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40화
81. 운명의 명을 받았습니다-1
“……!”
장세붕의 이마에 서늘한 타격이 스쳐 갔다.
죽은 사람.
간보기를 한 방에 관통하고 있었다. 사진 속의 인물은 장세붕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 전무였다. 8년 전에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있을 때 승승장구하던 장세붕의 회사. 그 그리움으로 품고 다니던 사진이었다.
“허어.”
햇수까지 맞췄다.
장세붕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도 소소한 미신을 신봉했다. 그렇기에 회사를 창립할 때는 돼지머리에 정성스럽게 절을 했다.
새 차 트렁크에 북어도 매달고 다니고 지갑 속에는 100만 원짜리 부적도 있다. 그 말은 곧 많은 무속인들을 만났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토록 기막힌 촌철살인은 없었다.
“기가 막히군요. 8년 전에 죽은 내 가신이 맞습니다.”
“천기를 알려주렸더니 의심의 눈으로 보시는군요. 그러시다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의심으로 가득 찬 분들과는 상대하지 않습니다.”
경도가 슬쩍 일어섰다.
기선제압을 위한 승부수였다.
어차피 관상 봐주자는 목적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전적인 신뢰가 필요했다.
“오경도 과장님.”
그가 경도 손을 잡았다. 경도의 공무원증에서 이름을 본 것이다.
“제가 무례했군요. 사과하겠습니다.”
예의를 갖춰주니 경도가 다시 착석했다. 바라보는 조 국장의 애가 쫄깃거리기 시작했다.
“3년 전에 타격을 받은 건 맞습니다.”
장세붕의 이실직고가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한 방, 작년에 다시 두 방. 원인은 그 턱에 생긴 상처 때문입니다. 그즈음에 생겼죠?”
“어헉.”
장세붕이 턱을 가리며 경기를 했다. 첫 비보가 날아온 게 턱을 다치고 한 달 후였기 때문이었다.
“유년운기부위에 일진과 월진을 짚으니 오후 2시 반 경. 회사를 기준으로 남쪽에서 일어난 일이로군요?”
“어헛.”
장세붕이 한 번 더 흔들린다. 3년 전의 일을 시간까지 찍어대니 정신줄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맞습니다.”
대답하는 그의 얼굴은 경도의 경외감에 포로가 된 지 오래였다.
“그 이전에는 곤란을 몰랐을 겁니다. 콧방울이 튼실하니 어떤 위기를 만나도 극복했겠죠. 22년 전에 그랬고 13년 전에는 엄청난 위기도 넘겼군요. 화마 말입니다. 이마의 복당 속에 흔적이 남았지만 아련한 것을 보니 제대로 극복하셨습니다.”
“…….”
장세붕이 계속 얼어붙는다.
이제는 감탄도 나오지 않았다.
화마였다.
야심 차게 시작한 새 물류창고 두 동이 완공 직전에 불길에 휩싸인 것이다. 인부도 둘 죽었지만 회사 이미지에 대한 타격이 컸다.
그러나 극복했다. 사고 현장에 나가 텐트를 치고 세 달을 버텼다. 솔선수범 잔해를 치우고 재건에 힘쓰니 오히려 화제가 되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콧방울 때문입니다. 넓은 법령도 든든한 재산입니다. 이런 관상은 사업수완이 좋으니 결국 업계의 정상권에 등극을 했겠죠.”
“…….”
“노복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턱에 흠이 생기면서 그 신화에 금이 갔습니다. 그때부터 대표님은 직원들 문제로 사세가 주춤거렸을 겁니다.”
“사실입니다.”
“노복궁에 상처가 나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아랫사람으로 인한 손실이 꼬리를 물게 되지요.”
“그 말은 제 운이 끝났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대리하시면 되지요.”
“대리?”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행히 아드님 복을 받을 것 같으니 아드님을 투입하십시오. 올해 28세가 되는군요.”
“우리 아들은 의류학과 출신으로 의류홈쇼핑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장세붕이 사진을 꺼내놓았다.
“대표님도 물류전문학과 출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
“와잠에 고운 삼색 찰색이 엿보입니다. 그게 좌측이니 좌남우녀라. 아들을 앞세우면 노복궁의 흠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제가 대표님과 상극을 이루는 관상 몇 개를 뽑아드릴 테니 그런 분들에게는 큰일을 맡기지 마십시오. 최소한의 방책은 될 겁니다.”
“허어.”
장세붕이 무릎을 친다. 경도의 상괘에 완전히 홀린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오, 나하고 여기 물류단지 관상은 어떻습니까?”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다.
조 국장과 양 과장의 귀가 쫑긋 올라갔다.
경도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경도의 상괘는 그들 기대와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어울리지 않습니다.”
“……!”
조 국장과 양 과장의 기대가 무너지는 게 보였다. 양 과장에게서는 탄식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섭섭하기도 했다. 저렇게 관상에 빠져 있을 때…….
-기막힌 궁합입니다. 입주해주십시오.
그 한 마디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도의 상괘가 그것으로 끝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드님은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이분의 방위를 짚어보니 동남쪽이 행운의 방향입니다. 아드님을 앞세운다면 우리 물류단지가 굉장한 경쟁력이 되어 줄 겁니다.”
“…….”
“이건 덤으로 드리는 말인데…… 지금 추진 중인 사업이 또 있으시죠? 조금 먼 곳이군요?”
“예…… 경남권에…….”
“우리 시 물류단지에 입주하시는 것과 별개로 그 건은 중단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눈썹에 푸른빛이 서리고 그 빛이 이마의 변지로 달리고 있으니 기세로 보아 3년 정도. 그 안에 대표님의 기반을 중심으로 사업하시는 게 좋습니다. 가급적이면 외국 출장도 가지 마십시오. 재미 보지 못합니다.”
“그러잖아도 얼마 전에 중국 시장조사를 갔다가 봉변만 당하고 왔습니다. 미리 약속했던 그쪽 업계 사람들이 한결같이 약속을 깨고 자리에 나오지 않더군요.”
“제 관상은 이것으로 접겠습니다.”
“그건 안 되죠.”
장세붕의 손이 또 경도를 잡았다.
“예?”
경도가 장세붕을 바라보았다.
“아들을 내세우면 이 물류단지가 대박이라면서요? 내 평생 이렇게 기막힌 관상은 처음이니 입주 계약하겠습니다.”
“대표님.”
“경남권 확장을 포기하면 여력이 남습니다. 그러잖아도 아들과 회사문제를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농담 삼아 믿을 놈 없으니 네가 와주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긍정적으로 답하더군요. 아들 이름으로 계약하고 입주하겠습니다.”
“…….”
상황역전이다.
이제는 경도의 표정이 경외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물류 톱 5에 드는 회사의 입주 결정.
조 국장과 양 과장의 조바심이 시원하게 뚫려 나갔다.
장세붕이 사인을 했다.
그런 다음 봉투 하나를 보태주었다.
“이건 제 성의입니다. 복점은 복채 없이 보면 복이 달아나거든요. 그러니 그냥 받아주십시오.”
장세붕은 경도에게 깍듯했다.
그가 돌아가자 황 과장과 주임 등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 과장님.”
“으아아, 해동냉장 입주 결정.”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시장님께 보고 드리시게. 굉장히 좋아하실 거야.”
조 국장이 경도 등을 밀었다.
“전화는 국장님이 거십시오.”
경도가 양보했다. 경도는 일종의 파견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순간에도 선을 넘지 않았다.
“시장님 조기룡입니다. 낭보입니다.”
조 국장의 목소리가 임시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다음 귀빈은 업계 톱 10의 경영자였다.
그는 금수저 집안이었다.
덕분에 골격과 외모, 부위의 3박자가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옥에 티가 있었으니 기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이 물류단지에 관심이 있었다. 사업의 확장보다는 투자를 겸해 진출할 생각이었다. 조 국장과 양 과장의 기대가 쏠렸지만 경도가 또 칼거절을 놓았다.
“대표님은 3년 후에 오시는 게 좋습니다.”
맛배기 관상 후에 던진 상괘였다.
“기색이 체하면 9년간은 조신하시는 게 좋습니다. 다행히 색이 막혔으니 3년입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이니 앞으로도 2년은 새 사업에 진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리를 하다 신기색이 함께 막히면 사업이 어려워질 겁니다.”
“이봐요.”
“하지만 그래도 막내 따님 쪽에는 운이 트일 것 같군요.”
경도가 희소식을 끼워 넣었다. 이 대표는 딸만 넷을 낳고 있었다.
“작년 말부터 회사실적이 내려가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막내는 아니라오. 오늘 스튜어디스 시험을 보러 갔는데 불합격할 확률이 100%입니다.”
“합격하면 제 말에 따르실 겁니까?”
“허어, 이 사람이 여기 공무원 맞아요? 단지 입주신청을 하러 온 사람을 거부하다니. 당신이 관상은 조금 보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우리 막내는 똥고집이라 스튜어디스 면접도 생머리에 원피스 입고 가는 아이입니다. 이번만 세 번째인데 앞선 두 외국항공사 면접에서 복장이 뭐냐고 주의를 들었음에도 바꾸지를 않아요. 항공사들은 에티켓을 중시하니 안 봐도 불합격입니다.”
“미안하실 거 없습니다. 따님은 합격하실 테니까요.”
“아니, 이 사람이 그래도…….”
그 순간 대표의 핸드폰이 울렸다.
“우리 막내요.”
대표가 핸드폰을 받았다. 표정이 바로 굳어버린다. 비보라서가 아니었다. 놀라움 때문이니 경도의 상괘가 적중된 것이다.
“허어.”
통화를 끝낸 대표는 어쩔 줄을 몰랐다.
“당신 참, 허어…….”
“…….”
“내가 특별지원이다 감세다 하는 감언이설로 업체 유치하려는 산업단지는 많이 봤어도 오지 말라는 곳은 처음입니다. 그러니 더 오고 싶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신통한 분의 말이니 어쩔 수가 없군요. 대신 3년 후에 올 테니 그때는 꼭 자리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허헛.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대표는 혀를 내두르며 돌아갔다.
“오 과장님…….”
옆에 있던 황 과장이 울상을 지었다. 조 국장도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한 업체의 입주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굳이 온다는 기업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경도의 설명이 나왔다.
“인간의 재복은 삼양에서 비롯됩니다. 삼양은 눈 아래의 태양과 귀 옆의 명문, 그리고 코의 준두가 결정합니다. 지금 그 찰색이 칙칙하니 은둔할 시기입니다. 우리 물류단지로 오면 당장은 좋겠지만 6개월 안에 파국을 맞게 될지 모릅니다. 인지도가 있는 회사가 파국을 맞으면 우리 물류단지의 이미지가 흉흉해집니다. 당장은 입주가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이 단지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안정된 재원이 되려면 입주 기업들이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당장 오리 배를 갈라 알을 꺼내기보다 나중에 입주를 권장하는 게 긴 안목상 좋다고 봅니다.”
“……!”
조 국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시장이 왜 경도를 애지중지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관상을 잘 보고 업무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의 능력을 배양시키고 인화를 시켜서가 아니었다.
경도는 한 수 앞을 보고 있었다.
당장은 입주가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들이 망해나가기 시작하면 의미가 없다.
자칫하면 유령 물류단지가 될 수도 있다. 급한 마음에 생각지 못하던 큰 그림. 경도는 그걸 보고 있었다.
이다음의 귀빈은 입주계약에 성공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이 절반이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했다.
냉장냉동물류 상위권 업체 두 곳과 계약을 했다.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러자 주저하던 군소업체들이 하나둘 사인 대열에 합류했다.
94% 입주계약.
최종 성적이었다.
100%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성공적인 실적이 아닐 수 없었다.
“자, 수고들이 많았습니다. 시원하게 한잔하고 안주는 나로 대신하세요.”
이틀 후에 이 시장이 물류단지 관계자들을 불러 간단한 회식을 열어주었다. 파전 전문점이라 전에 동동주가 전부지만 분위기는 그 이상이었다.
“자, 건배.”
“건배.”
이 시장의 건배사를 따라 할 때였다. 다들 흔쾌히 술을 마시지만 경도의 손은 허공에서 멈췄다.
그 시선의 지향은 이 시장의 산근이었다.
명문이었다.
귀의 윤곽이었다.
돌연 병환의 횡액이 출렁거렸다.
경도의 눈이 빠르게 입의 구각으로 내려갔다.
“아.”
옆 사람이 들을 정도의 신음이 나왔다. 구각까지 푸른빛이니 중병이었다.
“오 과장? 피곤한가?”
이 시장이 물었다.
그 사이에도 질병을 상징하는 이 시장의 산근은 점점 더 흑빛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