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04화
65. 공덕 좀 쌓겠습니다-3
음주는 없어도 가무는 있었다. 이제는 어린 연기자가 된 명혜가 축가를 불렀다. 그녀의 백댄서들은 놀랍게도 TNTS와 유빈이었다. 윤지도 한 자리 끼었다.
“와아아.”
갈채가 쏟아진다. OK 후원회관의 입주식은 대성황으로 끝났다.
상주 직원이 둘이다. 경도 사무실도 하나 배정이 되었다. 꼭대기 층의 구석 골방이었다. 별다른 치장 없이 깨끗하게만 단장했다. 관상을 봐주려면 필요한 공간이었다.
이날 들어온 후원금만 무려 5억에 가까웠다. 탁홍걸과 고세완 대표가 합쳐 1억을 희사했고 김병로 교수 형제 역시 1억, 탁 대표의 영화에 투자하는 반영희가 3천만 원을 내놓았다. 나아가 안선주와 부녀회장단들도 500만 원의 거금을 모아왔다.
더 감격스러운 건 안계홍의 후원금이었다. 그 역시 500만 원을 내놓았으니 조경철의 보고를 받은 경도는 어쩔 줄을 몰랐다.
문 여사와 김윤광 등이 먼저 자리를 떴다.
“두나 씨.”
돌아갈 채비를 마친 유빈이 경도 커플에게 다가왔다. 그녀도 이제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우리 오 박사 잘 키핑해요. 노리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러면서 슬쩍 TNTS를 의식한다.
“맞아요. 빨리 결혼식 안 올리면 우리가 대시할 거예요.”
TNTS가 귀여운 협박에 가세한다.
“아후, 겁나서 물이라도 떠놓고 식 올려야겠네요.”
경도가 받아친다. 이들과는 이미 막역한 사이였다.
“그건 용서 못 해요. 적어도 우리가 축가 부를 기회는 줘야죠.”
TNTS가 볼멘소리를 터뜨린다.
그녀들은 오늘도 인기 상한가였다. 유빈과 함께 참가자들 인증샷 찍어준 것만 해도 100번이 넘을 정도였다.
“선거 끝나고 곧 명혜 영화 시사회입니다. 오실 거죠?”
탁 대표가 행사를 상기시켰다. 그러자 명혜 귀가 쫑긋 선다. 안 온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명혜, 나 가도 돼?”
“네에.”
경도가 묻자 명혜 목소리가 천둥을 친다.
“그럼 가야지.”
“와아.”
명혜가 펄쩍 뛰며 좋아한다. 탁홍걸과 연예인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남은 하객 중에서 두 명의 관상을 봐주었다. 후원회의 기금 기반은 관상이었다. 이것으로 멤버를 늘렸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기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한 사람은 아들 걱정이었다.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입원한 동영상을 보니 코의 산근이 검붉었다. 다행이다. 이런 경우의 횡액은 목숨까지 건드리지는 않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습니다.”
경도가 상괘를 주었다.
“후우.”
그가 한숨을 돌린다. 병원에서는 위태롭다는 말만 들었던 차였다.
또 한 사람은 사건에 연루되어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경도가 보니 일각과 월각에 청색 찰색이 드리웠다. 이건 구속각이었다.
“아무래도 구속될 것 같습니다.”
경도가 말하니 그의 한숨이 깊었다. 하지만 이내 숨을 골랐다. 미리 알게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가 가능한 것이다.
다행히 위로가 되는 상괘가 보였다. 턱뼈 옆의 지고였다. 그곳이 밝으니 희망이 있었다.
“당장은 구속되지만 결국은 석방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고.”
그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두 사람을 끝으로 개시 궁합도 끝났다.
“이제 뒤풀이하러 가야지?”
조경철이 들어섰다. 거물들과 하객들은 돌아갔지만 찐 멤버들이 남은 것이다.
“예약하셨어요?”
“그럼. 안선주 부녀회장님이 친구분이 하는 산장음식점을 통째로 빌려주셨어.”
“부녀회장님께 신세 많이 지네요.”
“자, 그럼 가실까요? 오 박사님.”
조경철이 문을 열 때였다. 문밖의 복도에 낯선 사람이 보였다. 그는 하종규 권사와 함께 서 있었다.
“오 박사님.”
하종규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희 장학회 창립멤버십니다.”
하종규가 낯선 사람을 바라본다. 그의 이름은 이만진이었다. 그는 상포읍과 접한 한강면 토박이이자 유력한 재력가였다. 한강면과 동천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룬 이씨들의 정신적 지주로도 불렸다.
일천장학회의 지분도 20%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 지분은 하일천이 현금으로 보상할 거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니 경도와의 이해관계는 없었다. 그런데 왜 찾아온 걸까?
“실은 우리 이 사장님께서…….”
하종규가 경도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
경도가 바라보니 이만진은 돌담처럼 당당했다.
“그러죠. 조 회장님, 먼저 나가 계십시오.”
경도가 말했다. 분위기를 눈치챈 조경철이 문을 나갔다. 대신 이만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요청은 관상이었다.
일천장학회는 상포읍의 자랑이었다. 지방도시다 보니 읍면동의 경쟁구도 같은 게 있었다.
상포읍은 일천장학회로 K시 내에서 행세를 했었다. 이만진도 지분이 있었다. 그런 장학회가 OK후원회에 합병이 되었다.
80%의 지분을 가진 하일천의 뜻이니 막을 수는 없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놀라운 관상이 배경이라는 말이 나왔다.
20%의 지분을 돌려받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어떤 관상실력이기에 뚝심의 하일천이 필생의 소산이었던 장학회를 내준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관상을 잘 보오?”
대뜸 따지듯 물어온다.
“대략 흉내는 냅니다.”
“그럼 내 관상을 좀 봐주시오.”
“얼마짜리로 봐 드릴까요?”
“뭐라?”
“사장님은 사업가시군요. 사업도 그렇지 않습니까? 값을 많이 치르면 품질이 좋은 것을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을 사게 됩니다. 값싼 명품은 없는 것이니까요.”
“억짜리 관상도 볼 수 있소?”
“가능합니다.”
“허엇, 이거야 원…….”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일세.
이만진의 생각이었다.
“좋소이다. 내가 천만 원을 내리다. 그런데 틀리면 어찌 되는 것이오?”
“거기에 천만 원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뭐요?”
“그럼 시작할까요?”
“그럽시다. 내 아들인데 이 아이가 내 가업을 이을 수 있겠소, 없겠소?”
이만진이 사진을 꺼내놓았다.
“이 사장님.”
경도의 목소리가 준엄하게 열렸다.
“왜? 자신이 없는 것인가?”
“죽은 사람의 사진을 놓고 가업을 운운하니 기가 막혀 그럴 뿐입니다.”
“……?”
경도의 첫 상괘에 이만진의 이마가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주, 죽다니?”
“오관의 배합이 맞지 않는 데다 안신이 짧고 기색이 들떠 있지 않습니까? 분명 요절할 상인데 아니라면 귀신의 사진을 가져온 것이겠지요?”
“……!”
“그 아들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접으십시오. 살아 있다고 해도 콧날의 정조가 얇아서 가업을 잇지 못합니다. 가업을 잇는 아들을 원했다면 그 아이보다는 두어 배쯤 코가 단정했어야 합니다.”
“…….”
“아직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싶은 겁니까?”
“그, 그게…….”
“사장님은 일각과 월각의 검은 기색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또한 자식과 사별했다는 것이니 더 논할 일이 아닙니다.”
“허어.”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니라니?”
“원래는 자식을 둘 상인데 아들이 요절하지 않았습니까? 운명인지 이마에 잔주름이 많으니 양자를 기를 팔자이기도 합니다. 양자를 들이면 노년기가 편안해질 겁니다.”
“양자?”
“여기가 인당입니다. 여기 조금 위를 보고 거기가 낮아 보이는 사람만 피하면 될 것입니다.”
“…….”
“근심을 버리고 싶으면 제 말대로 하십시오. 그래야 천창과 산근, 지고에 들어앉은 푸른색이 사라지고 근심에서 자유롭게 될 겁니다.”
“…….”
“만족하지 못하면 조금 더 할까요? 기울어진 일각과 월각을 보니 어머니가 계모였죠? 나아가 3년 전, 해외에서 10억 정도 사기를 당했겠군요. 인당의 암색을 보니 지난해에는 건축공사로 큰 손해.”
“그만.”
이만진이 손을 내저었다.
“되었소. 인정합니다.”
“…….”
“나도 살 만큼 살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소. 그러나 신들린 관상이라니 그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에 확인한 것인데 과연 세상은 넓고 또 넓구려.”
“…….”
“약속한 천만 원은 내일 보내드리겠소.”
“아뇨,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돈을 말씀드린 건 사장님이 반감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장학회의 인연까지 생겼는데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혹 마음에 드는 양자를 만나거든 저를 찾아오십시오. 사장님과 잘 맞는지 상세하게 봐 드리겠습니다.”
“허어, 이 사람이 공작새는 되나 싶었더니 대붕이 아닌가?”
이만진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경도의 쿨한 태도에 감동을 먹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계속 후원을 하겠소. 솔직히 장학회가 넘어간다니 후원을 끊으려던 참이오만.”
그가 웃었다.
동천면과 한강면을 아우르는 집성촌 지역의 유지. 경도는 또 한 명의 우군을 인맥으로 갖게 되었다.
뒤풀이 장소는 대만원이었다.
본래는 경도와 두나, 조경철에 회관 직원들, 명혜 가족 등 몇몇이 식사나 하려던 자리였다.
거기에 안선주 부녀회장이 참석하면서 부녀회장단은 물론 이장단에 은빛과 민지 등 용포읍 올드 멤버들까지 의기투합이 된 것이다.
“여러분.”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이었다. 안선주와 전임 이장단 대표 김재웅이 커플로 일어서더니 좌중을 주목시켰다.
“긴급 제안이 있습니다.”
안선주 목청이 터진다.
“뭡니까?”
조경철이 물었다.
“바야흐로 선거철입니다. 아까 보셨죠? 지역구 후보자들과 시장 후보자들이 한 표 얻으려고 몰려온 거?”
“봤지요.”
“그런데 솔직히 진짜 인물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여기?”
부녀회장 하나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니, 자기 어딜 보는 거야? 우리 오 박사님.”
안선주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솔직히 우리 오 박사님처럼 지역에 헌신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낮에는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공무 돌봐, 쉬는 날이나 야간에는 어려운 사람들 관상에 후원에 질병치료와 취업까지. 이런 분 놔두고 우리가 왜 엉뚱한 사람들 찍어야 하냐고요?”
“옳소.”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가 쏟아진다.
“여, 여러분.”
난처한 건 경도였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는 우리 오 박사를 최소한 시장 자리라도 앉히자고요. 동의합니까?”
까.
안선주의 억양이 하늘까지 올라갔다.
짝짝짝.
대답은 박수로 나왔다. 일부는 기립박수다.
“잠깐만요.”
경도가 일어나 사태 수습에 들어갔다. 이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오경도, 오경도.”
안선주가 바람을 잡는다.
“회장님.”
경도가 고함을 치지만 달아오른 분위기는 쉽게 내려앉지를 않았다. 별수 없이 두나를 내세웠다.
“여러분.”
다시 한번 소리치니 실내가 겨우 조용해졌다.
“부녀회장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지금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급한 일?”
“인륜지대사 말입니다.”
“아이코, 우리 오 박사님 장가가는겨?”
구석의 부녀회장들이 자지러진다.
“몇 달 후에 제 신부가 될 채두나를 소개합니다.”
경도가 말하자 두나가 좌중을 향해 꾸벅 공손한 인사를 올렸다.
“뭐해? 박수.”
안선주가 또 바람을 잡는다. 그는 두나를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그 딱한 사연에 더불어 과정도 파악하고 있다.
경도 역시 안선주 때문에 시작된 두나와의 인연이었기에 미리 설명을 한 것이다. 그 날 안선주는 두나의 손을 잡고 많이도 울었다.
모진 시련을 딛고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두나. 이제는 SS병원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으니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장해, 너무 장해. 아유…….”
그날 안선주가 열 번도 더 한 말이었다.
짝짝짝.
박수의 의미가 바뀌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 자리를 빌어 정식으로 저희 결혼식을 공표합니다. 나중에 청첩장 보낼 테니까 잊지 마시고 기억했다가 많이들 와주시기 바랍니다.”
결혼식 선포다.
가족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였다.
“오 팀장님 쵝오.”
문 앞에 앉은 은빛과 민지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엄 팀장과 육 과장, 김상국 국장까지 두 팔로 ‘사랑해’를 만들어 보이며 애정을 표시한다. 경도의 보람은 하늘로 올라가더니, 거기서 별과 함께 더 찬란한 밤을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