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37화
80. 10청의 승천-2
“백 의원님.”
-큰일 났어요. 김 의원님이 우리 지지회견장으로 오는 도중에 쓰러졌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예?”
-어쩌면 좋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에는요?”
-노 보좌관이 지키고 있고 다른 보좌관들도 가고 있답니다.
“…….”
-아시는지 모르지만 오늘 우리당 초재선의원들이 그분의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려던 참입니다. 그런데 당사자가 쓰러져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듣자니 어젯밤에 만나셨다던데 불길한 상괘 같은 게 나왔었나요?
“작은 횡액이 보이긴 했습니다만…….”
-죄송하지만 병원으로 좀 와주겠어요?
“퇴근시간이 다 되었으니 끝나는 대로 가죠.”
경도가 콜을 받았다.
부릉.
뜻하지 않게 칼퇴근을 하게 되었다.
-숙고해보죠.
어젯밤 김윤광이 한 말이었다. 이후로 아무런 언질이 없었으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걱정이다. 그러잖아도 기세가 나쁜 시기였다.
서울 가는 길은 좀 막혔다.
언제나 이렇다. 마음이 조급하면 뭐든 잘 풀리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예측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오 박사님.”
차가 들어서자 노성봉이 다가왔다.
“김 의원님은요?”
“VIP실에 계십니다.”
“괜찮으세요?”
“급한 불은 끈 거 같은데 아직은 눈을 뜨지 않고 계십니다.”
“백 의원님 오셨죠?”
“다른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병실 창 너머로 얼굴만 보고 가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노성봉을 따라 VIP실으로 향했다.
“오 박사님.”
복도에 있던 백지애가 달려왔다.
“백 의원님도 엉망이군요. 좀 진정하셔야겠습니다.”
경도가 그녀를 위로했다.
“저는 괜찮아요. 김 의원님부터 봐주세요.”
백지애는 김윤광 걱정뿐이었다.
딸깍.
병실 문이 열렸다. 모두가 병실 밖에서 김윤광을 보지만 경도는 달랐다. 부친 김병로 교수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저 사람이 대체 누군데?
경도를 모르는 이들의 눈빛이 그랬다.
‘김 의원님…….’
경도가 그 머리맡에 멈췄다.
김윤광은 잠들어 있었다.
“장에 문제가 생겼었나 봅니다. 통증이 심해서 진정제와 수면제 처방까지 들어갔다는데 어떨까요?”
김병로가 물었다.
경도가 김윤광의 찰색을 살핀다.
바닥이다.
어제보다도 더 내려갔다. 위쪽 눈꺼풀 색이 어두우니 위와 장이 아픈 건 맞았다. 그러나 심한 건 아니다.
이건 어제의 기세에서 이어지는 추락이다. 더 이상의 횡액이 올 일은 아니었다.
“회복하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어휴.”
김병로 교수 부부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옆의 백지애도 겨우 숨을 돌린다. 의사의 말보다 경도 말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당대표님과 이정엽 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여자 보좌관이 복도의 소식을 알려왔다.
“이정엽 의원님?”
백지애의 신경이 곤두선다. 초선의원의 입장으로 보면 당의 중진이자 거물 의원이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것은 김윤광과 대척점에 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김윤광을 포함해 초재선의원 그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다 보니 촉각이 설 수 밖에 없었다.
“모셔오세요. 이런 타이밍이라 막을 수도 없겠군요.”
김병로가 말했다. 그도 당내 분위기를 알고 있다. 그러나 경도와 백지애에 더불어 초재선의원을 대표하는 강은백 의원까지 들어와 있는 마당이었다. 면회를 거절하면 오해가 되는 것이다.
“아이고, 이런.”
탄식과 함께 이정엽이 들어섰다. 경도 귀가 쫑긋 올라간다. 목소리에도 울림이 있다.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었다.
‘윽.’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경도가 휘청 흔들렸다. 뼈를 쪼는 충격이 왔다.
“자네들은 대체 뭐했나? 우리 당의 기둥인 김 의원이 이 지경이 되도록.”
이정엽은 김병로에게 예를 갖추기 무섭게 보좌관들을 질책했다. 당대표 앞이었으나 그의 위상은 이미 당대표 위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으로 될 일인가? 의사들은?”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거야 원.”
이정엽이 김윤광 옆으로 다가섰다.
경도의 시선이 따라간다. 경도의 시선은 미친 듯이 경련하고 있었다.
경도는 보았다. 작렬하는 땡볕처럼 요원하게 번져가는 그의 기세. 얼굴이 자체발광을 하는 듯 기세를 뿜고 있었다.
실물로 보니 이마는 거의 운동장이었다. 중후한 몸매 또한 상대를 압사시킬 듯 위압적이다.
눈썹과 귀를 본다. 잉어가 뛰듯 펄떡거린다. 그의 야심과 권력욕은 폭발 직전이었다. 찰색도 그랬다. 기색이 끝간 데 없이 날아오른다.
대권.
만약 지금 이 순간에 결정되는 거라면 그는 그 여의주를 움켜쥘 수 있었다.
그가 김윤광을 내려본다. 태양의 붉은 기운이 그늘을 비추는 기세다. 상대가 쓰러졌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그는 대권의 여의주를 삼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아…….’
경도의 긴장은 파국까지 달려갔다. 결국은 창가의 벽에 기대 흔들리는 몸을 바로 잡아야 했다.
“오 박사님?”
눈치를 차린 백지애가 경도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예…….”
겨우 대답하며 의식을 추스른다.
지정의와 주치의까지 부른 이정엽이 진단결과를 들었다.
“다행이군요. 당의 기둥이 흔들리는 줄 알고 아찔했습니다.”
의사의 소견을 들은 후에 김병로를 위로하는 이정엽. 그 순간에도 그의 야심과 권력욕은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가 면회를 끝냈다.
백지애와 초재선대표의원이 따라 나가 배웅을 했다.
김윤광 옆에 남은 경도는 여전히 전율하고 있었다.
기막힌 전율이다.
그러나.
그 극한의 긴장은 점차 미소로 바뀌어갔다.
짜릿한 긴장의 끝에서 경도가 두 주먹을 쥐었다.
‘축하드립니다.’
김윤광에게 보내는 경도의 속삭임이었다. 북받침이자 감격이었다.
이정엽의 관상, 그 기색은 활화산인데 경도는 왜?
왜 감격에 떠는 것일까?
경도의 관상안 속에는 이정엽의 위맹지상이 박혀 있었다. 청동에 새긴 조각보다 강력했다.
이대로라면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정엽에게 돌아갈 판이었다. 그 이정엽의 선대위원장으로 김윤광이 나선다면 그의 당선은 거의 확실시였다.
어쩌면 당내 중진들의 구상도 그것일 수 있었다. 김윤광을 앞세우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야당에서 김윤광의 짧은 경륜을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정엽 후보에 김윤광 선대위원장이면 다르다. 환상의 조합이 될 수 있었다. 김윤광은 이미 두 번이나 그걸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정엽의 기세도 충분했다.
그냥 충분한 것도 아니고 떡상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과유불급.
경도가 노린 단 하나의 바람을 그가 물어주었다.
김윤광이 쓰러지고 초재선의원들의 지지선언이 불발탄으로 끝나자 이정엽의 자신감이 제어불가로 치달은 것이다.
<하늘은 내 편이다.>
이정엽의 생각이었다. 그 기세는 찰색으로 증명되었다. 밝은 기색이 타고 또 타올랐다.
꽃도 만개가 지나치면 떨어질 일만 남는다.
인당.
인당이었다.
그 인당에 작은 흠이 생겼다.
인당은 성공의 가늠쇠다.
거기 흠이 생겼다는 건 여의주에 금이 간 것과 같았다.
유년운기부위가 정보를 주었다.
일진에서 시각을 읽었다.
오후 8시 직전에 생겼다.
초재선의원들의 김윤광 지지선언은 오후 7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김윤광이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무산이 되고 말았다. 초재선의원 그룹에도 중도파가 있었으니 그가 이정엽에게 보고를 때렸다.
[김윤광 의원 지지선언 취소되었습니다.]
[김 의원은 급환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합니다.]
이정엽이 보고를 받았다. 사랑스러운 손녀와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아버님, 축하드립니다.”
아들부부가 환호했다. 그들 역시 김윤광이 걸림돌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애정하는 손녀가 달려들었다. 그 아이를 안고 터질 듯한 기쁨을 누렸다. 뽀뽀를 받고 이마를 맞대고 비볐다.
“……!”
살짝 따끔하는 느낌이 왔다. 손녀 이마의 공주머리띠 때문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이따위 따끔함은 문제도 아니었다. 김윤광에게 걸린 제동이 반가울 뿐이었다.
청와대.
대권좌는 내 것이다.
그가 확신에 찰 때 손녀 입이 열렸다.
“할아버지 눈썹 사이에서 피 나.”
눈썹 사이.
인당이었다.
피는 이미 멈췄다. 거울을 보니 큰 흉이 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밴드조차 붙이지 않은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관상학적으로 아니었다.
<인당궁=성공>
관상의 공식이었다. 인당궁에 상처나 흠이 나면 성공의 목전에서도 허물어진다.
그는 바로 곳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자신을 탐탁치 않아하던 중진들에게 쐐기를 박은 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김윤광은 아직 안 돼요. 정치라는 꽃이 대중의 인기만으로 피는 것입니까? 대권의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것 보십시오. 이런데도 앞으로 재고 뒤로 재고 하실 겁니까?”
반은 과시고 반은 협박이었다.
“긴말 않습니다. 누구 편에 서야 할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십시오.”
자신감의 폭발. 여기가 바로 이정엽 추락의 시작점이었다.
중진들이 경계의 날을 세운 것이다.
경도 시선이 김윤광에게 옮겨갔다.
얼굴의 찰색에 관상안의 메스를 들이댔다. 그의 명궁과 인당이었다.
이정엽은 그의 상대였다. 운명 중의 운명이었다. 그런 관계라면 응당 김윤광의 인당에 신호가 와야 했다. ‘아.’
경도가 다시 흔들린다.
묵직한 어둠에 갇힌 김윤광의 인당. 꺼풀을 벗기고 들어가니 밝은 빛의 불티가 보였다.
작지만 붙티가 확실했다. 상대의 불운을 받아낸 것이다. 씨앗이 생겼으니 발아는 시간문제였다.
경도는 다시 한번 예를 갖추었다.
현직 대통령인 이경문에게 갖추는 예보다도 깍듯했다.
“백 의원님.”
밖으로 나와 백지애를 끌었다.
“지지선언 말입니다. 아직 유효합니까?”
“몇몇 의원들이 유보적이긴 하지만 가능해요.”
“김 의원님은 가뜬하게 일어나실 겁니다.”
“정말요?”
“제 관상안을 걸고 장담합니다.”
“아…….”
“건강한 사람도 감기몸살에 걸리는 날이 있잖습니까? 다시 보니 아까보다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 박사님 상괘라니 안심이 됩니다. 그럼 수고스럽지만 우리 강 의원님에게도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강 의원님요?”
“우리 초재선의원모임 대표십니다. 김 의원님을 통해 오 박사님 능력에 대해 알고 계시니 그냥 설명만 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이분이 움직여야 하거든요.”
“알겠습니다.”
백지애가 강은백을 데려왔다.
“아…….”
경도 설명을 들은 그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백지애처럼 막강 신뢰의 눈빛은 아니었다.
“뵌 김에 괜한 참견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경도가 확인사살에 들어갔다. 마침 알맞은 상괘 하나가 보였다.
“제 관상입니까?”
그가 호기심을 보인다.
“이마의 일각에 붉은 기운이 서렸으니 아버님에게 액운이 도래한 것 같습니다.”
“우리 부친 말입니까?”
“부친께서 올해 76세가 되시는군요?”
“예? 예…….”
“혹시 사진 있으신가요?”
“사진?”
“우리 오 박사님은 사진만으로도 관상을 보십니다.”
백지애가 설명하자 강은백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이분, 2년 전에 새 직업이 생기셨죠?”
“……?”
“수입이 막혀 있다가 그 2년 동안 재백궁에 꾸준한 금전출납이 보입니다.”
“맞습니다. 아는 후배분하고 동업을 하신다고…….”
“아마 속으신 것 같습니다. 이마와 턱이 메마르고 코와 광대에 먹구름이 끼었으니 지위를 잃는 것은 당연한데 큰 손해를 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요? 지난 명절 때까지도 월급 잘 나오고 있다며 자랑을 하셨는데…….”
“한 번 알아보시죠.”
경도가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아버님, 접니다.”
강 의원이 통화를 시작했다. 오래 가지 않았다. 바짝 섰던 그의 눈매가 구겨지는 게 보였다.
“허헛.”
통화를 마친 그가 탄식을 토했다.
“의원님.”
백지애는 궁금한 눈치다.
“기가 막히군요. 저도 김 의원님 옆에 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에게 일이 생긴 건가요?”
“그렇다네요. 이분이 퇴직 후에 워낙 무료하다 보니 지인에게 명의를 빌려주신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바지사장이 되신 거죠.”
“어머.”
“저는 동업이라기에 그런 줄만 알았는데 제가 반대할까 봐 둘러댄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지인은 해외로 달아나고 업체는 폐업이 되었다네요. 평생 초등학교에서 교편만 잡으신 분이라 물정을 모르시고 지인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 얼마 전에 세무서에서 세금폭탄이 날아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직원들 4대보험 연체분까지 전부 아버님 책임이 되어 건보공단에서 압류예고장을 보내왔다고…….”
“어머.”
백지애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신통력에 놀라고 마는 백지애였다.
바지사장은 위험한 일이다. 번듯한 명함과 월급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물주가 튀면 사장으로서 법적인 책임을 떠안는다. 빚보증보다도 무서운 게 명의대여였다.
“김 의원님에게 언질은 들었었지만 진짜 대단하십니다.”
강 의원이 경도에게 경의를 표했다.
“아닙니다. 모쪼록 다 잘 수습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니 고맙습니다. 우리 아버님 성격에 혼자 끙끙 앓으시다가 큰 병이 걸릴 수도 있거든요.”
“예.”
“이런 천기누설이면 백 번 믿어야죠. 백 의원님 가십시다. 김 의원님이 푹 쉬고 일어나면 인상도 좋아질 테니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생각하자고요.”
강은백과 백지애의 전의가 불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