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품절남이 되었습니다-1> (223/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23화

74. 품절남이 되었습니다-1

“유빈 씨.”

잠시 후가 되자 회관이 떠들썩하게 변했다. 안선주와 부녀회장단, 이장단의 출현이었다.

용포읍과 각 읍면동을 대표해 선발된 부녀회장과 이장단들은 유빈을 보자 홀딱 뒤집혔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걸그룹의 지존이 된 TNTS보다 유빈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는 것이다.

그들까지 모시고 회의실로 향했다. 할 일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추천해준 후보자들 리스트입니다. 저희가 1차 심사를 마쳤으니 서로 다른 읍면동의 후보자들 중에서 각 3명씩 크로스로 선정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경철이 후원회장의 자격으로 불우한 아이들 리스트를 꺼내놓았다. 크로스 심사는 공정을 위한 방법이었다.

“유빈 씨와 TNTS는 별도의 심사임무가 있습니다.”

연예인들 몫도 있었다. 이들은 K시 인근의 아이들이었다. 행정구역이라는 건 개천 하나, 도로 하나 사이로 갈렸다. 그들의 리스트를 모아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모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커피는 경도가 배달했다. 명혜도 도왔다. 이제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된 명혜였다.

마음고생이 심하게 자라다 보니 웬만한 일은 어려워하지도 않았다.

“키햐, 커피 맛 좋다.”

“그러게. 좋은 일 하면서 차를 마시니 회춘하는 기분이야.”

이장들은 한없이 뿌듯했다.

“김 이장님, 집중 좀 하자고요.”

부녀회장들이 정다운 견제구를 날린다. 지켜보는 경도는 숨을 죽인다. 결혼식의 음모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냉면파티입니다.”

선발이 끝나자 냉면이 들어왔다. 경도는 명혜와 함께 먹었다. 안계홍 부부는 저만치 밀렸다.

경도가 뜨면 명혜에게 찬밥(?)이 되는 그들이었다.

“고맙습니다.”

폴더인사로 돌아가는 협력자들을 배웅했다.

“내일 뵈어요.”

유빈과 TNTS, 명혜 등도 인사를 남기고 멀어졌다.

“한고비 넘겼네?”

옆에 남은 조경철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을 격무에 시달리게 해서.”

“그럼 나 빼고 이 음모를 진행하려고 했어?”

“그럴 리가요? 개인적인 일로 수고를 끼치니까 그러죠.”

“누가 이게 개인적인 일이래? 개인적인 일을 이렇게 아름답게 벌이는 인간이 어딨는데?”

“회장님.”

“그런 소리 말고 얼른 들어가. 내일도 시사회라니 파워를 비축해야 첫날밤을 잘 보내는 거야. 그거 망치면 나처럼 두고두고 뒷말 듣거든?”

“그럼 내일 시사회장에서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시동을 걸었다.

별이 많아졌다. 내일이면 명혜도 저 별의 하나가 될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속도를 높였다.

“과장님.”

연가의 첫째 날이자 시사회가 열리는 오후, 서울의 영화관 인근에서 은빛과 민지를 만났다.

그들도 후원회 멤버이자 명혜, 유빈 등과 인연이 있으니 오후 반가를 내고 달려온 것이다.

“이 주임님?”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빛의 드레스코드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연예인의 한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연예인 만나는 거라 간만에 멋 좀 내봤어요? 괜찮아요?”

은빛이 제자리에서 회전을 한다.

“죽입니다. 진짜 연예인 뺨 좀 치고 가자고요.”

경도가 엄지 척으로 답했다.

민지와 은빛 외에도 다른 손님이 있었다. 안선주가 리드하는 부녀회장단이었다.

그녀들 역시 용포읍 출신의 명혜가 나온다니 시사회 티켓을 부탁했었다. 티켓은 탁 대표의 배려로 해결이 되었다.

“아유, 용포 촌년들이 시사회도 와보고.”

“배우들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지?”

부녀회장들은 잔뜩 들떠서 안으로 들어갔다.

“오 박사님.”

스태프 대기실로 가니 탁홍걸이 보였다. 경도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어제는 못 가서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나온다.

“별말씀을요.”

“유빈 누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천만은 찍겠다고요?”

“그럴 것 같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국대 관상 박사 오 박사님이십니다. 오늘 개봉작 천만 돌파 상괘가 나왔습니다.”

“와아.”

대기실에 대고 외치니 투자자와 감독, 조연 등이 환호했다. 그들도 경도의 천기누설 능력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꽃단장을 마친 명혜가 돌진해 온다. 그대로 안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신 박사님이 꽃을 보내왔어요.”

명혜가 테이블 위의 꽃을 가리켰다. 그 위의 꽃바구니가 둘이었다.

<명혜 앞에 닥치고 꽃길> <대박기원 신준표>

명혜의 집도의 신 박사가 정한 문구였다. 나머지 하나는 경도가 보낸 것이었다. 양손에 집어 든 명혜가 신바람이 난다.

명혜가 애정하는 두 사람이었다.

“흐음, 이거 신 박사님 꽃까지 왔으니 한 200-300백만 더 보태야겠는데요?”

경도가 덤을 얹어주니 탁홍걸이 반색을 했다.

관객수를 미리 누설하자면 이 영화는 약 ‘1,240만 명’을 기록했다. 같은 날 개봉한 할리우드의 히어로물과 붙었지만 초반 사흘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밀리지 않았다.

그 일등 공신은 이웃집 여동생 같은 명혜의 순진무구한 연기였다.

“우와, 쟤 연기…….”

“후덜덜하네. 너무 자연스러워.”

“남자 주연까지 저절로 살아.”

경도의 앞뒤 좌석에서 나온 속삭임이었다.

시사회가 끝나자 스태프들의 무대인사 차례가 되었다. 명혜가 1번으로 나왔다.

“와아아.”

관객들이 환호한다.

명혜가 무대인사를 진행했다. 앙증맞은 소개로 매력을 발산하니 관객들은 넋을 놓고 말았다.

“저희 영화 많이 사랑해 주세요.”

마무리 멘트도 명혜의 몫이었다. 명혜를 포인트 삼아 밀고 나가는 감독과 탁홍걸이었다.

짝짝짝.

길고 오랜 박수가 쏟아졌다. 기자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도 나왔다.

“박사님.”

경도도 끌려 나와 사진을 찍었다. 민지와 은빛도 함께였다. 부녀회장들은 남자 주연에게도 열광했다. 명혜의 도움으로 질리게도 인증샷을 찍었다.

펑펑.

여기저기서 셀카와 카메라들이 불을 뿜었다.

행복이 찍혔다.

“우리 오 과장아.”

결혼식날이 밝았다. 비밀 이벤트를 마무리하느라 어제도 늦었다. 덕분에 늦잠이 들었으니 어제 올라온 어머니가 경도를 깨웠다.

“알탕 끓여놨다.”

어머니가 식탁 앞에서 웃었다.

이 집에서의 식사도 마지막이었다. 거기에 결혼까지 겹치니 어머니가 아침을 챙겨준 것이다.

신혼집은 32평 아파트를 구했다. 위치는 서울과 K시의 경계였다. 두나의 직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차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그동안은 검소하게 살았지만 신혼을 계기로 지출을 좀 했다.

돈 걱정은 이미 초월한 경도였다. 후원금 외에 따로 받은 복채는 한 푼도 쓰지 않았고 기업가들에게서 받은 주식도 서너 배로 불어나 있었다.

아파트 구입을 위해 주식계좌를 확인한 경도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그동안 쌓인 돈은 50억을 넘었다.

절반 이상은 윤지 아빠 이상록 덕분이었다. OAC에 둥지를 튼 그는 물 만난 고기였다.

이제는 미국 유수의 금융과 투자회사에서도 군침을 흘리는 실력자가 되었다.

그가 포트폴리오를 짜주니 OK 후원회는 물론이오, 경도의 재산까지 시나브로 불어난 것이다.

“어때?”

경도가 알탕을 뜨자 어머니가 물었다.

“짜.”

경도가 괜히 인상을 찡그렸다.

“진짜?”

어머니가 화들짝 놀란다.

“농담, 누구 엄마 솜씨인데…….”

“아휴, 얘가 정말…….”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옛날 생각난다. 너 9급 공무원 합격하고 첫 출근하던 날…… 그 후로 공직생활이 힘들어 보이길래 알탕 못 끓여주고 간 게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아니야. 그때 엄마가 알탕 끓여주고 갔으면 나 아직 6급 달기도 힘들었을 거야.”

“그건 왜?”

“그런 게 있어.”

경도가 웃었다.

만약.

9급 신규에 큰 애로가 없었으면 싸목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빨리 사무관이 될 리 없었다.

기고 날아도 태술이나 지웅, 정아 밑일 게 뻔했다.

그러고 보면 그날 알탕을 못 먹은 게 행운 같았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된 것이다.

“강 할머니랑 다른 분들도 오신다고?”

“그래. 니 형 결혼에는 안 오더니 이번에는 기어이 올라온다니 어쩌냐?”

“강 할머니는 그때 약값 돌려받았다고 했지?”

“그럼. 니 관상대로 되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엄마.”

수저를 놓은 경도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왜?”

“고마워.”

“얘가 왜 이래?”

“그냥…… 결혼하기 전에 이 말 한번 하고 싶었어.”

“아유, 알았으니까 오순도순 살기나 하세요. 다른 아이들처럼 신혼 끝나기도 전에 이혼 같은 걸랑 하지 마시고.”

어머니가 경도 손을 토닥인다.

이상하다.

경도는 경도고 어머니는 어머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단어가 앞에 놓이니 왠지 아련한 연민이 들었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경도가 새 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두나가 신부 화장을 하는 곳으로 가야 했다.

두나의 요청이었으니 거기서 두 어머니의 단장까지 마칠 생각이었다.

“아휴, 차까지 새것으로 오니 결혼식 기분 제대로 나는구나.”

“그럼 출발합니다. 안전벨트를 매주세요.”

경도가 말하자 어머니가 벨트를 당겼다.

결혼식장은 인산인해였다. 계치훈 수사과장이 교통과에 협조를 요청해 경찰을 투입할 정도였다.

대략 봐도 천여 명이 넘었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고위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창교 시장과 시청 국장단쯤은 고위직에 끼지도 못했다.

현직 총리가 오고 청와대 수석이 오고 김윤광과 여당의 거물들에 백지애를 비롯한 초선의원들, 장관을 하는 류성곤 등이 참석하면서 열기가 하늘을 찔렀다.

여기에 김병로 교수와 그 형 김황로, 고세완을 비롯한 기업가들도 줄을 이었다.

경찰 쪽에서도 임훈기 청장을 필두로 계순철과 계치훈 등이 참석했고 캐서린과 재키, 원서단에 더해 런창둥 회장의 사절까지도 도착을 했다.

그나마 연예계 쪽은 조금 늦었다. 그들까지 섞이면 혼란이 올 수 있어 조용한 등장을 요청한 것이다.

안선주가 이끄는 부녀회장단은 일찌감치 나와 질서유지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었다.

“뭐야?”

같은 국의 과장이라 하는 수 없이 참석한 용 과장은 기가 질렸다. 결혼식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그가 줄을 서던 전임 국회의원 아들의 결혼도 이만하지는 못했다.

더 기 막히는 풍경은 축의금 접수대였다. 좌우로 다섯 테이블이니 약 20여 명이 투입되었다. 게다가 경찰도 둘이나 참관하고 있었다.

“아주 뽕을 뽑는구나, 뽕을 뽑아.”

그는 빈정이 상했다. 어마무시한 하객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몇억 수입도 가능할 것 같았다.

“감사실 놈들은 다 뭐하는 거야? 공직자가 이렇게 호화결혼식 해도 되는 거야?”

그의 불만이었지만 정작 화환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경도의 주문이었으니 화환을 보내려면 축의금으로 달라는 공지를 쏜 것이다.

“……!”

결혼식장으로 입장한 용 과장은 또 한 번 놀랐다. 호텔식 테이블 결혼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결혼식을 보는 형태다. 그런데 메뉴는…….

<물국수> <비빔국수>

달랑 두 가지뿐이었다.

“아주 돈독이 올랐네. 내 평생 이런 날강도 같은 결혼은 처음이야.”

그는 불쾌했지만 퇴장할 수는 없었다. 이 시장과 부시장, 그리고 국장단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들 눈도장을 받으러 온 것이었으니 이대로 가면 셀프디스였다.

메뉴와 반대로 무대는 기가 막혔다. 조희양과 유명 트롯 가수들이 둘이나 나와 축하공연을 했고 TNTS의 공연도 이어졌다.

은빛과 민지, 재은과 보라 등은 여기서 이미 녹아버렸다. 경도의 도움을 받은 직원들 역시 단출한 음식의 아쉬움을 잊은 표정이었다.

주례는 문 여사가 맡았다. 그녀가 등장하니 총리와 청와대 수석을 비롯한 의원단들이 기립박수로 맞았다.

사실 주례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고민 끝에 낙점한 게 문 여사였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으니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여러분.”

단상에 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축의금 낸 것에 비해 잔칫상이 좀 조촐하죠?”

단품으로 나온 국수 때문이었다.

“결혼식도 좀 그렇습니다. 화환 보내려면 축의금으로 보태달라는 넉살도 드물 테니까요.”

하객 규모에 비해 화환이 몇 개 안 되는 이유였다.

“게다가 조금 전 연예인들 공연도 다 재능기부라네요. 그래서 그런지 아까 입구에서 듣자니 이 커플들이 돈독이 올랐다는 소리가 들려요.”

이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결혼식의 메인요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게 나오면 여러분은 비로소 그 국수 한 그릇의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니 편안하게 드시기 바랍니다.”

국수의 가치?

농담이 아니다.

문 여사의 그릇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허튼소리를 날릴 사람이 아니었다.

하객들은 그제야 단출한 국수에 깊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대감의 급상승이었다.

“그럼 결혼식조차 그 자신의 관상처럼 더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 기획한 오경도 채두나 커플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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