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검후의 제자7
* * *
어떤 일을 하건 집중을 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물며 처음 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하여 사부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사부가 물었다.
“천아. 제갈상아는 어떤 여자 같아?”
“제갈 낭자는 참....”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참 귀엽고 아리따운 분 같습니다.’라고 답을 하려다 급하게 말을 멈췄다. 나의 감각이 이러한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를 보내기 때문이다.
‘역시 사부야! 고수답게 내가 무방비 상태일 때를 노리며 훅 들어와 질문을 던지는구나!’
“참 뭐? 왜 말을 끊어?”
“그게 아니라... 말을 하기 조심스러워 그랬습니다.”
“조심스럽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미소를 지으며 기대심 가득한 표정을 보이는 사부.
나는 느꼈다. 이거 말을 잘해야 한다.
‘부디 내 생각이 정답이기를!’
“부족한 제자의 생각이 사부께 실망을 안겨 드리지 않을까 우려가 되어 급하게 말을 멈췄습니다.”
“아이참! 우리 사이에 못할 말이 어디 있어?! 나는 진~~짜 괜찮으니까 솔~~직한 생각을 말해! 응? 응? 난 어떤 말을 들어도 괜찮아!”
무지하게 압박을 주는 사부.
나는 내가 하는 말이 사부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를 바라며 차분하게 답을 했다.
“제갈 낭자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대 세가의 딸이 안타깝다니? 이 사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죄송합니다. 제갈 낭자. 제가 살아야 삶이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완전 거짓도 아니고요.’
“저 하늘의 별보다 빛나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부의 옆에 제갈 낭자가 있으니 아무리 대단한 꽃이라 하여도 존재감을 보일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으으. 느끼한 말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 대화 자체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던 소설과 달리 사부는 칭찬에 약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말을 하면서도 오글거렸으나 나는 내 선택을 믿고 나가기로 했다.
“그...그러니까.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제갈상아가 쭈그리가 되었다는 거지? 흐응.”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보이는 사부.
“쭈그리는...”
빠직. 사부의 눈빛이 갑자기 매섭게 변했다.
“쭈그리가 아니라 오징어라 하면 좋을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갈 낭자! 제가 여자의 외모를 비교하는 그런 자가 아닌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음을 속으로 강조하며 마음의 평정심을 얻었다.
“너. 너는... 내가 아무리 좋아도 지다화에게 오징어라니. 아이이잉.”
사부는 몸을 베베 꼬더니 결국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야이 작가 놈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 거야?!’
소설을 읽고 왔음에도 알 수가 없는 사부를 볼 때면 글을 쓴 작가가 도대체 이 글의 세계관과 역사를 어떻게 상상하며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무공 지도. 나는 사부에게 무정칠십이검의 남은 투로를 모두 배웠다.
신기하게도 내가 원래 알고 있는 무공을 배우는 듯 자세가 너무도 쉽게 뇌리에 박혔다. 사부가 괴롭힘을 준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내 무의식 속에 무정칠십이검을 심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천이 너를 위한 건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저는 사부만 믿고 가려고요.”
“그건 당연하지!”
내 기분도 좋고 사부의 기분도 좋고 두루 분위기가 좋다.
“나중에 다시 가르쳐야 하지만 그래도 보여줄게. 잘 봐.”
“부족한 제자는 집중하며 보겠습니다.”
사부는 목검 하나를 들고서 무정칠십이검을 느리게 펼치기 시작했다.
“앞에 18검은 방어를 위한 검이야. 이 18가지 형태로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넌 우선 전 18검에 집중해. 무공의 본질이 살상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죽지 않아야 기회가 있잖아.”
“네 사부!”
사부가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검을 휘두른다. 아름다운 자태가 내 눈을 현혹하고 있었다.
‘방어를 위한 검이라 생각하니 이제야 보이는구나. 모든 것이 공격을 끊거나 나를 보호하기 위한 동작이야. 어디에도 상대를 해하는 움직임은 들어있지 않아.’
“천아! 이제 18검을 이용해 어떻게 방어를 하는지 느끼게 해 줄게. 너는 목검을 들고 사부를 공격해봐.”
“사부를 믿고 전력으로 갑니다.”
내가 전력을 다한들 사부에게는 가소로움도 주지 앉을 거다. 그걸 알기에 최대한 침착하게 사부에게 접근하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퍽. 퍽.
기껏 힘을 주어 휘두른 검인데 사부의 비스듬하게 목검을 들자 내 검이 아래로 힘없이 흘러내렸다.
고작 한 수에 불과한데 나는 다시 검을 휘두르기 나쁜 자세가 되었다. 다음 공격에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하며 상대가 공격을 할 경우 방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이건 방어와 공격을 겸하는 수단인데, 지금은 이렇게도 가능하구나만 느끼면 되는 거야. 너무 많은 것이 한 번에 들어가면 혼란만 가중되니까 구태여 다 배우려고 하지 마.”
“알겠습니다. 사부!”
그렇게 방어를 위한 18검을 어떻게 사용하면 효율적인지 배워나갔다.
사부도 내공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검후 사부이다.
헉. 헉. 헉.
그와 달리 나는 하늘의 별이 보이는 착각이 생길 듯 어질어질한 상태이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검을 휘두르던 중 실수로 내 다리에 내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어. 어.”
나는 당황하며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내 모습을 보자. 나를 받쳐줘야 할 사부가 양팔을 옆으로 크게 벌렸다.
나는 자연스레 사부의 품에 안겼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부가 뒤로 넘어간다.
‘뭐지?’
사뿐사뿐. 사부가 힘을 조절하는지 부드럽게 뒤로 넘어진 나와 검후 사부. 어쩌다 보니 나는 검후 설지연의 몸 위에 올라탄 형상이 되었다.
머라카락이 주변으로 흩날린 상태로 바닥에 누워있는 사부.
아름답다.
그저 그녀는 아름답다는 생각만 들게 할 뿐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위험하다. 위험해! 이러다 내가 죽는 수가 있어!’
나는 최대한 사부와의 접촉을 피하며 일어서려고 했다. 팔을 옆으로 뻗어 땅을 짚고서 그대로 일어서려고 했다.
미끈거리는 바닥. 나의 팔이 옆으로 밀리며 내 얼굴이 사부의 얼굴을 향해 덮쳐져 간다.
아찔한 순간이다. 그렇지만 너무 겁을 먹지는 않았다.
‘분명 사부가 내기를 일으켜 나를 막을 거야.’
나는 사부가 그렇게 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사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휴우 다행이다.’
나의 사력을 다한 노력의 결과로 나는 사부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닿기 직전에 겨우겨우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당장 죽을 뻔했구나. 혹시 사부가 나를 혼내려고 무시무시한 함정을 판 건가?’
나는 사부가 나를 혼내기 좋은 상항을 만들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근데 이게 아니라면 사부가 이렇게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지금 상황은 도대체 뭐지?’
내가 사부의 입술을 덮쳐 갈 때 사부는 볼이 붉어진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 상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둑. 둑. 둑.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음에도 눈을 감고 누워있는 현경에 도달한 절대의 고수인 검후 사부.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어찌해야 할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갈팡질팡 할 때 사부가 조용히 눈을 떴다.
위에 올라탄 나와 아래에 누운 사부의 시선이 마주친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니면 사부는 의아하다는 표정인데? 나를 혼을 낼 상황을 벗어나서 당황했다는 건가?’
나는 일단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일어섰다.
내 뒤를 따라 조용히 일어선 사부.
분위기가 냉랭하게 변했다는 기분도 살짝 든다.
“오늘도 부족한 제자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
나는 최대한 밝고 큰 목소리로 사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천아.”
쿵. 쿵. 쿵.
나를 압박하는 무언가가 있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나를 부르는 사부의 목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 했으나 그게 쉽지가 않았다.
“...예. 사부.”
“너는 아직 용기가 부족하구나.”
“예에?”
사부가 답을 주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거처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오늘따라 이상하게 힘이 없어 보였다.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나는 조용히 들어가는 사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
다음날도 사부는 전 18검의 방어를 위주로 가르쳐주었다.
나는 현대인의 사고에 찌들어 있기에 무공은 배우기 힘들거라 여겼는데 사부의 도움 덕분에 금방 검을 다루는 것에 능숙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칼을 다루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개운하게 땀을 흘리며 오전의 무공 지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하하하. 군사 제갈유현이 왔습니다. 검후님”
“저도 함께 왔어요. 검후님 // 위지 공자님!”
사람 좋은 표정을 한 군사 제갈유현과 그의 딸 지다화 제갈상아가 다시 금관을 방문했다.
발끝에 힘이 들어간 걸 보니 무언가 좋은 소식을 가져온 사람들로 보였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했다.
“제가 부탁한 걸 맹에서 받아들였나 보군요.”
“제가 누굽니까? 신기서생 아닙니까? 반대하는 분들을 일일이 다 설득하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제가 부탁한 걸 반대한 자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자들이 누구인지 꼭 알려주세요. 군사. 제가 직접 찾아가도록 할 거예요!”
사부가 패기로 가득한 기세를 보이며 반대한 자들을 찾는다고 하자 표정이 급변한 군사 제갈유현.
“하하. 누가 감히 검후의 요청을 진심으로 거부하겠습니까? 그저 투덜거리는 소리를 했을 뿐입니다.”
“흥!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맹의 중요한 문제는 제가 다 해결했는데 고작 이런 부탁을 가지고 저를 이렇게 피곤하게 할 줄 정녕 몰랐어요. 맹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는 탈맹하고 제자랑 산에 들어갈 거예요.”
“어이쿠. 화를 푸시기 바랍니다. 검후님. 제가 이렇게 원하는 걸 모두 챙겨 왔습니다. // 위지 공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부의 표정이 나빠지자 화재를 돌리고 싶은지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군사 제갈유현.
“저도 축하해요. 위지 공자님. 금방 고수가 되실 거예요.”
‘뭐지?’
나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위지 공자는 아직 모르나 보군.”
말을 하면서 사부의 눈치를 살피는 군사 제갈유현. 사부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검후께서 제자인 위지 공자를 위해 그동안 쌓은 공에 대한 보상으로 맹에 존재하는 영약을 달라고 요청했다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