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41화
81. 운명의 명을 받았습니다-2
산근(山根).
산근은 질병의 바로미터다.
양 눈 사이를 이른다.
보통 질액궁이라 하면 산근과 함께 콧대의 연상과 수상을 함께 이른다. 코끝 준두도 빠지지 않는다.
산근은 코의 뿌리다. 뿌리가 부실하면 코라는 산이 무너진다. 그것은 곧 건강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관상에서는 인당을 머리.
코는 몸통.
눈썹은 두 팔.
법령은 다리에 비유한다.
코는 특히 위장을 반영한다. 날 때부터 위가 허약한 사람은 대개 산근이 부실하다.
찰색은 윤기나는 황색이 좋다. 이런 산근이라면 질병이 없다. 하지만 산근이 어두워지면 질병이 강림한다.
검은빛이 돌면 중병을 앓고 있다는 뜻이고 산근에 주름이나 흉터가 생기면 뜻을 이루기 쉽지 않다. 몸이 건강하지 않고서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을 하기 무섭게 일일업무 보고를 챙겼다. 시장실로 갈 생각이었다.
이 시장은 당선 이후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다. 이번에 입주 기업을 찾아 나서는 물류단지도 그랬다. 아침저녁으로 공사진척을 독려하고 한편으로는 유력 업체들을 찾아가 직접 홍보를 했다.
모든 사업들이 이런 식이었으니 철인이라고 해도 문제가 될 판이었다.
덕분에 이 시장의 얼굴은 까무잡잡해졌다. 경도도 새로운 복지정책을 발굴하기 위해 늘 분주했으니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이 시장의 관상을 간과했던 것이다.
‘별일 아니어야 할 텐데…….’
결재를 하면서도 마음이 바빴다.
그때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또삐또.
앰뷸런스의 경광등 소리였다.
‘아뿔싸.’
경도 몸에서 맥이 풀려나갔다. 예감이 온 것이다. 그길로 문을 차고 나갔다.
“과장님.”
민지가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무조건 시장실로 뛰었다.
“……!”
먼발치의 시장실을 보는 순간, 경도가 휘청 흔들렸다.
“오 과장님.”
비서실장이었다. 하얗게 질린 그는 119 구급대원들과 함께였다.
“방금 중대사안 결재를 하시다가…….”
쓰러졌다.
경도가 안으로 뛰었다. 구급대원들이 이 시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이 시장은 의식이 없었다.
“시장님.”
마지웅도 파랗게 질렸다. 그도 인사 결재를 받으러 왔던 모양이었다.
“……!”
경도도 당혹스럽다. 시장의 산근은 어제보다도 더 검게 변해 있었다.
“시장님.”
소식을 들은 부시장과 국장들, 그리고 실과장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들것에 실려 가는 시장 뒤를 따라 나갔다.
삐또삐또.
앰뷸런스가 멀어진다. 비서실장과 엄 국장, 그리고 비서실 직원 둘이 그 뒤를 따랐다.
“오 과장.”
육 국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관상의 견해가 궁금한 것이다.
“…….”
“심각한가?”
“…….”
“오 과장.”
“그런 것 같습니다.”
경도 입에서 상괘가 새어 나왔다. 숨길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
“오 과장.”
“어쩌면…….”
메아리처럼 멀어지는 앰뷸런스 소리를 들으며 경도가 말을 이었다.
“다시 시장실로 오시지 못할지도…….”
“……!”
육 과장이 소스라쳤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재수 없는 말 말라며 핀잔이라도 줄 일. 그러나 경도의 상괘였으니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아, 이거…….”
마지웅도 황당하다. 그 손에 들린 인사 파일 때문이었다.
순간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장의 사모님이었다.
-오 과장님, 미안하지만 병원으로 좀 와줄 수 있어요?
사모님의 요청이었다.
경도가 차에 올랐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 과장님.”
병원에 도착하자 사모님이 달려왔다. 전화를 하고는 내내 경도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시장님은요?”
“MRI 찍은 후에 조직검사 중이에요.”
“…….”
“우리 시장님 관상 보셨어요?”
“…….”
“어땠어요?”
“…….”
“과장님.”
“죄송합니다.”
“그럼?”
“…….”
“아휴, 난 몰라.”
사모님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녀는 이미 의사의 가진단을 받아들고 있었다.
<췌장암으로 보이는데 굉장히 심각합니다. 상세한 건 조직검사 중입니다만…….>
억장이 무너지는 그 진단.
마지막으로 매달리고 싶은 게 경도의 상괘였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사모님.”
경도가 그녀를 부축했다.
“죽나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경도라면 그것조차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귀를 봐야 합니다.”
경도가 중얼거렸다. 이 시장의 재액은 속도가 빨랐다. 너무 빨라 명운까지는 읽지 못했다. 인당이 검고 산근이 검어도 귀의 윤곽색이 괜찮으면 죽지 않는다.
준두가 밝아지고 명문이 밝아지면 오래지 않아 회복되겠지만 그것까지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가요.”
사모님이 경도를 잡아끌었다. 비장하다. 이 시장이 후보 사퇴를 하려 할 때, 경도의 당부로 나설 때보다도 사모님은 비장했다.
“오 과장.”
특실 앞에 이르자 조경철이 보였다. 그도 취재차 달려온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경도가 특실로 들어섰다.
비서실장이 시장 곁을 지키고 있었다. 경도 뒤로 의료진들이 들어섰다.
“선생님.”
비서실장이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의사는 경도를 의식한다.
“이분은 괜찮습니다.”
사모님이 경도를 챙겼다.
“이거 참…….”
진료부장은 한동안 난처해하더니 겨우 진료결과를 알려주었다.
“췌장암이 맞습니다. 말기에 접어든 것 같은데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
“하지만 비장과 임파 쪽으로도 전이 소견이 보여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저희 소견으로는 수술이 잘 된다고 해도 시정업무는 보시기 어려우실 것으로…….”
“…….”
사모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는다. 의사의 한숨도 덩달아 깊었다.
“환자가 깨어나면 다시 오겠습니다.”
의사들이 물러갔다.
“과장님.”
사모님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경도가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지푸라기였다. 그거라도 잡아야 했기에 경도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사박.
경도가 이 시장 앞으로 다가섰다.
기색이 밝아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기색이 확 밝아지면 바로 죽는다. 그러니 일단 최악은 피한 셈이었다.
귀부터 보았다.
“……!”
경도 눈에 희망이 스쳐 갔다. 귀의 윤곽을 따라 붉은 기색이 살짝 엿보였다. 눈을 가다듬고 다시 확인했다.
미세하지만 희망의 기미가 분명했다. 코의 준두와 귀 옆의 명문도 체크했다. 그쪽의 재액도 일단은 멈춤이었다.
“위기지만 이 일로 목숨까지 잃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아휴.”
경도 상괘가 나가자 사모님은 가슴을 뜯으며 안도했다.
그 순간에도 경도의 관상안은 이 시장의 산근과 귀에 꽂혀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 시장의 손을 잡았다.
시장님.
이겨내세요.
꼭 일어나셔야 합니다.
불운과의 대적에서는 역전의 명수가 아니십니까?
그 염원이 통했을까?
이 시장 손에 힘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
시청이 뒤집혔다.
방송에도 이 시장의 과로와 췌장암 진단에 대한 뉴스가 나갔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이 시장을 픽업한 김윤광도 면회를 다녀갔다. 수술이 끝난 이틀 후였다. 그 자리에는 경도도 있었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사모님에게 한 말을 대통령에게도 했다. 김윤광은 경도의 손에 신뢰를 실어주었다.
시청 직원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장이 쓰러지니 이래저래 업무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 공백은 뜻밖에도 엄 국장이 바로잡았다. 6급 이상의 간부회의였다. 자원과 이경국 과장이 인사 얘기를 들고나온 자리였다.
“그래도 인사는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엄 국장의 격노가 거기서 터졌다.
“지금 인사가 중요합니까? 시장님이 과로로 쓰러졌어요. 우리 모두가 한층 합심해서 분발해야 할 시기에 인사? 이거야말로 제사보다 젯밥으로 가자는 것 아니오?”
“아니, 제 말은 어차피 할 인사이니 분위기 쇄신차…….”
“말을 가려 하세요. 어차피라뇨? 시장님은 지금 유고가 아닙니다. 췌장암 말기로 수술을 겸해 투병하고 계신 데 거기다 인사결재판을 들이밀자고요?”
엄 국장의 카리스마도 볼만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쌓인 내공이었으니 자치행정국장의 위엄과 맞물려 제대로 기강을 세운 것이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허튼 투서 따위로 직원들이 욕을 볼 때 시장님이 분연히 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정당한 공무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직을 걸고 우리 직원들을 보호할 거라고. 그래서 민원인의 폭행도 감사원의 엄포도 다 책임지신 거 기억하시죠?”
“…….”
“내가 시장님의 발끝도 쫓아가지 못하겠지만 저도 직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시장님이 부재중이라고 일손 놓고 승진운동이나 하는 직원이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엄 국장의 사자후는 볼만했다.
짝짝.
경도는 박수를 칠 뻔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모습 중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와아. 엄 국장님 개멋짐 폭발.”
소문을 들은 은빛도 환호했다.
“진짜 많이 변하셨다니까. 옛날 엄 팀장님이 아니셔.”
민지도 흥분상태다. 6급 팀장으로 현장을 본 그녀였으니 감동이 두 배였다.
“아, 그런 건 찍어왔어야죠.”
“미안. 나는 너처럼 순발력이 없어서…….”
은빛의 애정스러운 다그침에 민지가 얼굴을 붉힌다.
“이경국 과장님도 너무 하시네. 국장 승진 소문이 돌기는 하던데 거기서까지…….”
은빛이 혀를 찼다.
“이 주임님도 걱정됩니까?”
경도가 물었다. 은빛도 승진후보의 한 사람이다.
“절대 안 걱정이에요. 승진하면 다른 데 갈까 봐 더 걱정이거든요.”
“편안하게 계세요. 관록궁과 천이궁이 다 좋으니 잘 될 겁니다.”
“승진보다 다른 부서로 갈까 봐 걱정이라니까요.”
은빛이 항변했다.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 주의 목요일 오전, 자치행정과 3인방이 병원으로 불려갔다. 엄 국장과 자치행정과장, 그리고 인사팀장 마지웅이었다.
경도는 퇴근 후에 병문안을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악.”
내부망의 화면을 보던 민지가 비명을 질렀다.
“팀장님, 왜요?”
은빛이 민지를 바라보았다.
“인사…….”
“인사 떴어요?”
“시장님이 병상 결재하셨나 봐. 방금 올라왔어.”
“어머어머.”
은빛도 화면을 불러냈다. 자기 이름부터 확인했다.
“……!”
<지방행정주사보 이은빛, 지방행정주사에 임함, 지역복지정책과 자립지원팀장에 임함.>
자기 이름이 있었다. 승진이었다. 게다가 부서 이동도 없었다. 그녀가 바라던 최고의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민지의 반응은 이보다 격렬했다. 그녀가 사무관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은빛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 상단으로 올라갔다. 국장 승진부터 체크하는 것이다.
“악.”
첫 화면이 보이자 은빛도 비명을 터뜨렸다.
“왜요?”
경도가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복지기획팀에서 다른 비명이 날아왔다.
“과장님, 국장 승진이에요. 환경국장…….”
“나?”
“네.”
이번 대답은 복지과 전체의 목소리였다.
“장난해? 내가 무슨……?”
승진자 명단을 보던 경도 시선이 화면에 꽂혔다.
<지방행정사무관 오경도 지방행정서기관에 임함, 환경국장에 임함.>
“이것?”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국장님.”
다른 과에서도 합창이 날아왔다. 순간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비서실장이었다.
-오 국장님.
호칭이 달라졌다. 그도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실장님.”
-시장님께서 잠깐 뵙기를 청하십니다.
“저를요?”
-지금 병원으로 좀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대체…….’
병원으로 달려가면서도 경도는 얼떨떨했다. 개방형 과장이 된 지 3년이 지났다.
인사팀장을 역임했으니 규정에 하자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5급에서 4급이 되는 승진최저연한은 3년이다. 그걸 지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뜻밖이었다. 석 처장의 공로연수가 확정되면서 국장 자리 하나가 공석이 되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4년 차에 접어드는 경도였으니 승진예정자 후보에 들었다는 말도 못 들은 터였다.
“들어가시죠, 국장님.”
병원에 도착하자 비서실장이 병실을 가리켰다.
안쪽으로 이 시장이 보였다. 환자복을 입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겨울이라 창밖이 황량하다. 그러나 중병의 이 시장에게는 따로 보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축하하네, 오 국장.”
이 시장이 악수를 청해왔다.
“시장님…….”
“왜? 4급은 자신 없나?”
“그런 게 아니라…….”
“조금 극적이긴 하지만 어차피 올라갈 자리였네.”
“저는 뭐가 뭔지…….”
“그럼 심정을 잘 추스르시게. 그래야 내가 진짜 당부를 할 수 있을 테니.”
“진짜 당부라고요?”
“그럼 내가 천하의 오경도에게 고작 4급 서기관 자리의 짐을 맡길 줄 알았나?”
고작 4급.
그 단어에 강력한 방점이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