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45화
83. 에필로그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경도가 답했다.
문이 열리더니 직원 하나가 조심스레 들어섰다.
<지방행정서기보 이경수>
말단 공무원의 공무원증이 경도 눈에 들어왔다.
“앉아요.”
경도가 자리를 권했다. 난생처음 시장을 독대하는 말단 이경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용포읍의 민원상담실이었다.
읍장, 과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경수의 사표 소식을 들었다.
오늘 아침, 사표를 냈다는 것이었다.
순시 중에 본 얼굴이 생각났다.
이경수는 경도의 자리에 있었다. 그 옛날 경도가 말단 공무원으로 불운을 삼키던 그 자리였다.
그 이후 용포읍은 환골탈태를 했다.
이제는 시청 안의 알짜부서를 제외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곳이 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승진을 위한 필수 코스로도 불렸다.
이경수의 이마는 보기 드물게 두툼했다. 그렇기에 경도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이마가 사각형태에 살짝 깎여나갔다.
이런 사람은 상사와 트러블이 생긴다. 일생동안 한 번은 개고생을 해야 하니 지금이 그때였다. 윗사람을 거역하지 말아야 할 시기에 트러블이 난 것이다.
결과는 2회 연속 근무평정 C로 나왔다.
승진심사에서 B는 몰라도 C는 뒤집기 어렵다. 결국 얼마 전에 있었던 인사이동에서 승진을 하지 못했다.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뒤처진 것이다.
그 실망감에 던진 사표였다.
사연을 듣고 그의 직속 상사인 맞복팀장도 체크했다.
강직하다.
자신의 신념에 과도하게 취했으니 말단 이경수가 보기에는 꼰대 팀장 아니면 라떼 팀장이다.
옛날 생각이 났다.
이경수에게는 저 팀장이, 그 당시 경도의 엄낙기일 수 있었다.
추억 따위에 취해 감성팔이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 경도의 관심은 역시 이마였다.
사각 이마에 두툼한 살집이면 액운 극복이 가능하다. 다행히 눈썹도 풍성하다. 종국에는 관록의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액운은 귀에 휘감겨 있었다.
귀는 길고 높을수록 길상이다. 관록도 높아진다. 두텁고 둥글면 관록보다 이재(理財)의 복을 누린다.
이경수의 귀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위치가 높은 데다 모양이 기막히니 귀격이었다.
다만 현재의 찰색이 문제였다.
검붉고 거친 느낌이 강했다. 우환이 따라오는 기색이었다.
이렇게 되면 운이 막힌다.
유년운기부위는 이미 짚은 후였다.
그의 운은 서른셋에 접어들어야 터지기 시작한다. 지금이 스물아홉이니 4년이 남은 것이다.
이경수.
이름도 경도 시선을 끈 이유의 하나였다. 주변에 물었더니 거울 경에 빼어날 수라고 했다.
싸목 할아버지가 경도를 선택한 이유의 하나도 이름이었다. 이름까지 생각하는 건 일종의 동병상련이었다. 그도 이 위기를 잘 넘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사표, 이 주임 것인가요?”
경도가 사표를 들어 보였다. 읍 주무팀장에게서 잠시 받아온 경도였다.
“예.”
“내가 관상 좀 보는 거 알고 있나요?”
“소문은 들었습니다.”
“관상 믿으세요?”
“…….”
“한 가지만 맞춰볼까요?”
“……?”
“선택하세요. 1년 전, 3년 전, 5년 전,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3년 전 하겠습니다.”
“어디 보자, 3년 전이면 이 주임이 대학을 졸업반으로 구직활동에 나섰던 때로군요. 그런데 타격 좀 받았네요. 이 해에 공채에서 네 번 떨어졌어요. 그렇죠?”
“……?”
이경수의 각막에 파란이 스쳐 갔다.
그해 그는 정말 네 번의 시험을 보았다. 졸업을 앞두고 공무원 시험과 공기업 공채의 수준체크를 위해 던진 출사표는 절망으로 돌아왔다.
시험성적이 그랬다.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공무원 시험에서 과락을 두 개나 먹은 것이다.
“금전손실도 있었네요. 500만 원 정도 되는데 모함이나 사기성 흉살의 흔적으로 보아 나쁜 일에 걸린 것 같습니다.”
“……!”
이경수 얼굴이 또 굳는다.
정확했다.
그해 이경수는 공기업 특채를 빙자한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500만 원을 털린 적이 있었다.
“이 사표…… 저도 이 주임이 앉았던 책상에서 사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경도의 상괘가 계속 이어졌다.
“사표를 내려던 때 평생의 은인을 만났어요. 제게 희망을 주시더라고요. 저는 그 희망을 잡고 오늘까지 달려왔습니다.”
“…….”
“제 관상을 믿으라고 강요는 못 합니다. 하지만 이 주임의 승진운은 4년 후면 열립니다. 그러나 윗사람들과의 관계를 열어두어야 합니다. 이 주임은 윗사람과 원만하지 못한데 그건 결국 이 주임의 관운이 윗사람과의 관계에 달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건 공직을 떠나더라도 공통입니다.”
“…….”
“대기만성형이에요. 이런 사람은 초반 운이 어렵죠.”
“…….”
“공감이 가거든 사표 거두고 한 번 노력해보세요. 만약 내 말이 틀리면 4년 후에 저를 찾아오시고. 상괘가 틀린 벌로 승진 도와드리죠.”
“시장님.”
“사표는 직접 찢으세요. 운명이라는 건 결자해지거든요. 그런 다음 팀장님과 화해하세요.”
경도가 사표를 내밀었다.
이경수가 겨우 받아든다.
경도는 복도로 나왔다.
읍장실에 들르는 것으로 용포읍 순시를 마쳤다.
이 순시는 비공식이었다.
이 시점에서 꼭 한 번은 들르고 싶어진 것이다.
나오는 길에 보니 이경수가 맞복팀장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팀장도 이경수를 격려하며 웃는다. 가만히 이경수의 20년 후를 그려본다. 이마의 기세가 살아나면 국장은 가능할 상이었다. 그것까지 성취하면…….
경도 다음으로 9급 공무원 출신 시장 신화를 쓸지도 몰랐다.
용포읍.
가만 청사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임기 중 마지막 순시를 나온 것 같았다.
마지막.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단어였다.
“시장님.”
인희가 달고나 라떼를 가져왔다.
“그거 이경수 주임에게 부탁해.”
경도가 뉴비를 위해 양보했다. 꿀꿀할 때는 누가 뭐래도 달달한 달고나 라떼가 최고다.
인희의 체리커피점은 목가풍으로 확장한 지 오래였다. 웹툰으로 번 돈을 아낌없이 투자해 K시의 명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인희는 그 안쪽에 작업실을 마련해두고 초심을 지켰다. 이따금 나와서 알바를 돕기도 한다. 이제는 연봉이 수십억에 달하지만 용포읍 직원들과는 여전히 격의 없이 지내고 있었다.
“시장님.”
라떼를 받아든 이경수가 달려 나왔다. 감격한 얼굴이다.
“힘내요.”
말단 직원에게 건너가는 경도의 격려는 싸목 할아버지의 그것처럼 따뜻했다.
* * *
“3차 물류단지의 입주신청은 완판을 기록했습니다.”
보고자는 염정아였다.
그 뒤로는 경도와 부시장, 의회의장, 그리고 지역전문위원들과 국실과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염 국장님.”
경도의 치하가 나왔다. 염정아의 호칭은 국장이었다.
“시장님 퇴임 후로도 우리 물류단지는 계속 확장해 나가겠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4차 물류단지는 드론배송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개발 용역예산을 집행했고 접근성 개선을 위한 국비지원도 결정이 되었습니다. 기 확보된 부지에 기숙사형 오피스텔을 함께 건립해 입주자들의 편익까지 도모하겠습니다.”
다음 보고자는 마지웅이었다.
“제가 없어도 잘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마 국장님.”
마지웅의 호칭도 국장이었다.
다음으로 은빛이 일어섰다.
“시장님 가시는 길에 여러 사업을 잘 마무리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각 국실과는 각고의 노력으로 시정발전과 시민편익, 복지향상에 진력해주기를 바랍니다.”
은빛의 자리에 놓인 명패가 반짝거렸다.
<자치행정국장 이은빛>
부시장과 국실과장단이 일어나 경도에게 경의를 표했다.
경도는 그들 모두와 힘찬 악수를 나누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경도의 인사는 겸허했으니 이 또한 K시에서의 마지막 업무였다.
12년.
시장실을 독점한 시간이었다. 첫 당선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한 경도였다. 이후의 선거에는 상대가 없었다. 이번 3선 도전에는 후보자가 없어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바였다.
시정은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다. 특화된 전문 물류를 바탕으로 전개된 지역발전 노력은 관련 산업단지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일자리가 늘었다.
전국의 모범이 되니 정부의 지원도 잇달았다. AI 자연공원이 대표적이었다. 원시시대부터 미래세계의 가상 자연환경체험까지 가능한 이 공원은 중국은 물론이오, 유럽까지 입소문을 탔다.
여기에는 탁 기획의 유빈과 K-팝 가수들이 일조를 했다. 그들이 공원을 다녀가면서 소개한 글이 팬클럽을 타고 세계로 번지자 각국의 여행사들이 필수 코스로 소개를 한 것이다.
이제는 코스닥에 상장된 우석의 여행사도 큰 기여를 했다. 그는 K시의 자원에 스토리를 입혀 게릴라 관광코스를 개발해냈다.
AI로 체험하는 자연체험 상품이라는 역발상 덕분인지 호응이 좋았다. 경도도 우석의 여행사 주식에 투자했다. 5만 주를 산 것이 60%가 오르자 그 차액을 OK 후원회에 기부했다.
공보실장이 된 송혜영의 협력도 눈부셨다. 그녀는 이미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지만 시를 떠나지 않고 경도를 보필했다.
경도를 필두로 일치단결된 노력들은 지역주민의 소득향상으로 직결되었다.
재선 때 전국 최고소득의 지자체를 따라붙더니 3선 3년 차에는 마침내 전국 최고소득 도시로 부상되었다.
행정개혁 역시 소홀하지 않았다. 신들린 관상안으로 포진시킨 시청조직은 생산지수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조직에 암적 존재이던 근무불량자들과 비리 직원을 쳐내자 직장 분위기도 좋아졌다.
이은빛과 염정아 등의 여직원들을 국장으로 발탁한 것도 호응을 얻었다. 보건소장까지 합치니 전국 지자체에서 여성국장 비율이 최고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여자공무원 수가 많아진 것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실적까지 좋으니 이 또한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12년.
경도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도 눈부신 약진을 했다.
우선 명혜.
이제 성인이 된 그녀는 주요영화상 주연상을 두 번 먹고 1,000만 관객 영화를 세 번이나 돌파했다. 할리우드 진출도 성공적으로 마쳐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을 했다.
다음은 유빈이다.
그녀는 원숙한 연기로 대한민국 연예인을 대표하는 거물이 되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까지 팬덤을 넓혀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이다.
이상록은 OAC에서 나와 독립 증권회사를 차렸다. 그는 지금 투자의 귀재로 영국과 미국을 난타하는 큰 손이시다.
백지애 의원은 4선에 성공하면서 여자 최초의 국회의장을 먹었다.
하나하나 꼽기에 너무 많아 다 셀 수조차 없다.
경도에게는 너무나 신나는 일들이 아닐 수 없었다.
경도는 K시 시장 3선을 역임했다. 이어 지역구 의원 공천을 받게 되었다.
서울의 종로구였다.
김윤광 전임대통령.
최고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친 그는 아직도 정치적인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와 경도의 기연을 아는 당에서 경도에게 제의를 해왔다.
“종로를 맡아주시오.”
김윤광 이후로 종로는 이 당의 아성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회의원이 아빠 찬스 무리수로 제명되면서 아성에 금이 가고 있었다.
당으로서는 3선 시장으로 신화를 세운 경도를 구원투수로 발탁한 것이다.
조촐하게 퇴임식을 가졌다. 떠나는 마당에 직원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짝짝.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퇴임식을 마쳤다.
의회에 이어 각 국과 실과를 돌며 인사를 했다. 종착역은 민원실이었다. 많은 민원인들이 할 일 없이 논다고 생각하는 민원실. 그러나 거기서 잔뼈가 굵은 경도는 누구보다 그 애환을 잘 알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두나와 채은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나는 서울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채은은.
그새 경도 어깨보다 높게 자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시장님.”
경도를 부른 사람은 신보라 기업지원팀장이었다. 경도가 인사팀장일 때 임용된 신규 신보라. 어느새 6급 팀장이 되어 기업지원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녀가 내민 건 달고나 라떼였다.
“이번에는 국회를 평정해주세요.”
그녀는 경도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장이 되면서 경도조차 잊고 살았던 달고나 라떼를 작별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고마워.”
경도가 라떼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뒤에서 시샘에 겨운 조크가 날아왔다.
“어, 우리가 한발 늦었네?”
돌아보니 계치훈 서울경찰청장 부부였다. K시에서 수사과장을 단 이후 계치훈은 승승장구를 했다. 경도의 소개로 김윤광과 선이 닿은 까닭이었다.
김윤광은 계치훈의 수사능력과 경찰관을 높이 샀다. 그 결과 그의 작은 아버지도 실패한 치안정감에 오르게 되었다.
“오 박사님.”
그 부부의 아들이 달고나 라떼를 내밀었다. 아들은 채은이보다 두 살이 어렸다. 하지만 남매처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 라떼도 받아들였다.
짝짝짝.
청사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모든 창문마다 직원들이 도열해 박수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경도도 두나, 채은과 나란히 서서 화답했다.
“자, 이제 종로를 접수하는 일만 남았군요.”
계치훈 청장이 식사를 쐈다.
“우리 오 시장님, 잘하실 거예요. 관상내공만 보면 지구 대통령 나가도 문제없을 분인데…….”
다혜가 장단을 맞춘다.
“지구 대통령까지는 너무 오버십니다.”
경도가 웃었다.
“채 교수, 내가 오버하는 거야? 오 시장님 덕분에 관상에 관심 갖는 사람 부쩍 늘었잖아? 채은이도 그렇다며?”
다혜가 두나에게 말했다.
“채은이?”
경도 시선이 채은에게 건너간다. 아무래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저학년 때 겪은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경도의 관상을 자랑하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 날이었다.
-관상은 미신이야.
아이들이 떼로 덤비니 어린 채은이 당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채은은 관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경도에게는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채은이 관상에 관심이 있다고?
“실은…….”
두나 손이 가방으로 들어갔다.
“엊그제 채은이 학교에서 장래희망 조사를 했는데 채은이 장래희망이 이거였어요.”
두나가 노트를 펼쳤다.
거기 싸목싸목 적힌 한 단어가 경도 눈을 차고 들어왔다.
<관상가>
“오채은.”
경도가 채은을 바라보았다.
“아빠 미안, 나 이제 관상 좋아해.”
“진짜?”
“그럼, 누구 아빤데. 나 저번 때 엄마가 아빠에게 주었다는 확대경 봤거든. 아빠가 쌀알 볼 때 대체 뭐하나 싶었는데 그걸로 쌀알 보니까 진짜 색깔이 다르던걸. 그리고 알고 보니 관상도 과학이라더라? 인류 최초의 빅 데이터?”
채은이 경도 품에 안겨 왔다. 경도의 유전자, 이제야 채은의 몸속에 꽃이 피는 모양이었다.
때맞춰 준수도 가방을 열었다.
“관상가 장래희망 나돈데.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오 박사님 관상이 세계 최고래.”
준수도 노트를 꺼내놓았다. 거기 꾹꾹 눌러 쓴 장래희망도 채은의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