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사원의 저승사자들-3> (229/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29화

76. 감사원의 저승사자들-3

시장직을 걸고.

이 시장의 의지는 결연했다.

“시장님.”

조사팀장이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사 중입니다. 그러니…….”

나가주세요.

팀장의 의도였다.

“두 사람은 나가 계세요.”

이 시장은 곽 국장과 비서실장을 내보내는 것으로 조사팀장의 입을 막고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 오 과장이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지금 우리 오 과장이 자격이 넘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방금 전에도 오 과장의 후원회에 전화를 했습니다만 받지 않더군요.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은근히 염장을 지른 팀장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중간 번호를 짚었다.

-여보세요?

중년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K시에 임용 감사를 나온 감사원 직원입니다. 혹시 오경도 과장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알죠. 우리 시에서 그분 모르는 사람 없을 걸요?

“이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 시 차기 시장감은 되죠.

“……?”

느닷없는 발언에 팀장이 흠칫거렸다.

-죄송하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말씀해주시면…….

“제대로 말했어요. 최소한 우리 시 시장감이라고요.”

“…….”

첫 번째 통화가 끝났다.

팀장이 한 장을 넘겼다. 그런 다음에 랜덤으로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감사원요? 우리 과장님 공적 조사하려고 나오신 겁니까?

또다시 앞서가는 답이 나왔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다른 번호를 눌렀다.

-오경도 과장님 말인가요?

이번에는 안선주 부녀회장이었다.

-설마하니 우리 오 과장님 감사원으로 스카우트해 가려는 거 아니죠?

“…….”

네 번째, 다섯 번째도 반응은 비슷했다. 받는 이마다 경도 칭찬 일색인 것이다.

“더 하시오. 제대로 파악하려면 적어도 열 통은 걸어야 하지 않겠소?”

이 시장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됐습니다. 이쪽은 모르겠지만 아까 후원회 쪽은 다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원회원의 한 사람입니다만.”

“예?”

“오 과장의 후원회에는 현직 총리도 계시고 장관도 계시고 국회의원도 있소. 아니, 심지어는 대통령께서도 후원금을 내셨소. 당시 우리 오 과장은 말단 중의 말단이었는데 진정성이 없다면 그 직급으로 그런 분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시장님,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이 사람들이 코로나 진정되니까 의심 바이러스라도 걸렸나? 당신 지금 우리가 작은 지자체라고 무시하는 거요?”

“천만에요. 이건 감사원의 의무이자 권한입니다. 그러니…….”

신경전이 펼쳐지는 순간 조사팀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팀장이 짜증스레 전화를 받았다.

-제가 총리되는 사람입니다. 방금 부재중 전화가 와 있길래…….

“누구요? 총리?”

-어디십니까?

“총리라면 국무총리란 말씀입니까?”

-이 번호는 제 직통번호인데 누군지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허, 이 사람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여보시오? 당신이 총리면 나는 감사원장이야. 보아하니 오경도 과장과 미리 입을 맞춘 모양인데 그러다가 공무원 사칭죄로 걸리는 수가 있어요.”

팀장이 통화를 끝냈다.

그러자 낯선 번호로 다시 전화가 들어왔다.

“여보세요?”

이제는 조금 더 까칠하게 전화를 받았다.

-김윤광입니다. 부재중 전화를 하셨더군요?

“허얼.”

-처음 보는 번호인데 어디십니까?

“나 감사원 조사팀장입니다. 아까는 국무총리라더니 이번에는 누구십니까?”

-이보세요?

“누구시냐고 묻지 않습니까?”

-저 여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는 김윤광입니다만.

“여당 원내총무? 이 사람들이 정말.”

흥분한 팀장이 통화를 끊었다.

“오경도 과장님, 이거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죠. 국무총리에 여당 원내총무? 이러면 우리가 꼬리 사리고 덮어줄 줄 알았습니까?”

팀장이 경도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뭐가 문제입니까?”

경도가 맞섰다.

“국무총리에 여당 원내총무? 그래, 일단 번호는 맞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짜 당신의 후원회 멤버란 말입니까? 대통령부터 총리, 여당 원내총무? 왜, 대기업총수와 국회의장, 우리 감사원장님은 안 계십니까?”

“지금 우리 후원회 명단이 거짓이란 말입니까?”

“아니면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믿지 못할 일 아닙니까?”

팀장이 목청을 높일 때 다시 전화가 들어왔다. 신경질적으로 번호를 확인한 팀장이 창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국장님.”

그의 소속 국장이었다.

“예? 총리실과 여당 원내총무실에서 전화가 왔었다고요?”

-그래, 자네가 굉장한 무례를 저질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분들에게 전화한 적 있어 없어?

“국장님, 정말 그분들에게?”

-뭐야? 그럼 내가 지금 자네한테 할 일 없이 전화하고 있다는 거야?

국장의 호통이 나왔다. 조사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그건 아닙니다만…….”

-지금 K시야?

“예.”

-통화 중에 오경도라는 이름이 나왔다던데?

“예, 이 시가 개방형 사무관 직급을 공채했는데 채용비리 제보가 너무 구체적이라 조사차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총리님과 여당 원내총무님에게 전화를 한 건가?

“그게…… 피조사자가 그분들이 자기 후원회의 멤버라고 하길래…….”

-다른 건 모르겠고 총리께서 오경도와 입을 맞췄다는 말까지 들었다던데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게…….”

-야, 이 친구야. 조사를 하러 갔으면 조사를 해야지. 왜 총리에 여당 원내총무까지 건드려서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 엉?

“…….”

-피조사자가 오경도라는 사람이야?

“예…….”

-미치겠군. 총리께서 그 사람에게 미치도록 깍듯하던데?

“예?”

-거기 상황은 모르겠지만 일단 총리와 원내총무님께 전화해서 사과드려. 자칫 원장님께 컴플레인이라도 쏟으면 어쩔 거야?

“…….”

-조사는?

“진행 중입니다.”

-물증 잡았어?

“그게…….”

-잘 한다. 귀원하면 내 방으로 들어와.

국장의 전화가 거칠게 끊겼다.

“팀장님?”

“잠깐만.”

잠시 숨을 고른 팀장이 복도로 나왔다. 국장이 몰아치니 정신이 혼미했다. 내용도 그랬다. 두 통화 속의 목소리가 위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진짜 총리와 원내총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일단 국장의 지시를 이행했다. 총리가 먼저였다.

-여보세요.

다시 총리 목소리가 나왔다. 총리인 줄을 알고 나니 오금이 저릴 것만 같았다.

“조금 전에 전화했던 감사원 조사팀장입니다. 결례가 많았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 오경도 박사는 무슨 일로?

“이번 승진과 관련한 제보가 들어와서 확인 차 나왔습니다.”

-제보라면?

“채용비리가 의심된다는…….”

“오 박사가 말인가요?”

“예. 검토결과 편법 승진으로 의심이 되어서…….”

-증거가 나왔습니까?

“…….”

-안 나온 모양이군요. 그런데 편법 승진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도 되는 겁니까?”

“…….”

-쟁점이 무엇입니까?

“후원사업입니다. 이 사람이 6급 근무연한이 부족하니까 후원사업 경력을 부풀린 것으로…….”

-어떻게 부풀렸다는 것이죠?

“그게…….”

-우리 오 박사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어요.

“그것도 같이 문제 제기가 되었습니다. 인사팀장 직위를 이용해 결혼식 때 거액의 축의금을 거둬들였다는…….”

-이 사람이 듣자니 큰일 날 사람이군.

“예?”

-나도 그 결혼식에 갔고 대통령께서도 금일봉을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작은 시의 인사팀장 직위에 눌려 참석한 거라는 겁니까?

“……?”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무수행 중이라니 긴 말은 않겠습니다. 기왕 나온 거 제대로 조사하세요. 그러나 만약…….

“……?”

-우리 오 박사에게 흠이 없다면 엄중히 사과하고 돌아가야 할 겁니다.

총리가 통화를 끊었다.

총리의 말은 정중했다. 압박이나 강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울림이 되었다.

김윤광과의 통화도 다르지 않았다.

-또 누가 모함성 투서를 한 모양이군요. 후원사업은 그분만 한 사람이 없고 축의금 역시 후원회 이름으로 받아 현장에서 전액 기부를 했습니다. 오 박사는 돈을 만지지도 않았으니 김영란법과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

통화를 마친 팀장의 어깨가 늘어졌다.

국무총리와 여당의 원내총무였다. 감사원 팀장인 자신이 쳐다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지방 공무원이 후원사업 활동을 하면 얼마나 했을까 싶었다. 축의금 역시 일부 기부형식을 취하며 법망을 비켜 가고는 실속을 차렸을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총리와 원내총무의 인증이 있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조사관들을 불러내 결과 체크를 했다.

“후원사업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만 허위사실 기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활동경력 정도면 응모한 40여 명의 응시자들 중에 최고점이 맞습니다.”

“외부 초빙으로 온 두 분 심사의원께 연락했더니 노발대발하더군요. OK 후원회의 활동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며.”

“결혼 축의금 문제도 하자는 없습니다. 경찰관 두 명까지 입회하에 받아서 즉석에서 불우한 아동들에게 하객들의 이름으로 기부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관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하아.’

팀장의 맥이 풀렸다.

-6급 인사팀장이 개방형 직위 만들고 자기 자신이 셀프임용된 어이상실 지자체.

-인사팀장 지위를 이용 결혼 축의금 강요해 수억대 재산 축적.

조사팀장은 그 문구에 꽂혔었다.

익명의 투서였지만 조사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제대로 짚은 헛다리였다.

‘끄응.’

신음이 목젖을 차고 나왔다.

작은 시라고 만만하게 보고 덤빈 게 화근이었다.

<귀원하면 내 방으로 들어와.>

국장의 불호령이 귓전에 맴돌았다. 제대로 깨질 각이었다.

“철수준비해.”

지시를 남기고 임시조사실로 빌려 쓰던 상담실로 향했다.

그가 들어서자 경도와 이 시장의 시선이 쏠렸다.

“저희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조사 종결하겠습니다.”

가벼운 사과로 마무리를 선언했다.

“조사 종결?”

이 시장의 눈빛이 매워졌다.

“그러나 오해를 살만한 일들이었습니다. 차후에는 조금 더 매끄러운 행정을 기대하겠습니다.”

텅.

듣고 있던 이 시장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

조사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당신 포지션이 뭡니까? 사과입니까? 아니면 선심을 쓰고 있는 겁니까?”

“예?”

“태도를 확실히 하란 말이오.”

이 시장의 사자후는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시장님.”

“태도.”

텅.

다시 한번 테이블을 내리치는 이 시장. 그 묵직한 위엄에 조사팀장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장이다.

여당 소속이다.

게다가 여당 원내총무의 심기까지 거스른 마당이었다. 다른 지자체처럼 대충 봐주는 척 돌아가려던 일에 제동이 걸렸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게 사과하는 태도란 말이오?”

“……?”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시오. 우리 오 과장에게 무례했던 밖의 조사관들 전부다. 그런 다음에도 오 과장의 기분이 풀어지지 않으면 감사원장에게 정식 사과를 요구하겠소.”

“……?”

“우리 시의 상징인 공무원의 명예를 건드렸소. 그런데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끝내겠다고? 이건 시장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

“할 거요, 말 거요?”

“…….”

조사팀장은 이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이 시장의 강단 역시 다른 기초지자체의 단체장들과 완전히 달랐다.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것만 같았다.

결국 조사관 전체가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결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봐요.”

그들이 고개를 숙일 때 이 시장의 목소리가 다시 튀었다.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

“명예와 체면은 공개적으로 깎고 사과는 비공개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감사원의 업무원칙입니까? 우리 시의 행정원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

“오 과장의 국으로 가서 국원들이 보는 앞에서 사과하세요. 그래야 상처받은 오 과장의 명예가 반이라도 살아날 것 아닙니까?”

-국 직원들 앞에서 준 공개 의심, 그 앞에서 풀어라.

이 시장의 기세는 용암처럼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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