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35화
79. 돈복 터진 남자와 일복 터진 남자-2
“우선 저분은 건축업과 맞지 않습니다.”
“그래요? 지놈은 일이 재미지다고 하던데?”
“그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인당의 그늘이 무겁습니다. 이런 분은 집 짓는 일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
“돈이 새나가는 건 얼굴 한 점을 물들인 검은 찰색 때문입니다. 이 찰색은 하늘로 드러난 콧구멍과 같아 시시때때로 재물이 흘러나갑니다. 그나마 두 발이 진한 데다 부지런한 천성이 있어 버티는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파산했을 겁니다.”
“파산이라고요?”
“노복궁도 좋지 않습니다. 부리는 일꾼들이 굉장히 속을 썩이거나 무능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공사 하자가 많겠죠. 턱이 깊고 푸석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허어.”
“또 있습니다.”
“또요?”
“얼굴을 보니 점이 두 개 보입니다. 눈 밑의 점은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공감능력은 높지요. 덕분에 잔 공사는 많이 맡겠지만 이윤이 박합니다. 코 옆의 점도 한몫을 합니다. 여기 점이 찍히면 사람은 좋은데 그런 성격은 직접 견적을 내고 공사비를 정하는 업무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공사비를 많이 부르기 어려울 테니까요.”
“맞습니다. 우리 딸 말이 어떨 때는 본전치기로 공사를 하기도 하고 공사 중에 기분이 좋으면 재료를 한 단계 높여주는 바람에 남는 게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 천성 덕분에 큰 화를 면하고 있는데 보름 전에도 아마 교통사고를 냈을 겁니다. 여자를 친 거 같은데 다행히 큰 횡액은 아닐 것 같으니 평소의 공덕 덕을 본 거죠.”
“그럼 평생 저렇게 실속 없이 살아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상재가 없는 것은 아니고 건축 경험도 많이 쌓았으니 건축자재나 소품 같은 것을 정액으로 파는 대리점을 차려서 부부가 함께 운영하면 나아질 겁니다.”
“옳거니. 정액제면 지놈이 인심 쓸 필요도 없고 일꾼을 쓰지 않으니 그쪽 손해도 날 일 없고.”
“바로 그겁니다. 공감능력이 좋으니 밖으로 나가는 사업보다 안에서 관리하는 소규모 판매업이 알맞습니다. 게다가 따님과 함께라면 빠져나가는 돈도 통제가 되겠지요.”
“그거 아주 족집게 처방이로군요.”
변택수가 무릎을 쳤다.
“그럼 첫째 사위 놈은요?”
질문하는 태도가 바로 달라진다.
“첫째 사위는 큰 따님을 봐야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사위의 상괘를 내 줄 차례.
이번에는 다른 길을 가는 경도였다.
“앉아라.”
변택수가 큰딸을 불러 의자에 앉혔다.
“너 승가리 관상도사와 쌍봉리 호박무당 얘기는 알고 있지?”
“그럼요. 찾아갈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왜?”
“왜겠어요? 우리 그 인간 바람기 때문이죠. 그런데 차마 못 가겠더라고요. 요즘 그런 데도 사기꾼이 많아서…….”
“그 고민을 이분이 들어줄 거다.”
변택수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예?”
큰딸은 의아하다. 시청 과장이라고 소개를 받은 까닭이었다.
“시청 과장님인 건 맞지만 관상은 우리나라 대통령급이시다. 아까 말한 그 두 무속인도 이분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시니까.”
“어머, 그러고 보니 들어본 거 같아요. 우리 시청 공무원 중에 관상박사가 있다고…… 잠깐만요.”
큰딸의 손이 바람처럼 움직인다. 바로 검색결과가 나온다.
“어머, 진짜네.”
큰딸은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쉬잇.”
변택수가 주의를 주자 큰딸이 숨을 죽였다.
“아버님 고희연에 온 인연으로 남편분 관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야 너무 고맙죠.”
큰딸이 다가앉았다.
“부군께서 바람기가 좀 있으시죠?”
“좀이 아니에요. 이건 이틀에 한 번은 유흥업소에 간다니까요. 사업상이라니 할 말도 없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쪽 여자들과 깊어져 가정을 등질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요?”
“왼쪽 간문이 미색이라 바람기가 있지만 간문에 걸친 잡색들이 그리 깊지는 않습니다. 이 찰색이 진하면 술집 여자와 결혼할 수 있지요.”
“그러기만 해보라죠. 내가 두 년놈을 그냥.”
큰딸의 전의가 불탄다. 동시에 경도 표정이 밝아졌다. 척 봐도 입이 먼저 보이는 관상이다.
큰 입은 결단력의 상징이다. 실행력도 좋다. 불끈 쥔 주먹 사이로 검지의 두 번째 마디가 보인다. 점이 하나 찍혔다. 이 또한 결단력을 뜻한다.
“남편분이 원래 기분파죠? 쪼잔하지 않은?”
“맞아요. 결혼 전에는 거기에 반했는데 밖에서는 요즘도 그 짓인 모양이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빨래하다가 카드전표를 봤는데 술집에서 무려 460만 원을 결재했더라고요. 자기 말로는 큰 건 접대비였다는데 제가 볼 때는 고급 룸싸롱 가서 여자들 끼고 기분 낸 게 분명해요.”
“그러나 따지면 화를 내죠? 그것도 무서울 정도로?”
“어머…….”
큰딸이 변택수의 눈치를 보았다.
“뭐야? 그럼 저놈이 손찌검도 하는 거야?”
변택수가 목청을 높였다.
“거기까지는 아니야.”
“아니긴. 허구한 날 술집여자 끼고 노는 것도 큰 흠인데 어따 대고 성질을 부려?”
“아빠…….”
“죄송하지만 구장님은 잠깐 비켜주시죠.”
경도가 정리에 나섰다. 어차피 그럴 타이밍이기도 했다.
“계속할까요?”
변택수가 멀어지자 경도가 분위기를 이었다.
“남편분의 관상을 보면 귀가 범귀에 가깝습니다. 귀가 작으면서도 윤곽이 삐딱하게 나오는데 앞에서 바라보면 보일 듯 말 듯 하죠. 이런 분들은 사나운 성정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맞아요. 잘 해주다가도 수틀리면…….”
“그럼에도 돈과 권세는 가지게 되는데 코가 성낭비라 낭비를 좀 해도 재물 걱정 없이 살 팔자입니다.”
“그럼 평생 저러는 건가요?”
“기분파에 여자 밝히는데 주머니에는 돈이 가득합니다. 아마 고쳐지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혼각이네요. 평생 그 꼴을 어떻게 보고 살아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정말요?”
“대신 두 가지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두 가지요? 뭔데요?”
“첫째는 현재 누리는 재복의 절반 정도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그건 상관없어요. 돈은 저 인간이 펑펑 쓰지 저는 돈에 욕심내는 편 아니거든요.”
큰딸은 인당이 제법 맑았다. 남편만 제정신을 차리면 된다는 뜻이었다.
“남편분 지금 잠들었습니까?”
“죄송해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자리 지켜준 것만 해도…… 아오.”
“그럼 말이죠.”
경도가 큰 딸 귀에 상괘를 속삭였다.
“예?”
큰 딸이 바로 소스라친다.
“강요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
“역시 힘들겠죠?”
“아뇨.”
잠시 고민하던 큰딸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 과장님 기사 보니까 굉장하시더라고요. 게다가 우리 아빠도 여간해서는 이런 거 믿지 않거든요. 해볼게요.”
“그럼 가세요.”
경도가 정자를 가리켰다. 큰딸은 그길로 일어나 정자로 향했다.
두근.
큰딸이 정자에 가까워지니 경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큰딸의 인품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걱정도 되었다. 결코 쉽지 않은 상괘였다. 그러나 부득이했으니 큰 딸의 결단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큰 사위는 큰 대자로 뻗었다. 큰 딸이 그 앞에 섰다. 가녀린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악.”
큰 사위의 비명이 정자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죠?”
변택수가 달려왔다.
“따님이 큰 사위의 횡액을 막은 겁니다.”
“횡액?”
“앞으로는 돈 펑펑 쓰면서 유흥업소에 드나들지 못할 겁니다. 대신 수입은 좀 줄어들겠죠.”
“아빠.”
큰 딸이 사위를 데리고 다가왔다. 사위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집에 가자고 깨우려다 제가 미끄러지면서 얼굴을 짚었어요. 제 반지 모서리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큰딸의 연극은 수준급이었다.
장인의 고희연이었다. 큰딸에게는 고의성(?)이 없었다. 거기서 잠든 건 자기 잘못이었으니 화도 내지 못하는 큰 사위였다.
상괘의 끝이었다. 성낭비는 재물운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상처가 나면 그 재운이 시든다.
지갑이 얇아지면 빈번한 유흥가 출입에 조종이 울린다. 그때부터는 큰딸의 복에 기대 살아야 한다. 즉, 주도권이 바뀌는 것이다.
“오 과장님.”
두 딸까지 떠나자 변택수가 축의금 봉투를 가져왔다. 모두가 빈 봉투였다.
“오늘 제 고희연에 들어온 돈이 전부 5천만 원 가깝답니다.”
“예.”
봉투 얘기가 나오면 공무원들은 기가 죽는다. 이런 경우의 축의금은 5만 원 이상 담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김영란법을 들먹이면 서로 곤란해지는 것이다.
“식사비와 잔치비는 우리 딸과 사위들이 부담을 했습니다. 나도 생일봉투가 아쉬운 처지는 아닌 데다 과장님의 후원회가 좋은 일을 한다니 딸들 돌아가는 길에 후원회관에 들어 접수하라고 시켰습니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습니다.”
“예?”
“오늘 상괘 정말 고맙습니다. 두 사위놈 때문에 밤잠이 안 올 지경이었는데 오늘부터는 두 발 뻗고 잘 것 같습니다.”
“구장님.”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변택수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는 길, 조경철의 전화를 받았다.
“강변면 변택수?”
“후원금 들어왔어요?”
“그래. 대박인데?”
“거액이죠?”
“돈보다도 사람 말이야. 강변면에서는 이 사람 모르면 행세하기 어려워.”
“우리가 뭐 거기 가서 행세할 일 있나요?”
“뭐 그렇긴 하지만…….”
“고희연 축의금이니 빠른 시간 내에 후원자들 연결해서 결과 알려드리세요. 그래야 보람을 느끼시죠.”
“오케이, 그런데 혹시 김윤광 의원님 소식 들었어?”
“김 의원님요? 무슨 소식 말이죠?”
“내가 아까 2시에 서울 프레스센터에 갔었잖아? 가까운 후배기자가 상을 받게 되어서 말이야.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김 의원님에게요?”
“응.”
“나쁜 겁니까?”
“……의 반대의 반대의 반대?”
“회장님.”
“미안, 농담하려는 건 아니고…… 월요일 저녁에 여당 초재선의원들이 중대발표를 할 거라고 하네. 이게 이번 대선후보에 관한 내용인데…….”
조경철이 말끝을 흐린다.
그러고 보니 대선의 계절이 다가온다. 대권후보들은 이제부터 슬슬 커밍아웃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경도의 생각 속으로 조경철의 말이 이어졌다.
“여당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정치공학연구소에서 나온 결과인데 다음 대권은 김윤광 후보가 나가야 승산이 높다는 거야. 하지만 당내 중진 이상 원로들은 시기상조라고 하고 있고. 김윤광 의원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니 대초재선의원들이 대권출마를 지지하는 선언을 할 예정이라네?”
“…….”
경도 이마가 서늘하게 반응했다.
대권이다.
김윤광.
언젠가는 매칭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그 매칭 속도가 빨라졌다. 하긴 뜬금포도 아니었다.
지난달의 대권후보 호감도에서도 김윤광은 내놓으라 하는 여야당의 중진과 거물들을 물리치고 48%의 지지율로 1위에 등극했었다.
“어때? 오 박사 생각은?”
조경철의 목소리가 신중해졌다.
경도 생각.
그것은 곧 관상이었다.
10청의 귀인 김윤광.
그 어머니의 배꼽 상도 기가 막혔던 사람이다.
“가능성이야 충분한 분이죠. 문제는 타이밍 아니겠습니까?”
가능성을 남겨두고 통화를 맺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두나는 공부 중이다. 그녀는 경도 못지않은 학구파였다.
“마셔요.”
그래도 생과일주스 한 잔 만들어주는 건 잊지 않는다.
“더 드려요?”
단숨에 들이키자 두나가 물었다.
“아니, 좀 체크할 게 있어.”
“그럼 저도 논문 좀 더 쓸게요.”
두나가 일어서자 경도가 검색에 들어갔다.
대선후보군으로 뽑히는 예비 봉황들의 사진을 출력했다. 주로 거론되는 후보자는 여섯 명이었다.
여당에서 둘, 야당에서 둘, 그리고 군소정당에서 하나, 시민단체에서 또 하나…….
김윤광 외에 다섯 명.
그 사진을 펼치고 자웅 감상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김윤광이었다.
오늘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얼굴을 골랐다.
그걸 바라보는 순간.
‘억.’
경도 눈에 핵폭발급 파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