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19화
73. 금수저 운이 막힌 사연-1
“관상박사님을 뵙습니다.”
수요일 저녁 닭볶음탕 전문점에서 천 거사를 만났다. 그가 모셔온 일본인 사업가가 단정히 인사를 해왔다.
“사카모토 상무님입니다.”
천 거사의 설명이었다. 상무는 아주 젊었다. 유년운기부위를 짚어보니…….
고작 36세였다.
“오경도입니다.”
경도도 인사를 했다. 일본인 사업가가 온다기에 나이가 지긋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젊으니 관상부터 보게 되었다.
이마에 부(富) 재(財) 귀(貴)가 방울토마토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얼핏 보면 간을 엎어놓은 듯 도톰하니 금수저 중에서도 찐 금수저 집안의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마의 양쪽 모서리로 불리는 천창이 예술이었다. 천창은 재물창고다. 여기에 흠이나 흉터가 있으면 창고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니 억만금이 있어도 새어나간다.
그런데 흠은커녕 풍성한 느낌이라 재물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눈 또한 작품이었다. 빈틈이 없어 보이면서도 부드럽다. 큰 기업의 후계자로 제격인 눈빛이었다.
코는 역시나 현담비 계열이었다. 그중에서도 양쪽 콧방울이 선명하다. 재물창고에 이어 지갑도 흠이 없는 것이다.
인중을 보니 8차선 도로다. 법령도 수려한 8자 형으로 뻗었다. 입술의 끝도 위를 향해 달리고 턱의 살집도 풍성하니 노년에도 남부럽지 않을 일이었다.
비율과 조화는 제대로였다.
유년운기부위를 보니 아직은 전성기가 아니다. 이미 전성으로 들어갔어야 할 운이 왜 막혀 있을까?
원인을 찾아 나섰다.
결혼은 2년 전에 했다. 딸 하나를 두었다.
다만.
10여 년 전에 새겨진 간문의 기록은 난잡했다. 청색, 백색, 보라색이 뒤엉켰으니 S급 여난을 겪었다.
거의 목숨이 날아갈 정로도 위기였다. 다행히 그 후로 난잡한 찰색은 멈췄다. 마음을 돌린 것이다.
그런데.
명문에 낡은 미색이 걸려 있다. 여자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담홍이라기에는 낡았고 묵직함도 없다. 눈꼬리에서 시작된 홍색 역시 간문에서 잎을 틔웠다. 마음속에 그리운 여자가 있다.
그런 이유로 아내를 애정하지 않는다.
이게 사카모토의 복을 막고 있었다. 그의 광대뼈는 높은 편이었다. 남녀궁까지 이어진다. 아내의 내조 덕을 봐야 운이 폭발할 사람이다. 이는 처가의 지원까지도 포함하는 의미였다.
아내를 애정하지 않으니 입술의 붉은 기운도 선명하지 않다. 입술은 붉어야 운이 강해진다. 이럴 때 자칫 피부에 흰빛이 들면 재운의 복을 타고 났다 해도 대흉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의 고민은 부친에게 이어졌다. 일각의 빛이 어두우니 부친에게 사고가 생겼다.
사나운 찰색으로 보아 긴급 사태까지 갔다. 그나마 위태로움 속에 맑은 홍색이 깃들었다. 그런데, 홍색의 끝에 또 재앙의 찰색이 깃들었다.
‘읭?’
관상안이 멈췄다.
깊은 생각이 필요한 기색이었다.
어쨌든 그는.
부친의 병이 아니면 사업적인 이유로 온 것으로 보였다. 유년운기부위를 보니 머잖아 중대한 고비를 만나게 되어 있었다.
“에이사이 스님이 안 보입니다.”
경도가 천 거사를 바라보았다.
“혼푸쿠지에 큰 행사가 있어서 오지 못했네. 몹시 아쉬워하더군.”
“예.”
“우리 사카모토 상무님과는 부친의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네.”
‘부친?’
“상무님 부친은 어떠신지 좀 봐주시겠나?”
천 거사가 상괘를 묻는다.
“긴급한 화를 당하셨군요.”
“목숨이 위태로우시겠나?”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주저 없이 말씀하셔도 되네.”
“목숨은 보전하시겠지만 혼미하십니다. 자세한 건 사진이나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도가 여운을 남겼다.
“허어.”
천 거사가 무릎을 친다.
그의 질문은 사카모토의 대신이었다. 대리 질문을 함으로써 경도의 위엄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카모토에게 신뢰를 주었다. 천 거사의 내공은 그렇게 깊어 있었다.
“그럼 저는 잠깐 지인과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천 거사가 일어선다. 이 또한 경도와 사카모토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배려였다.
그는 확실히 관상의 대가였다. 오만과 시기를 내려놓고 정진했다면 경도 못지않았을지도 몰랐다.
“먼 나라까지 와서 폐가 많습니다.”
천 거사가 나가자 사카모토가 한 번 더 예의를 갖췄다.
“아닙니다. 제가 두 분 스님과 막역한 사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그래도 놀라기는 했습니다. 생각보다 어린 분이라서요.”
“상무님의 부친께서도 어린 나이에 부탑(富塔)을 쌓으셨지 않습니까?”
“하긴 아버님은 한때 도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하셨습니다.”
“상무님도 그렇게 되실 겁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지금 익어가는 중입니다.”
“과연 상괘가 시원시원하시군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 상괘나 에이사이 스님의 상괘나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요는 상무님과 저의 화합에 달렸지 싶습니다.”
“자신을 낮추시지 않아도 됩니다. 에이사이 스님께서도 그러시더군요.”
“뭐라시던가요?”
경도가 짐짓 물었다. 에이사이의 평가가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사카모토의 표정은 아직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대화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물에도 등급이 있으니 에이사이 스님이 신선수라면 박사님은 천상수라고 하더군요.”
“너무 질러가셨군요. 에이사이 스님이 신선수인 것은 맞지만 저는 그저 작은 샘물에 불과합니다.”
“제 부친은 돌아가신 혼푸쿠지의 주지 스님과 오랜 지기셨습니다. 그분은 강건하셨으니 관상에 의지하기보다 친구가 되셨죠.”
“친구…… 멋지군요.”
“주지 스님의 열반에 충격이 깊으셨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 이후에 허전해하시더니 기어이 풍을 맞으셨습니다.”
“저런.”
혼푸쿠지 장례식 이후 딱 한 달 만이다. 사카모토의 유년운기부위에서 짚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사카모토는 지금 경도를 시험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상심과 무거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때 관상안을 들이대 가며 과시하는 건 초보 관상가의 행태였다.
과시는 마음을 닫고 관상을 시험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지 공감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게 아니었다.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회복이 느립니다. 골든타임도 지켰는데 말입니다.”
“혹시 사진이 있으십니까?”
“예.”
그가 진짜 사진을 꺼내주었다. 에이사이 아니면 천 거사의 조언이다. 그렇기에 병석에 누운 얼굴이지만 이목구비가 잘 나온 사진이 나왔다.
“……!”
눈을 감고 있지만 기막히다. 흠은 귀뿐이었다. 귀만 조금 더 높고 잘 생겼더라면 부는 물론이오, 일본의 정권까지 거머쥐었을 상이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다. 아쉽게도 운이 내리막이니 턱의 근육이 말라간다. 한때의 영화가 깎아지른 내리막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해의 횡액은 잘 피했다. 음덕 때문이었다. 관록궁에서 내려간 미색이 명궁까지 어른거리니 쌓인 선행이 그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마지막 시선은 부친의 산림이었다.
이마의 라인과 눈썹의 중간쯤 위치하는 이 부위는 상속자, 즉 자손들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부친의 산림에는 온갖 기색들의 각축장이었다. 사카모토의 행동에 따라 어떤 기색이 산림을 물들일지 정해지는 것이다.
“…….”
부친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사진이 언제 것입니까?”
“어제 낮에 찍었습니다. 제 불효 탓인지 이런 분이 되어버리셨습니다.”
사카모토의 목이 잠시 메인다.
사카모토는 효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망나니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에 이르면서 그 방황의 기색이 사라졌다.
“거동을 전혀 못 하십니까?”
“예. 소대변은 어머니께서 받아내시고, 말은 물론 사지도 마비가 되어 겨우 손가락이나 까딱거리는 정도…….”
“…….”
경도의 촉이 살며시 일어선다. 상무 부친의 기색은 달랐다. 풍을 맞은 건 틀림없지만 거의 회복기였다.
그럼에도 사카모토가 아는 부친의 병은 위중했다. 팩트가 달랐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호흡을 좀 다듬고 와야겠습니다.”
“그러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사카모토가 예의를 갖춘다. 경도가 밖으로 나왔다.
“오 박사.”
소나무 아래에서 메모를 보던 천 거사가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거사님도 저분의 부친을 보셨습니까?”
“장례식 때 보고 그 후에 스승님 유품 정리할 때 한 번 더 보았지? 아마 오 박사도 보기는 했을 걸세. 장례식 때 온 귀빈 중의 한 분이셨으니.”
“그때 횡액을 보지 못했습니까?”
“에이사이가 있으니 나는 인사만 했지. 유품 정리 후에도 두어 번 더 다녀간 모양인데 그때 나는 청수사를 돌아 금각사에서 불자님들 관상을 보고 있었고.”
“예…….”
“문제가 있나?”
“에이사이 님과 통화를 좀 해야겠습니다.”
“그러시게. 전화번호는 있지?”
“예.”
경도가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일본어가 흘러나온다. 경도도 일본어로 인사를 전했다.
-짐을 안긴 것 같아 면목이 없습니다.
에이사이가 사과부터 전한다.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큰 기쁨이 없겠습니다.”
-사카모토 님을 보셨는지요?
“부친의 사진까지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챙겨주신 것입니까?”
-아무래도 박사님께 필요할 것 같아서.
“에이사이 님.”
-예?
“이분이 혹시 부친의 추천으로 에이사이 님을 찾아왔습니까? 아니면 자발적으로 왔습니까?”
-자발적으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분을 제게 보내신 이유 말입니다. 혹시 부친 찰색의 불일치 때문입니까?”
-아.
수화기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역시 그렇군요?”
-맞습니다. 단번에 알아보시는군요.
“중풍을 맞으셨다고요? 당시의 횡액은 굉장히 큰 재앙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다행히 천운이 따라 사모님께서 바로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회복이 안 되신 겁니까?”
-박사님 견해는 어떻습니까?
“찰색으로 보아서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횡액 상태라니 확인을 하는 겁니다.”
-분명 회복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큰 횡액 때문에 명궁에 사나운 기색이 남았지만 피부 속의 중심에 미색이 피었습니다. 이게 홍색 빛을 띠고 있으니 회복을 상징합니다.”
-홍색…… 제 관상안으로는 그 기색이 아른거릴 뿐이니 판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코의 연상과 수상도 열리지 않았기에…….
“그래서 우려도 있습니다.”
-우려라면?
“홍색의 끝에 검붉은 기색이 남았습니다. 유년운기부위를 짚어보니 이 횡액의 강을 제대로 건너지 못하면 다음 횡액으로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코의 연상과 수상이 열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 듯싶습니다.”
-맙소사.
에이사이가 탄식을 토했다. 불행 뒤에 다행이고 그 다행 뒤에 다시 도사리는 불행이었다. 말하자면 에이사이의 부친은 이 일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부친의 이마 산림의 찰색을 보셨습니까?”
-기색들이 너무 혼란해 상괘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상무님을 제게 보낸 것에는 그 이유도 포함되었겠지요?”
-상괘를 내셨군요?
에이사이의 목소리가 튀었다.
“칭찬이라면 아직 이릅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 박사님 말이 틀리면 부친에게 큰일이오, 틀리면 아들에게 큰일이 아닙니까? 사카모토 님의 부친께서는 제 스승께서 손에 꼽던 죽마고우 3인방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제 상괘가 맞다면 천기는 그 부친께서 읽으신 것 같습니다.”
-예?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잠시 틈을 내어 나온 것이니 들어가서 관상을 계속 보아야겠습니다.”
-박사님…….
“실 가닥이 제법 꼬인 일 같습니다. 잘 풀 수 있기를 빌어주십시오.”
경도가 통화를 끝냈다.
“도움이 되었나?”
소나무 향을 맡던 천 거사가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경도가 안으로 걸었다.
사카모토 상무의 부친.
경도의 상괘가 맞다면 그는 사카모토를 시험하는 중이었다. 아들의 그릇을 보려는 것이다.
확신은 에이사이의 말에서 얻었지만 부친의 사진에도 있었다. 횡액이 가신 사람이 여전히 누워 있다. 재앙을 비껴갈 상인데 전신마비에 언어마비까지 왔다.
그러나 그의 관상은 달랐다. 풍으로 쓰러졌으니 약간의 대미지가 남았다지만 인당과 명궁으로 보아 거의 회복 단계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피어오를 찰색의 운명이었다. 구보야마 이카이의 주검에서 인생의 무상을 느낀 사카모토의 부친.
자신의 운이 다했음을 자각하고 아들의 그릇 시험에 나섰다. 그렇기에 병석에 누운 채 무거운 책임을 안긴 것이다.
잘 되면 아들도 살고 부친도 산다.
하지만.
잘못되면.
기업은 몰락하고 부친은 겨우 회복된 절망 속으로 되돌아간다.
부친은 이런 뜻을 에이사이에게 전하지 않았다. 즉 모든 것을 아들 몫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다시 사카모토 앞에 앉았다.
그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딴전을 부리다 경도 기척이 나니 자세를 바로 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운명이 걸린 한국행.
경도의 상괘가 중요하다는 걸 본능으로 알고 있는 걸까?
시작해 볼까?
경도의 관상안이 다시 사카모토의 얼굴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