이 나왔습니다.”
“너 뭐야~”
툭. 사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천아 이 사부를 믿어! 나 검후야. 검후.”
‘저는 사부를 믿고 싶은데 소설의 내용들이 저를 괴롭게 합니다.’
“너어~. 아무래도 나를 믿지 않는 거 같은데?”
사부가 내 눈빛을 읽고는 살짝 토라진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런 사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믿어요. 사부. 그러니 항상 지금처럼 변하지 마세요.”
“천이 넌 검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니 그럴 수도 있겠다.”
검후의 의미? 나는 이런 부분에 관하여 당연히 모른다.
“???”
나는 궁금함을 품고서 사부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자 사부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니다. 이 사부는 너와 있을 때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고 좋은 생각만 하고 싶어. 그러니 검후의 의미 같은 건 궁금하게 여기지 마.”
“뭐에요. 사부.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주셔야죠.”
나는 검후 사부의 다음 말이 너무 궁금했다.
“다음에. 다음에 하자. 아직은 말하기가 좀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사부. 다음에 꼭 이야기하세요.”
“알았어. 천아. 난 너에게 비밀이 없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