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06화
66. 모함은 용서 못 해요-2
사진이 들어왔다.
얼굴 중심으로 다섯 장이었다. 경도를 아는 은빛이기에 좋은 사진들이 왔다. 가족사진도 한 장 있었다. 그녀의 지인에게서 수배한 모양이었다.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관상안을 들이댔다.
[공세은-46세-지방행정주사보-7급 9년 차-종합민원실 민원콜센터 근무]
연가 파일을 보니 어제부터 일주일간 연가를 냈다.
대략적인 소속만 상기한 채 관상 직관을 받았다.
이 여자의 간문이 중요했다.
남녀관계는 알 수 없으니 여자가 추파를 던진 것일 수도 있었다. 남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여자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눈…….’
툭 불거진 안구가 먼저 시선을 차고 들어왔다. 이런 관상은 ‘도벽증’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검은자위에 갈색물이 들었다. 자기 이익에는 민감하다.
코가 높고 광대가 높으니 자존심은 강하고 질투도 강하다. 그러나 인중이 짧고 휘었다. 선명하지도 않다.
인중은 기력이나 강단을 대표한다. 끈기와 사려가 부족하고 판단력도 좋지 않다. 즉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니 신의도 없는 편이었다.
턱도 좋지 않다. 살집이 부은 것처럼 보이니 업무능력도 불안정하다.
눈언저리인 와잠과 누당에도 고민이 달렸다. 좁쌀이 붙은 느낌이다. 이런 현상이 보이면 자녀가 속을 썩인다.
그런데.
그냥 속 썩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
경도 시선이 거기서 멈췄다. 다시 확인한다. 이제는 유년운기부위까지 체크한다. 일진분석도 동원한다.
‘이런.’
황급히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없기는 공세은 쪽도 마찬가지였다.
“조 회장님.”
로그아웃을 하며 조경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해.
“지금 어디 계세요?”
-양왈종 기자하고 있어. 여긴 지금 난리가 났어. 토론회 직후에 이 후보가 항의하자 권우일 후보가 그 여직원의 고발 동영상을 공개했어. 그때 수치심에 죽고 싶었다고 말이야.
“거짓 증언입니다.”
-아무튼 권우일 지지자와 홍상선 지지자 등이 이창교 퇴진하라고 차를 막고 시위 중이야.
“이 후보님은요?”
-권우일 후보에게 모략이라고 항의했지만 권 후보가 상대도 안 하고 가버렸어.
“최악이군요?”
-이 분위기가 지역에 전달되면 이창교 후보는 낙선이야.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잔불은 큰불로 잡아야죠.”
-어쩌려는 건데?
“여직원 관상을 봤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조 회장님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나? 관상이라면서 내가 어떻게 오 박사를 대체하겠어?
“같은 직원이라 제가 나서면 시 공무원들이 온통 선거에 관여하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조 회장님은 기자니까 딱 좋습니다.”
-좋아. 다른 건 몰라도 모략으로 가는 선거판은 볼 수 없지.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말이야.
“여직원 이름은 공세은입니다. 주소는 상포읍 용마아파트, 전화번호는 010에…….”
경도가 신상을 건네주었다.
“소재 파악하고 계시면 아침에 제가 댁으로 들르겠습니다.”
-그게 다야?
“아니죠. 서울의 방 기자님을 수배해 주셔야 합니다. 기왕이면 뉴스 전문방송 기자까지 붙여주시면 더 좋고요.”
-젠장, 인맥 다 동원해야겠군.
“그럼 아침에 뵙겠습니다.”
경도가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이창교에게 걸었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몇 번을 더 걸다 포기했다.
집으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공세은의 사진을 펼쳤다. 차분하게 유년운기부위를 다시 본다. 일진과 월진도 재검토에 돌입했다.
‘내일 오후 2시.’
공세은의 일진에 뜬 마지노선이었다.
공세은에게는 큰 횡액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생겼다. 그 고민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큰 줄기를 정한 다음 싸목싸목 공세은의 관상을 분해했다.
내일 아침.
경도의 관상은 조경철이 대행할 것이다. 경도가 나서면 시장선거가 개판 오 분 전이 되어버린다.
이창교도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시장 라인과 이 국장 라인이 충돌한다. 그렇게 되면 시 조직이 양분된다. 선거 후에도 후유증이 엄청나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렇기에 조경철을 앞세우는 것이다.
잠들기 전, 다시 이창교 번호를 누른다. 여전히 파워오프 멘트가 나왔다.
하긴.
전화 받을 기분이 아니겠지.
조금만 견뎌주세요.
이창교가 듣지도 못할 위로를 보냈다.
***
“……?”
이른 아침, 조경철을 만난 경도 머리에 현기증이 일었다.
“경주로 갔다고요?”
“그래.”
조경철이 긴 숨을 쉬었다.
공세은.
그녀가 경주로 떠난 건 어제 아침이었다. 연가 첫날 바로 경주로 출발한 것이다. 오비이락이다. 아귀가 짝짝 맞으니 권우일 측의 모략이 더 신랄하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았다. 아침 7시 40분이었다.
“타세요.”
경도가 자기 차를 가리켰다.
“어쩌려고?”
“경주까지 밟으면 약 4시간 걸립니다. 그럼 12시군요. 공세은 찾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면 남는 건 1시간밖에 없습니다.”
“오 박사.”
“가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출근은?”
조경철이 묻자 경도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재은 씨, 난데 오늘 연가 좀 달아줘.”
통화를 끝낸 경도가 네비를 찍었다.
경주.
이 또한 상상치 못한 지역이었다. 그 사이에 시간은 15분이 더 지났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돌아가시겠군.”
달리는 차 안에서 조경철이 경기를 했다. 경도가 전해준 관상풀이 때문이었다.
종이에는 공세은의 사진이 인쇄되었다. 얼굴 하나하나에 관상학적 용어와 관상풀이가 적혔다. 관상 해석까지 조경철에게 넘기는 것이다.
“아, 이게 말이 돼?”
조경철이 울상을 짓는다.
“됩니다.”
경도는 단호했다.
“어떻게? 천기는 오 박사 같은 사람이 읽는 거지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관상 후원회 회장님 아닙니까?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요.”
“그러니까 관상 후원회장 수년을 해먹었으니 관상가 행세를 해라?”
“아니면 다른 방법 있습니까? 권 시장에게 회유 당한 공세은의 입을 열 방법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나 못 해. 내가 말한다고 믿겠어?”
“핵심은 팩트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오 박사.”
“그럼 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보고만 있자고요?”
“후어어엉.”
“기자잖아요? 예전에 보면 잘도 몰아붙이시더라고요. 관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약점 잡았다 생각하세요. 조 회장님 카리스마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 이제 늙었어. 방금 전에 한 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어떤 때는 인터뷰할 내용도 잊어버려서 헛발질할 때가 있다고.”
“머리는 쓸수록 늡니다.”
“미치겠네. 천창, 변지, 보골, 천주골, 일각, 월각, 제우, 미릉골, 명궁, 인당, 산근, 연상, 준두, 간문, 어미…….”
“한참 때는 하루에 영어 단어 500개도 외우셨다면서요?”
“그거하고 똑같아? 영어 단어야 몇 개 틀리면 다시 외우면 그만이지.”
“관상용어도 똑같아요. 몇 개 틀린다고 공세은이 알겠습니까?”
“응? 그건 그렇네?”
“말 안 시킬 테니까 외우세요. 중요한 건 상괘를 낼 때의 눈빛입니다. 나는 전지전능자다, 깝치지 마라. 그 마인드로 레이저 쏘면 먹힐 겁니다.”
“말 안 시킨다며?”
“알겠습니다. 마지막 상괘가 핵심이니 그걸 잘 숙지하세요.”
“또.”
“…….”
“이마에는 세 개의 기둥이 있으니 천주골에 더불어 양 보골을 이른다. 이마의 모서리는 변지라 하며 부모궁을 뜻하는 일각 월각에…….”
조경철의 사투가 시작된다.
나이가 먹으면 기억력이 쇠퇴한다. 팀장들과 과장들에게 질리게도 보고 들었다.
심하면 시장실에 보고를 가다가도 뭘 보고하러 가는지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조경철의 몸서리는 엄살이 아니었다.
경도가 핸드폰을 바라본다. 들어온 문자가 없다.
문자는 경주가 가까워서야 들어왔다. 은빛이었다.
[명릉아파트 106동 201호]
공세은의 거처가 수배되었다. 아파트와 동호수가 나온 것이다. 이는 공세은의 본가였다. 인사카드에는 이런 사항이 나오지 않는다.
은빛에게 부탁한 게 그거였다. 인맥을 따고 들어가 케미가 좋은 여직원을 찾아낸 것이다. 하루 이틀 근무한 사람이 아니니 신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은빛의 덕을 톡톡히 보는 경도였다.
[고맙습니다.]
답문을 하고 속도를 높였다. 거처가 나오지 않으면 핸드폰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그 위험부담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숙소가 확인되지 않아도 비책은 있었다. 그러나 외길보다야 두 길이 바람직했다.
“안 받는데?”
톨게이트를 나온 후에 전화를 건 조경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한 번 더 시도한다.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죠. 문자 보내세요.”
경도가 대안을 주었다. 공세은이 외면할 수 없는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주열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문자가 날아갔다. 주열이는 공세은의 중학생 아들이었다.
바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우리 주열이 지금 어디 있어요?
공세은의 목소리가 저 혼자 질러나간다.
“만나서 얘기하죠.”
초조하던 조경철의 태도가 반전되었다. 관상에야 초보라지만 베테랑 기자였다. 아들 문제로 노심초사하는 공무원 한 사람 못 다룰 이유가 없었다.
“가지.”
통화를 끝낸 조경철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공세은은 아파트 공원에 나와 있었다. 먼저 도착한 조경철이 벤치에서 일어섰다. 조경철이 명함을 내밀었다.
“기자예요?”
공세은이 거부감을 보였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주열이 문제가 아니로군요?”
눈치를 챈 공세은이 그대로 돌아섰다.
“주열이 문제 맞습니다. 지난 달 17일 밤에 집을 나갔죠? 사랑에 빠진 여친하고 둘이요.”
조경철의 상괘가 날아갔다. 서두르던 공세은의 발이 멈췄다.
여친.
그게 정곡을 찔렀다. 사랑의 도피는 공세은의 관상으로 알았다. 확증은 은빛이 구해준 가족사진이었다. 중학생 아들의 간문에 윤기가 흘렀다. 잠자리까지 한다는 뜻이었다.
“그보다 조금 질러 가볼까요? 이번에는 당신 문제인데 도벽이 있어요. 최근 3개월 동안만 해도 네 번이나 민원인이 두고 간 물건을 슬쩍했죠? 지지난달 16일 오후, 그달 28일 오후, 그리고 지난달 9일과 이달 2일 오전 11시경…….”
“……?”
공세은의 어깨가 출렁이는 게 보였다. 조경철은 선 자리에서 묵직한 상괘를 거푸거푸 날렸다.
“내가 기자지만 관상을 좀 보지요. 당신 지금 횡액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공직도 날리고 아들도 영영 잃고 싶으면 그대로 가세요.”
“…….”
“아니면 협조하시든지.”
“관상이라고요?”
공세은이 돌아본다. 조경철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대놓고 무시함으로써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관상이지.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관상이 불러온 혼란이야. 툭 불거진 안구라 도벽증이 심한데 그 검은자위에 갈색물이 들었으니 자기 이익에는 편집증적으로 집착하지. 그 눈언저리의 와잠과 누당을 좀 보라지. 좁쌀 거품이 낀 것 같으니 아들 문제는 어제오늘이 아니잖아? 그러나 코가 높고 광대도 높으니 존심에 질투심만 하늘 높은 줄 몰랐지. 그뿐인가? 인중까지 짧고 휜 데다 선명하지 않으니 사려심은 바닥에 기분 내키는 대로…… 그런데도 자중하기는커녕 이런 분란을 일으켜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
“당신…… 기자 맞아요?”
“아닌 거 같아? 그럼 검색해 보든지. 하나로일보 기사가 수 백개 뜰 테니까.”
“우리 아들, 어디 있는지 안다는 거예요?”
“알기만 해? 당신이 개과천선하면 당장 돌아오게도 할 수 있어.”
“개과천선?”
“이창교 국장 일 알잖아? 아니 지금은 시장 후보자지.”
“이 국장님…….”
공세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신 그래도 되는 거야? 내가 이창교 관상도 봤는데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문제는 당신이었잖아?”
“관상……?”
“지난 달 9일 말이야. 당신 콧등의 정조를 보니 큰 곤욕을 치렀지? 그게 문제가 되었나?”
“…….”
공세은의 눈동자에 큰 파문이 일었다. 조경철은 그 찬스를 물고 들어갔다. 관상가는 아니지만 산전수전의 눈치가 있는 것이다.
“당신 아들은 지금 백척간두 위에 있어. 당신 간문에서 나온 기색이 광대뼈 뒤로 달리고 있단 말이지. 이건 사랑의 도피야. 이럴 때는 당신의 공덕이 필요해. 여기서 악행을 쌓으면 그 기색이 머리카락을 향해 나가지. 그럼 끝장이야. 아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 그러나 공덕을 쌓으면, 즉 착한 마음을 가지면 광대뼈로 진행한 기색이 눈밑 와잠으로 향하게 되지. 당신 아들은 그래야만 돌아와.”
“…….”
“선택하셔. 당신 악행이 계속되면 아들은 자살할 수도 있어.”
“자살?”
극단의 상괘가 나왔다.
공세은의 얼굴은 마침내 하얗게 질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