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38화
80. 10청의 승천-3
“우리 초재선의원들은 오늘 국민적 여망과 민의를 받들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초재선의원들은 비록 정치적 경륜은 일천하지만 국민과 국가를 위한 열정만은 누구보다 뜨거워 현대사에 이르러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젊은 민선 대통령의 출현을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6개월 동안의 다양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도출한 것이니 오늘 우리 초재선의원들은 국민적 여망과 운명을 함께 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강은백이 화면에 나왔다.
다음 날 오전이었다.
그 뒤로 초재선의원들이 숲을 이루었다.
“오늘 우리 초재선의원들이 마음을 모아 추대하는 분은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렸던 우리의 미래입니다. 저 코로나 전성기 때는 백신을 만들어 국민 여러분의 건강 파수꾼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오, 바이오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던, 초선 입성에서는 정치1번가 종로에서 당대의 거물이었던 국무총리 출신 후보를 눌렀던, 이후 재선의원으로서는 최초로 원내대표에 이어 대선 선대위위원장을 맡아 정권창출에 기여했던, 남들이 입으로 국민을 팔 때, 오직 가슴으로 국민을 위해 일해 온 김윤광 의원이십니다.”
<김윤광>
단 한 번.
숲을 이룬 국회의원들이 그 이름을 연호했다.
짧지만 굵직한 메시지의 전달이었다.
같은 시간 김윤광은 그의 선영 앞에 있었다.
옆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 퇴원을 한 후에 바로 달려왔다.
입원 후의 일들은 보좌관들과 백지애에게 설명을 들었다. 이정엽이 다녀간 것도 경도가 다녀간 것도 알았다.
“어제 우리는 이정엽 의원님의 진짜 얼굴을 보았습니다. 다시 쓰러진다 해도 지지 선언을 할 겁니다. 당과 이 나라를 위해 출전해 주세요.”
아침까지 병원에 남아 있던 강은백과 백지애의 호소였다.
말없이 그 손을 잡았다. 엄청난 힘이 담긴 결합이었으니 수락과 다르지 않았다.
이정엽.
그는 대운의 폭주를 다스리지 못했다. 미리 터뜨린 샴페인이 독이 되었다. 그의 민낯을 들여다본 중진 계파들이 견제에 들어갔고 초재선의원들은 그들대로 더 뭉치게 되었다.
대선.
각종 여론조사에 김윤광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큰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그 자신이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짐을 내려놓는다면 그 또한 배신행위가 될 수 있었다.
권력은 풍수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많은 왕들이 풍수에 집착을 했다.
현대사의 대통령들과 후보들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선영 이장으로 뜻을 이룬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김윤광은 그 풍수를 위해 선영을 찾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뿌리 앞에서 나갈 바의 각오를 다질 뿐이었다.
단출하게 소주 한 잔을 부었다.
공손히 예를 갖추고 일어나 핸드폰을 잡았다.
“아버님, 접니다.”
김병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영에 왔습니다.”
-…….
“미력한 아들이 대권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려 합니다. 아버님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 의원.
“예.”
-큰 결심하셨네. 후회 없는 일전이 되기를 바라네.
“감사합니다.”
김병로와의 통화를 끝낸 그가 문자를 띄웠다.
[오 박사님, 저 경선후보에 출마합니다.]
경도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짧은 각오를 보내고 선영을 떠났다.
그의 목적지는 지지선언을 끝내고 모여 있을 초재선의원들의 진영이었다.
“가지.”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노성봉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릉.
시동이 산뜻하게 걸렸다.
작은 산과 들이 시선을 지나갔다. 마치 지난 정치 여정의 되감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김윤광은 생각했다. 그동안 지나 보낸 일들이 큰 재산이 되어주기를. 최고에 도전하는 삶에 마중물이 되기를.
“김 의원님이십니다.”
갈비집 마당에 내리는 김윤광을 보기 무섭게 강은백이 외쳤다.
“와아아.”
초재선의원들이 벌떼처럼 환호했다.
“김윤광, 김윤광.”
그들이 하나가 되어 연호를 날린다. 운집해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가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김윤광은 의원들 모두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었다. 의원의 손이 아니라 지역구 유권자들의 손이었다. 그들의 뜻을 의원들을 통해 받는 것이다.
출정이다.
훗날 이 장면은 김윤광의 출정식으로 명명되었다.
같은 시각, 경도는 국장단 앞에서 업무보고를 마쳤다. 복도로 나오니 핸드폰의 진동이 반응을 한다. 문자를 확인했다.
[경선후보에 출마합니다.]
김윤광의 문자가 별처럼 반짝거렸다.
‘큰 고비를 넘으셨군.’
가만히 웃었다.
경도의 눈빛도 별과 다르지 않았다.
일대 반전.
김윤광이 만든 쾌거였다.
그는 결국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다. 여섯 후보가 나온 가운데 1차 투표에서 41%의 득표를 얻었다.
이정엽은 35%였다. 누구도 과반을 넘지 못하니 1-2위 후보 간의 결선투표가 결정되었다.
3시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이정엽은 미친 듯이 분주했다. 자신을 밀던 중진과 원로 좌장들을 찾아다니며 공수표를 날렸다.
김윤광은 그저 예를 다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물으면 신념과 자신감만은 감추지 않았다.
두 번의 초대형 선거에서 선대위를 맡아 분전했던 김윤광.
-고작 재선 주제에.
알량한 선입견으로 폄하하던 좌장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선투표가 열렸다.
판을 까자 이정엽이 기절하고 말았다.
<김윤광 71%> 대 <이정엽 27%>
엄청난 지지가 나온 것이다.
이것은 곧 이정엽의 지지표까지 가져왔다는 뜻이었다. 그를 밀던 중진 좌장들 일제히 등을 돌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우리 당의 대선후보는 김윤광 후보가 결정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당 선관위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이정엽은 바로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모두가 김윤광의 곁으로 몰려들어 축하를 건넸다.
40대 대권의 신화를 쓰려는 김윤광.
그의 출사표는 이제 공식화되었다.
이 소식은 백지애를 통해 경도에게 전달되었다. 그녀는 김윤광의 최측근으로 포진하게 되었다.
“오 박사님, 김 후보님과 함께 청와대에서 뵙겠습니다.”
전화로 건너온 그녀의 각오였다. 김윤광 덕분에 국회에 진출한 백지애였다.
그러나 그녀는 숨은 재원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거의 다 그녀 손을 거치고 있었다. 그것조차 맹목적이거나 한 건을 올리기 위한 법안은 아니었다.
실효적이고 내실 있는 법안만 10개가 넘었으니 21세기 들어 나온 장애인 법안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들었다. 장애인들의 대모가 된 것이다.
통화가 끝나자 가속기를 밟았다.
경도는 서울의 탁 기획으로 가는 길이었다. 옆에는 두나가 타고 있었다.
“잘됐네요. 그렇게 애를 끓이시더니.”
통화를 들은 그녀가 웃었다.
“애라니?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야.”
“알아요. 하지만 심정적인 지지까지 막을 수는 없겠죠.”
“이해해주니 땡큐.”
“아니면요? 제가 감사원에 투서라도 할까요?”
“노, 그건 절대 사양.”
경도가 손을 저었다. 감사원 저승사자들의 출격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물론 그때 일은 약이 되었다. 특히 이 시장에게 그랬다.
<감사원에도 꿇리지 않는 시장>
<잘못이 없는 직원은 끝까지 책임지는 시장>
직원들의 평가가 더 올라간 것이다.
그것은 책임행정의 바탕이 되었다.
과거 민원 공무원 폭행 조치와 맞물렸다. 그들 셋에 대한 판결은 모두 무혐의였고 오히려 그들을 고소한 폭력 민원인들이 철퇴를 맞았다.
그들에게 포상과 특진까지 안기며 명예를 지켜줬던 이 시장. 재판까지 책임져줌으로써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나저나 떨려요. 은수가 잘할까요?”
두나가 가슴을 졸였다.
탁 기획으로 가는 건 소년원에서 만난 은수 때문이었다. 그 은수가 비보이 오디션을 보는 날이다.
선발이 되면 탁 기획의 전문적인 트레이닝과 케어를 받는다. 프로 비보잉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아, 은수는 여자니까 비걸이다.
선발인원은 세 명.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응시자만 300여 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탁 기획이 육성해오던 친구들도 다수 포진했다. 일반 연습생의 하나였던 은수보다도 유리한 친구들이었다.
물론 탁 대표라면 그런 정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100대 1의 경쟁률은, 웬만한 공무원시험보다도 높은 경쟁이었다.
[공개 오디션인데 와주실 수 있어요?]
[아저씨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그때 소년원에서 보여드린 건 너무 구린 춤이라서…….]
[뭐 바쁘시면 말고요. 아저씨 아니어도 응원단은 많거든요.]
며칠 전에 들어온 반 협박초대장이었다.
[합격할 자신 있으면 간다.]
경도의 답문이었다.
[그럼 그런 자신도 없으면서 오랄까요?]
은수의 답문은 당돌했다.
마음에 들었다.
연예인이 되려면, 춤꾼이 되려면, 이만한 배짱은 있어야 했다.
“오 박사님.”
기획사 앞의 환영은 TNTS의 곽수잉이 맡았다.
“바쁜데 왜 나왔어?”
경도가 괜한 핀잔을 주자,
“박사님에게 점수 좀 따려고요. 다른 애들은 저 나온 거 몰라요. 언니, 미안해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박사님 빌려요?”
곽수잉은 두나를 밀어내고 경도의 팔짱을 끼었다.
복도에 들어서니 비보이 응시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연예계 진출을 꿈꾸니 곽수잉을 모를 리 없다. 일부는 용기를 내어 주먹을 내민다.
“여러분, 파이팅.”
곽수잉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앞쪽의 은수가 경도를 발견했다.
“잘해라. 나 바쁜 시간 쪼개서 왔으니까.”
경도가 주먹을 내민다.
“걱정 마세요. 저 일당백이거든요.”
은수가 주먹을 마주 댔다.
“오 박사님.”
탁홍걸이 나왔다. 그도 직접 참관하는 모양이었다.
“오디션 시작합니다. 응시자는 미리 짜준 조별로 모여주세요.”
안내방송이 나왔다. 진행은 주제별 댄스와 프리 댄스로 겨루기였다. 조를 짜서 댄스 배틀을 벌이고 조별로 한두 명씩 선발된다.
그들이 모여 준결승을 벌이고 최종 6명을 뽑아 결선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떨리네요.”
참관인석 자리에 앉은 두나가 가슴을 졸였다.
은수는 세 번째 조에 섞여 나왔다. 응시자들의 열정은 그야말로 활화산이었다. 모두가 미친 듯이 불타오른다.
수준들도 굉장했다. 그럼에도 은수는 지지 않았다. 자신의 우상에게 춤을 배웠고 연습을 했다. 그게 컸다. 거칠기만 하던 댄스에 테크닉이 붙고 세련미도 붙은 것이다.
“C조 5번 준결진출.”
은수가 뽑혔다.
조별 경연이 끝나자 24명이 살아남았다. 세 개조 나뉘어 결선리그를 치렀다. 다시 은수가 살아남았다. 마침내 6명 결선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아휴.”
두나는 애가 마를 지경이다.
“그럼 지금부터 결선 배틀을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멘트가 나오자 최후의 생존자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은수를 포함해 여자가 둘이고 남자가 넷이었다.
“와아아.”
선발장에 환호가 울려 퍼졌다. 떨어진 사람부터 응원차 온 친구들까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시작은 개별 자유 비보잉이었다.
그게 끝나자 6명이 한 자리에 배틀을 벌였다. 치열했다. 마지막 관문이 되다 보니 모두가 필살기를 동원하고 있었다.
은수는 지지 않는다. 그녀는 훨훨 날아올랐다. 불우한 환경을 박차고 솟구친다. 그 한 발 너머, 그녀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가려는 몸짓이었다.
“와아아.”
경연이 끝나자 오디션 선발장은 그대로 춤판이 되었다. 모두가 몰려나와 흥겹게 춤을 춘다.
그러는 동안 심사지가 탁 대표에게 넘어왔다. 탁 대표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러더니 뭔가를 따로 지시한다.
그것으로 채점표가 완성되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진행자에게 전해졌다.
“제 손에 합격자 명단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혹 떨어지는 분들도 너무 실망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심사위원들도 굉장히 고심을 했고 현재의 실력보다 발전가능성과 개성에 방점을 찍었음을 밝혀둡니다. 그럼 영광의 합격자들 발표합니다.”
방현호.
김별아.
소진수.
세 명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은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은수의 고개는 떨어지지 않았다. 웃고 있다. 포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세 명을 발표한 진행자의 시선은 여전히 심사표에 있었다. 이유가 나왔다.
“잠깐만요, 아직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한 사람?
모두의 신경이 진행자에게 쏠렸다.
“오늘 심사위원님들이 세 사람에게 동점을 주었습니다. 제가 호명한 셋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최고점이 아닙니다. 최고점 한 명이 따로 있으니 동점을 받은 셋에 더해 네 사람을 선발합니다.”
한 명?
그것도 최고점?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그 이름이 나왔다.
“장은수.”
“아아악!
호명을 받은 은수가 비명을 질렀다.
“까악.”
다음은 두나의 비명이었다. 은수의 탈락을 아파하던 두나. 일대 반전의 결과가 나오자 은수보다 크게 비명을 지른 것이다.
“선생님.”
은수가 경도를 향해 날아왔다. 그건 정말 미친 비상이었다.
“봤죠? 저 합격했어요. 이제 진짜 비걸이 될 수 있어요.”
은수가 경도 품에서 소리쳤다.
그 얼굴에 우격다짐처럼 꽃다발이 파고 들어왔다.
“축하한다. 얘가 진짜 해내네?”
은수의 우상 김지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