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복당에 먹구름 끼니 파산 당첨입니다-1> (23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31화

77. 복당에 먹구름 끼니 파산 당첨입니다-1

“오 과장.”

용 과장의 허세가 천둥을 쳤다. 경도는 미동도 없다. 허세 실드 따위가 경도의 관상안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었다.

“관상 같은 미신은 믿지 않는다니 한 번 믿게 해드릴까요?”

“뭐야?”

“당신의 이마, 여기가 복당이라는 곳입니다.”

경도가 자기 이마를 짚었다.

“파산을 암시하는 곳이죠. 거기 검은 빛이 돌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뜻입니다. 십 원짜리 동전만 하게 눌린 듯한 사이즈, 몹시 시들고 건조하군요.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보십시오. 당신이 파산하면 당신 눈으로도 그 검은 빛이 확인이 될 겁니다. 치명타가 아닌 다음에는 그런 기미가 나타나지 않거든요.”

“지금 감히 신앙인 앞에서 관상 따위를 논하는 거야?”

“아, 각도를 조금 바꾸면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상대를 잘못 골랐다도 될 수 있겠군요.”

“뭐야?”

“당신의 파산은 불명예 퇴직입니다. 이제 보니 명예를 논할 가치도 없군요. 입술 주변의 식록 또한 시들고 건조합니다. 아랫입술은 멍이 든 듯 검푸른 기색도 있네요. 공직 낙오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퇴직을 받아들이면 그 횡액은 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복당의 기세와 더불어 곤경에 처해질 겁니다.”

“오 과장.”

“그 곤경이란 형옥의 다른 말이니 곧 구속을 뜻합니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미안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뭐라?”

“인간의 길흉은 그 자신의 코에서 반응합니다. 콧대의 연상과 수상에 적색 기색이 뻗치면 근신해야 마땅하죠. 신상에 재앙이 온다는 신호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하필 그런 때에 폭주하고 말았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하는 거야?”

“그런데 그게 바로 당신의 성정입니다. 아래턱과 아랫입술이 얼굴 앞으로 나왔군요. 당신 같은 사람은 시기심 덩어리죠. 누구 하나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부하 직원들을 쪼거나 공을 깎아내리는 데는 식견이 남다르시죠?”

“뭐야?”

“닥치고 들으세요. 지금 당신 앞에 운명의 사자가 와 있는 겁니다. 허튼 태도를 접고 경건하게 그 집행을 받으라고요.”

담담하던 경도의 상괘가 폭발했다. 빛을 내쏘는 관상안에는 살광까지 담겨 있다.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지만 상대의 의지를 꺾는 위엄이 든 것이다.

“……?”

돌연한 위엄에 용 과장이 주춤거렸다.

“흥분하지 마세요. 그러면 아까 말한 코의 연상과 수상의 적색이 더 진해집니다. 횡액이 가까워진다 이 말입니다.”

“…….”

경도가 다가서니 용 과장이 물러났다. 눈빛 때문이었다. 분노와 경이가 뒤섞인 그 눈빛은 사람 좋던 경도의 그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끝났어. 눈썹의 미릉골이 솟아 사무관은 무난하게 달았지만 그건 상관을 잘 만난 덕분이었지. 그러나 당신은 그걸 당신 능력으로 알고 매사에 불만투성이였으니 그 시기심의 칼날 위에 스스로의 운명을 올려놓은 거야. 그 결과 당신 인당에는 공란(公亂)의 꽃이 피었고 관골 또한 그 삐뚤어진 심보처럼 뒤틀리게 되었지. 이는 중년에 운세가 떡락된다는 신호야.”

“……?”

“지난 수요일 오후 2시 30분. 당신은 뭘 했을까?”

경도의 눈빛이 용 과장을 겨누었다. 이미 벽까지 밀려난 용 과장에게는 법정 심문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최군표 주임과 둘이었지? 둘의 일진 파장이 그 시간에 일치하니까.”

“…….”

“당신들의 시기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간도 일치.”

“…….”

“한 명은 감사원에 익명 전화를 걸고 또 한 명은 우체국으로 가서 투서를 보냈겠지.”

“…….”

“당신 지난번 내 결혼식에 왔었지? 자랑은 아니지만 거기 우리 시 경찰서 수사과장에 도경 국장님도 계셨어. 당신이 대놓고 배척하는 내 관상의 도움을 받으신 분들이지. 조금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과거 우리 시청의 n번방 사건을 시작으로 직원도박 색출, 경찰서 비리직원 색출에 자살을 위장한 살인사건까지 나하고 손발을 맞춘 적도 있거든.”

“…….”

“당신은 이기적이나 머리는 좀 되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무작위 일상 체크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특정한 시간대를 알면 당신들 행적을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야.”

“……!”

특정한 시간대의 행적.

그 단어가 용 과장의 의표를 찔렀다.

2시 30분.

그의 귀에는 그 단어가 무한회전을 하고 있었다.

<최 주임, 2시 반에 좀 나와.>

그가 최군표에게 보낸 문자였었다. 감사원 익명제보 전화는 그가 걸었다. 감사원의 직원 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통해 담당자의 내선번호를 딴 것이다.

그러는 동안 최 주임은 투서편지를 보냈다. 워드로 쳤지만 용 과장의 검토를 마친 내용이었다. 거사(?)를 마친 다음 커피를 뽑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으로 CCTV가 떠올랐다.

청사 복도와 입구에는 카메라가 있다. 우체국 앞에는 또 얼마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 체크해도 두 사람의 행적은 드러난다.

하지만.

우길 수도 있었다.

그 시간에 주임과 같이 나간 것만으로는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른 볼일 때문이었다고 우기면 되는 것이다.

“오 과장.”

용 과장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스쳐 갔다.

“…….”

“지금 소설 쓰나?”

“소설?”

“보아하니 인맥 동원해서 셀프임용 비리 무마시켰다고 의기양양한 모양인데 잘못 짚었어.”

“잘못?”

경도 입가에도 피식 쓴웃음이 스쳐 갔다. 그 사이에 변한 용 과장의 찰색을 본 것이다. 인당의 붉은 기색은 더 진해졌고 코의 연상과 수상의 색도 그랬다. 복당에도 먹구름이 짙어진다. 파산을 면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는 것이다.

<내가 잘못했네.>

그 말이 나오면 준엄한 경고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관상값을 한다. 코끝이 칼처럼 선대다 눈이 깊은 까닭이다. 눈썹뼈 미릉골 역시 더 돌출된 듯싶으니 이기심이 흉포한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이라?”

“오냐. 니가 지금 사람 우습게 보고 협박질인데 그 말 다 녹음되었거든? 내가 말이야 이거 간부회의에서 공개하고 네 그 오만을 만천하에 밝혀 주마. 감히 과장 초짜가 고참을 협박해?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미신 관상을 앞세워서?”

용 과장이 눈을 부라렸다. 발악이 불쌍해 피식 웃음이 났다.

“이놈이 웃어?”

“고마워서 웃은 거야.”

“고맙다고?”

“친절하게 기록해줘서 말이야.”

“뭐야?”

“계속 기록하세요. 이제부터는 당신 비리가 나올 테니까?”

“비리?”

“어디부터 밝혀줄까? 가장 크게 해먹은 건 8년 전이시군. 11년 전 7월에도 뇌물 좀 드셨네. 갑자기 전에 없는 수입이 생겼어. 그러나 곧 절반 가까이가 나갔으니 뇌물이었을까? 그해 9월에 당신이 사무관을 달았으니 조사하면 나오겠지.”

상괘를 날린 경도가 용 과장을 바라보았다.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기려던 용 과장 미간이 꿈틀거렸다.

11년 전의 팀장 시절에 받아먹은 업자의 뇌물…… 그건 마누라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멀군. 간단하게 3년으로 좁힙시다. 사실 당신 나이쯤 되시면 너무 오래된 일들은 잘 생각나지 않으실 테니까.”

“……?”

“3년 전이면 당신이 기업지원과장으로 있을 때로군요?”

“……?”

“입 아프니 큰 거 하나만 말하죠. 3년 2개월 하고도 8일 전이군요. 그때도 수요일이었네요. 그날 당신 재백궁에 큰돈이 두 번 들어왔습니다. 액수로는 1억여 원과 3천만 원 정도 되는데 로또 2등을 맞았을까요?”

“…….”

“당신에게 정식으로 통보합니다. 이 건에 대해 수사기관에 수사의뢰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경도의 선고는 단호했다. 집행이 끝났음을 알린 것이다.

그대로 돌아섰다.

용 과장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야.”

문의 손잡이를 잡을 때 그의 발악이 나왔다.

“야, 이 자식아. 나이도 어린놈이 얻다 대고 협박이야? 뭐 경찰 지인? 너만 경찰 지인 있는 줄 알아?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니가 죽나 내가 죽나.”

발악이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국의 직원들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문 앞에는 최군표가 서 있었다. 찔리는 데가 있으니 동정을 살피는 것이다.

“다 들었겠군?”

경도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

최군표가 찔끔 물러섰다.

“당신도 두 달 전에 작은 횡액이 있었군. 그 건 때문에 용 과장과 한패가 되었나?”

“…….”

“나는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알아서 처신하도록.”

경도가 그를 지나쳤다.

최군표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버텼다.

그야말로 폭풍 카리스마였다.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의지를 베인 것이다.

“최 주임.”

회의실 안의 용 과장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최군표가 안으로 들어섰다.

“너야?”

“예?”

“니가 찔렀냐고?”

“아, 아닙니다.”

“그럼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나를 모함한 거야?”

용 과장은 국 직원들 보라는 듯 악다구니를 썼다.

“과장님.”

민지와 은빛이 울상이 되었다.

용 과장의 포악함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곧 정리될 테니 업무 보고 계세요.”

직원들부터 안심 시켰다. 은빛이 물을 주니 그것도 받아마셨다.

그런 다음에 감사담당관실로 향했다.

당장 계치훈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증거도 충분했다. 그러나 내부 문제였다. 무작정 외부 수사기관에게 맡기는 건 조직을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 시에도 그만한 시스템은 있었다.

복도에서 엄낙기 국장을 만났다.

“오 박사.”

그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국장님.”

“어떻게 된 거야? 어떤 놈이 투서를 해서 감사원에서 조사를 나왔었다며?”

“벌써 아셨습니까?”

“벌써라니? 내가 상공회의소 좀 들르느라고 출장을 나갔었잖나? 그 얘기 듣고 부랴부랴 들어왔네.”

“그럼 흥분부터 가라앉히십시오. 다 끝났습니다.”

“무슨 일로 온 거야?”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해?”

“예. 보시다시피.”

“어휴, 난 또…….”

엄낙기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무튼 누가 ‘카더라’로 투서질하면 나한테 말하게. 다른 건 몰라도 남 갈구는 놈들은 못 봐줘. 게다가 오 박사 갈구는 건 더욱.”

“감사합니다.”

“나참, 할 일도 없는 놈들이지. 감히 우리 시의 보물덩어리를…….”

엄낙기는 정색을 하며 돌아섰다.

고마웠다.

출장 중에도 경도 생각을 해준 엄낙기 국장…….

경도가 감사담당관실 문을 열었다.

“팀장님.”

여직원이 상담실로 들어가 경도의 등장을 알렸다. 안에서 나온 건 감사실장 노우현이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잖아도 연락하려던 참인데…….”

실장이 안을 가리켰다. 경도가 보니 염정아가 손짓을 했다.

그 앞에 앉은 사람.

최군표였다.

그가 먼저 방문한 것이다.

“이번 투서건에 대해 자백을 하러 왔답니다. 용태훈 과장의 지시로 투서를 작성했다고…….”

노우현이 안을 가리켰다. 그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섰다. 경도를 본 최군표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 귓전으로 경도의 말이 흘러들었다.

“최 주임님은 죄 없습니다.”

“……?”

최군표가 고개를 들었다.

“용 과장의 강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워드를 만들어 보낸 것뿐입니다. 최 주임도 피해자일 수 있으니 거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장님.”

조서를 받던 염정아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제가 상세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최 주임은 돌려보내주십시오.”

“……?”

“최 주임님, 뭐하십니까? 가보세요.”

경도가 최군표를 독촉했다. 눈치를 차린 염정아가 거들고 나섰다.

“가보세요. 오 과장님이 다른 증거가 있다니…….”

찌익.

염정아가 조서를 찢었다. 그녀의 상황파악은 과연 국대급이었다. 경도의 의도를 바로 간파한 것이다.

“오 과장님…….”

최군표가 일어나 예의를 표하고 물러갔다.

그 자리는 이제 경도의 차지가 되었다.

메모 한 장을 내놓았다. 용 과장의 뇌물수수 기록들이었다.

“……!”

메모를 집어든 감사실장의 눈이 제대로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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