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16화
72. 이 맛에 승진하는 거죠-1
짝짝짝.
인사팀으로 돌아오자 박수부터 쏟아진다. 재은이 주동이었다. 그녀는 경도가 개방형 과장으로 낙점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개방형 직위.
이 시장이 이 카드를 꺼낸 건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급변하는 복지정책에 있어 진짜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것.
K시는 서울의 배후도시다. 동시에 다른 배후도시에 비해 인프라가 밀렸다.
그것은 곧 인프라가 좋은 인근 배후도시에서 밀려나 이주를 해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도시의 집값이나 전세가 오르면 K시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근 도시에 비해 저인망식 복지정책이 필요했다.
한때 K시가 복지지표에서 꼴찌를 면치 못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 역시 현장형 전문가가 필요했다.
동시에 경도의 승진이 고려됐다. 팀장으로는 정책을 펴나가기 어려웠다. 일선 행정은 ‘과’ 단위였으니 적어도 과장은 되어야 제대로 된 결재권과 지휘권을 가질 수 있었다.
나아가 경도의 경험은 부족하지 않았다. 용포읍에서 현장 복지 경험을 쌓았고 이후로도 후원회 사업을 통해 살아 있는 복지를 구현시켰다.
모두가 법이라는 잣대에 얽매여 허덕거릴 때 후원회를 통해 정부행정망의 빈 곳을 메워나간 것이다.
부수적으로는 K시를 대표하는 공무원상이 필요했다. 연봉보다 수십 배의 가치창출을 하는 경도에게 틀에 박힌 승진코스로 올려주는 건 시장이 할 일이 아니었다.
빠르게 밀어 붙여주지 않으면 사무관으로 종 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공무원은.
그놈의 최소 승진연한이라는 게 있었다.
이 법의 유래는 배경이라 불리는 ‘빽’ 때문이었다. 과거 여론이 허술할 때, 권력자의 친인척이나 그에게 붙어먹은 인간들은 능력하고 상관없이 자고 나면 승진을 했다.
그걸 막겠다고 만든 법이 능력 있는 직원의 승진까지 막게 된 것이다.
그걸 타파하는 방법은 개방형 공채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모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가 합격한다고 해도 이 시장은 손해날 일이 없었다.
경도의 승진이 늦는 것은 안타깝지만 개방형 공채가 시정에 해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 개방형 공채에는 자격요건이 중요하지 최소 승진 연한의 적용이 없었다. 경도의 후원사업 경력이 화려하므로 그 조건을 넣음으로써 해결책을 찾았던 것이다.
나아가 공정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면접관들을 초빙함으로써 특혜에 대한 시비도 원천봉쇄를 했다.
경도의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으니 비장의 방법으로 사무관 승진을 단행한 이 시장이었다.
“축하드려요, 과장님.”
보라가 꽃다발을 내민다.
그걸 받아들고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과장님.”
재은이 다가와 방긋 웃는다. 그리고 못을 박는다.
“6급 사표 내세요.”
현직 사표를 내고 내일 자로 공채사무관 발령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연결된다. 근무경력이며 연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못 내.”
경도가 단칼에 자른다.
“과장님.”
“그래도 내가 강 주임 직속 팀장이잖아? 귀띔 정도는 주었어야지?”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시장님이 미리 새나가면 사표 낼 각오하라 하시니…… 저도 이번에 승진하는데 사표 낼 수는 없잖아요.”
“농담이야. 고마워.”
“과장님…….”
“다 여러분 덕분이야. 강 주임, 김수홍 주임, 그리고 보라 씨…….”
경도는 모두에게 감사를 잊지 않았다.
“마무리하실 일이 있어요.”
“마무리?”
“팀장님이 승진하셨으니 새 팀장님 낙점하셔야죠.”
재은이 팩트를 상기시켜주었다. 이렇게까지 보안을 유지했으니 경도도 놀랄 뿐이었다.
“누구든 정하세요. 시장님이 전권을 주신 일이거든요.”
재은이 종이를 내민다. 경도가 이름 하나를 썼다.
<마지웅>
그라면 사심 없이 공평한 인사를 할 사람이었다.
“우와, 저하고 통했어요? 저도 이분이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면 강 주임은 제자리 발령이야.”
“저야 좋죠.”
“강 주임이 있어야 인사팀이 제대로 돌지. 몇 년 더 욕먹고 팀장 달고 나와.”
“과장님이 밀어주세요.”
“누구라도 밀어줄 거야. 능력에 인성까지 되는 사람이잖아?”
“과장님도…….”
“잠깐 기다려. 수정안 결재받고 올 테니까.”
경도가 인사팀을 나섰다.
“축하하네.”
육 과장의 마지막 결재였다. 시장의 귀띔을 들었는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도 힘차게 잡아준 악수는 뜨거웠다.
“과장님도 축하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보직명을 불러주었다. 그도 내일이면 국장이었다.
“자, 나는 사표 쓸 테니까 인사안 업로드 시켜.”
확정된 인사안을 재은에게 넘겼다. 그녀가 파일 수정을 했다.
“보라 씨, 김 주임, 정신들 제자리지?”
재은이 팀원들에게 상황을 주지시켰다.
“네.”
둘의 대답이 나왔다.
“그럼 올린다.”
재은이 화면을 열었다. 원래는 퇴근 직전에 업로드하던 관행을 바꾼 것이다. 즉 자신 없는 인사는 하지 않겠다는 게 경도의 생각이었다.
딸깍.
재은의 클릭과 함께 인사안이 공표되었다.
따르륵.
1분도 안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받을게.”
경도가 재은 책상 앞의 전화를 당겨 받았다. 좋은 전화일 리 없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팀원들을 위해 몸빵을 자처하는 것이다.
“인사팀 오경도입니다.”
-오 과장.
수화기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천둥을 쳤다.
“어디십니까?”
너무 큰 소리라 누군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야, 엄낙기.
“아, 국장님, 축하드립니다.”
-이게 꿈인가?
천둥소리가 떨린다.
“환골탈태하셨잖습니까? 이제 국장님 천하입니다.”
-나 지금 자네 승진을 얘기하고 있는 걸세.
“저요?”
-내가 뭐랬나? 그 자리는 자네가 딱이라고 그랬지?
“맞네요. 이번에는 국장님이 천기를 보셨나 봅니다.”
-당연하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관상박사랑 교분이 몇 년인가?
“덕분에 제가 주제넘게 사무관을 달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내가 할 소리지. 내가 누구 덕분에 국장이 되었겠나? 게다가 그냥 국장도 아니고 자치행정국장? 흐어어.
“이제부터 전성기신 것 같습니다.”
-허튼소리. 나 시장님께 가서 따질 걸세. 내가 무슨 깜냥으로 자치행정국장이냐? 시켜주려거든 저 변방의 사업소장이나 한 자리 달라고.
“인사발령은 한 번 나면 최소한 1년이라는 아시면서요.”
-이거 자네 농간이지?
“절대 아닙니다. 저도 시장님 배포에 지금 기절 직전입니다.”
-허어, 이거 나보고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
“자치행정국장이 별겁니까? 복지과장으로 쌓은 내공으로 살림살이 꾸리면 문제 될 것도 없을 겁니다.”
-좋아. 한 번 해보지. 왠 줄 아나?
“뭐죠?”
-자네가 부서명이 바뀐 내 자리의 후임으로 오지 않나? 이거 뭔가 범상치 않은 기연이란 말이지?
“최근에 국장님 실적이 너무 좋아 제가 망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일세. 겨우겨우 땜빵하면서 올렸던 실적들이 자네의 관상안에 다 뽀록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그래. 우리 근간 술 한잔하세. 우리 마누라, 그 자리 마련 못 하면 나 말려 죽일 거야.
“사모님께도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래. 오 과장. 자네도 진심으로 축하하네.
엄낙기가 전화를 끊었다.
따르륵.
또 전화가 이어진다. 또 경도 승진에 대한 축하 인사였다. 이번에는 마지웅이었다.
-오 과장님.
그의 목소리도 거의 천둥급이다.
“마지웅, 승진 축하해.”
-아, 자기는 사무관 올라가면서 미안하니까 나한테 짐을 떠밀고 가네?
“미안.”
-미안하기는, 진짜 축하해. 게다가 나한테 인사팀장이라니?
“너라면 나보다 잘할 거 같아서.”
-농담해? 우리 시에 오 과장님보다 인사팀 잘 꾸릴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미치겠네.
“아, 권 팀장은?”
-방금 퇴근했어. 소금 먹은 배춧잎처럼 늘어져서는…….”
“…….”
권태술은 철퇴를 맞았다. 사업소의 팀장으로 나간 것이다. K시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었다. 어쨌든 책임을 물어야 했으니 거기서 다시 인성을 갈고 닦기를 바랄 뿐이었다.
따르륵, 따르륵.
전화는 계속 이어진다. 다행히 직원들의 불평과 저주의 샤우팅은 없었다. 경도 때문이었다. 퇴근까지 2시간여 동안 거의 모든 전화가 경도 거였다.
-축하하네.
-축하해.
-축하합니다.
인사가 꼬리를 물더니 결국은 꽃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퇴근 직전에는 부녀회장들의 꽃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시청에 촉을 심어둔 안선주가 경도의 승진을 알게 된 것이다.
진짜 흐뭇한 광경은 시장실에서 일어났다.
엄낙기가 시장실로 쳐들어간 것이다.
“엄 국장님, 웬일이시죠?”
이 시장은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엄 국장이 고개를 숙였다.
“왜 이러십니까?”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죄송한 건 접니다. 그동안 제가 미력해서 엄 국장님이 진가를 발휘하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못하면 영원히 못 할 것 같아 멍석을 펴 드린 것이니 그 넓은 공직 인맥으로 활력 조성 좀 부탁드립니다.”
“시장님…….”
“축하합니다.”
이 시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엄낙기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으며 그 손을 잡았다.
좌천된 과장과 된서리 맞은 팀장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었다. 결코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이 K시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경도가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의 뚝심이었다.
한 사람은 원래 행정의 달인이었지만 또 한 사람은 이미지 뒤집기에 성공한 경우다.
그럼에도 크게 친하지는 않았던 두 사람. 이제는 제대로 한배를 타게 된 것이다.
한발 물러선 엄낙기는 다시 한번 정중한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의욕이 끓어오른다. 이 시장의 눈에도 보였다. 이 시장의 용병술은 완전히 성공작이었다.
다음으로 육세창이 들어왔다.
“육 국장, 축하하네.”
이 시장이 다가가 가벼운 허그로 축하를 전했다.
“시장님…….”
“자치행정국장이 아니라서 서운한가?”
“그럴 리가요? 저까지 승진시키시면 부담이 컸을 텐데…….”
“그럼 육 국장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는지 좀 알려주지 그랬나?”
“면목 없습니다. 선거 때도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는데…….”
“만약 그때 육 국장이 나섰으면 오늘 승진은 없었을 걸세. 공무원이 대놓고 나서면 되겠나? 시장 선택은 시민들이 하는 걸세.”
“시장님…….”
“이제 육 국장은 늘공이고 나는 어공이네. 4년간 잘 부탁하네.”
늘공은 정규직이고 어공은 임기직이다.
“시장님.”
육세창도 가슴이 북받친다. 이 시장 밑에서 최고의 행정 경험을 쌓았다. 정직한 뚝심 덕분에 곤란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그게 보람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오 과장 말이야, 육 국장이 맥주라도 한잔 사주시게. 내가 나서면 편애처럼 보일 테니…… 이 자리가 앉고 보니 외로운 자리야.”
“오 과장이 그 마음 알고 있을 겁니다.”
“몰라도 되네. 오 과장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으니.”
이 시장의 손이 육 국장의 어깨를 잡았다. 까닭 모를 울컥함이 치미니 육 국장 역시 한 번 더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ㅊㅋㅊㅋ.
축하합니다.
경도의 핸드폰에는 수십 개의 문자가 답지를 했다. 민지의 것도 은빛의 것도 있었다.
시청에서의 마지막 축하 꽃은…….
두나였다.
승진 소식을 전하자 그녀가 서둘러 달려온 것이다.
“축하해요.”
두나가 꽃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수선화가 아니라 아이리스였다. 꽃보다 두나의 해몽이 더 아름다웠다.
“아이리스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에요. 특별한 직책을 맡았으니 K시의 어려운 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