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 직급 5급 사무관이 되었습니다-1> (21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14화

71. 꿈의 직급 5급 사무관이 되었습니다-1

“뭐야?”

주무과장과 밀담을 나누던 최 국장의 눈빛이 튀었다.

“인사팀장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예의를 갖추었다.

“둘이 같이 온 건가?”

“그렇습니다.”

“육 과장, 사람 말귀 못 알아들어? 이 시장이 직접 오라고 했잖아?”

다시 최 국장의 목청이 높아졌다.

“송 과장님은 자리 좀 비켜주시죠.”

육 과장이 주무과장을 정리했다.

“어이, 자네들 말이야…….”

흥분한 최 국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육 과장님도 잠시 나가계시죠. 제가 국장님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알았네.”

육 과장까지 자리를 비웠다.

“어이, 오 팀장,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최 국장이 눈을 부라리며 나왔다. 팀장은 6급이다. 4급과는 고작 두 직급 차이지만 이건 하위직의 두 직급과 개념이 달랐다. 군대로 치면 대령과 별 두 개 소장 쯤 되는 거리감이었다.

“국장님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입니다.”

“내 프라이버시? 목을 내놓으라는 놈들이 프라이버시 생각해주냐? 눈물 나네.”

“지금 그 목 내놓으라는 사람은 저희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야?”

“사모님요. 이혼 요구받고 계시죠?”

“뭐야? 이 자식들이 내 뒷조사까지 했어?”

“국장님의 얼굴에 다 쓰여 있습니다. 간문의 오른쪽에 푸른 물이 들었지 않습니까? 기세로 보아 4-5개월 되었군요.”

“……?”

“지금 굉장히 하강운이십니다. 여기서 무리를 하시면 인생에 큰 재앙이 내릴 수 있으니 세 불리할 때는 한발 물러서시는 것도 좋습니다.”

“오라, 네가 관상 좀 본다더니 그런 미신 내세워 나를 협박하는 거냐? 푸른 물? 장난하냐? 사람 얼굴에 무슨 푸른 물?”

“전에 직원교육 시간에 그런 말씀 하셨죠? 국장쯤 되니 국에 앉아서도 직원들 하는 일이 한눈에 보인다고? 관상도 공부가 깊어지면 사람 얼굴에 서리는 다섯 가지 찰색, 거기서 더 나가면 여덟 가지 찰색도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

“더 읽어드려야 합니까?”

“오냐, 어디 한번 보자. 네 그 잘난 관상 실력.”

“알려드릴 상괘는 백 가지도 넘지만 딱 두 가지만 하겠습니다. 첫째는 유산소송이군요. 눈썹 숱이 드문 데다 갈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차에 눈 밑에 검은빛이 짙어졌으니 형제끼리 소송이 붙었군요. 다른 데 기력을 낭비하시면 그 소송에서 패하십니다.”

“……?”

최 국장의 눈빛이 흔들린다. 팩트를 저격한 것이다. 그는 사실 노복궁에도 흠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복궁이 깊어진다. 이렇게 되면 쓸만한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한다. 턱의 살까지 처지고 있으니 앞으로의 기세도 순조롭지 않다.

간단히 말하면 아무 짓도 않고 연금이나 받아먹는 게 최상이었다.

“또 한 가지는 이혼하고 관련된 것인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혼?”

“진행하겠습니다. 지금부터 8년 전 일이로군요.”

“……?”

“외람되지만 그때 국장님은 금사에 빠져 있었습니다.”

“금사?”

“금지된 사랑 말입니다. 국장님 나이쯤 되면 불륜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수 있습니다.”

“뭐야?”

“8년 전 6월이군요. 그때부터 약 1년간입니다. 이혼까지 생각하셨죠? 간문에 남은 윤색으로 보아 꽤 심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헛소리 아닙니다. 그분이 국장님의 첫사랑이었나요?”

“……?”

첫사랑.

이 단어에 최 국장의 기세가 꺾였다.

결혼해서 장성한 자녀를 둔 사람이 무슨 첫사랑일까? 그럼에도 격하게 반응하는 건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8년 전, 최 국장은 오랜만에 나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찐 첫사랑을 만났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기도 전에 그저 좋은 마음으로 끌렸던 짝꿍 강소연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 옛날에는 용기가 없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자치행정과장으로 나름 뽀대도 나던 때였다. 공교롭게 집 방향도 같았다.

그걸 핑계로 둘이 남아 있다 눈이 맞았다. 둘 다 술이 취한 까닭에 사고를 쳤다. 그렇게 애정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암에 걸린 상태였고 그게 악화되어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딱 1년하고 두 달. 술김에 합체를 한 한 번 외에는 플라토닉에 가까운 사랑을 했다. 최 국장에게도 순정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간문은 너저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빛깔의 주인이 둘이었으니 경도의 관상안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유가 어쨌든 결혼한 두 남녀가 몸과 마음을 나눈 것. 불륜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은 절대비밀이었다. 그걸 짚어내 버리니 현기증이 날 뿐이었다.

“그걸 관상으로?”

“예.”

“말도 안 되는…….”

“금사지만 간문에 맺힌 빛이 욕망의 그것은 아니니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직자십니다. 더 들어가면 당시 사모님과의 불화 흔적도 있는데 사모님께서 아는 건 원치 않으실 것 아닙니까?”

“오 팀장.”

최 국장이 위엄을 세운다. 고위직이라는 권위로 누르려는 본능이었다. 그러나 관상안은 풀가동되었으니 그가 저지른 잡다한 비리와 금품수수도 이미 경도의 것이었다. 꿀릴 일이 없었다.

“국장님.”

경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냉철했다. 그 무게감은 측정조차 어려웠다. 최 국장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만약 권 시장님이 당선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시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시장이 들어올 때마다 판을 다시 짜는 건 관례가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도 국장님 역시 자치행정과장을 역임할 때 이런 악역을 4번이나 맡았습니다. 그건 국장 네 분의 옷을 벗겼다는 뜻 아닙니까?”

“…….”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년이 임박한 국장이나 과장 일부의 사퇴로 조직의 활력을 가져온 게 이 시장님만의 인사방침입니까?”

“…….”

“다시 말씀드리지만 국장님은 지금 굉장히 하강운입니다. 이혼요구에 더불어 유산소송까지 위기에 처했죠. 그 두 가지는 국장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도 있지만 이 일은 정년과도 같아 피할 수 없습니다. 설령 몇 달 더 근무하신다고 해도 다른 직원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자기가 자치행정과장할 때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더니 정작 정리대상이 되니까 버티고 앉아서 후배들 길 막고 있다고 말입니다.”

“…….”

“그럼에도 부득 버티시겠다면 저는 저한테 들어온 투서들을 감사담당관실이나 경찰에 넘겨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투서라고 했나?”

“투서가 별거입니까? 명절 때 직원들에게 받은 조금 비싼 선물이 뇌물이 되고 전전임 인사팀장에게 던진 말이 압력이 되며 무난한 사업진행을 위해 업자들과 가진 술자리가 향응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털어대면 누구도 버틸 재간이 없는 거고요.”

“…….”

“부디 용단을 기대합니다.”

마무리를 했다. 최 국장의 선택지는 남겨두었다. 줄 잘못 서서 곤경을 당하는 공무원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도 새 시장의 흉이 될 수 있었다.

국장실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육 과장과 함께 최 국장 앞에 섰다. 문이 열리니 직원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날아왔다.

그들도 알고 있다. 최 국장에게 저승사자들이 들이닥쳤다는 걸. 경도는 육 과장에게 찡긋 눈짓을 보냈다. 교통국의 직원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최 국장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그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오 팀장.”

복도로 나오자 육 과장이 경과를 물었다.

“알아들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예,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보시죠.”

경도가 웃었다. 이 확신은 최 국장의 기색에서 온 것이었다. 거친 갈기를 세우던 찰색이 주저앉고 있었다. 그의 예봉이 제대로 꺾였다는 뜻이었다.

최기동 국장 역시 꿈이 있었다. 지방공사 임원으로 나가 지역세를 넓힌 다음에 차기나 차차기의 시장선거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명예퇴직이나 공로연수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이유도 그 연장 선상이었다.

이 시장이 재선에 3선 도전까지 한다면 그와 붙을 수도 있었다. 만만하게 당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렇기에 머릿속에 계산이 섰다. 더 이상의 도발은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것.

이튿날 오후, 육 과장이 인사팀으로 왔다. 마침 폭탄 직원 박성현이 사표를 낸 날이었다. 그가 소속 팀장에게 사표를 냈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오 팀장.”

육 과장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최 국장님이 받아들이셨군요?”

경도가 반색을 했다.

“그래. 방금 뵙고 오는 길이야.”

“잘됐네요.”

“자네 덕분일세. 인사안은?”

“쏴드리겠습니다. 자리에 가셔서 편하게 보십시오.”

경도는 바로 인사파일을 전송했다. 이창교의 첫 인사가 ‘결재라인’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직원 표창에 대한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새 시장이 들어오고 첫 직원조례 시간, 경도의 목소리가 대강당에 울려 퍼졌다. 보라의 안내를 받으며 이창교 시장이 들어섰다. 단정한 노타이 차림이었다.

짝짝짝.

박수와 함께 이 시장이 시상자 자리에 멈췄다.

“수상자들께서는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경도의 멘트가 나오자 세 사람이 움직였다. 김선아와 조연숙, 그리고 최강혁이었다.

“먼저 국무총리상입니다. 지방행정주사보 최강혁.”

호명을 받은 남자 직원이 일어섰다.

“역시 국무총리상입니다. 지방행정서기 조연숙.”

두 번째 직원이 나와 상을 받았다.

“다음은 대통령상에 빛나는 수상자입니다. 지방행정주사보 김선아.”

경도의 눈빛을 받으며 김선아가 일어섰다. 시장이 그녀에게 시상을 했다. 세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직원들에게 인사하니 환호와 박수가 대강당을 덮었다.

“다음은 시장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경도의 멘트가 이어졌다. 이 시장이 연단 끝으로 나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선후배 직원 여러분.”

이 시장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아시겠지만 저 역시 여러분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여러 번 앉았습니다. 그 자리가 사실 잘 졸리는 자리이기도 하죠. 격무로 힘든 분이 있다면 편하게 졸아도 됩니다.”

“하하핰.”

시장의 조크에 직원들 긴장이 풀려나갔다.

“긴 연설을 듣는 것도 지겨웠습니다. 해서 짧게 말하고 내려갈 생각입니다.”

“…….”

“조금 전 표창을 받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직무에 충실하다가 민원인들에게 큰 봉변을 당한 직원들입니다. 동시에 여러분의 동기이자 선배이며 후배입니다.”

“…….”

“그동안 우리 공무원들은 무한봉사라는 의무 하에 최소한의 보호망까지 해제당한 채 근무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런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돌아보면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민낯도 고스란히 노출된 일이었습니다.”

“…….”

“왜 아니겠습니까? 이 사건으로 당한 직원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일방적으로 민원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있던 다른 직원들의 대처는 어땠습니까?”

“…….”

“당시 저는 선거운동 중이라 자세한 내막을 나중에 알았지만 이런 자세로는 우리가 바른 시정을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모두를 대신해 희생한 것과도 같은 직원들의 피해와 재판비용을 모두 시비로 지원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짝짝짝.

박수가 제대로 터졌다. 이런 과정을 아는 직원도 있지만 모르는 직원들이 더 많았던 까닭이었다.

“나아가 무리한 민원인의 요구에 정당한 법집행정신으로 맞선 점을 높이 사 표창 상신을 지시했으며 따로 특진도 지시했습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러나 당시 이들 직원을 보호하지 않고 방관한 팀장과 부서장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소명을 지시했습니다. 제 시정 방침은 간단합니다. 누구든 소신을 가지고 업무를 집행하되, 그 과정에서 나온 피해에 대해서는 제 직을 걸고 보호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직원들도 자부심과 소신을 가지고 각자의 직무에 충실해 주실 것을 당부드리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연설은 짧고 굵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 역시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만 길었다. 이 시장이 단상에서 내려와 퇴장을 한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일부는 수상자들에게 몰려들었다.

축하와 위로가 이어졌다. 상심이 크던 세 직원들 모습은 더 밝아졌다.

두나의 심리치료도 일조를 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동료직원들의 격려가 갑이었다.

“힘내요.”

“축하해요.”

그 말들이 꽃이 되어 쌓였다. 세 직원은 확실하게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꽃은 다른 곳에도 쌓였다. 이 시장실로 답지한 꽃들이었다. 직원 몇이 자발적으로 꽃을 보내자 많은 하위직들이 호응을 한 것이다.

그동안의 시장들과는 방향이 달랐다. 대다수 시장들은 직원들을 질책한다.

잘못이 없어도, 정당한 행정행위라고 해도 민원인들이 아우성을 치면 일단 사과부터 시켰다.

표 때문이다. 하위직이 연루된 문제라면 더 가혹했다.

그걸 이 시장이 깨버린 것이다. 누가 봐도 확실하게 조치를 했으니 하위직을 중심으로 뜨거운 신뢰를 받은 것이다.

이날 오후, 이 시장이 경도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최 국장 사퇴권고 지원에 인사안까지 만드느라 수고했네.”

“아닙니다. 육 과장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자네 대답이야 늘 그렇지.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보시게.”

이 시장이 서류를 건네주었다.

<개방형 5급 사무관 지역복지연구과장직 신설>

낯선 제목 하나가 눈을 차고 들어왔다.

“개방형 직제가 신설되는 겁니까?”

“내가 따로 용역을 부탁했었네. 새로 당선되신 시의원님들과도 잘 얘기가 되었고. 아울러 전에 자네가 올렸던 3급 부이사관 자리 신설도 결정이 될 걸세. 공무원 정원 조례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 말일세.”

“개방형 직제는 좋은 방침 같습니다. 제가 먼저 의견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바로 공고 내시게. 서둘러서 이번 인사발표 때 같이 나가게 하자고.”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돌아설 때였다. 이 시장의 음성이 또렷하게 경도 귀를 차고 들어왔다.

“자네도 응모하시고.”

“제가요?”

“형식적으로라도 우리 시 공무원을 대표하시게. 그런 자격이 있는 직원조차 없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

“시장으로서의 명령일세.”

명령.

이 시장이 못을 박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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