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34화
79. 돈복 터진 남자와 일복 터진 남자-1
용 과장은 결국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일부 동정론도 나왔지만 뇌물액수가 나오자 여론이 달라졌다. 그가 다른 부서에서 데리고 있던 팀장 한 사람도 직위해제가 되었다. 그에게는 정직이 떨어질 것 같았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는 이 시장이 바로 잡았다. 조직개편안이 정리되면서 3급 부이사관 승진을 단행한 것이다.
그 날 아침, 경도는 석 국장 방에 있었다.
1차 지역복지정책안에 대한 보고차였다.
긴 산고 끝에 K시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복지안이 나온 것이다.
부녀회장단과 이장단의 적극 협조가 수훈갑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복지안의 핵심은 제도 밖의 사안들이었다. 정부의 복지혜택에는 재산기준과 소득기준이 있다. 경도는 여기에 지출기준을 변수로 더했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다양하다. 200만 원을 벌어도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0만 원을 벌어도 힘든 사람이 있다.
여기서 낭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혼으로 인한 양육비, 질병치료비, 노모 등의 생활비지원 등등 인간으로서 피치 못할 지출을 변수로 잡은 것이다.
이날 따라 석 국장은 지각이었다.
“출근길에 접촉사고가 있었다네요. 추돌한 차량운전자가 여자인데 자기가 박아놓고도 정신을 못 차려서 합의에 시간이 걸리고 있답니다.”
여직원이 지각 이유를 알려주었다. 거의 다 왔다고 하니 과로 돌아가기도 뭣해서 그냥 있었다.
“오 과장.”
석 국장이 들어섰다. 사고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단정치 않았다.
“미안, 가해자가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보다시피.”
석 국장이 고개를 들었다.
‘웃.’
순간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당과 역마에 더불어 귀의 앞쪽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왜 그러나?”
석 국장이 묻지만 경도의 시선은 여전히 그 관상에 있었다. 눈썹 옆 천창에 턱뼈 부근의 지고까지 열린다. 귀의 윤기도 앞부분의 명문까지 물들이니…….
이것은…….
이것은?
“국장님.”
“왜 그러시냐고? 나 모르게 상처라도 났나?”
“상처가 아니라 영광이 딸려왔습니다.”
“영광?”
“축하드립니다. 승진하실 것 같습니다.”
“승진? 내가?”
석 국장이 어리둥절할 때 책상의 전화가 울렸다.
“복지국 석용남입니다. 아, 시장님.”
통화하던 석 국장이 자세를 바로 세웠다.
“예? 복지처장요?”
그의 눈도 휘둥그레진다.
“그, 그게…….”
어깨와 목소리도 떨린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이제는 사지를 떨고 있다.
“저보다 유능한 사람이 많은데…… 예, 예.”
통화가 끝났다. 그럼에도 석 국장은 수화기를 놓지 못했다. 경도가 그걸 받아 제자리에 두었다.
“축하드립니다.”
경도가 미리 알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관상에서 승진 포인트들이 광채를 더한다. 물을 것도 없이 승진 통보였던 것이다.
“고맙네.”
석 국장의 목소리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시장님이 방금 사인을 하고 전화하셨다는군. 오 과장 관상이 놀랍군.”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처장님.”
“허헛, 우리 시장님이 미치셨지. 나 같은 불뚝쇠를 초대 3급 자리에 앉히시다니. 시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하셨나?”
“처장님이 말아먹으면 다른 사람은 갈아먹을 겁니다.”
“정신이 없군. 교통사고 후유증이 지금 오는 걸까?”
“뭐가 되었든 빨리 수습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승진 소문은 5G보다 빠르게 돌게 마련이니까요.”
경도의 말이 신호가 되었다. 부시장과 육 국장, 조 국장 등의 국장단이 축하 인사로 쳐들어온 것이다.
“일자리복지처장님.”
부시장과 국장단이 합창을 했다.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앞으로 잘 좀 봐주세요.”
축하의 덕담이 쌓인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뚝심의 사나이 석용남이었다. 이 시장과는 다른 갈래였지만 인덕은 이 시장 다음으로 높았다. 승진 소식이 퍼지자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축하합니다.”
인사가 이어진다.
일자리복지처장.
3급 부이사관이다.
4급으로 종치던 K시 공직사회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경도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복지국이 처로 격상되면 힘이 실린다. 다른 국과의 협력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국이 격상되면 복지정책 업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K시 틈새 복지정책 화제>
몇 주 후 특별한 뉴스가 나왔다.
경도네 복지정책과에서 만든 작품(?)이 공개가 된 것이다.
K시는 이 통계를 바탕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촘촘하게 메워나갔다. 그 결과 시범집단의 만족도가 다른 지자체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시범집단 모델은 두나가 근무하는 SS병원과 서울의 유력 종합대학 복지연구팀이 동시에 투입된 사업이었다. 이 시장의 적극 지원이었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과 함께 검증함으로써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정착시키려는 시도였다.
결과가 좋아 시범집단 모델 사례를 늘렸다. 그래도 만족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정리되어 방송을 타는 것이다.
TTC의 방 부장 도움도 컸다. 경도가 맡은 사업이라 하니 직접 카메라를 메고 현장을 누벼준 것이다.
이날은 경사가 겹쳤다.
직전에 나온 뉴스가 그랬다.
화면에 극강 귀요미 명혜가 등장했다.
그녀의 영화가 마침내 천만을 돌파했다. 이 영화가 성공하자 거기 얽힌 사연이 주목을 받았다. 소아성애자였던 남자 주연을 교체하는 우여곡절 끝에 얻은 수확이기 때문이었다.
극장가에서는 최종 예상관객수를 1,200만으로 잡았다. 경도의 예측을 관통하는 관객수였다. 덕분에 곽 대표의 인사도 푸짐했다.
“고맙습니다. 덤으로 주신 200만 상괘까지 적중이에요.”
명혜도 전화를 해왔다.
“선생님, 제 영화가 천만이래요.”
“명혜 최고.”
“선생님이 최고예요. 영화사에서 뽀나쓰로 아빠 집 한 채 사준다고 했어요.”
그 또한 반가운 소식이었다.
명혜 집으로 꽃바구니도 쐈다. 두나의 명령(?)이기도 했다.
영화 뉴스가 끝나고 10여 분 후에 경도 과의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방 부장에게 언질을 받았지만 방송시간을 몰라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과장님, 뉴스 나와요.]
민지와 은빛의 문자가 차례로 들어왔다.
첫 화면은 시청 지역복지정책과였다. 경도와 부녀회장들의 회의 모습이었다. 이어 현장점검 그림이 나오고 K시 복지의 고유 모델을 찾기 위한 분투가 나왔다.
다음은 지역주민들의 반응 인터뷰였다.
“이래저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맨날 그 말 듣는 게 일이었는데 되는 쪽으로 일을 해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우리나라 복지정책 싹 갈아엎어야 해요. 이제야 실효적인 복지정책이 나오는 거 같아 마음에 듭니다.”
마무리는 민지와 은빛이었다. 경도가 두 실무자를 앞에 세운 것이다.
“복지민원 현장에서 규정과 현실의 틈새 때문에 애로가 많았습니다. 민원창구 복지직 공무원들과 민원인 양자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엔딩은 부녀회장단, 이장단 그리고 복지정책과 직원들이 모여 외치는 파이팅이었다.
“틈새복지는 우리 K시에게 맡겨주십시오.”
와아아.
파이팅과 함께 환호가 울려퍼졌다.
“선생님.”
뉴스가 끝나자 두나가 생과일주스를 내밀었다.
“건배해야죠.”
“고마워. 두나 덕분에 성공한 거야.”
경도는 두나의 공을 잊지 않았다. 사실 K시 정도의 레벨로는 SS병원과 협업하기 어려웠다. 그 다리를 두나가 놓아주었다.
두나의 능력에 반한 병원장이 지시를 내린 것이다. 도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경도가 뜻깊은 후원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SS병원의 의사들이 후원회원등록까지 마쳤다. OK 후원회에게는 큰 힘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시장의 임기 초반은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경도의 사무관 자리도 슬슬 자리가 잡혀갔다.
지상에서 결코 막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절대 파워, 시간.
강물과 함께 잘도 흘러갔다.
“그럼 다녀올게.”
해가 바뀐 어느 날, 주스를 마신 경도가 일어섰다. 사무관 임용초기 복지정책사업에 큰 도움을 준 강변면 이장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다.
시 체육회장을 역임한 변택수의 고희연에 초대한 것이다.
“그 양반 사위가 둘 있는데 둘 다 골칫덩이라네요. 우리 과장님 관상을 잘 본다고 자랑했더니 부탁을 하지 뭡니까? 이번 정책조사에 협조가 많았는데 좀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이장의 말이었다.
변택수는 강변면의 유지다. 시 체육회장을 역임한 면면이 그걸 말해준다. 면장보다도 더 영향력이 크다.
각종 선거에서 강변면의 패를 잡으려면 변택수를 잡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신세진 것이 있으니 기꺼이 요청을 받아주었다.
“오셨습니까?”
고희연에 도착하자 이장이 경도를 반겼다. 바로 변택수 소개를 받았다.
“아유, 높으신 분께서…….”
변택수가 반색을 한다. 그는 두 딸을 두고 있었다. 딸만 둘 팔자는 관상으로도 보였다. 눈밑 와잠에 검은 점이 박혔다. 이렇게 되면 아들은 구경하기 어렵다.
“오 과장님.”
다른 이장 몇몇이 다가왔다. 면장과 부면장, 팀장과 면 직원들도 보인다.
인터넷 등지에서는 공무원들이 갑질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면 지역으로 나오면 행정기관이 지역 토호들에게 을이 된다.
직원 몇몇이 넓은 면을 다 커버할 수 없다. 이장과 부녀회장, 청년회 등의 지역 조직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일선행정은 고달파지는 것이다.
“과장님 복지모델안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어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면 행정복지센터 복지팀 직원들이 감사를 전해왔다. 실무형 가이드북이 있다는 건 탈출구나 다름이 없었다.
경도가 도출한 틈새복지지원안은 전국 지자체는 물론이고 복지부에서도 예산계획에 참고하는 귀한 몸이 되고 있었다.
“자자, 다들 착석해 주세요. 지금부터 존경하고 애정하시는 우리 변택수 이장님의 첫 칠순잔치를 오순도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진행을 알렸다. 사회자 역시 면 직원이었다. 면에 사회를 볼만한 사람이 없으니 변 이장이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하객은 굉장히 많았다. 줄잡아도 300여 명은 넘었다.
“먼저 우리 변택수 구장님의 연혁 소개가 있겠습니다.”
구장은 면 지역 호칭의 하나다. 그 마을에서 행세 좀 하는 연장자들에게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이 진행을 이어간다. 그 후에 변택수가 인사를 하고 딸과 두 사위도 큰 절로 하객들에게 답례를 했다. 그런 다음 변택수가 딸 부부를 거느리고 하객소개에 나섰다.
“여기는 시청 복지과장님.”
경도 차례가 되니 두 딸 부부가 경도 앞에 섰다.
큰 사위.
작은 사위.
관상이 주르륵 리딩되었다.
-큰 사위는 영악한 바람둥이.
-둘째 사위는 착둥이 일바보.
-큰 사위는 놀고먹어도 되는 재복 만렙 금수저상.
-둘째 사위는 돈이 줄줄 새는 금간 항아리.
-큰 사위는 금전출납이 빈번한 직업.
-둘째 사위는 육체로 부대끼는 노가다.
견적이 나왔다.
둘은 완벽한 대조.
그러나 둘 다 문제덩어리.
변택수의 고민을 알 것 같았다.
인생의 두 케이스다.
놀고 먹으며 대충 일해도 잘 사는 재복운과 죽어라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관상. 개진상이 로또에 맞는 것과 성실하게 일해도 고달픈 인생의 모델이 나온 것이다.
이들의 관상예약 때문에 경도는 끝까지 남았다. 속 모르는 이장과 면 직원들이 의리(?)를 지키는 바람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자, 다들 고맙습니다. 우리 오 과장님은 제가 긴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남아주시고 다른 분들은 살펴가십시오.”
변택수가 파장을 선언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하객들이 떠나자 변택수가 경도를 안내했다. 가든의 정원에 마련된 테이블이었다.
“늦게까지 죄송합니다.”
변택수가 정중한 예의를 갖춘다.
“아닙니다. 진행이 재미나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 작은 사위로군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작은 연못 앞에 통화를 하는 작은 사위가 보였다.
“큰 사위 놈은 엊그제 연짱으로 무리를 했다고 그새 저쪽 정자에서 뻗었습니다. 데려오라고 할까요?”
“구장님 고민부터 듣겠습니다.”
“제 고민…… 이거 참…… 오늘 화환 보셨죠? 우리 사위들 앞으로 들어온 화환이 80여 개에 달합니다.”
“인맥이 넓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속 모르는 사람들은 사위 잘 얻었다고 난리들이죠. 둘 다 제 애간장을 후벼파는 줄도 모르고…….”
“…….”
“우리 큰 사위 말입니다. 저 친구는 작은 금융회사에 다닙니다. 부친이 제주도 부호라서 재산도 좀 물려받았죠. 하지만 여자를 너무 밝힙니다. 우리 딸이 죽을 지경인데 결혼 때 저한테 한 맹세가 있어서 그냥 참고 사는 눈치입니다.”
“맹세라고요?”
“저도 한때 한량이었지 않습니까? 유흥 좀 해봤기 때문에 척 보면 압니다. 딸이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갔다가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더군요. 사위가 거기 단골이었다나요? 아니, 어떤 아버지가 나이트클럽 단골 놈에게 딸을 주겠습니까? 하지만 워낙 딸이 좋아하는 데다 부친도 제법 사는 편이라 별수 없이 허락을…….”
“예.”
“둘째 사위는 대조적이죠. 저 친구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데 그저 일만 합니다. 곰처럼 성실하지요. 그런 면이 좋아 결혼을 허락했죠. 그런데 그러면 뭐합니다. 일 년에 절반 이상은 지방 공사를 뛰는 데다 밑 빠진 항아리 모양 돈 새는 구멍이 많아서 아직도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변택수의 고민은 경도의 상괘와 굴레를 같이 했다.
타고 난 재복으로 유흥에 빠져 사는 큰 사위, 죽어라 일하지만 실속은 없는 작은 사위.
“그러니 제 속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해서 대체 저놈들 관상은 어떤지 알고나 싶어서 부탁을 올린 겁니다.”
변택수는 녹차를 단숨에 비워냈다.
“작은 사위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경도가 목을 가다듬자 변택수가 귀를 바짝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