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검후의 제자6
* * *
지이익. 지이익.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가 허기를 부르는 먹음직스런 향을 마구 흩날리며 맛있게 구워지기 시작했다. 화력이 좋은 고급 숯이라 고기가 금방 익는다. 나는 뒤집고 자르기 바빴다.
숙련된 솜씨로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나.
‘이제부터 드시면 됩니다.’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오늘 수련을 지도하느라 팔이 뭉쳤네. 아 아”
지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현경에 이른 검후 사부다. 오전에 나의 수련을 조금 지도했다고 그녀의 팔이 뭉친다는 게 말이나 될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부가 그렇다고 말했으면 그렇게 믿어주는 게 제자인 내 신상에 가장 좋다.
입을 벌리며 ‘아’라고 말하는 사부의 모습을 보니 나에게 먹여달라는 것 같다. 제갈 낭자 앞에서 떠먹여 주는 건 좀 쑥스러운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살고 봐야지.
“일단 고기 한 점.”
나는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도톰한 살을 사부의 입에 넣어 주었다.
“으음. 너무 맛있어!”
사부가 양념갈비 본연의 맛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빠르게 마늘과 상추 깻잎 등을 이용하여 쌈을 쌌다.
“고기는 쌈이죠. 사부! 자 아”
“그렇지 고긴 쌈이지! 아”
꿀꺽. 사부의 입 크기에 알맞게 정성들여 싼 쌈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번에는 제가 담근 다른 것도 같이 드세요.”
“나야 좋지. 아 아.”
그렇게 나는 사부에게 열심히 고기를 싸서 바쳤다.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지다화 제갈상아. 옆에서 쳐다보고 있으면 창피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존이 달려서 그런지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거기다 제갈상아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와 사부를 바라보고 있어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의구심마저 들었다.
“옆으로 옮긴 고기는 다 익은 거니까 그걸 드시면 됩니다. 제갈 낭자.”
“냄새가 너무 좋아서 참기 힘들었는데 잘 먹도록 할게요.”
지다화 제갈상아는 미식가 기질이 있는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고기를 향해 젓가락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천아. 고기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나 혼자 먹을 양도 안 되는 것 같아.”
양이 부족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검후 사부는 제갈 낭자가 집으려는 고기를 두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의 검후가 노려보는 고기를 냉큼 집어서 입에 넣어버리는 제갈상아였다.
“으음. 너무 맛있어요! 이런 달콤한 고기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정말 최고에요. 위지 공자님!”
부글부글.
사부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음에도 제갈상아는 검후를 그다지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다. 귀여운 외모라도 깡이 보통은 아닌 여자가 분명했다.
“제가 훌륭한 객잔을 여러 곳 아니까 고기가 부족하면 거기로 이동해서 더 먹도록 해요.”
제갈상아는 지다화라는 똑똑한 별호에 어울리지 않게, 다른 음식을 사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천하의 검후 사부를 상대로 자신의 의지를 내보일 자신감이 있는 것일지도...
“고기는 많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 제갈 낭자도 배부르게 많이 드세요.”
“...너. ...너.”
고기가 넉넉하다는 나의 말은 사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실수한 거야?!’
그때였다.
“그럼 저는 마음껏 먹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잘 먹어서 복이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검후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 흥!”
사부는 끝내 제갈상아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치밀한 신경전이 오가는 분위기다. 나는 마음을 단련한다는 마음으로 그저 묵묵히 고기만 열심히 구웠다. 그런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두 여자가 경쟁하듯 갈비를 먹기 시작했다.
“아”
“아”
사부는 오늘 자신의 권위를 보이고 싶은지 평소와 달리 손을 전혀 쓰지 않고 내 손을 빌려 식사를 했다. 이까짓 고기를 싸주는 거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 열심히 싸서 검후의 입으로 착실히 가져다 바쳤다.
그렇게 한참이나 식사를 했고, 이제 고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자 둘이 생각보다 잘 먹어서 살짝 놀랐다. 그럼에도 살이 찌지 않는 걸 보니 여자에게 무공이란 좋은 것이 분명하다.
불판의 고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제갈상아가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그녀는 나에게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보였다.
“...저 위..지 공자님?!”
“편하게 말하세요.”
“위지 공자가 싸주는 고기는 더 맛있나요?”
“쌈이 누가 싼들 다 거기서 거기죠.”
“...그럼 저에게 하나만 싸주실 수 없을까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저는 위지 공자가 싸주는 고기를 꼭 먹어 보고 싶어요.”
“그건 안 돼!”
내기가 조금 실린 사부의 외침에 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나의 두 눈에 화가 난 사부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대장부가 일개 아녀자에게 고기쌈이나 싸서 주다니... 그건 이 사부가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
분노한 사부의 말에 지다화 제갈상아는 그럼 여자인 사부는 왜 남자인 제자에게 쌈을 싸 달라고 하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갈 낭자는 얼굴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라 그런가?! 말을 안 해도 무슨 생각을 지녔는지 얼굴에 다 보이는구나.’
“나..나..는 천이의 사부야. 군사부일체 몰라? 고생한 사부를 위해 천이가 자발적으로 싸주는 기특한 마음을 받는 거야. 너하고는 근본이 달라! 근본이!”
말을 끝낸 사부가 나를 쳐다본다. 본인이 한 말이 옳은지 확인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여기서 나의 동조가 필요하다 판단을 내리는 나.
“사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아무에게나 쌈을 싸주는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천하제일인에 근접했고, 추후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 확실한 위험한 사부에게 잘 보여야 하기에 무조건적으로 사부의 말에 호응했다.
“제가 아무 여자인가요?”
“...”
지다화 제갈상아가 너무 노골적으로 물었다.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상상도 한 적이 없었던 나는 순간 당황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니가 아무나지 뭐 있어?”
옆에 있던 사부가 당연하다는 듯 나를 대신하여 답했다.
“그...렇긴 하죠. 하하하. 그나저나 배가 불러도 계속 먹게 되던 갈비가 끝나서 너무 아쉽네요.”
분위기상 더 이상 말을 하면 곤란하다 느꼈는지 급하게 말을 돌리는 제갈상아. 그녀는 진심으로 더 먹고 싶은 표정으로 보였다. 나는 미소와 함께 비장의 무기를 자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제갈 낭자! 고기의 끝은 고기가 아닙니다.”
“다른 게 더 있나요?”
고기의 끝은 냉면이죠!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으나 아직 냉면은 아끼고 있는 중이다. 사부에게 내가 가진 요리를 너무 빨리 다 공개하면 내 가치가 그만큼 빠르게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고 난 이후에는 마지막으로 철판볶음밥이라는 걸 먹어줘야 진정한 마무리라 할 수...”
“오늘은 그만 먹도록 하자. 천아!”
철판볶음을 할 거라고 말하려던 나에게 사부가 그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사부는 제갈상아에게 볶음밥을 주는 게 싫은 모양이다.
“검후님께서는 배가 부르신 것 같은데 그럼 저만?!”
“넌 충분히 먹었어. 제갈상아. 무인은 항상 날카로움을 유지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사사로운 일로 내 제자를 부려먹는 건 이 사부가 결코 지켜만 볼 수 없단다.”
분명 사부는 제갈상아에게 먹는 걸 더 주는 게 싫은가 보다. 소설에 나오는 검후 사부는 상태가 이상하기는 해도 대장부 기질이 있어 스케일이 큰 여자로 보였는데... 이놈에 소설은 내부로 직접 들어와서 보면 글과 유사하지 않은 부분이 상당하다.
‘주인공이 아닌 캐릭터들의 시점은 도통 모르겠네.’
“생각을 다시 하니 지금 그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철판볶음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쩝. 아쉽네요. 위지 공자님. 철판볶음밥은 다음에 부탁할 게요.”
눈을 치켜뜨며 귀여운 목소리로 다음에 해달라고 말하는 제갈상아.
“...”
찌릿. 그녀의 모습은 귀여웠지만 나는 사부의 시선이 신경이 쓰여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
함께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무림맹을 구경시켜주겠다던 지다화 제갈상아는 결국 쓸쓸하게 혼자 돌아가야만 했다. 사부가 본인의 손으로 고기를 먹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나쁘다고 하니 제자인 내가 밖으로 놀러 나갈 수는 없어서이다.
너무 아쉬워요. 위지 공자님.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도록 할게요.
무공 배우느라 바쁜 아이를 피곤하게 찾아 올 필요는 전혀 없단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검후님
흥!
둘은 서로가 아닌 벽을 보고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로의 의사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떠나는 손님인 제갈상아를 금관의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사부가 있는 금관 안쪽에 마련된 정자로 돌아왔다. 사부는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경에 이르면 반신에 이르러 자잘한 고통은 느낄 수도 없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닌 가 봅니다.”
“누...누가 그런 소리를 해?!”
“얼마 전에 보던 서책에서 봤습니다.”
“지들이 현경이야? 현경이냐고? 꼭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것들이 모른다고 막 지어내고 그러더라! 현경 아니면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해!”
사부의 우기기가 나왔다. 하지만 나는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사부가 ‘니가 현경이냐?’고 따지면 ‘그래! 내가 현경인데 그런 걸로는 아프지 않은데?’라고 답을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넓은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현경에 오른 사람은 많이 쳐도 세 명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걸 잘 알기에 사부가 저렇게 우기면 반박할 사람이 사실상 없는 게 된다. 뭐 현경에 오른 사부의 말이니 진짜일지도 모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여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내가 앞에 앉자 옆에 있는 빈 의자에 다리를 올린 사부.
“천아. 나 다리가 뭉쳤어. 어쩌지?!”
“저를 가르치다 그런 거니 제가 좀 주물러 드릴까요?!”
“너 가르친다고 그런 건 맞..지. 이 사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나 지켜볼 거얌!”
“믿으세요!”
“그래 믿을게!”
내가 안마에 자신이 있는 척 당당하게 나서자 사부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였다.
‘근데 어떻게 주무르는 거지?!’
나는 누군가의 몸을 주물러 본 적이 없는 남자란 말이다.
‘군대도 아니고 머리가 아프네.’
아랫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의 하나가 지켜본다는 두루뭉술한 추상적인 말이다. 가이드라인도 없고 지침도 없는데 지켜본다는 말은 100% 사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건 시킨 사람의 기분이 일의 성과를 결정하는 때가 태반이었다.
일단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부의 신발을 벗긴 후 발가락부터 하나씩 꼼꼼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으음. 흐음. 거..거긴 좀 살살해도 돼.”
“알겠습니다.”
“하앙!”
나는 힘을 주어 주무르다 부드럽게 주무르는 걸로 전략을 바꿨다. 무공을 익히면 발끝에 힘을 주는 경우 대부분이다. 모든 움직임의 대부분이 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발의 핵심인 용천혈을 중심으로 주물렀다. 초보의 어설픈 눌림에 불과함에도 사부는 꽤나 마음에 드는지 입을 벌리고 받을 정도로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천아. 제갈상아는 어떤 여자 같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