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맛에 승진하는 거죠-2> (21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17화

72. 이 맛에 승진하는 거죠-2

“엄마.”

한우숯불구이집 앞에서 경도가 짧게 목청을 높였다.

-경도냐?

“그럼 누구겠어?”

-왜? 무슨 일 있니?

“무슨 일은? 엄마는 뭐해?”

-나 지금 밭일하고 와서 두나가 사준 자동안마기 하고 있다. 이게 생각할수록 효자야.

“동네 할머니들이 샘 안 내?”

-그래서 저녁마다 무료사용권 돌리고 있다.

“엄마 인기 짱이겠네?”

-그럼 내가 누구 엄만데?

“엄마.”

-아, 왜? 장가갈 때 되니까 엄마 젖이라도 먹고 싶냐?

“나 고백할 게 있는데…….”

-흠미? 뭔 사고 쳤냐?

“응, 대형 사고 친 거 같아.”

-뭔데? 무슨 사고?

어머니 목소리가 빨라진다. 아마도 상체를 바짝 세우고 있을 것이다. 영상통화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일단 심호흡부터.”

-심호흡은 무슨, 아, 엄마 숨넘어가기 전에 빨랑 말해. 두나가 결혼 안 한다고 그러냐?

“아니, 두나 일이 아니고 내 일이야.”

-그러니까 뭐?

“엄마.”

-화이고, 얘가 정말, 아, 뭔 일이냐니까?

“우리 시장님이 바뀌었어.”

-그건 저번에 말했잖아? 너랑 잘 맞는 시장님이라고.

“응.”

-너 자꾸 이러면 내가 쫓아 올라간다.

“응.”

-뭐야? 오경도!

“아무래도 엄마가 올라와야 할 거 같아. 나 엄마가 끓여주는 알탕이 너무 먹고 싶거든.”

-참말이냐?

“응.”

-그럼 내가 주말에 가마. 그때까지만 참아.

“아니야. 내일 아침에 먹고 싶거든.”

-내일 아침에는 심어야 할 씨앗이 많은데? 주말에 가면 안 되겠냐?

“엄마. 놀라지 말고 잘 들어.”

-……

“나 승진했어. 이제 제사 지방에 ‘학생’ 대신 쓸 직함이 생겼다고.”

-아이고, 아무래도 내가 오늘 정신이 없네. 승진이라니? 지난번에 승진해서 다음 승진은 오래 걸릴 거라더니?

“그런데 새 시장님이 덜컥 자리를 만들어주셨어.”

-니 참말로 참말이냐?

“그래 엄마. 나 이제 우리 시청 과장이야. 6급에서 5급이 되었다고.”

-경도야.

“알탕 먹겠다는 거 듣고도 몰라? 내일 임용장 받으면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진짜? 니가 진짜로 과장님이 되었다고?

“응, 엄마. 나 이제 지인들 축하받으러 들어간다. 안마 많이 하고 잘 자.”

-경도야, 경도야.

“고마워, 엄마.”

한 번 더 인사하고 통화를 끊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기 무섭게 형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야, 오경도, 너 왜 엄마한테 장난을 치고 그래?

“무슨 장난?”

-사무관 승진했다며? 그게 말이 돼?

“응, 말 돼.”

-뭐야?

“안 믿기면 검색해봐. K시 개방형 사무관 공채 공고가 나올 거야. 근속승진이면 승진최저연한 때문에 안 되지만 공채라서 가능했거든.”

-너, 진짜냐?

“그래. 알았으면 선물이나 준비해두셔. 형수님께도 인사 전해주고.”

-야, 야. 오경도.

“형, 나 지금 기다리는 사람들 많거든. 그러니까 나중에.”

-야, 오경도.

경규의 외침은 종료 버튼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축하 타임이었다.

“오 박사님을 위하여.”

선창의 주인공은 계치훈이었다. 두나의 절친 다혜도 자리를 함께했다. 두나와 시청을 나올 때 계치훈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의 정보망도 보통은 아니었다.

“제가 내일부터 간부교육에 들어갑니다. 시간 안 내주시면 집으로 쳐들어갑니다.”

비상선포가 나왔다. 별수 없이 그의 축하를 받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칭이 되니 다혜도 합류를 했다. 지난번 계 경정의 승진 때 그냥 넘어간 죄도 있었다.

“이햐, 이런 초고속 승진이라니? 이거 세계신기록 아닙니까? 거의 신의 아들급인데요?”

계치훈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신의 아들 맞아요. 오 박사님 관상안이 갓갓갓이잖아요.”

다혜도 거든다.

“결혼 선물로 제격이군요. 새 시장님 급 마음에 드는 데요?”

계치훈의 목소리가 자꾸 높아졌다.

“다 계 과장님 덕분입니다.”

“제가요?”

“계 과장님이 애초에 직원 투신의 누명을 벗겨주셨잖습니까? 덕분에 우리 시장님이 용이 될 수 있었던 거죠.”

“아, 이분이 그분이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오 과장님이 왜요?”

“그게 도미노가 되어 제가 과장이 된 거죠. 그러니 모든 공은 계 과장님 덕분입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제가 풀코스로 쏘겠습니다.”

“그럼 특수부위로만 먹어도 되는 겁니까?”

“당연하죠. 아예 1+++급으로 한 마리 잡으라고 할까요?”

“좋습니다. 기왕 달리는 거 제대로 달려보죠.”

경도가 장단을 맞췄다.

“이거 찐 원샷각이네요?”

다혜가 술잔을 채운다. 둘은 그새 많이 친해져 있었다.

“내친김에 우리도 오 과장님 결혼식 날 곁다리로 붙어서 식 올릴까?”

계치훈이 다혜를 도발했다.

“좋아요. 까짓 거…… 더블 침대 주문해서 아예 호텔 방까지 같이 쓰자고요.”

다혜도 폭주한다.

쨍.

다시 잔이 부딪쳤다. 두나의 눈이 애정스럽게 빛난다. 술이 들어가도 취하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오다니. 그 찌질하던 말단의 미래가 이토록 장밋빛이었다니.

5급?

지방행정사무관?

내가?

오경도가?

싸목 할아버지…….

그분 덕이다.

고맙습니다.

맛난 한우에 소주가 함께 넘어가도 싸목 할아버지에 대한 인사만은 잊지 않았다.

“오 박사님.”

한참 동안 주량을 달리던 다혜가 경도를 불렀다. 눈은 살짝 풀어졌지만 굉장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네.”

“우리 두나 잘 해주세요.”

귀여운 으름장이 나온다.

“얘, 너 취했어?”

두나가 견제구를 날린다.

“기집애, 넌 빠져.”

“다혜야.”

“됐거든. 우리 오 박사님 천기를 보시는 분이잖아? 어떤 남자들처럼 쫌팽이는 아닐 거야. 그렇죠?”

다혜가 인증을 받으러 들어온다.

“쫌팽이는 맞는데 그렇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두나 말이에요. 오 박사님 만큼은 아니지만 진짜 대단한 아이거든요. 만약 두나 울게 하면 제가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약속하죠.”

“쟤, 만약 아빠가 일찍 안 돌아가시고 엄마가 병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멋진 여자가 되었을 거예요. 거기에 비하면 나는 개양아치?”

“다혜야.”

“됐고. 솔까말 그래서 은근히 질투도 많이 하고 속도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너는 내 인생의 멘토이자 등대라는 사실.”

“뭐야?”

“내 자랑스러운 친구라고 이년아. 니 친구로 남으려고 나도 죽기 살기로 공부했고 그래서 인서울이라도 한 거라는 거잖아?”

“어우, 야.”

“아, 몰라. 아무튼 그렇다고. 졸 행복하게 살라고.”

다혜가 잔을 내밀었다. 건배는 이제 자동이다. 다혜가 분위기를 잡으니 계치훈이 달리고 두나도 달린다. 별 수 없이 경도의 혈중알코올농도도 높아져갔다.

중간중간 문자를 체크했다.

그 사이에도 수십 통이 쌓였다. 이제는 주로 동기들 문자였다. 팀장으로 나간 득렬의 것도 보였다.

[언제 다시 과장님 밑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과장님 밑에서.

짧지만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었다. 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니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2차는 내가 쏜다.”

이날의 리더는 누가 뭐래도 다혜였다. 술에 취하니 나름 꼬장 귀요미였다. 계 과장은 그런 모습에 반해 절대충성 모드로 들어갔다. 양꼬치집으로 가서 중국 맥주를 겸했다.

양꼬치엔 C-T-O.

혀가 꼬여가지만 그래도 선방하는 다혜였다.

마무리 차는 두나가 쐈다. 다혜는 졸고 있다. 계 과장의 어깨에 기댄 모습이 잘 어울려 보였다.

“잠깐만요.”

번개 축하파티가 끝나고 경도 집으로 왔을 때였다. 대리기사가 돌아가자 두나가 트렁크 쪽으로 걸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두나는 작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왔었다.

“됐어요.”

그걸 꺼내들고 경도 옆에 붙는다.

푸근하다.

이래서 사랑이라는 걸 하는 걸까?

늦은 밤의 귀가였다. 그때마다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찰떡처럼 붙은 지금은 아니었다.

어디로 달아날까 봐 어깨를 바짝 당겼다. 그새를 못 참아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도 했다. 볼에만 한다는 게 너무 사랑스러워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언제였을까?

진상 커플과 함께 탄 적이 있었다. 그들 역시 그사이를 못 참아 둘이 엉겨 쪽쪽거렸다. 솔직히 좋지 않았다. 그 행동을 지금 경도가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르지.

아무도 없잖아?

내로남불을 핑계로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까지 애정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샤워를 하고 나오자 두나 목소리가 진지했다.

“응?”

“저 의견이 있어요.”

“뭔데?”

머리를 털며 그녀 곁에 앉았다. 작은 테이블에는 여기저기서 받은 꽃과 함께 입가심 맥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결혼축의금 말이에요.”

“축의금.”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어쩌면 좋을까?”

“일단 선생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나는 두나 생각이 더 중요해.”

그녀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두나의 형편은 어려웠었다. 지금은 나아졌다지만 넉넉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결혼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축의금사절]

그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바로 접었다. 그렇게 되면 두나의 부담이 늘어난다. 대개는 축의금으로 결혼을 진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오늘 병원에서 나이 드신 직원들이 그래요. 선생님이 과장으로 승진했다고 하니까 결혼식 축의금이 따따블로 들어오겠다고…….”

“…….”

“진짜 그런가요?”

“글쎄, 잘 모르지만 대개는 사람 직위에 맞춰 봉투를 넣으니까…….”

“축의금사절 말이에요, 전에 한 번 말씀한 적이 있었죠?”

“그건 그냥…….”

“우리 결혼에 오시는 분들, 축의금을 내기 어려운 분들이 많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대부분 공무원이니까.

게다가 요즘은 결혼식도 많이 줄어 있었다.

“그럼 선생님, 우리 축의금 받아요.”

두나가 결정을 내린다.

“나는 상관없어. 두나가 좋다면.”

“대신 그걸로 이벤트 한 번 해요.”

“이벤트?”

“축의금을 안 받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저 벌써 하나 받았어요. 미국으로 장기 연수를 떠나는 닥터가 한사코 넣어주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걸 주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건 인정.”

“그러니 어차피 들어올 거라면 받아서 아름답게 쓰면 되잖아요. 축의금을 내신 모든 분들께 아름다운 공덕을 만들어드리는 거예요.”

“두나?”

“귀 좀 빌려주세요.”

두나가 경도 손을 끌었다. 그녀 입술이 다가왔다. 귓전에서 속삭이니 봄 아지랑이가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생각 어때요?”

“두나?”

“그러면 축의금을 내신 분들도 뿌듯할 거 같은데요?”

“인정. 그건 나도 생각 못 한 일이야.”

“그럼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이야, 생각만 해도 멋진데?”

두나를 끌어안았다. 기가 막힌 제안이었다. 그녀가 경도 품을 파고든다.

입술과 입술이 다시 만났다. 이제는 마음 놓고 키스다. 그녀의 옷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도가 서두른다.

관상에는 모상(毛相)도 있다.

치구의 털은 억세면 좋지 않다. 털의 숱이 적어도 그렇다.

몸에 비해 둔덕의 살이 부족하면 빈천하게 산다. 남자의 사랑도 받기 어렵다.

두나는 둔덕도 매혹적이였다. 관상의 기준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보기에 좋으니 굳이 관상안을 들이대지 않아도 되었다.

더 놀란 것은 모서리에 찍힌 작은 점이었다. 그냥 찍혔어도 길상인데 약간 볼록한 느낌까지 드니 살아 있는 점이다. 대길한 징조였다.

치구의 아래쪽에는 진달래빛깔이 돌았다. 이런 윤기가 나면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의도하고 뜯어보는 것은 아니지만 뭐든 고마운 두나였다.

경도는 폭주했다. 밟을 수 있는 데까지 속도를 냈다. 그리고 그 종착에 이르러서야 두나 위에 살포시 포개졌다.

-사랑해.

-사랑해요.

긴 메아리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

축 사무관 입직.

글자가 보였다. 허공에 바람으로 쓴 글자였다. 이런 글을 쓸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싸목 할아버지…… 그 글자를 모아 경도에게 안겨주었다. 어떤 꽃다발보다 감격적이었다.

“할아버지.”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햇살과 하나였다. 아지랑이처럼도 보이고 바람처럼도 보였다.

그 안에는 온갖 관상이 일렁거린다. 대길, 대운, 대복을 뜻하는 상이었다.

할아버지의 손이 다가와 경도의 관록궁을 쓰다듬었다. 왠지 조금 더 볼록해지는 느낌이었다.

<오경도>

할아버지의 부름은 소리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오경도.

오경도…….

일어나.

일어나요…….

소리가 바뀌었다. 경도가 가만히 눈을 떴다.

보글보글.

맛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두나가 보였다.

“식사해야죠. 맛은 책임질 수 없어요.”

그녀가 식탁을 가리킨다. 차린 것은 없다.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메뉴가 있었다. 알탕이 끓고 있는 것이다.

“두나?”

“전에 그러셨죠? 승진하면 알탕 먹고 출근하는 게 루틴이 되어버렸다고. 축하 인사 받느라 바쁠 것 같아서 제가 준비를 했어요.”

“그럼 어제 그 박스가?”

“네.”

두나가 웃는다.

“…….”

경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무관 승진은 느닷없었고 축하의 강도도 달랐다.

게다가 저녁에는 계 과장 커플과 진하게 달렸다. 그렇게 넋 놓고 있던 일을 두나가 채워준 것이다.

“엄마 말이 오래 끓으면 맛이 없어진대요. 얼른 씻고 와요.”

두나가 욕실을 가리켰다.

굿모닝?

그런 인사말이 있다. 그냥 의례적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의례적이 아니었다.

진짜 굿모닝이었다.

군대에서처럼 후다닥 씻고 나와 식탁에 앉았다.

흐음, 냄새 굿.

밥은 때깔부터 좋았다. 그녀에게 있어 실수는 처음의 한 번으로 족했다. 이번에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알탕은?

응?

괜찮은데?

된장 첨가도 없는데 입에 맞는다. 어머니가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미각이란 솔직한 것이다.

인생 맛집이 별거일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맛난 알탕과 사랑스러운 연인.

알집 하나를 깨물며 경도는 진심 행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