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상만렙 시장님-1> (24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42화

82. 관상만렙 시장님-1

“오 국장.”

이 시장 목소리는 한없이 잔잔했다. 병약해져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비운 무위자연의 경지가 거기 있었다.

“예.”

“우리가 만난 지도 오래되었지?”

“그렇군요.”

“처음 내 인상이 어땠나?”

“신이셨죠.”

“신?”

“우리 시의 행정달인이셨으니까요. 게다가 9급 서기보에게는 하늘과도 같은 사무관…….”

“자넨 지금이 하늘인가?”

“그건 아닙니다.”

“5급이 되어보니 어떻던가?”

“행복했지만 이내 적응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옳지 않네. 자넨 5급 따위로 끝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시장님.”

“용포읍으로 갔을 때 실은 사표 생각을 많이 했었네. 많은 공무원들이 그렇지. 좌천을 당하게 되면 말이야.”

이 시장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이제는 먼 산의 정상에 쌓인 눈을 본다. 이 시장에게도 쌓인 사연이 많을 일이었다.

“하지만 내지 못했지. 인간이라는 게 그렇거든. 사표와 현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슬쩍 현실로 돌아서지.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

“가끔 생각하네. 그때 사표를 냈더라면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뭘 하든 잘하고 계실 겁니다.”

“그럴까? 그때 행정사 자격을 따뒀으니 그 일을 할지도 모르겠군. 불법체류자나 난민 신청한 외국인들에게 행정의 느슨한 법망을 피해 합법적인 체류 따위를 알선하면서…….”

“…….”

“그랬으면 자네를 만날 수 있었을까?”

“…….”

“만났다면 지난번에 코로나로 인해 재난지원금을 줄 때겠지. 외국인들 등을 밀어 당신도 탈 수 있으니 일단 가서 따져보라고 하며…….”

“행정사들이 좋은 일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아는 선배들은 나쁜 일만 하거든. 더러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대한민국 행정의 틈새를 좀 먹는 인간들이 많아.”

“…….”

“사설이 길었네, 오 국장. 암 수술을 받고 났더니 생각이 많아졌어.”

“저는 괜찮습니다만 시장님 건강은 걱정이 됩니다.”

“무슨 걱정? 우리 집사람 말이 자네가 죽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던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나 시장으로는 죽었네.”

“시장님.”

“지정의가 그러더군. 가벼운 일상은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어려울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나도 쉽게 피로를 느끼네.”

“…….”

“이번 인사 결재를 하기 전에 대통령께 전화를 했었네.”

“그러셨습니까?”

“그분께서 나에게 정치입문을 권하셨으니 그분의 허락을 받았네. 여기서 시장직을 접는 것으로.”

“시장님.”

“아니면 이 몸으로 곧 닥쳐올 재선에 나가란 말인가?”

“…….”

“유세나 할 수 있겠나? 시민들은? 이런 시장에게 시정을 맡기면 안 되지.”

“…….”

“그랬더니 조건부로 수락을 하시더군.”

“조건부요?”

“문제는 그 조건부가 내 생각과 딱 일치했다는 것일세.”

“어떤……?”

“천천히 듣게나. 나 환자야.”

“…….”

“그래서 자네를 국장 승진자에 넣고 사인을 했네. 원래도 마음에 있었지만 부시장의 조언 때문에 미뤄둔 사안이었지. 그 양반 말이 개방형 공채자니 실적이 좋아도 한 템포 쉬어가는 게 좋을 거라고…… 아니면 시청에 자네 적이 많아질 수 있다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저런 눈치 다 보면 언제 인재를 키운단 말인가? 그래서 국장 승진을 단행해버린 거라네.”

“시장님.”

“왜 아니겠나? 자네가 이번 시장선거에 나가려면 단 하루라고 해고 국장 타이틀 정도는 달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스펙을 따지는 사람들도 많거든.”

“시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경도가 소스라쳤다. 국장 승진만 해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시장은 한술 더 떠서 시장출마를 말하고 있었다.

“오 국장.”

“시장님.”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나를 이 세계로 밀어 넣은 게 자네야.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하지만…….”

“그런 나도 해냈네. 하물며 대통령까지 만들어낸 자네의 혜안으로 무엇을 못한단 말인가?”

“시장님.”

“차기 시장에 출마해 주시게.”

이 시장의 본론이 나왔다. 잔잔하던 목소리에 돌연 힘이 실리니 경도조차 압도될 지경이었다.

시장출마.

그 단어가 경도의 심장을 치고 갔다.

“시장님.”

“동시에 청와대의 대통령님 명이기도 하네.”

“……?”

“그분의 옵션이셨네. 이 말씀도 하시더군. 그분 취임식 때 자네가 앞으로도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그러니 그 약속을 지금 지켜달라고 하면 알 거라고.”

“…….”

경도가 다시 경련한다.

취임식장에서 했던 말이다.

경도도 기억한다.

그런데.

그게 이런 뜻이었단 말인가?

그랬다.

그분은 다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백지애까지 내세워 인증을 받았던 거였다.

“부탁하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은 우리 시. 자네라면 대한민국 어느 지자체 못지않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걸세. 그렇게 시장을 두어 번 한 후에 국회로 진출하시게.”

“시장님.”

“내가 아직은 자네의 시장인가?”

“그야…….”

“분명하게 말하게.”

“당연히 저의 시장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시장으로서 마지막 명령일세. 오경도 국장, 시장에 출마하시게.”

이 시장이 쐐기를 박았다.

“선생님.”

두나도 경악했다.

국장 승진에 좋아할 사이도 없었다.

“시장 출마라고요?”

“일이 그렇게 되고 있어.”

“저는 뭐가 뭔지…….”

“나도 그래.”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아요.”

“뭘?”

“선생님이 잘해낼 거라는 거요.”

“두나?”

“이 시장님, 멋진 분이시잖아요? 그분 판단이 틀릴까요? 그리고 전에 대통령께서도 그런 말을 하셨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큰일을 해야 할 때, 제게 측면 지원을 부탁한다고.”

“두나에게?”

“네.”

“헐, 이제 보니 나만 빼고 다들 말이 있었었구나?”

“저하고 채은이를 보세요.”

“……?”

“저는 선생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에요. 하지만 저도 해냈잖아요? 미국 땅으로 혈혈단신 건너가 제 꿈을 이뤘어요. 그 꿈에 길을 놔준 건 선생님이셨죠. 그런데 선생님이 못 할 일이 있을까요?”

“그만. 이제 보니 다들 짰지? 시장님도 같은 말을 하셨거든.”

“도전은 아름다운 거예요. 선생님의 지론이기도 하고요.”

“헐.”

“채은이 앞이에요. 나중에 우리 채은이가 어려운 일에 도전할 기회가 생기면 그 일은 너무 어려우니 그만두라고 하실 건가요?”

“두나.”

“아니겠죠. 선생님은 당연히 채은이 어깨에 신뢰를 실어줄 거예요. 너는 할 수 있어라며.”

“두나.”

“남들에게만 천기를 주시다 보니 잘 모르시나 본데 이건 선생님의 운명에 내린 천기누설이에요. 저하고 채은이는 그렇게 생각해요.”

두나의 눈빛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지금껏 경도가 본 중에서 가장 그랬다. 덩달아 채은의 눈빛까지 빛나고 있었다.

시장?

난 정치 체질 아니거든.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때.

딩동, 인터폰이 들어왔다.

“경비실입니다.”

아파트 입구의 경비 아저씨였다.

“무슨 일이죠?”

경도가 답했다.

“잠깐 내려와 보셔야겠습니다.”

경비의 말이었다.

“큰 택배라도 왔나? 잠깐 갔다 올게.”

경도가 현관을 나섰다.

“……!”

경비실 앞에 도착한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꽃의 산 때문이었다.

“부녀회장님들이시라고…… 각 읍면동에서 닥치는 대로 오셔서 놓고 가셨어요.”

경비가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꽃에 리본들이 묶여 있었다.

<축 승진>

경도의 상상은 그것이었다. 매번 승진을 챙겨준 지역주민들이었다. 그러니 국장 승진소식을 알고 다녀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구가 달랐다.

<시장에 출마해주세요.>

<오경도 시장,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름입니다.>

리본마다 출마를 권유하는 응원문구가 반짝거렸다.

‘대체?’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안선주의 전화가 들어왔다.

-회장님.

“오 국장님.”

국장.

그녀는 역시 경도의 승진을 알고 있었다.

-승진하셨더라고요.

“예, 그게…….”

-그 축하는 좀 미뤄두려고요.

“그건 괜찮습니다만……”

-꽃 말이죠?

“예.”

-실은 이 시장님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시장님?’

-시장님께서 암 말기 수술을 받아 재선에 도전하실 수 없다고요. 후임으로 오 박사님만 한 사람이 없는데 자기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저보고 지원을 해달라고 하셔요.

“…….”

-그 꽃 계속 쌓일 겁니다. 오 박사님에게서 오케이가 나올 때까지요.

“회장님.”

-우리는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 이날이 올 거라는 거. 국회의원이 아니면 시장이라도 출마하세요.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회장님.”

통화하는 사이에 또 다른 차량이 도착했다. 용포읍의 다른 리에서 온 아줌마 군단이었다. 그들은 다투어 경비실에 꽃을 놓았다. 꽃의 행렬은 그 후로도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

언제 나왔는지 두나가 채은을 안고 서 있다.

“…….”

“이제 시민들의 명령까지 더해졌네요.”

“그렇네.”

경도가 꽃 산으로 다가섰다. 그중 하나를 집어 채은 앞에 내밀었다. 채은이 방긋 웃는다.

“아빠 출마해야겠다.”

아이 앞에 약속을 했다.

경도의 결단이었다.

***

오경도

배선규

최기동

홍상선

K시의 시장후보 윤곽이 드러났다. 그걸 알아온 건 조경철이었다. 경도의 출마 결심이 알려지기 무섭게 그는 선거태세에 들어가 있었다. 하나로일보 지국장직까지 내놓은 것이다.

“오 박사에게 진 평생의 빚을 갚아야지. 정치부 기자 경험은 언제 써먹나.”

그의 각오였다. 빚이 뭐가 있냐고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경쟁자 세 명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 라이벌은 배선규였다. 그는 본래 야당의 국회의원 후보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야당에서 표적공천으로 내려보냈다.

김윤광에게 당한 이서복 전임 총리의 구상이었다. 김윤광은 놓쳤다. 하지만 경도의 입지를 알게 되었다.

이서복은 대타 복수를 원했다. 김윤광의 복심이 실린 K시의 지역구 의원과 단체장에게 복수의 칼날을 날리려는 것이다. 당내 입지가 좁아졌지만 그 정도 선택권은 있었다.

지역구 의원은 SS급 인지도의 후보.

시장은 S급 인지도의 후보를 투입한 것이다.

배선규 후보.

그의 스펙은 기가 막혔다. 서울의 국회의원 후보로 가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다. 투자전문가로서 국민연금에 기여했다.

그가 올린 수익률은 10년 이래 최고 실적이었다. 이후에 국민연금 투자실장을 그만두고 기업 M&A에 뛰어들었다.

여기서도 괄목할 성과를 올렸으니 중국의 기업집단 역사냥에 나서 한국에게 필요한 원료를 확보하는데 공헌한 것이다.

그걸 바탕으로 젊은 벤처기업 조성에 나서 청년일자리 환경조성에 힘을 보탰다. 따라서 본래는 여당에서 픽업하려했지만 이서복과 인연이 깊은지라 신인 쟁탈전에서 밀린 것이다.

<야당 중앙당 차원의 지원에 차기 국회의원 공천 보장>

그런 딜을 맺었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보기 드문 거물과 붙게 되는 경도였다.

배선규의 각오도 남달랐다.

그는 정계에 뛰어들며 부모의 묘부터 이장했다. 그건 조경철의 정보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자미원국(紫微垣局).

조경철의 입에서 나온 명당의 이름이었다.

경도가 빙그레 웃었다.

관상만큼은 아니지만 풍수에도 일가를 이룬 경도였다. 풍수에서 자미원국은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중국 풍수에서는 낙양(洛陽)과 장안(長安)등 서너 곳만을 자미원국으로 꼽는다.

대한민국에서는 차령산맥이 끝나는 지점에 결혈이 있다는 말이 전한다. 결혈은 생기가 뭉쳐진 ‘찐 명당’이다.

별자리로 치면 최고의 중심을 가리킨다. 그렇기에 풍수에서 왕의 자리로 본다. 현대로 치면 대통령이나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다.

배선규의 포부가 엿보였다. 어쩌면 경도 정도는 안중에 없을 수도 있었다.

최기동은 K시 국장 출신이다. 원래도 이 시장과 경도를 벼르더니 이 시장이 암 투병에 들어가면서 재선이 어려운 차에 경도가 출마한다고 하자 그도 뛰어들었다.

홍상선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창교에게 밀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9급 때 만났던 경도라면 다를 것 같았다. 그런 자만이 그를 선거판으로 밀었다.

최기동의 출마는 말리고 싶었다. 그의 관상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중하지 않으면 파산으로 치달을 사람. 그러나 경도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니 별수 없었다.

홍상선의 관상은 체크했다. 올해는 그나마 기세가 좋았다. 그게 자신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등극할 기세까지는 아니었다.

관건은 역시 배선규였다.

‘어디 보자.’

경도의 관상안이 배선규의 운명을 싸목싸목 벗겨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