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32화
77. 복당에 먹구름 끼니 파산 당첨입니다-2
“첫 공단 기업입주심사 실무반장을 역임할 때 먹은 뇌물 같습니다. 큰 건만 몇 개 골랐는데 당시 우리 시 공단부지에 입주한 기업들의 서류와 자격상황을 상세히 살펴보면 관련 건이 더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치겠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더니 지가 뇌물을 처먹더니…….”
염정아도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경도의 관상안 위력을 믿고 있었다. 덕분에 그 오빠의 개인사업이 활황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부 직원의 투서인 거야 짐작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국의 과장일 줄이야.”
노우현의 분노 게이지도 급상승 중이었다.
그 역시 경도의 관상안을 의심하지 않았다. 노우현은 K시의 감사 적통이다. 8급 때 감사담당관실에 입성해 6급까지 여러 팀을 돌며 잔뼈가 굵었다.
특히 조기룡의 신임을 받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관련된 일이라 좋게 수습하려했지만 얘기가 잘 안 통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빠른 시간 내에 조사를 마쳐서 징계를 종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직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도요.”
경도가 의견을 피력했다.
“알겠습니다. 우리도 차제에 이런 무고 투서에 대해서는 엄단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뇌물비리까지 엮였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증거가 확보되는 대로 조치하고 시장님 지시를 받아서 수사기관에 이첩하겠습니다.”
노우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래도 최군표 주임은 선을 그어주시기 바랍니다. 용 과장의 성향상 충직한 최 주임이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우현의 다짐을 듣고 감사실을 나섰다.
“오 과장님.”
복도에 나오자 최군표가 그 앞을 막았다.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최 주임님의 악의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으니까요.”
“용 과장님이 믿을 만한 데서 들은 말이라고 정리해 달라기에 워드를 쳤지만 이렇게 큰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제가 얼마 전에…….”
“열흘 전쯤에 업무상 약점을 잡히셨죠?”
“그, 그걸 어떻게?”
“그날 주임님 일진이 안 좋았거든요. 재복궁이 열렸으니 그날은 금전 업무를 안 보는 게 좋았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날 제가 이상하게 머리가 붕 뜬 것 같더니 사망한 노인 두 명에게 복지비 지급 지시를 잘못해 과장님께 찍혔거든요. 노점에서도 5천 원을 낸다는 게 5만 원을 내고 잊어버렸고…….”
“이런 실수는 평생 한 번만 하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용 과장님이 워낙 사실처럼 말을 하셔서…… 제 생각에도 오 과장님이 너무 벼락승진 같기도 하고…….”
“그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이제 보니 될 분이 되신 거 같습니다.”
최군표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턱뼈를 따라 풍성한 살집이 넉넉하니 천성이 충직한 이 사람. 하필이면 업무상 실수가 겹치며 횡액이 커졌다.
이제야 인당의 붉은 기색이 희미해진다. 더 깊이 연관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으니 그 또한 최 주임의 충직함이 만든 탈출로였다.
시청은 오후 내내 뒤숭숭했다. 보안을 했지만 새나가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용 과장은 점심시간 이후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기 인맥을 찾아다니며 경도의 과장 임용에 대한 부당성을 역설하는 중이었다.
“이놈이 감히 나한테 협박을 하더라니까.”
“우리 시장도 문제야. 이런 인간을 밀어준다는 건 뭔가 구린 거래가 있는 거 아니겠어?”
“이거 우리 과장단이 나서야 한다고.”
침이 튈 정도로 열변을 토하지만 지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경도의 상괘처럼 그는 인덕을 쌓지 못했다. 6급과 5급 승진 때도 적을 많이 만들었다. 특히 5급 때가 그랬다.
그는 승진후보자 명부의 초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초안은 사흘 만에 뒤집혔다.
-용 팀장이 모 국장이랑 일식집에서 나오는 걸 봤다던데?
-봉투를 주는 것도 본 사람이 있대.
카더라 통신이었다.
확인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승진후보자 명부는 수정되었고 그 끝자리에 용태훈의 이름이 들어갔다.
후일담으로 흘러나온 정보로는 그의 근무평정 점수가 가장 나빴다. 그러나 최종 승자가 되었다. 내막을 알게 된 승진경쟁자들은 카더라 통신을 믿게 되었다.
그래도 몇몇은 용 과장에게 동조를 했다. 용 과장 부류의 인간들은 어디든 있었다.
“누군 20년을 굴러도 7급이고…….”
“이 시장이 뒷구멍으로 호박씨는 다 까는구만.”
“이거 감사원이 아니라 청와대에 청원 넣어야 하는 거 아냐?”
핏발을 올리지만 루저들의 성토일 뿐이었다. 용 과장의 말에 물증이 없는 탓이었다.
그때 용 과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 뭐야? 짜증 나게.”
그가 혀를 차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용 과장님? 나 대린테크 홍 대표입니다.
“홍 대표가 웬일입니까? 한동안 안면 까시더니…….”
용 과장의 빈정이 날아갔다.
-그게 아니라 지금 큰일 났습니다.
“큰일은 나한테 났거든요. 거 은혜 입었으면 이럴 때 힘 좀 써보세요.”
-지금 농담할 때 아닙니다. 방금 시청 감사팀이 다녀갔어요.
“우리 시 감사팀요?”
-예. 입주 당시 서류를 가지고 와서 환경 설비용량과 일일이 대조를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아니, 몰라서 그러십니까? 시설 미비 그거 눈감아주기로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문제를 삼으면 어쩌란 말입니까?
“뭐요?”
-그리고 업무처리비 드린 거 말입니다. 어떻게 처리를 하셨길래 액수까지 다 알고 들이댑니까?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했지만 굉장히 불안합니다. 빨리 무마하세요.
“……?”
-우리 회사만 그런 거 아니고 여기 입주기업들 중에서 그 당시에 들어온 기업은 다 조사하는 모양입니다. 몇 군데 회사는 이미 자격 미비 입주와 처리비 봉투 건넨 거 실토한 모양이고요.
“……?”
-제 말 듣고 있는 겁니까?
“어억…….”
통화하던 용 과장이 뒷목을 짚으며 넘어갔다.
“용 과장님.”
-용 과장님.
전화와 현실에서 동시 외침이 나왔다.
“으휴우.”
물을 마신 용 과장은 소파에서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니 풍경이 변해 있었다. 자신과 불만을 토로하던 길 과장은 간 곳 없고…….
“뭐야?”
용 과장이 몸을 세웠다.
“감사팀장 염정아입니다.”
당찬 여자가 신분을 밝혔다.
“감사팀장?”
용 과장의 뒷골이 다시 뜨끈해졌다.
“감사실로 좀 가주셔야겠습니다.”
일방통보를 날린 염정아가 돌아섰다. 그 뒤에는 감사팀 남자 직원 두 명이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문을 가리켰다.
-가시죠.
손이 재촉을 대신했다.
“……!”
감사실 상담실에 들어선 용 과장은 혼이 빠졌다. 테이블에 놓인 증빙서류들 때문이었다.
입주 당시 미비나 하자를 눈감아주고 자격을 부여한 서류가 확보된 것이다.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감사실장 노우현이 조사서류를 들고 다가앉았다.
“노우현.”
용 과장이 노 실장을 바라보았다.
둘은 인연이 있었다. 노 실장이 9급 시보로 왔을 때였다. 용태훈은 식품위생과에서 8급을 달고 있었다. 사수로서 신규 노우현의 적응을 도왔었다.
신규 때 만난 사수는 각별하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문에 20여 년이 더 흐른 지금에도 용 과장은 노우현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용 과장이 각을 세우고 나왔다.
“미안하지만 직무수행 중입니다. 선배님은 지금 직무비리로 인해 피조사자 입장이니 말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뭐야? 직무비리?”
“팀장 때 단지 입주기업 심사반장 맡으셨죠?”
“그래서?”
“다섯 군데 기업에서 중대 하자가 발생했습니다.”
“하자?”
용 과장이 콧방귀를 뿜었다.
“뇌물 수수도 네 건 확인되었고요.”
조사서류가 용 과장 앞에 쌓였다.
“뇌물이라니?”
“신도ENG 오만길 대표, 살림테크 김병득 사장, 검일포장 반영민 대표, 광일조명 김천호 사장…….”
“……?”
“시인하시겠습니까?”
“닥쳐.”
용 과장이 서류를 밀쳐버렸다.
“용태훈.”
노우현이 테이블을 치며 일어섰다.
“용태훈? 너 많이 컸다?”
“피조사자라고 했지 않습니까? 성실한 태도로 임하지 않으면 선배 대우를 해드릴 수 없습니다.”
“없으면? 없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용 과장님.”
노우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그래도 한 때 사수였던 분이라 인간적으로 대했는데 실망입니다. 당신에 대한 조사내용을 첨부해 수사기관에 정식 수사요청을 하겠습니다.”
“수사요청?”
“당신의 비리는 명백합니다.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지금 그 태도가 뭡니까?”
“허, 이것들이 정말. 내가 지역복지정책과장 임용비리에 대해 까발렸더니 이따위로 나와? 진짜 시청 한 번 제대로 뒤집어 줘?”
“말씀 삼가세요. 개방형 직위 문제는 감사원에서도 결례를 인정하고 사과를 한 일입니다.”
“그거야 니들이 뒤에서 수를 썼겠지? 시장이 관련된 일이니 말이야.”
“수는 당신 전공 아닙니까?”
“뭐야?”
“옛날 생각 안 납니까? 내가 시보로 왔을 때 좋은 스킬 알려주셨지요. 행정실수를 하더라도 민원인이 만만해 보이면 뒤집어씌우라던 말.”
“뭐야?”
“그래서 다른 기록을 봤더니 2년 전 말입니다. 당신 과에서 주무팀장이 8급 여직원에게 인격모독을 자행해 여직원이 극약자살을 시도한 건이 있었더군요.”
“그래서?”
“감사자료를 보니 여직원 일기에 죽어서 팀장에게 복수하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팀장을 두둔하는 바람에 팀장은 좌천으로 책임을 면했더군요.”
“그럼 여직원이 자살하면 무조건 팀장과 과장이 책임을 져야 하나?”
“당신이 무슨 과실을 저지른 건 아니고요?”
“뭐야?”
“그 건에 대한 것도 조사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당신이 여직원에 대해 매사 트집을 잡는 바람에 스트레스에 받친 팀장이 총대를 멘 거였더군요. 그래서 수습에 나선 거죠? 앞으로는 책임감 있는 과장처럼 보였지만 뒤로는 자기 허물을 감추기 위한 자작극.”
“야, 노우현.”
“그 건도 수사요청에 포함입니다.”
“…….”
“염 팀장?”
노 실장이 염정아를 바라보았다.
“경찰 연락 끝났습니다. 지금 오고 있답니다.”
“아니, 이것들이 정말.”
“할 말 있으면 경찰에 가서 하십시오. 거기서는 물어보는 말도 많을 것이니.”
“야, 이거 이창교 지시야? 내가 개방형 임용비리 제시하니까 제 발 저려서 나 디스하는 거냐고? 야, 가서 전해라. 웃기지 말라 그래. 내가 너희들 다 그냥 둘지 알아? 내가 이창교 그놈 모가지부터 날려버릴 거야.”
덜컥.
순간 문이 열리며 이 시장이 들어섰다. 엄낙기와 함께였다.
“시장님.”
노우현와 염정아가 예의를 갖추었다. 펄펄 뛰던 용태훈도 잠시 숨이 죽었다. 이 시장이 바로 등장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벅.
엄낙기가 다가섰다. 테이블에 흩어진 서류를 보더니 그걸 집어 들었다.
퍽.
서류뭉치가 용태훈에게 날아갔다.
“못난 인간. 해 처먹었으면 염치를 알아야지. 감히 그 더러운 입에 시장님과 오 과장을 올려?”
흥분한 엄낙기의 손이 날아갈 때였다. 이 시장의 손이 그걸 막았다.
“시장님.”
“우리 시 직원을 대표하시는 자치행정국장께서 왜 이러시나?”
“이런 인간은…….”
“때릴 가치도 없네.”
“……?”
“시 직원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이 손에 오물을 묻혀서야 되겠나?”
“시장님.”
“용태훈.”
이 시장의 눈이 용 과장을 겨누었다.
“당신 운이 없군.”
“…….”
“차라리 나를 공격했더라면 이보다는 나았을 거야.”
“…….”
“그런데 하필이면 오경도 과장이었나?”
“…….”
“이 정도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오 과장이 마음 제대로 먹었다면 당신은…….”
“…….”
“근주자적근묵자흑(近朱者赤近墨者黑), 그런 말을 아나?”
“…….?”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 난다는 말과 비슷한 거라네. 자네 인생에 등불이 되는 향이 옆에 왔는데 그걸 쳐내려다 이 꼴이라니…… 쯔쯧.”
이 시장이 돌아섰다. 엄낙기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형사 둘이 들어왔다.
그제야 용태훈의 각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결정타는 이 시장의 말 속에 든 핵폭탄이었다. 치명타가 따로 없었으니 의지의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차라리 한 대 얻어맞는 게 나았다. 한 대 매조차 아까운 쓰레기 취급을 받았으니 혼이 빠져버렸다.
용 과장이 이마의 땀을 쓸었다. 그 복당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입술 쪽 식록과 아랫입술로도 멍이 든 듯 푸른 물이 번져갔다.
경찰 수사결과보다 관상이 먼저 용 과장의 파산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