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맛에 승진하는 거죠-3> (218/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18화

72. 이 맛에 승진하는 거죠-3

“지방행정사무관 오경도, 지역복지정책과장에 임함.”

재은의 멘트와 함께 임용장을 받았다.

사무관.

5급이다.

가슴이 울컥한다.

모든 하위직들이 열망하는 그 자리였다. K시를 대표하는 찌질 말단으로 감히 넘보지도 못하던 직위. 어쩌면 6급 주사조차도 멀어 보였던 오경도가 마침내 사무관이 되었다. 이 시장이 잡아준 손은 전에 없이 뜨거웠다.

이 직위는 그의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경도에게 기대하는 바도 크겠지만 괜한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게 바로 이창교의 그릇이었다.

짝짝짝.

먼저 4급 서기관 임용장을 받은 엄낙기와 육세창, 조기룡 등의 박수가 뜨거웠다. 저만치에서 재은을 보조하는 보라의 박수는 더 뜨거웠다.

뒤돌아서서 국과장단에게 인사를 했다. 사실은 K시의 시민들에게 보내는 인사였다.

“과장님, 축하드려요.”

임용장 수여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갈 때 재은이 인사를 해왔다. 경도 다음에 임용장을 받은 마지웅과 보라 등도 빠지지 않는다.

짝짝.

복지국 사무실에서도 박수는 이어졌다.

보직 이동을 한 석용남 국장이 앞장을 선 것이다. 복지국에는 다섯 과가 있었다. 과장도 다섯이다. 경도가 그중 한 명이니 네 명의 과장이 석용남을 맞았다.

“촌놈이 복지국에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석용남의 인사는 돌직구였다. 우직한 뚝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오 과장도 복지국은 처음이지?”

그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예.”

“시장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직책이니 잘 해보시게.”

“예.”

경도를 격려한 석 국장이 국 순시에 들어갔다. 그런데 석 국장을 수행하는 직원이 바로 민지였다. 원래는 주무과장인 경도의 몫이다.

하지만 오늘 첫 발령이다 보니 주무팀장인 민지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녀가 복지과의 주무팀장이었다는 걸 깜빡하고 있던 경도였다.

석 국장은 직원 모두와 악수를 나누었다. 개중에는 아는 직원도 있지만 특별한 애정 표시는 하지 않는다. 무뚝뚝해 보이기는 해도 처세가 반듯한 사람이었다.

“제가 주제넘게 복지국 귀신으로 왔으니 점심에 간단히 식사나 하시죠. 우리 주무과장도 오늘 첫 발령이니 주무팀장이 예약 좀 잡아주시게. 다 오면 번거로울 테니 팀장급들만 오도록 하고.”

지시를 남긴 석 국장이 돌아설 때였다.

용태훈 과장이 입을 열었다.

“국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예.”

“중요한 얘긴가?”

“주무과장 보직에 대한 겁니다.”

“주무과장?”

석 국장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복지과가 복지국의 주무과였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개방형 직위로 바뀌면서 과명도 변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주무과 지정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무과 지정을 바꾸자?”

“이번 예외는 잘 모르겠지만 개방형 임용이라면 거의 100% 외부인사가 오지 않겠습니까? 외부 임용자에게 주무를 맡긴다는 건 옳지 않습니다.”

“계속하시게.”

“차제에 주무과 지정 변경을 요청합니다.”

“대안이 있나?”

“복지과는 이름도 지역 복지정책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과는 정책 쪽으로만 전념하고 우리 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노인장애인과가 주무과가 되는 게 합당합니다.”

“용 과장의 과로군?”

“제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습니다.”

“곤란합니다.”

옆에 있던 민지가 운을 떼고 나왔다.

“배 팀장도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군?”

국장이 발언권을 주었다.

“복지과의 이름이 바뀌긴 하지만 주력업무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다만 지역복지 정책개발에 더 진력하자는 것이니 콘트롤 타워로써 주무과로 남는 게 맞다고 봅니다.”

“배 팀장.”

용 과장의 눈총이 날아갔다.

“복지정책은 우리 국의 모든 업무와 연관이 되는 동시에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업무의 성격으로 봐서도 주무과가 맞습니다.”

민지의 어투는 부드럽지만 단단하다. 그녀도 이미 어엿한 팀장이었다. 용포읍에서 보이던 유약한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배 팀장.”

용 과장도 물러서지 않는다.

“잠깐.”

용 과장이 포기하지 않자 석 국장이 대화를 막았다.

“우리 오 과장 견해는 어떤가?”

석 국장의 경도를 돌아보았다.

“제가 인사팀장 출신입니다. 국과실의 편제를 모르지 않습니다. 이 국에 이 과 발령이 처음이기는 해도 배 팀장의 의견이 맞다고 봅니다. 탄력적인 복지정책을 위해서는 설령 주무과가 아니라고 해도 주무과로 편제를 맞추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경도가 쐐기를 박았다.

시작부터 힘겨루기다.

개방형 직위.

내부 직원들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가 없었다. 길게 보면 승진할 자리가 하나 없어진 것과 같았다. 그러니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주무과라는 게 무슨 대단한 파워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국의 업무를 주도한다. 복지정책을 추진하려면 그만한 파워가 있어야 했다.

없는 것도 달라할 판에 있는 기능을 넘겨줄 수 없었다.

“이봐, 오 과장.”

용 과장의 안면이 불뚝거린다. 불쾌하다는 뜻이다. 그는 정년을 2년 남짓 앞둔 왕고참 과장이다. 이번 승진에서 밀렸으니 국장이 되기는 틀렸다. 그러던 차에 새파란 팀장이 개방형 직위를 차고 들어오니 배알이 뒤틀린 것이다.

“제가 오늘 첫 업무입니다. 나머지는 업무파악이 된 후에 얘기하면 좋겠습니다.”

경도가 마무리를 했다. 석 국장이 동의하지 않으니 용 과장은 헛발질을 한 셈이었다.

“과장님.”

국장이 나가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은빛이었다.

“어? 이 주임님?”

“오늘 자로 지역복지정책과 근무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은빛이 군인처럼 경례를 해왔다. 반가운 마음에 애정하는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경도는 6급 이상 인사를 주로 맡았다. 7급 이하는 김수홍에게 맡겼기에 은빛의 이동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인연은 인연이네요.”

“아놔, 내가 오 과장님 그늘에서 좀 벗어나나 했더니 여기서 또 만나네.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은빛이 고개를 숙이니 경도가 민지를 바라보았다.

“저희 과 발령 맞아요. 제 팀에 주무주임으로 두려는데 괜찮을까요?”

민지가 경도 의견을 물었다.

“배 팀장님 팀원이 가고 온 건가요?”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럼 직원들 인사부터 시키겠습니다.”

민지가 돌아섰다. 지역복지정책과에는 3개 팀이 있었다. 배민지가 주무 팀이다. 팀장들과 인사를 나누고 팀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과장 보직 발령 첫날.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대규모의 인사이동이었으니 거의 모든 과에서 승진과 전출입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 업무보고 드리겠습니다.”

민지가 회의실 겸 상담실을 가리켰다.

“감회가 새로운 데요?”

상담실 의자에 앉은 경도가 웃었다. 민지는 경도의 대선배다. 9급 달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7급이었다. 용포읍에서의 인연은 잊을 수도 없다. 지금의 용포읍을 만든 정규 멤버기 때문이었다.

“저도 그래요. 언젠가는 사무관이 되실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요.”

“용포읍에서처럼 편하게 대하세요. 제가 일하러 온 거지 폼 잡으러 온 거 아니니까요.”

“제가 왜 모르겠어요? 엄 국장님이랑 과장님 얘기 많이 했습니다.”

“국장님은 정말 잘 됐죠?”

“그 막후가 과장님이잖아요?”

“아닙니다. 엄 국장님은 그 운명 스스로 개척하신 거예요.”

“알았어요. 티 내지 않고 주변 사람들 밀어주는 건 여전하시네요.”

“이번에는 팀장님이 저를 밀어주셔야 합니다.”

“업무는 대략 알고 계실 거예요. 예전에 용포읍에서 맞복팀 업무 볼 때 많이 들락거리셨잖아요?”

“그랬죠.”

“그동안 엄 과장님이 잘 닦아놓기는 하셨는데 과장님이 보기에는 좀 미진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살펴보시고 방향을 정해주세요.”

“그렇게 하죠.”

“그리고…… 아까 보신 용 과장님과는 관계 정리가 필요하실 거예요. 엄 과장님 있을 때도 더러 태클을 걸었거든요.”

“그렇게 하죠.”

“아무튼 저는 너무 좋네요. 오 과장님에 은빛 주임까지 뭉치게 되다니…….”

“우리가 또 사고 한 번 쳐볼까요?”

“과장님이 앞장서시면 닥치고 따라갈게요.”

“고맙습니다.”

경도가 주먹을 내밀자 민지가 부딪쳐주었다.

인맥관리는 이래서 중요하다. 공무원은 평균 2-3년에 한번씩 이동을 한다. 30년을 근무한다고 치면 적어도 10번은 부서 이동을 하는 것이다.

K시의 직원이 1,000명을 넘지만 알고 보면 좁은 바닥이다. 공연히 적을 졌다가 이렇게 만나면 난감해진다.

과장 책상에 앉았다.

명패가 보인다.

<지역복지정책과장 오경도>

어머니가 보시면 좋아할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은빛이 쪼르르 달려와 기념샷을 원했다.

“쌩쌩 사무관님 기 좀 받으려고요. 안 될까요?”

“절대 환영하죠.”

경도가 각도를 맞춰주었다. 경도 곁에 붙은 은빛이 인증샷을 누른다.

“아오, 동기들에게 자랑해야지.”

사진 한 장에 행복해지는 은빛이다. 예나 지금이나 구김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자, 드시죠.”

상석의 석 국장이 식사를 권했다. 시청 앞 칼국수집이었다. 과장과 팀장들만 모였지만 그 숫자는 40명을 넘었다. 몇 명이 빠졌음에도 이 모양이었다.

공무원은 대개 직급순으로 앉는다. 오래된 관행이자 공직 문화(?)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온 쌩신입들 덕분에 해프닝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이 국장에게 들은 말이다. 신규 발령자들에게 식사를 내는 자리였는데 신규들이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앉고 말았다.

이 국장이 도착해 보니 문 앞자리가 남았다. 그냥 웃고 말았다고 한다.

신규들의 귀여운 만행은 장례식장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대개 양말을 신지 않거나 발가락만 살짝 가려주는 발등 양말을 신는다.

조문할 때는 신발을 벗으니 그 발이 도드라진다. 아직도 그런 풍경이 용서가 안 되는 고참들이 많았다.

이날도 의전이 망가졌다. 용 과장이 팀장들을 거느리고 석 국장 옆자리를 독식한 것이다.

국의 공식 의전에서는 경도가 국장 옆이어야 했다. 그 정도 아량은 있는 경도였으니 웃고 말았다.

“자, 우리 오 과장,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을 텐데 복지정책에 대한 구상이 있으면 말해보시게. 주무과장이니 그래야 다른 과가 참조할 게 아닌가?”

석 국장은 일단 현재의 시스템 사수 쪽이었다. 그렇기에 경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거창하게 구상까지는 아니지만 각 읍면동의 이장단과 부녀회장단 등을 통해 실상부터 파악할 생각입니다. 다른 업무는 현황대로 추진하되 제가 전체 읍면동을 돈 후에 가닥이 나오면 종합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많이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읍면동을 오 과장이 직접 돈단 말인가?”

“용 과장의 태클이 나왔다.

“그럴 생각입니다.”

“우리 관내 읍면동에 통리가 몇 개나 있는지 알고는 하는 소린가?”

“지난달 기준으로 우리 시의 인구는 395,572명입니다. 162,341세대에 남녀 비율은 55 대 45 정도 되죠. 이 중에서 외국인이 15,600명인데 남자가 64%고 여자가 36%입니다. 전체 읍면동의 통리 숫자는…….”

경도가 지표를 짚어나가자 과장과 팀장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건 민지뿐이었다.

“험험.”

허를 찔린 용 과장, 헛기침으로 상황을 넘겼다.

“그렇다고 해도 이장단과 부녀회장들이 협조를 하겠나? 그 사람들이 우리가 오라고 해서 오고 가라고 해서 가는 사람들이 아니야. 실제 읍면동에서도 그 양반들 때문에 애를 먹는 통에 말이야.”

“그래도 필요한 일입니다. 과장님께서도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현황 도움을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경도는 유연했다. 용 과장의 말에 가시가 들었지만 웃는 낯으로 비껴 나간다. 논리가 궁해진 용 과장은 물을 마시는 것으로 태클을 종료했다.

“하긴 지역 복지정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그게 필요하겠군. 다른 과에서도 집중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석 국장이 마무리를 했다.

“아오, 용 과장님 진짜…….”

돌아오는 길에 민지가 몸서리를 쳤다.

“왜요?”

경도가 모른 척 물었다.

“자리요. 아니, 자기가 앉는 건 그렇다고 쳐도 과장님 앉을 자리까지 팀장들을 앉혀버리면…….”

“국수 한 그릇 먹는 자리인데 아무렴 어떻겠어요.”

“과장님한테 죄송해서 그러죠. 우리 과가 주무과인데…….”

“칼국수 맛나게 먹었으니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알지도 못하시면서…… 우리 과장님이 부녀회나 이장단 꽉 잡고 있는 거 말이에요.”

“용포읍 떠난 지 오래됐으니 약빨이 안 먹힐지도 모르죠.”

“그런 말 마세요. 안선주 회장님이 계시잖아요. 그분이 어찌나 마당발인지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라니까요.”

“그럼 배 팀장님이 한 번 다리 놔보실래요?”

민지에게 역할을 넘겼다. 경도가 할 수 있지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죠. 제 생각이지만 오 과장님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도와주실 거예요.”

“흐음,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사무실로 들어섰다.

징조가 좋았다.

책상에 쌓인 꽃다발 때문이었다. 안선주가 보낸 게 눈에 들어왔다.

다른 부녀회장들의 것도 가득하고 이장단의 꽃다발도 만만치 않다. 그들 사이에 조경철과 양왈종의 것도 있었다.

“과장님.”

은빛이 또 다른 꽃다발을 내놓았다.

“너무 많아서 박스에 담아 두었어요.”

그녀가 이마의 땀을 닦는다.

진짜 많았다.

총리실을 위시해 김윤광의 것도 있고 백지애의 것, 고세완 대표와 캐서린, 계치훈, 계순철, 탁 대표와 유빈에 TNTS와 연예인들…….

하나하나의 고마움이 뼈에 새겨질 때 날 선 비수가 날아왔다.

“그거 그렇게 많이 받으면 김영란법 위반 아니야?”

커피를 들고 들어선 용 과장의 시샘이었다.

“전부 김영란법 제한 금액 미만이던 데요?”

은빛이 슬쩍 실드를 쳤다. 말빨이라면 시장하고 붙어도 지지 않는 은빛이었다. 게다가 표정도 야무지니 용 과장도 함부로 뭉개지 못했다.

“허, 할 말이 없네.”

용 과장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용태훈 과장.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번 징크스는 당신인가?

경도가 웃었다. 이제 네 번째 승진한 경도였다. 꿈의 직급인 사무관이라지만 두나가 차려준 특별한 알탕까지 먹었다. 겁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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