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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품절남이 되었습니다-2> (22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24화

74. 품절남이 되었습니다-2

경도 커플의 등장은 화려하지 않았다. 결혼예복도 별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별다른 게 있었으니 그 뒤에서 따르는 두 아이였다.

명혜와 윤지였다.

그런데.

그 뒤로도 아이들이 있었다. 굉장히 많았으니 명혜와 윤지를 제외하고도 33명이나 되었다.

“합창단인가?”

하객들이 웅성거렸다.

“두 사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문 여사의 주례 멘트는 역대급으로 짧았다. 그녀는 신랑 신부의 손을 잡고 번쩍 들어주는 것으로 역할을 끝냈다.

다음으로 양가의 어머니들이 나와 신랑신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경도, 두나와 함께 하객들에게 폴더인사를 올렸다.

짝짝짝.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를 따라 조경철이 입장했다. 대학생 봉사단 몇 명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정성껏 들고 있는 소반 위에는 각 11개의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조경철의 설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수 맛이 어떠신가요?”

“좋아요.”

몇몇 하객이 호응했다.

“그 국수는 우리 시의 부녀회장님들이 오경도 채두나 커플을 위해 손수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소박하지만 깊은 뜻이 들었으니 그걸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오늘 여러 하객들께서 후원금으로 내주신 축의금 금액을 말씀드리자면 4억2천6백만 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조경철의 단어가 살짝 바뀌었다. 축의금을 후원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김영란법 위반이네.”

용 과장이 중얼거렸다. 총액을 하객으로 나눈 결과였다.

“오늘 사실 오경도 채두나 커플은 축의금의 접수 없이 하객을 맞이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작은 성의들까지 사양하기 어려웠으니 다른 방안을 찾았습니다. 억지로 사양하는 것보다 축의금을 후원금으로 접수받아 그 후원금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것 말입니다.”

후원금으로 어린이 지원.

이벤트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오경도 채두나 커플에게는 뜻깊은 결혼이 되고 귀한 시간을 내주신 하객 여러분에게도 보람된 시간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해서 그 주관은 우리 OK 후원회가 맡고 경찰관 두 분과 법무사 한 분을 동석시켜 전 과정을 그분들 입회하에 엄정하게 진행을 했습니다.”

‘경찰?’

용 과장 시선에 저만치에 기립한 두 경찰이 보였다. 축의금 접수대에 웬 경찰인가 싶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용 과장의 표정이 또 한 번 구겨진다. 이렇게 되면 김영란법은 바이바이였다.

“이 후원을 받게 될 아이들 역시 우리 시 읍면동의 추천과 각 이장님들, 부녀회장님들의 추천에 교차 심사를 거쳐 사전선발했으며 상세한 진행 과정은 저희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

“그렇다 보니 기왕이면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없을까 싶어 화환이며 선물 등을 사양하고 후원금으로 내달라는 공지까지 보내게 되었으니 불쾌하셨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아…….”

여기저기서 공감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셔서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후원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발한 지원대상 어린이는 모두 33명입니다만 후원금이 넉넉한 관계로 기선발된 아이들에게는 각 1,000만 원의 후원금을 지급하고 심사에서 탈락한 아이들 역시 약 200만 원씩 지급할 생각입니다.”

“…….”

“이 지급 봉투 안에는 여러분 모두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명기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오늘 단순히 축의금을 내신 게 아니라 우리 시의 100여 명이 넘는 어려운 소년소녀들에게 꿈과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짝짝.

몇몇 테이블에서 조용한 박수가 터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짝짝짝.

박수는 모든 테이블로 번져갔다. 그들은 이제 알았다. 이 발칙한 결혼식의 음모. 신랑과 신부가 돈에 눈이 먼 게 아니라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하객들에게도 가나다순의 명단이 전달되었다. 총리의 이름도 청와대 수석의 이름도 앞에 서지 않았다. 오직 가나다순이었으니 그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이 십시일반 내주신 후원금 전달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축의금을 접수하신 분들의 이름이 든 함이 있습니다. 엊그제 개봉된 영화의 꼬마 주연배우이자 우리 시 어린이의 하나인 안명혜 양이 종이를 집어 호명하면 수고스럽지만 나오셔서 전달식에 참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응? 우리가?”

하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달식마저 하객들의 몫이다. 전달하는 영광마저도 경도는 자신이 갖지 않았다.

“강말녀.”

첫 호명의 영광은 어머니가 계신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가 받았다.

“나?”

국수를 먹던 할머니가 기겁을 했다.

“그려. 빨랑 나가봐.”

할머니의 친구들이 독촉을 날렸다.

“아이구, 안 돼. 높은 양반들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나는 못 해.”

강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부탁드립니다.”

결국 경도가 내려와 할머니 손을 끌었다.

“아유, 나 같은 늙은이가 뭘 안다고…… 돈도 5만 원 밖에 못 냈는데…….”

“그 정도면 과분하세요.”

경도가 할머니를 강단 위로 밀어 올렸다.

“이은빛.”

명혜가 다음 이름을 뽑았다. 이번에는 은빛이었다.

“나?”

그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빨랑 가.”

민지가 단상을 가리켰다. 은빛은 성큼 달려가 전달의 임무를 마쳤다.

엄 국장도 걸리고 유빈도 걸렸다. 심지어는 문 여사도 걸렸다.

열 번째 당첨자는 사회복무 요원으로 있던 우석이었다. 그도 경도의 결혼식에 달려와 주었다.

소집해제 후에 해외를 돌았던 그는 경도의 상괘대로 작은 여행사를 차렸다.

코로나 이후에 급변한 여행풍속에 맞춰 게릴라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그게 잘 먹혀 이제 규모를 갖춰가는 중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와주니 경도는 고마울 뿐이었다.

귀빈들도 걸리고 평범한 공무원도 걸린다. 안계홍을 따라온 이웃집 아줌마도 그 축제를 거들었다.

박수는 서른세 번 동안 따뜻하게 쏟아졌다. 마지막 어린이까지 전달이 끝나자 아이들이 경도 커플 옆으로 모여들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식을 합니다. 이 고마움 평생의 따뜻함으로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경도가 결혼식의 마무리를 알렸다. 아이들도 경도를 따라 의젓하게 인사를 했다. 아이들을 따라온 보호자들이 눈물을 훔친다.

그 뒤로 유빈의 피날레 열창이 이어졌다. 후렴 부분에서는 탁 대표가 몰고 온 소속사 연예인들 20여 명이 몰려나와 떼창을 했다. 명혜와 윤지도 거기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결혼의 엔딩이었다.

짝짝짝.

실내를 메운 박수는 그칠 줄을 몰랐다.

“오 박사님다운 결혼이었습니다.”

식이 끝나자 김윤광의 격려가 이어졌다. 문 여사의 외아들인 류성곤 장관도 그랬고 청와대 수석 역시 그랬다. 조금 늦게 도착한 천 거사와 호박신녀의 축하도 격렬했다.

“우와, 우리 경도 씨 정말…….”

형수가 혀를 내두른다.

“제가 본 결혼식 중에서 역대급이었습니다.”

계치훈은 감동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계 과장님은 더 멋진 결혼식 하시기를 바랍니다.”

경도의 덕담이었다. 그들도 머잖아 결혼할 기세였다.

수고한 이장단과 부녀회장들은 한 번 인사를 챙겼다. 이들의 지원과 도움이 아니었다면 공정하고 엄정한 후원이 어려웠을 일이었다.

“선생님.”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 명혜와 윤지가 달려왔다.

“명혜, 윤지 고생 많았다.”

둘에게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거요.”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주먹을 내밀었다. 받아보니 사탕이었다.

“비행기 오래 탄다면서요? 심심할 때 먹으세요.”

“고마워.”

경도가 웃었다. 남들이 보면 사탕 하나다. 하지만 명혜와 윤지가 주는 사탕은 그 의미가 다르다. 하늘 위에서 먹는 사탕은 색다른 맛일 게 분명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몰려든 하객들과 어머니들에게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스리랑카.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나 보던 장대에 올라가 낚시하는 어부가 있단다. 그 푸른 사이다 맛 해변이 경도 커플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어머.”

공항에 도착하자 두나가 소스라쳤다.

“왜? 여권 안 가져왔어?”

경도도 긴장 모드다.

“그게 아니라…….”

두나가 티켓을 내밀었다.

“일등석?”

경도도 놀랐다. 이코노미로 알고 있던 티켓이 둔갑을 한 것이다. 티켓은 조경철이 맡았다. 무슨 일인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 책임 아니야. 고세완 대표님 있잖나? 그분이 한사코 부탁하는 바람에…….”

고세완이라면 OAC 금융의 대표다.

“뭐 그분 아니더라도 일등석 타게 되었을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아, 나도 몰라. 오 박사 일등석 태워야 한다고 압력 넣은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탁 대표에 김 의원님에 류 장관님에…… 심지어는 자네 시청 엄 국장에 사회복무요원이었다는 정우석까지 찾아왔었어.”

“엄 국장님에 우석이까지요?”

“엄 국장 부인이 신신당부를 했대요. 이런 기회 아니면 오 박사 도울 일 마땅치 않다고. 내가 이미 다른 독지가가 일등석 준비해줬다고 하니 한숨을 쉬고 가더라고.”

“…….”

“그러니까 그냥 타고 가. 솔직히 오 박사쯤 되는 사람이 이코노미 타고 신혼여행 가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

“회장님.”

“다들 오 박사 본심 알아. 딱 한 번만 눈 감으라고. 나 말고 두나 씨를 위해서.”

“…….”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까지는 약 9시간 가까운 비행시간이 걸린다.

환자 스케줄 때문에 바쁜 두나는 어제서야 신혼집 정리에 나섰다. 경도가 바빠 돕지 못했으니 보나 마나 늦은 시간까지 땀을 흘렸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고세완 대표님 만행인데 그냥 가야겠어. 이거 물려도 뒤에 줄 서신 분들이 한 둘이 아니라네.”

“그래도 일등석이면 가격이…….”

“나중에 내가 관상 서비스 한 번 하지 뭐.”

경도가 체크인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탑승구 앞에서도 쉴 시간이 없었다. 전화는 시시때때로 걸려왔고 문자도 답지를 했다.

하객들에게 답문도 보내야 했고 경규 부부와 어머니에게 인사도 해야 했다. 결혼은 정신없는 일이었다.

겨우 숨을 돌리고 탑승을 했다.

“……!”

좌석 앞에서 두나가 얼어붙었다. 일등석은 처음이라는 표정이었다. 그 놀란 입에 명혜가 준 사탕을 밀어 넣었다.

“앉아.”

경도도 하나를 물며 두나를 밀었다. 어차피 앉아야 할 좌석이었다. 단맛 덕분에 정신이 돌아온 두나가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 안마의자기 생각이 나네요.”

의자의 각도조절을 마친 두나가 소박하게 웃었다.

사무장이 오고 담당 승무원이 인사를 해왔다.

그렇게 이륙을 했다.

하늘 위에서 두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부터 다음 일요일까지는 자유의 몸이었다.

“선생님.”

안전벨트 사인이 떨어지자 두나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결혼까지 했는데도 선생님이야?”

“천천히 적응할게요.”

“알았어. 할 말 있어?”

“네.”

“그럼 해 봐. 이제 우리를 방해할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핸드폰도 먹통이잖아?”

“우리가 두 개의 섬에 가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아, 맞다. 어느 섬에 가려고?”

“약속 지키시는 거죠?”

“당연하지. 스리랑카에서 갈라파고스까지 가자고 해도 오케이야.”

“그 섬은 한국에 있어요.”

“한국? 제주도? 아니면 울릉도?”

“서울 쪽이에요.”

“서울? 그럼 새빛둥둥섬?”

서울의 섬이라면 그것 하나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경기도 소재네요.”

두나가 메모 한 장을 꺼내놓았다.

“……?”

그걸 본 경도 눈에 긴장이 맺혔다. 메모지에 쓰인 글자는 다섯 자였다.

<서울소년원>

소년원?

경도의 눈빛이 두나에게 옮겨갔다. 두나가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봉사를 다니는 곳이다.

지형상의 섬은 아니지만 섬으로 봐도 무방했다. 사회에서 격리된 또 하나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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