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청의 승천-1> (236/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36화

80. 10청의 승천-1

김윤광.

10청의 귀격이었다.

그 기세로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폭발적인 인기가도를 달렸다. 초선으로 대선 선대위 핵심 멤버가 되고 재선의원으로 집권당 원내총무가 된 경우는 전무후무했다.

파란은 인당 때문이었다.

인당에 해가 들었다.

지는 해가 아니라 뜨는 해였다.

그 기세가 이마 전체로 번지려 하니 관운의 정점에 들어간 것이다.

이마에서 하늘로 치닫는 세 기둥 역시 웅장의 극치였다. 양 보골과 천주골이 무궁한 조화를 이루니 전성기나 다름이 없었다.

노복궁 턱은 더 두툼해 보였다. 이런 기세의 인물이 호령하면 만인이 꿇는다.

대권상은 분명했다.

그러나 경도의 감정은 분명 ‘환희’가 아니라 ‘파란’이었다.

파란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

사전적 의미의 하나다.

유년운기부위 때문이었다.

관상은 전성이지만 찰색이 중요하다. 이것은 날씨와도 같아 대운 시기에도 흐릴 수 있었다.

일단 제껴두고 라이벌 체크에 들어갔다.

“……!”

다시 비명이 목으로 넘어간다.

김윤광.

그가 대권을 꿈꾼다면 올해가 첫 승부수를 날릴 해였다. 이 시기를 놓치면 16년 후의 운이 괜찮다. 하지만 정치란 인기가 솟을 때 치고 나가는 게 정석이다. 세월이 흐르면 다른 영웅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장애물이 너무 높았다. 만리장성처럼 김윤광을 눌러버리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참사라니…….’

떨리는 어깨를 겨우 달래놓았다.

대권가도에는 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있다. 세습 왕조에서도 그랬다. 왕세자가 되고도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한둘이 아니었다. 반대로 보면 난관 타파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다섯 잠룡들.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개별 잠룡들의 대권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야당의 두 거두 양동건과 차한길도 그랬다.

양동건은 미릉골의 기세가 무서웠다. 마치 구중궁궐의 웅장한 처마를 보는 느낌이다. 그 끝에 깊은 주름까지 맺혔으니 관상으로는 빠지지 않았다.

차한길 역시 등이 두툼하고 둥근 느낌이 났다. 이런 상을 가진 사람은 옥대를 두를 수 있다. 걸음에 위엄이 들었고 넓은 등에 얼굴은 검은빛, 이빨조차 옥처럼 흰빛이니 경계할 상이었다.

군소정당의 김성유는 봉황상의 빼박이었다. 긴 목에 긴 눈부터 범상치 않았다. 눈빛이 수려한 데다 코가 이마를 잡을 듯 가까우니 대권후보로 손색이 없었다.

사회단체의 하경민 후보도 관상은 나쁘지 않았다. 인당이 넓은 데다 눈썹이 수려하고 귀가 반듯하다. 대권상에서 논외가 될 수 없는 상이었다.

마지막은 여당의 경쟁자 이정엽이었다.

후들.

다시 어깨가 떨린다.

그가 바로 김윤광을 가로막은 절대 장벽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위맹지상이다. 위압적인 덩치에 가슴이 두꺼웠다. 이마가 높고 넓으니 꾸는 꿈도 원대하다. 그만한 바탕이 되니 대선후보에 오르내린다.

지난 대선에서도 후보군의 하나였다. 그때는 현 이경문 대통령을 지지하며 출마하지 않았다. 당내 인물을 돌아볼 때 이번 대선이 더 유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윤광이 이토록 일취월장할 줄 몰랐으니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경도가 주목하는 건 따로 있었다.

삼각 느낌이 나는 눈썹에 부채귀가 빛난다. 야심과 권력욕이 펄떡거리는 것이다. 4선에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최고위원과 당대표까지 역임했다. 3선 이상 의원들의 좌장으로도 불리고 있으니 김윤광에게 순순히 대통령 후보 자리를 줄 리 없었다.

컨셉도 기막혔다. 보도사진 곳곳에 어린 손녀가 보인다. 이제 네 살이다. 공주 머리띠를 하고 있다. 그는 손녀 바보였다.

손녀를 안고, 손을 잡고 걷고, 그런 장면을 자연스레 연출함으로써 가정적이며 소탈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했고 그 덕에 야욕과 권력욕이 감춰졌다.

한 마디로 당내 신구대결이다. 당으로서는 뜨는 김윤광이 반갑지만 원로들의 내심은 그 인기가 당의 지지도를 올리는 밀알로만 존재하기를 바랐다.

-젊은 너는 차기에.

그게 바로 정치공학이었다.

경도 어깨를 떨게 하는 건 그의 기세였다.

최근 기세가 김윤광보다 월등했다.

두 그림을 마주 놓고 기세의 파워를 가늠해보았다.

‘윽.’

비명이 터진다.

미치도록 불리하다.

디테일 속으로 들어갔다.

첫 장벽의 하이라이트는 보름 후였다.

김윤광의 기색이 낮아지는 이때, 이정엽의 그것은 최상의 기세로 달려간다. 비슷한 관운이라면 기세가 갑이다. 어느 정도 불리해도 기세가 좋으면 승리한다. 어느새 경도 등은 식은땀에 젖었다.

뉴스를 짚어본다.

내일은 초재선 의원들의 김윤광지지 선언이 예정되어 있다.

2주 후에는 여당의 대선 경선 준비위원회가 열린다.

여당은 여기서 경선 룰을 정한 후에 경선에 돌입한다. 후보가 한 명밖에 없으면 경선하지 않는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르는 사람은 다섯 명이다. 김윤광과 이정엽이 가장 주목받고 있지만 정치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김윤광은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이정엽은 당내 기반에서 김윤광을 앞선다.

이렇게 되면 당의 기준이 중요하다. 청와대는 이미 불개입의 선을 그어놓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윤광을 띄우던 작업이 중단된 것이다. 이정엽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김윤광의 기색으로 보면 후보 결정은 늦을수록 좋았다. 바닥을 친 기색이 상승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정엽 입장에서 보면 밀어붙여야 한다. 그는 야심과 권력욕으로 뭉쳤으니 그만한 판단은 할 사람이었다. 떠오르는 해에게는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다.

어쩐다?

생각이 골똘해질 때 문자가 들어왔다.

‘어?’

이심전심이다. 김윤광이 보낸 문자였다.

[집 앞인데요. 혹시 시간이 좀 될까요?]

글자가 반짝거린다. 정말이지 반가운 문자가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되죠. 어디세요?]

[생맥주 한 잔 괜찮으면 바이킹이라는 곳이 보이네요.]

[나가겠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두나 씨, 김 의원님이 집 앞에 오셨대. 잠깐 다녀올게.”

“혹시 늦게 되면 문자 주세요.”

두나의 대답을 들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오 박사님.”

원목 장식이 멋진 호프집 앞에서 노성봉이 경도를 맞았다.

“의원님은요?”

“테라스 쪽에 계실 겁니다.”

노성봉이 테라스를 가리켰다. 경도 목소리를 들었는지 김윤광이 손을 들어 보였다.

“미안합니다. 신혼을 방해해서.”

김윤광이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가끔은 떨어져 있어야 소중한 걸 느끼죠.”

“으음, 설마 벌써 권태기?”

“그건 아니고요,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라뇨? 오 박사님 보고 싶어서 왔죠.”

김윤광이 웃었다.

수제맥주가 나왔다. 목 넘김이 부드러워 좋았다.

“이 집 맥주 괜찮은데요?”

“그럼 종종 오십시오.”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일이 한둘이어야죠. 원내총무라는 게 알고 보니 마당쇠 역할이더라고요. 당 이미지 제고는 기본이오, 야당 상대해야지, 우리 당 의원님들 지지 이끌어내야지…… 재선 주제에 멋모르고 덥석 물었다가 정치 공부 빡세게 하고 있습니다.”

김윤광의 말은 자꾸 겉돌았다.

미소도 어색하다.

모를 리 없는 경도지만 그냥 경청해 주었다.

그의 입은 맥주 세 잔이 비워지고야 제대로 열렸다.

“오 박사님.”

그가 눈빛을 들자 진지함이 뚝뚝 떨어졌다.

“예, 의원님.”

“제 관상 처음 보던 때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그때 제가 쓰러질 뻔했잖습니까?”

“제가 10청이라고 했던가요?”

“예, 귀상이십니다.”

“그 격의 등급은 얼마나 될까요? 예를 들면…….”

“대권주자로서 말이죠?”

경도가 김윤광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정곡을 찔러버린 것이다.

“제가 온 목적을 알고 계시군요?”

“…….”

“그럼 염치불구하고 묻겠습니다. 제가 대권후보 깜냥이 됩니까?”

김윤광의 시선이 경도의 그것과 일치되었다. 경도의 심장이 뜨끔했다. 귀격은 과연 달랐다. 제대로 눈빛을 겨누니 천기를 읽는 경도조차 움찔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되십니다.”

경도의 답은 주저가 없었다.

“오 박사님.”

“이정엽 의원님이 문제죠?”

“그것도 알고 계시는군요?”

“그분 관상은 의원님과 갈 길이 다르더군요. 의원님의 길이 정공법이라면 그분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이정엽 의원님 관상도 보신 겁니까?”

“의원님 일이니까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시점의 기세는 굉장히 불리합니다.”

“어렵군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략이 필요하다는 거죠.”

“전략?”

“관상에서는 의원님이 뒤지지 않으나 기세가 바닥인 시기입니다. 이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손 놓고 있기에는 대선후보 결정 시기가 코앞이더군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소나기가 올 때는 쉬어가는 게 좋으니까요.”

“하지만 정치라는 게 흔한 경구처럼 되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 우리 초재선의원 멤버들이 제 지지선언을 하고 나올 거거든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말려보았지만 막무가내입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있다고요?”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의 횡액도 막으신 분 아닙니까?”

“…….”

김윤광의 이마에 아뜩함이 스쳐 갔다. 공항에서의 물벼락 세례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그 아찔함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었다.

“방법을 찾으셔야 합니다. 의원님은 기세가 바닥이니 힘을 아끼는 것인데 반대로 이정엽 의원은 최근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상승세입니다.”

“맞습니다. 미국과 중국 쪽 정치 거물들이 이정엽 의원님을 거명하면서 국제적 명성 측면에서 훌쩍 앞서가셨죠.”

“의원님이 움츠리면 이정엽 의원님 기세는 더 올라갈 겁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니 잘 이용하면 의원님께 반전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자신감을 부추겨 자만심으로 만들라?”

“그런 셈이 되겠습니다.”

“그걸로 끝입니까?”

“이 난관만 넘어서면 의원님의 기세가 상승합니다. 어떻게 보면 나중에 맞을 매를 당겨 맞는 셈이니 해볼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야당까지 포함해서 말입니까?”

“현재 여론조사에서 언급되는 분들까지는 다 체크했습니다.”

“오 박사님…….”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저도 의원님의 대권 도전을 응원합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 이제 젊은 지도자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60대 70대들에게 경륜이라는 미명하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합니까? 이 낡은 프레임을 깰 사람은 김 의원님뿐이십니다.”

“후어, 이거 혹 떼러 왔다가 혹 제대로 붙이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

“오 박사님 상괘니 숙고해 보기는 하겠습니다.”

김윤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확답은 아니었으니 경도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튿날 간부회의가 열렸다.

이 시장의 역점사업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이 시장은 다그치지 않았다. 그의 리더십은 알아서 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쪽이었다.

그는 핵잠수함 산타페의 교훈을 좋아했다. 이 잠수함은 전투력이 공인된 꼴찌였다. 새로 부임한 함장이 하사관에게 물었다.

하사의 책무가 뭔가?

하사가 답했다.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합니다.

함장은 그 말에서 꼴찌의 단서를 찾았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죄다 수동적이었다. 함장은 시스템을 바꾸었다. 시키지 않고 알아서 하게 한 것이다.

이 시장은 그걸 응용했다. 시키지 않지만 관심을 보였다. 지자체장들이 선거직으로 바뀌면서 공직은 수동적인 포지션에 익숙해 있었다.

알아서 하는 공직문화가 실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시장들 역시 지시일변도라 직원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시장이 이 금기를 깼다. 시간을 쪼개 직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덕분에 취임 초년 차에 경기도 시군구 중에서 종합 우수상을 받았고 행안부가 주관하는 평가에서도 최우수상 사업이 여러 개가 나왔다.

임기 중반, 이 시장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소외된 부서에는 아메리카노까지 사 들고 가 위로하는 모습도 나왔다.

조경철과 양왈종이 이런 모습을 기사로 냈고 중앙의 일간지와 방송에도 몇 번이나 실렸다.

<커피 배달하는 시장님>

일부 정적들은 쌩쑈라고 폄하했지만 시의 지표가 그들에게 ‘아닥’이라는 족쇄를 채워버렸다. 경도 속까지 시원해진 날이었다.

간부회의를 끝내고 돌아올 때 낯선 번호의 전화가 들어왔다.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장은수입니다.

씩씩한 목소리였다.

“장은수?”

갑자기 받은 전화라 이름과 사람이 매칭되지 않았다.

-소년원에 오셨었잖아요?

“아, 춤 잘 추는 장은수?”

-아싸, 기억해 주시네?

“미안, 내가 다른 생각을 하던 중이라서…….”

-바쁘시면 나중에 할까요?

“아니, 괜찮아. 좋은 일?”

-네, 아저씨 덕분에 저 연습생으로 뽑혔어요. 그거 말씀드리려고요.

“정말?”

-30명이 겨뤘는데 3명에 들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지아 언니에게 지도받은 게 효과를 본 것 같아요.

“잘 됐다. 축하해.”

-아직은 축하하지 마세요. 아저씨 말처럼 유명한 댄서가 되면 그때 부탁드려요.

“집은 엄마하고?”

-네. 조그만 집이지만 둘이 찰떡처럼 붙어살기에는 불편함이 없어요.

장은수는 꺼리는 게 없다. 그때 계 과장의 도움으로 소년원을 나와 엄마와 합쳤다. 이후에 알바를 하면서 춤을 배웠다. 그 결실을 보는 중이었다.

“주소 찍어라. 축하는 미루지만 피자는 쏴 준다.”

-정말요? 그럼 적어도 5판은 쏘셔야 할 텐데요? 우리 친구들이 먹방 유튜버들 저리가라 식욕이에요.

“열 판도 문제없거든.”

-고맙습니다. 아저씨, 제가 이 은혜 꼭 갚을게요.

“은혜는 필요 없고 성공.”

흐뭇하게 통화를 끝냈다.

기분 최고였다.

그냥 어려운 아이가 아니라 삐딱선을 타는 아이였다. 이제 꿈을 쫓아가는 기쁨을 알았으니 잘 될 것 같았다.

기꺼이 피자 5판을 주문해 주었다.

주문을 마무리할 때 백지애의 전화가 들어왔다.

-오 박사님.

처음부터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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