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30화
76. 감사원의 저승사자들-4
“가세. 오 과장.”
이 시장이 먼저 일어섰다.
경도가 그 뒤를 따랐다.
나오는 길에 염정아와 신임 감사담당실장 노우현이 예를 갖추었다.
“괜찮나?”
복도의 곽 국장이 물었다. 아까부터 기다린 모양이었다.
“염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무슨 말인가? 나는 자네 직속상관이야.”
“시장님께서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시장님이?”
“두루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아닐세. 내가 가서 인사 전할 테니 자네는 들어가서 안정하시게.”
곽 국장이 사무실을 가리켰다.
“과장님.”
경도가 돌아오자 민지와 은빛이 다가왔다. 그새 절반은 삭은 모습이다. 다른 팀장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별일 아닙니다. 업무 보세요.”
경도가 과원들을 안심시켰다.
“별일 아닌데 감사원 조사팀이 뜰까?”
저쪽 노인장애인과의 용 과장이 팀장을 세워놓고 구시렁거렸다. 바로 상대하지 않고 책상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민지가 물었다. 그녀는 경도 과의 주무 팀장이다. 알아야 할 필요도 있었고 알려줘야 할 필요도 있었다.
“유명세를 탔나봅니다.”
경도가 웃었다.
“그럼 끝난 거예요?”
“아마?”
“어휴, 우린 또…….”
“저 짤릴 줄 알고요?”
“감사원이잖아요? 그 ‘감’ 자만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감사원은 뭐 사람 아닌가요?”
“누군가 투서한 거죠?”
민지도 눈치를 깠다. 경력은 그냥 쌓이는 게 아니다. 공직 사회는 투서와 제보가 잦았다. 누구 하나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이 또한 틀에 박힌 법 집행에 더불어 도토리 키재기인 업무분장 때문이었다.
공직환경은 사기업과 달랐다. 누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마구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잘 된다 싶으면 시기부터 작렬한다.
-빽 좋나 보지.
-줄 잘 섰네.
-집안이 굉장하다며?
이런 정서로 냉소 뿜뿜이 되는 것이다.
“글쎄요.”
경도가 시선을 들었다.
다른 과의 과장과 팀장부터 하나씩 겨눠본다. 모두가 경도 시선을 피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경도가 작살나는 것으로 이구동성 예측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경도의 시선은 용 과장에게서 멈췄다. 하는 짓이 개싸가지 쌈 싸 먹어서가 아니었다. 시청 직원들이라고 모두가 경도의 편은 아니다. 다들 개성이 있으니 호의적인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제껏 쌓은 공직 짬밥으로 가늠하자면 다른 과장들이 경도를 견제하고 각을 세우는 건 백번 옳았다.
그게 공직 사회의 민낯이었다. 그렇기에 까칠한 용 과장에 대해 특별한 적개심은 없었다. 그 또한 경도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이었던 것이다.
시선이 멈춘 건 그의 관상 때문이었다.
경도 자신의 관상을 볼 수 없다.
만약 볼 수 있다면 얼굴 만면에 모함의 흉살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인당에 더해 명궁에 먹구름이 끼고 그 구름은 코의 산근까지 내려간다.
양 관골 역시 푸른 물이 든다. 그 기색이 눈으로 향한다. 흉살의 관상은 그렇게 표시가 난다.
그런데.
용 과장의 관상이 그랬다. 모함을 맞은 사람의 찰색과 반전을 이루는 기색이 만면을 물들였다.
결론은.
이 모함은 그의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용 과장…….’
경도의 관상안은 점점 더 매워져 갔다.
복도로 나온 감사원 조사팀은 고민에 쌓였다.
“그냥 가시죠. 과에 가서 공식 사과라니? 말도 안 됩니다. 감사원을 뭘로 알고……”
조사관이 기염을 토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투서를 만들어서 온 것도 아니고 의심스러운 정황에 대해 확인하는 게 불법이라도 됩니까?”
다른 조사관도 자부심에 불탔다.
하지만.
팀장 생각은 그렇게 간단하지 못했다. 저자세로 벌벌 기는 지자체였다면 그럴 수 있었다.
-이번 건은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만 다음부터는 잡음 나지 않게 직원들 공직기강 잘 확립해주세요.
……하고 선심성 엄포를 남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무총리가 마음에 걸렸다.
집권여당 원내총무도 걸렸다.
확인된 바만 이 정도이니 오경도의 인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집행상의 과오도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감사를 통보하고 경도를 은밀히 불렀어야 했다. 그걸 무시하고 과로 난입해 버렸다. 인사팀장으로서의 권한 남용에 더불어 셀프임용 비리에 대한 확신이 너무 컸던 것이다.
“팀장님.”
조사관이 재촉을 한다.
“나 참…….”
고민하던 팀장의 스트레스가 수직으로 상승을 했다.
“그렇게들 눈치가 없어? 100% 짜고 친 고스톱에 자작 탄 내 등천한다더니 증거 찾았냐고?”
마침내 스트레스가 터졌다.
“…….”
“알고 보니 기초지자체 병아리가 아니라 대붕이네? 우리는 없던 일로 하고 싶지만 피조사자들 생각은 그게 아니잖아?”
“…….”
“따라와.”
팀장이 돌아섰다.
“팀장님, 설마?”
“따라오라는 말 안 들려?”
팀장은 직진이었다. 그 걸음은 복지국 앞에서 멈췄다. 부하들을 한 번 돌아보고는 그대로 안으로 향했다.
“……!”
감사원 직원들이 도열하자 복지국의 각과 직원들의 촉각이 곤두섰다. 저승사자들의 재등장이었다.
조사팀장이 경도 앞으로 다가서자 조사관들이 정자세로 도열했다.
“무례를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조사팀장의 허리가 굽어졌다. 조사관들 역시 허리를 숙였다.
“……!”
용 과장이 벌떡 일어섰다. 다른 과장과 팀장들도 고개를 빼 들었다. 대 반전의 풍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중징계는 따놓은 당상 같았던 오경도. 지금은 감사원 조사관들의 단체사과를 받고 있는 것이다.
“됐습니다. 제보든 투서든 당신들 직무의 일부니까요. 좀 불쾌하기는 했지만 괜찮습니다.”
경도가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럼.”
조사팀장과 조사관들은 한 번 더 예를 갖추고 물러났다.
“과장님.”
민지는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돌아온 경도는 괜찮다고 했었다. 하지만 다른 과의 분위기는 달랐다.
여전히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그런 차에 감사원 조사관들이 들어와 공식 사과를 전했다. 찐 면죄부였다. 아니, 오히려 경도를 부각시키는 일이 되었다.
의심은 누구나 살 수 있지만 감사원의 공식 사과를 공개적으로 받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 보세요.”
은빛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감사원 조사관들이 단체사과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새 사진을 찍은 것이다.
“증거로 보관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는 공직 유튜브도 올리고 있는 은빛이다. 그 순발력이 놀라웠다.
“저 내려가서 달고나 라떼 좀 사 올게요. 이럴 때 한 잔 하면서 액땜해야죠?”
은빛이 문으로 뛰었다.
짝짝.
경도 과의 팀장들이 일어서 박수를 쳐준다. 경도의 재앙을 말쑥이 씻어주는 소리였다.
“시장님께 좀 다녀올게요.”
격려를 뒤로하고 복도로 나왔다.
“그 친구들은 갔나?”
시장실에 들어서자 이 시장이 물었다.
“예.”
“공식 사과는 받았고?”
“예.”
“곽 국장이 자네 걱정을 많이 하시더군.”
“죄송합니다.”
“무슨 소린가? 이게 자네 잘못도 아니고…….”
“…….”
“투서 말이야, 누구일 것 같나?”
질문하는 이 시장의 안광이 영롱하게 빛났다.
“찾아서 처벌하시게요?”
“아니면? 이건 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일세.”
“그러시면 제게 맡겨주십시오.”
“오 과장에게?”
“시장님이 나서시면 모양이 그렇습니다. 제가 무난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군지는 알고 있고?”
“아무래도 저희 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못난 사람들. 누군가 본보기로 잘 되면 그 탄력으로 공직 전체가 좋아지는 걸 모르고 나 아니면 같이 되지 말자는 물귀신 작전이니…….”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시장님의 본심이 잘 알려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게. 하지만 감사원에는 시의 이름으로 엄중항의를 할 생각이네.”
“그건 시장님 뜻대로 하십시오.”
“투서자 말일세, 처리가 되는 대로 알려주시게.”
“예.”
“오 과장은 괜찮지?”
“당연하죠? 제가 누구 밑에서 행정을 배웠는데요?”
“그럼 가보시게.”
시장이 문을 가리켰다.
작은 지자체의 장이지만 이 시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것은 곧 권력욕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 시장들은 차기 선거에 목을 매고, 차차기에 국회진출까지 고려한다. 그렇기에 흠은 덮고 공만 강조하려다 보니 부작용의 늪에 빠진다.
이 시장은 달랐다.
그는 정말이지 시정만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었다.
화장실에 들러 손을 좀 닦았다. 눈도 적셨다. 아무래도 살짝 긴장은 했었나 보다. 손을 닦고 나와 계단참으로 갔다. 전화로나마 인사를 드려야 할 곳이 있었다.
-아, 오 박사님?
첫째는 김윤광이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자초지종을 말하고 번거롭게 해드린 것에 대해 사과를 전했다.
-심려치 마세요.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이군요.
김윤광은 흔쾌했다.
-누군가 잘 되면 시기의 칼날도 날카로워집니다. 개의치 말고 뚜벅 걸음으로 가세요. 이 사람은 오 박사님을 믿습니다.
총리도 경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대략 수습이 되어갈 때 조경철의 전화가 들어왔다.
-오 박사, 무슨 일이야? 후원회 직원 말이 감사원에서 오 박사 승진과 관련해 후원회 명단을 요청했다고 하던데?
“별일 아닙니다. 잘 끝났습니다.”
-진짜 별일 아닌 거지?
“예. 괜한 트집을 잡더니 시장님이 나서니까 깨갱하고 사과 때리고 갔습니다.”
-어휴, 난 또.
조경철이 가슴을 쓸었다. 그새 걱정을 해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이제 감사담당관실로 향했다. 투서 해결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투서는 맞아. 감사원 조사팀장이 제시를 하더라고. 우리가 자체 감사한 후에 보고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사안이 중요한 것 같아 자기들이 전격 조사하겠다기에 귀띔도 못 했어.”
새로 감사팀장이 된 염정아가 설명을 했다.
“투서는 워드였어?”
“그런 눈치야. 전화제보도 같이 왔다고 하더라고.”
“전화까지?”
“어떡할까? 실장님도 고민 중이시던데?”
“범인은 내가 알아.”
“진짜?”
염정아가 소스라쳤다.
“우리 국에 있는 것 같아.”
“누군데? 이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
“시장님 생각도 그러셔. 해서 내가 일단 일임을 받았어. 감사실이 나서면 시청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테니까.”
“과장님께서는 어쩌시려고?”
“웬만하면 덮고 가고 싶은데 이번 일은 좀 커졌네. 내가 일단 간을 좀 볼 테니까 마무리는 감사실에서 해줘.”
“알았어. 언제든 콜만 해.”
염정아의 다짐을 듣고 과로 돌아왔다.
용 과장은 주무 주임 최군표를 데리고 다른 과장들과 모여앉아 뭔가를 쑥덕이고 있었다.
경도가 다가서자 분위기가 싸해진다. 이것도 일종의 텃세다. 경도가 신참과장이니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에 주눅 들 경도가 아니었다.
“용 과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
용 과장의 반응은 오만했다. 옆의 최 주임이 슬쩍 자리를 피한다. 순간 경도가 그의 관상을 빠르게 분해했다.
최군표는 충직한 상이었다. 턱뼈 쪽 해골이 그걸 증명한다. 살집이 튼실하고 풍성하니 윗사람을 거역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마 주골에 붉은 찰색이 맺혔다. 횡액이다. 그가 모시는 사람에게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재앙은 최 주임에게도 부메랑이었다.
“시간 좀 되시겠습니까?”
“왜? 이제야 주무과 바꿀 생각이 들었나?”
용 과장이 혼자 질러간다.
“잠깐이면 됩니다.”
“헛, 주무과장이 오라니 겁나네.”
그가 빈정을 떨며 일어섰다.
“최 주임님도 잠깐 뵈어야 할 테니 조금 기다려주시죠.”
책상의 최 주임에게도 한 마디 해주고 돌아섰다.
“뭔가?”
회의실 의자에 앉은 용 과장이 다리를 꼬았다. 고참 과장 티를 내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던가?”
“제가 관상을 좀 본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듣기는 했네만 나는 천주교 신자네. 그런 미신 같은 건 나한테 안 통해.”
“지난 수요일이군요?”
“뭐가 말인가?”
“오늘 조사를 나온 감사원 조사 말입니다. 투서가 접수된 날입니다.”
“……?”
“조사관들이 한 말이 아니라 제가 관상으로 알아낸 겁니다.”
“투서를 관상으로 알아낸다?”
용 과장의 입가에 썩소가 스쳐 갔다.
“투서를 한 사람도 알아낼 수 있죠.”
“미안하지만 관상 과시를 하려는 거라면 나는 관심 없네.”
“이제부터 관심이 생길 겁니다.”
용 과장이 일어서자 경도 목소리가 묵직하게 변했다.
“초고속으로 과장 달더니 자신만만하군.”
용 과장이 경도 어깨를 건드렸다. 선임 과장으로서의 오만이다. 그 손을 가볍게 밀어낸 경도. 벼락같은 돌직구 상괘를 던져놓았다.
“수요일 오후, 아마도 2시에서 2시 30분 사이일 겁니다. 투서를 보내고 전화 제보로 확인사살을 시도한 시간…….”
“오 과장.”
“투서자는 최군표, 과장님 휘하의 주무 주임입니다.”
“뭐야?”
“물론…….”
용 과장과 눈매를 맞춘 경도, 뜨거운 상괘 하나를 용 과장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
“주범은 용 과장님, 당신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