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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들-2> (21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10화

68. 행복한 순간들-2

“미안해.”

운전대를 잡은 경도가 말했다.

“그런 말 마세요.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었어요.”

조수석의 두나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두나도 이번에는 투표했겠네?”

“지난번 대선도 한 걸요. 미국에서도 투표 가능하거든요.”

“아, 참.”

“개표하느라 고생 많았죠?”

“괜찮아. 처음도 아닌데…….”

“그런 거 보면 공무원 조직도 대단하긴 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도 잘 돌아가니…….”

“옛날 선배들이 대단하지. 그때 분들은 다 손으로 세었다고 하더라고. 100장씩 묶어서.”

“저번 총선인가도 손으로 했다고 하던데요?”

“아, 그때는 비례대표당이 너무 많아서…….”

“방송 보면서 선생님 생각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일회용 장갑 나눠주고 소독제도 뿌려주고…… 미국 친구들도 그래요. 너네 나라는 관심도 없었는데 대단한 거 같다고.”

“그래?”

“제가 그랬죠. 거기 공무원들 진짜 대단하다고. 함부로 보지 말라고.”

“아이코, 어깨 무거워지네.”

“형님은 출발하셨나요?”

“어? 잠깐만.”

경도가 경규 번호를 눌렀다.

“형, 어디야?”

-지금 출발한다. 너는?

“나도 이제 톨게이트 들어가.”

-조심해서 가라.

“알았어.”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어머니 전화가 들어왔다.

-오 박사아.

이제는 어머니도 오 박사다.

“엄마.”

-어디야?

“그거 방금 형도 물어보더니…… 이제 톨게이트야.”

-색시는 잘 태웠냐?

“그럼요.”

경도가 답하자 두나가 인사로 존재를 알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그래, 그래. 조심해서 오거라.

“예.”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말해.

“없어요. 그냥 드시던 대로 주세요. 저 아무거나 잘 먹거든요.”

-그러면 안 되지. 지난번에 경규가 색시 데려왔을 때는 초계탕을 해줬거든? 나는 민주적인 시어머니니까 빨리 말해.

“그럼 저도 그거 해주세요.”

-초계탕? 알았다.

전화를 끊는 어머니 목소리가 시원하다.

“어머니가 좋아 보이세요.”

“그래도 우리가 다녀가면 바로 몸살이셔. 뭐든 걷어 먹이려고 하시느라…….”

“초계탕 기대되는 데요? 처음이거든요.”

“그건 그렇고 신혼여행 예약은 했어?”

“네.”

“어디?”

경도가 물었다.

신혼여행은 두나에게 일임을 했다. 그녀보다는 경도 스케줄이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경도는 연간 20일이 넘는 연가가 있었다. 결혼을 하면 5일 연가도 붙는다. 본래 1주일 이상의 연가는 금지지만 결혼 등의 특별한 경우에는 결혼연가 5일에 자기 연가 1주일을 붙일 수도 있었다.

“친구가 스리랑카 권하길래 거기로 예약했어요. 괜찮겠어요?”

“스리랑카라? 난생처음인데 이름부터 끌리네.”

“저도 그래요. 그나마 남들 덜 간 곳을 고르다 보니 거기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만족. 나도 섬 좋아하거든.”

“1+1이라 섬이 하나 더 있어요.”

“하나 더? 어디?”

“그건 비밀이에요. 신혼여행 동안은 제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잖아요.”

“좋아. 두나와 함께라면 텐트 치고 자는 섬인들 어떻겠어. 그럼 일단은 초계탕 먹으러 초계기처럼 날아보자고.”

경도가 속도를 올렸다.

***

“오 박사.”

동네보다 어머니가 먼저 보였다. 집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든다.

“뭣 하러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경도가 소리쳤다.

“뭣 하러 라니? 내 새끼들 오는데. 게다가 색시들까지 모시고 오는데?”

“어머니, 안녕하세요?”

차에서 내린 두나 인사가 다소곳했다.

“아유, 오느라고 고생했지.”

어머니가 다가와 그 손을 잡는다. 마치 상전을 대하는 듯 조심스럽다. 아들을 따라 이 먼 곳까지 와주니 고마울 뿐인 모양이었다.

“물건은 도착했어요?”

경도가 물었다.

“도착했지. 그게 대체 뭔데 산더미만 하냐?”

“산더미?”

어머니가 묻자 경도 시선이 두나에게 향했다. 이 선물 역시 두나의 결정이었다.

어머니는 결혼 혼수 같은 것을 ‘절대 사양’했다. 그저 둘이 잘살기나 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경규 부부도 겨우 텔레비전 한 대를 들여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나마 어머니가 드라마를 좋아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럼 저도 하나만 할게요.

두나의 요청이었다. 그래서 허락을 했던 것인데 산더미라니…….

“일단 가봐요.”

두나가 경도 등을 밀었다.

“……?”

옆방 문을 열어본 경도가 경기를 했다. 어머니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으니 진짜로 산더미였다.

“뭐야? 침대라도 산 거야?”

경도가 두나에게 물었다.

“비슷해요.”

두나가 웃는다.

“침대?”

“뜯어보세요. 형님 오시기 전에 설치 끝내자고요.”

“설치?”

“아, 진짜…… 자, 받아요.”

언제 준비했는지 장갑까지 던져준다. 둘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대한 택배물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언제 왔는지 동네 할머니 둘도 구경꾼이 되었다.

“엄맛.”

포장이 열리자 어머니가 입을 막았다. 거대한 택배의 정체는 자동안마의자였다.

“세상에? 이거 그거잖아? 보건소 가면 있는 자동안마기.”

어머니가 어쩔 줄을 모른다. 할머니들도 달려들어 감상하느라 바쁘다.

“두나 씨.”

“죄송해요. 제가 어르신들 상담하다 보니 안마의자 쓰시는 분들 많더라고요. 집에 없는 분은 병원에서 애용하시고요. 서울은 렌탈이 되는데 여기는 관리상 안 된다고 해서 저희 병원 납품업자에게 아예 하나 구입해 버렸어요. 어머니, 저 따로 허락 안 받은 거 용서해 주실 거죠?”

경도에게 설명을 마친 두나가 어머니의 팔짱을 꼈다.

“아유, 이거 비쌀 텐데…….”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모른다.

“비싸지. 보건소 것보다 훨씬 좋은 거 같은데?”

할머니들도 부러운 시선이다.

“용서해 주신 거예요?”

“아유,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 앉아보세요. 잘 되나 안 되나 확인해 보셔야죠.”

“오 박사…….”

“앉으세요. 그 큰 걸 어쩌겠어요? 반품하시라고 해도 제 차에 들어가지도 않아요.”

경도가 어머니의 팔을 잡아주었다.

“스위치 넣어요.”

두나의 외침과 함께 자동안마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잉지잉.

“아유, 이것 봐. 진짜 보건소 것 하고는 상대도 안 되네?”

지잉지잉.

“아유, 아유. 시원하다, 시원해.”

안마기가 곳곳을 주물럭거릴 때마다 어머니가 자지러진다.

“아따, 그만하고 좀 내려와 봐. 나도 한 번 해보자고.”

지켜보는 할머니들이 애가 탄다.

“두나야.”

안마기에서 내려온 어머니가 두나 손을 잡았다.

“고맙다. 이제 밭일 나물 따는 일 하나도 힘 안 들겠어.”

“마음에 드시니 다행이에요.”

“아유, 마음에 들다마다. 아주 대박이다, 대박.”

어머니가 엄지척으로 답한다. 그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할머니와 할줌마들이 몰려들었다. 서로 한 번 앉아보겠다고 북새통을 이룬다.

“줄 서요, 줄.”

어머니 목에 힘이 들어간다.

첫 선물부터 경도와 어머니의 혼을 빼버리는 두나였다.

경규가 도착한 건 20분쯤 후였다. 마침 식사 시간을 딱 맞추는 도착이었다.

“어머니.”

단미리의 인사도 공손하다.

“그려, 그려. 안마는 우덜이 받고 있을 테니까 아들 며느리나 챙겨.”

할머니들이 소리쳤다.

“안마기네? 경도 씨가 샀어?”

미리가 물었다.

“제가 아니고 두나가요.”

“두나 씨가?”

“고민하다가 저질렀어요. 상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두나가 미리의 자존심도 챙겨준다. 동서간의 기 싸움이 보통 아니라지만 두 사람에게는 안드로메다의 일이었다.

“잘 됐다. 안마받으시면서 드라마 보시면 딱이네.”

미리도 괜한 질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 차례가 돌아오려나?”

경규는 걱정이 앞선다. 할머니들의 안마기 애정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런 걱정들 말고 들어가자. 밥 먹어야지.”

어머니가 두 아들의 등을 밀었다.

초계탕이 나왔다. 국수까지 곁들여지니 담백함에 시원함까지 끝내줬다.

“엄마, 질투 나네. 우리 때보다 오늘 게 더 맛나잖아요?”

경규가 괜한 딴죽을 건다.

“그건 닭한테 물어봐라. 이놈들이 하도 팔팔해서 잡히는 놈마다 맛이 다르거든.”

“경도 것만 더 좋은 거 잡은 건 아니고?”

“나 그런 재주 없다. 이거 한 마리 잡으려면 한나절이다, 한나절.”

어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반은 진심이다. 어머니의 닭은 방목이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자란다.

심지어는 나무나 지붕에 올라가 날아다니기도 한다. 자기가 봉황(?)이라도 되는 줄 안다.

“그나저나 경도 너, 공항으로 웨딩 퍼레이드할 차는 구했냐?”

경규가 화제를 돌렸다.

“웨딩 퍼레이드?”

“평생 한 번인데 제대로 해야지. 하드탑이든 소프트탑이든 말만 해라. 형이 수배해 준다. 마침 새로 사귄 총판 사장이 스포츠카 마니아거든.”

“형, 나 공무원이야. 너무 튀는 것도 안 좋아.”

“공무원 맞지. 하지만 보통 공무원은 아니지.”

“으음, 그러면서 초계닭은 웬 질투? 어느 게 진심이야?”

“야, 내 말은…….”

형제간의 대화가 달달하게 전개될 때 할머니 한 사람이 문을 열었다.

“경도, 밥 다 먹었어?”

“안녕하세요? 왜요?”

경도가 답했다.

“오동나무집 할망구 알지? 지금 싸고 드러누웠는데 경도 좀 봤으면 하네?”

“강 할머니요?”

경도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장날에 사기를 당했어.”

어머니 안색이 어두워진다.

“사기?”

“우리는 밭일이 바빠서 안 갔는데 강 언니가 혼자 갔잖아? 거기서 무슨 만병통치 보약이라고 40만 원짜리 건강식품을 사 왔는데 그거 먹고 한 이틀 똥 질 좀 했지?”

“……?”

“아무래도 물러야겠다고 남은 약 싸 들고 장에 찾아갔는데 그런 할머니들이 한둘이 아니라네. 돈 안 돌려주면 경찰에 고소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저쪽에서 자기도 약을 가져온 곳에 알아본다고 좀 기다려달라고 한다는데…….”

어머니가 말끝을 흐린다. 노인들을 상대로 보약이나 건강식품을 파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어르신들이 정에 약하고 물정에 어두운 것을 이용해 고액을 챙긴다.

이 시골에서 40만 원이면 큰돈이다. 기초연금이 25만 원이니 한 달 반 치를 날린 것이다.

“인사도 할 겸 잠깐 가보고 올게요.”

경도가 일어섰다.

강 할머니는 관상을 본다. 경도가 승진을 하고 내려왔을 때는 관상 대결도 했었다. 그때 해준 상괘가 떠올랐다.

<어디 보자, 사자구에 호비, 사자구와 금이를 가졌으니 ‘최소한’ 군수 아니면 도지사야.>

“할머니, 저 왔습니다.”

낡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개집 앞에서 졸고 있던 개가 쫑긋 귀를 세웠다.

“왔어?”

멍석 위에서 씨앗을 고르던 강 할머니가 경도를 맞았다.

“아유, 얼굴이 말이 아니시네?”

“나이 먹으면 그렇지. 색시감 데리고 왔다고?”

“예, 관상 봐주셔야죠?”

“됐어. 관상이야 경도가 진짜배기지.”

“뭐 도와드릴 일 있어요?”

“나 관상 좀 봐줘.”

강 할머니가 경도 손을 덥석 잡는다.

“장에서 사기당한 돈요?”

“그려, 내가 미쳤지. 생전 그런 거 안 사는데 그날은 귀신에 쓰였어. 나 그거 찾을 수 있겠어, 없겠어?”

“잠깐만요.”

할머니의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눈썹 옆의 복당을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복당은 재백궁 코와 더불어 금전에 관한 일을 볼 수 있다. 검은빛깔이 보인다. 검은빛이 나오면 금전의 손실이다.

그러나 그 주변으로 황색과 홍색, 미색이 어우러진 빛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금전이 돌아올 조짐이다.

이제 얼굴의 일진 부위로 옮겨갔다. 일진의 기준은 재백궁 쪽이다. 여기서 사방팔방으로 열두 가지를 치며 말일까지의 기세를 읽는다.

재앙은 나흘 전이었다. 할머니는 그날 장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한 달의 기세 가운데 최악이었던 것이다. 이후로 조금씩 운이 트인다. 그 불운이 다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찾을 수 있겠네요.”

상괘가 나왔다.

“진짜?”

“예, 내일쯤 좋은 소식이 올 것 같네요.”

“아이고, 참말이지?”

“예. 그러니 건강이나 잘 챙기세요.”

“그려, 그려. 아이고, 인자 한숨 돌리겠네. 아이고.”

강 할머니는 몇 번이고 숨을 골랐다.

집으로 돌아온 경도는 경규와 함께 할 일에 나섰다. 집수리였다.

어머니가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대접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두나와 미리도 호응을 했다.

“아이고야, 내가 이러고 드라마 보니까 꼭 여왕이 된 기분이구나?”

저녁 식사 후, 안마의자기에 앉아 드라마를 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좌우로 경규와 경도 커플을 거느리니 무척이나 뿌듯해 보였다.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강 할머니가 간식 과일을 가져왔다.

“금방 따서 씻은 거야. 경도 먹여.”

말하자면 복채였다.

“형수님이 타로점 봐줬으면 더 좋은 게 올 수도 있었는데.”

경도가 미리를 띄워 주었다.

“어머, 타로점 보세요?”

두나가 관심을 보인다.

“뭐 좀…… 봐줄까?”

“네, 저 미국에 있을 때 이탈리아에서 온 집시에게 본 적이 있는데 잘 맞추더라고요. 우리 오 박사님하고야 비교 불가지만요.”

“좋아. 내가 인심 쓴다. 한 장 뽑아봐.”

미리가 타로를 내밀었다.

한참 생각하던 두나의 선택은 가운데 카드였다.

그런데.

태양이 나왔다.

“우와, 천생연분이네? 경도 씨도 태양을 뽑더니.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미리가 입을 쩌억 벌렸다.

순간 경도는 보았다. 미리의 안면에 흘러가는 어색한 찰색들.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설명해 주세요.”

두나가 아이처럼 조른다.

“태양은 긍정의 화신이야. 슬픔이나 우울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정방향이건 역방향이건 다 오케이. 두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예시야.”

“와아, 정말요?”

“우리 나가자. 밤 새소리가 너무 듣기 좋잖아?”

미리가 두나 손을 끌었다.

미리가 나가자 경도가 타로를 확인했다.

“…….”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경도의 짐작대로였다.

“야, 너 봤냐?”

경규가 그 모습을 보았다.

“형도 알아?”

“…….”

“비밀로 할게. 우리도 나가자.”

경도가 웃었다. 미리의 비밀을 알았다. 그녀의 타로는 모조리 태양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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