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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은 용서 못 해요-3> (20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07화

66. 모함은 용서 못 해요-3

그녀는 주열이 하나였다. 남편과의 사이는 그저 그랬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영민한 편에 속했다. 말도 잘 들었다. 그거 자랑하는 재미로 살았다. 그렇게 키우던 아들이 집을 나갔다.

계기는 탈선이었다. 아들이 집을 나간 그날이었다. 몸이 아파 시간 병가를 내고 일찍 귀가했다.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서는데 여자 신발이 보였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들과 그 여친이 소파에서, 속옷만 입은 채 누워 있었다.

쫙쫙.

볼 것도 없이 달려들어 두 아이의 따귀를 갈겨주었다.

“엄마는 안 해? 아빠한데 안 해준다고 맨날 짜증질이면서?”

아들의 말이 분노에 불을 붙였다.

쫙.

한 대 더 때렸다.

“나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아들은 그 길로 집을 나갔다. 이후로 어떤 연락도 없다.

중학생들이 한다는 말 처음 들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도 한다고 들었었다. 그럼에도 자기 아들의 짓은 용인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터뜨린 분노는 부메랑이 되어 공세은에게 돌아왔다.

아들과의 연락이 단절되니 온갖 후회와 걱정이 밀려온 것이다. 돌아보니 아들을 방치한 시간이 길었다. 낮 동안에는 부모가 없으니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자살.

그 단어도 걱정의 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조경철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귀신처럼 맞춰대는 관상실력자의 입으로 들으니 오금이 저려왔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들은 중요하지만 저질러 놓은 일도 간단치는 않았다. 이창교의 성추행은 당연히 없었다.

문제의 사진은 회식자리였다. 이 국장이 참석해 민원실 직원들의 애로를 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공세은은 얼마 전에 일어난 민원인 분실사건에 대해 거짓 읍소를 했다.

그 사건은 그녀의 절도였다. 민원실 관리를 맡은 그녀에게는 심심치 않게 분실물들이 들어왔다. 핸드폰부터 지갑, 향수, 우산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이거 뭔지 누가 놓고 갔네요?”

그날 그녀 손에 들어온 건 작은 주머니였다. 다른 민원인이 발견해 신고를 했다.

“……!”

확인하니 초고가의 향수였다.

[자르딘 다말피]

병부터 포스가 다른 이 향수. 검색해 보니 무려 150만 원을 호가했다. 향수 좀 뿌려봤다던 공세은으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격보다 향이 죽여줬다.

이틀이 지난 후에 주인이 찾아왔다.

“이렇게 생긴 주머니였는데 아무래도 여기 놓고 간 것 같아요.”

“신고된 물품 중에 없는 데요.”

공세은의 답은 태연했다. 신고물품대장도 보여준다. 당연히 없었다. 그녀의 수법이었다.

마음에 드는 건 대장에 올리지 않고 그냥 둔다. 분실인이 찾으러 오면 주고 한 달 정도 오지 않으면 슬쩍 먹어(?)치운다. 이 향수 역시 같은 수법을 부린 것이다.

민원인이 만만치 않았다.

“CCTV 확인해 주세요.”

“이봐요. 없다잖아요? 다른 데서 잃어버렸을 수도 있잖아요?”

“경찰 데려와요?”

거기서 막혔다. 하는 수 없이 적당한 이유를 달아 내주고 말았다.

“알아보니까 다른 직원이 접수해서 가지고 있었다네요.”

이 실랑이가 길다 보니 감사담당관실의 암행감사에 걸렸다. 결국 권태술에게 불려갔고 몇 가지 실토를 하게 되었다. 이 국장의 사진은 그때 나온 것이었다.

이 국장의 애로사항 청취도 그런 구설수에 대한 읍소였다. 분실물 관리를 하다 보니 온갖 오해와 의심을 받게 되어 억울하다는 토로였다.

눈물까지 쏟으며 안기니 이 국장이 잠시 등을 토닥여준 게 전부였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다 빼고 사진만 보면 술자리에서 여직원에게 갑질 성추행을 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 국장님도 이해해주신 사안인데…….”

증거로 내민 사진이었다. 사진은 동료에게 몰래 부탁한 것이었다. 이 국장 라인이라고 과시하려던 목적이었으니 혹시 통할까 싶어 공개했다.

다음 날 감사담당관실로 재호출 되어 가보니 시장 비서실장 임덕균이 와 있었다.

그는 별정직 6급이었다. 비서실장은 시군구에 따라 정규직도 있고 별정직도 있다. 별정직은 대부분 시장과 운명을 같이 한다.

“거액 향수에 상습절도, 경찰에 가셔야겠네요.”

협박과 함께 딜이 나왔다.

“한 마디만 하면 다 덮고 가죠. 다음번에 팀장 승진도 약속하고요.”

[수치심을 느꼈다.]

임덕균의 옵션은 단 하나였다.

업무 애로를 상담하던 건 팩트였다. 오직 그 한 마디만 증언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불문징계.

-그러면 선거 끝난 후에 승진.

사진 자체는 합성이 아니었다. 이유를 빼고 보면 이창교의 손이 스킨십을 한 건 사실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과오 묻지 않는 거죠? 승진도 되고요?”

공세은의 확인으로 딜은 성사가 되었다.

일주일 연가는 비서실장의 주문이었다.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비서실장은 입단속용이었고 공세은은 아들을 찾아 나설 시간이 필요했다.

[절대 비밀]

임덕균 실장이 강조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걸 눈앞의 조경철이 알고 있었다. 그것도 관상으로. 게다가 아들의 일까지.

아들 일 역시 이창교의 사진처럼 비밀이었던 것이다.

자존심은 국장급 이상으로 높았으니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녀였다.

고민이다.

그러나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사진 건은 이미 터졌다. 공세은이 생각하기에도 권 시장이 유리해졌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게 모함이라는 게 밝혀지면 권 시장은 한 방에 훅 간다. 그럼 자신의 비리는 또 어떻게 되는가?

조경철도 난감했다.

경도가 말한 시각이 다 된 것이다. 경도가 강조한 일이니 매우 중요하다. 그 오후 2시가 다가오는 것이다.

-절대 2시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만약.

2시가 되어버리면.

-천기를 누설해 버리세요.

천기누설.

승부수로 쓰려던 상괘를 밝혀버리라는 주문이었다.

승부수를 아예 꺼내버린다?

조경철이 생각하기에 그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리가 없다. 시계는 그 사이에 오후 2시에 닿고 말았다.

“주저하니 천기를 알려드리죠.”

조경철은 결국 경도의 말에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천기라고요?”

“곧 당신 아들에게서 연락이 올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말이죠.”

“예?”

“하지만 당신 마음속의 때를 스스로 씻지 않는 한 아들의 생각이 바뀔 겁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쪽으로.”

“연락? 언제요?”

“아들은 지금 당신 방위에서 북쪽에 있습니다. 그쪽을 향해 서면 30분 안에 전화가 올 겁니다.”

“북쪽?”

“강릉이나 속초 쪽.”

조경철이 방향을 알려주었다. 이 주문은 경도의 상괘가 아니었다. 조경철도 주워들은 게 있으니 관상의 위엄을 더하기 위해 응용을 한 것이다.

공세은이 북쪽을 향해 돌아선다.

10분이 흐른다.

20분이 흐른다.

25분쯤 되자 공세은의 얼굴의 의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쉬잇, 불손한 마음을 가지면 횡액이 커집니다.”

조경철이 경고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공세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잔뜩 긴장한 채 전화를 받더니.

“악.”

비명과 함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조경철이 집어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들이에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들…….”

겨우 통화를 이어간다.

-…….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

“지금 어디야? 강릉이야? 속초?”

-강릉.

아들의 대꾸가 나왔다. 공세은의 머리카락과 솜털들이 쭈볏쭈볏 일어섰다.

관상이다.

미친 듯한 적중력의 이 관상…….

“엄마 지금 할머니 집에 왔어. 혹시나 네가 여기 있나 하고…….”

-…….

“강릉 어딘지 말해. 엄마가 데리러 갈게.”

-내가 들어갈게.

“엄마가 간다니까.”

-내가 가. 그렇게 알아. 이거 빌린 핸드폰이니까 전화하지 말고.

“아들, 아들.”

공세은의 애가 탄다. 사실 조경철의 애도 탔다. 패를 까버렸다. 경도의 상괘에 의하면 아들은 돌아오게 되어 있다.

공세은의 간문에서 출발한 기색이 광대뼈 뒤로 달리다가 와잠으로 향한 것이다. 가출한 아들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공세은의 일진을 짚어보니 오늘이었다. 그래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공세은을 만나기 전에 아들 전화를 받으면 조경철의 딜이 먹힐 리가 없었다.

“아휴, 우리 아들, 아휴.”

공세은은 아직도 감정을 추스르는 중이다.

“……!”

그걸 바라보는 조경철의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의 번민이 일었다. 공세은에게 아쉬운 건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돌아오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녀의 선택은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공세은 씨.”

조경철이 한 번 더 몰아쳐보려는 순간.

“고마워요. 기자님이 하자는 대로 할 게요.”

공세은이 답을 주었다.

“예?”

순간, 조경철은 표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제가 좋은 마음을 먹지 않으면 우리 아들 안 온다면서요? 자살할 지도 모른다면서요? 공무원 그만 둬도 할 수 없죠. 저도 그 사진과 제 한 마디가 그렇게 쓰일 줄은 몰랐어요.”

“……!”

“기자님.”

“아, 알겠습니다.”

조경철, 비로소 기자로서의 날카로운 눈매가 돌아왔다.

***

받아요.

제발.

K시로 향하며 이창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어제의 전화 불통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오늘까지 받지 않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사모님 전화번호를 눌렀다.

파워 오프는 아니다. 그러나 사모님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마?’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창교는 명예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여직원 성추행 사건에 몰렸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여직원을 끌어안은 듯한 사진에 육성까지 공개가 되었으니 정치판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얼마나 클 것인가?

더구나 그는 닳고 닳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것도 아니니 네거티브 선거전이 더욱 참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할 길은?

‘윽.’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일었다.

그건 바로 결백선언과 함께 던지는 사퇴였다

김윤광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김윤광에게는 귀띔을 했을 것 같았다. 김윤광의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오 박사님.

다행히 통화가 되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의원님.”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리려던 참입니다.

“이창교 후보님 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제 일어난 토론회 참상을 보고 받고 사태파악을 지시해 놓았는데 우리 선대위원에게 사퇴의사를 밝혀왔다고 합니다.

“……!”

-오 박사님.

“그게 언제죠?”

-조금 전에요. 곧 기자회견을 열거라고 하는데 전화를 꺼놓아서 연락이 안 됩니다. 미안하지만 오 박사님은 알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그렇잖아도 제가 그 참상을 해결하고 오는 길입니다.”

-해결이라고요?

“이 후보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닙니다. 의원님은 믿으시죠?”

-오 박사님 검증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분이 그 여직원과 호텔에서 나왔다고 해도 믿습니다.

“그럼 절대 후보 사퇴를 받아주지 마십시오. 사퇴회견을 한다고 해도 K시 내에서 할 것이니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해결책은 어떤 겁니까? 제가 지원할 일은 없습니까?

“조경철 기자님 아시죠? 지금 그 여직원의 진실폭로 영상을 가지고 서울의 방송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뉴스 보시면 알 게 될 겁니다.”

-그럼 이 후보부터 찾아야 합니다. 이 후보가 사퇴발표를 해버리면 진실이 밝혀져도 어렵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게 되면 여론이 악화되어 당선권에서 멀어집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조경철 번호를 눌렀다.

“회장님, 어디세요?”

-방송국에서 방 부장 만나고 있어. 오 박사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이 후보님께서 정치에 대한 환멸 때문에 사퇴선언을 하려나 봅니다.”

-뭐야?

“어디선가 사퇴회견을 하실 거 같은데 전화가 먹통이네요. K시 주재기자들에게는 장소를 알렸을 것 같은데 좀 알아볼 수 없을까요?”

-잠깐, 잠깐. 아까 무슨 문자가 하나 들어오던데 내가 바빠서 안 봤거든. 아, 그 건이네. 시민회관이야. 예정 시간이 다 된 거 같은데 빨리 달려.

조경철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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