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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좀 쌓겠습니다-2> (203/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03화

65. 공덕 좀 쌓겠습니다-2

결국 3급 부이사관 신설안 결재가 이 국장의 마지막 결재가 되었다. 권 시장도 이 안건에 대해 쌍수를 들고 찬성이었다.

재선을 노리는 그였으니 공무원들의 환심을 살 필요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경도가 가려운 데를 긁어준 것이다.

마득렬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권 시장의 작품이 되었다. 모든 공무원의 치적은 시장에게 귀속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직제의 신설에는 시간이 걸리니 당장 3급을 임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무원 정원 조례 시행규칙 개정 등의 실질 조치가 남았다.

그래도 홍보효과는 충분했으니 권 시장은 이걸 재선 후에 조직 활력을 꾀하는 동력으로 쓸 복안이었다.

육 과장의 근무평정은 두 말없이 A였다. 성과상여금도 S급을 예약하는 마득렬이었다.

그 날이 왔다.

이 국장의 사표가 경도에게 접수되었다.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해 사직합니다.>

문구를 본 경도가 깜짝 놀랐다. 농담처럼 던진 말을 그대로 써놓은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네.”

작별인사에 나선 이 국장이 경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손으로 그 손을 잡았다. 이 국장에게 경도가 특별하듯 경도에게도 이 국장이 특별했다. 공직생활 동안 그가 멘토였으며 등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인을 보내는 마당이니 착잡했다. 그러나 곧 떨쳐버렸다. 그는 곧 돌아온다. 경도는 그의 당선을 믿었다.

K시의 시장선거는 4파전이 되었다.

<권우일 현시장> <이창교 전 국장> <홍상선 전의장> <박태병 전 청와대 행정관>

후보자 등록 후에 홍상선이 찾아왔다.

“오 박사.”

사무실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한다.

“나 어떤가? 재수에는 빛 좀 들겠나?”

관상부터 묻는다. 지난번에 낙선했으니 이번이 재수가 되는 것이다.

“기색이 좋으십니다. 사고 한 번 치시겠는데요?”

경도가 답했다. 실제로 그의 기색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시장실에서 만나세.”

그는 기염을 토하며 돌아갔다.

초반 여론조사는 권우일의 우세로 나왔다. 판세는 1강 2중 1약이었다. 2중은 홍상선과 이창교였지만 2주 후의 여론조사에서 판도가 바뀌었다.

바닥을 다진 이창교의 저력이 슬슬 살아났으니 권우일과 2파전 양상으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마지막 인사가 단행되었다. 소규모였지만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기류가 강했다.

마득렬은 여기서 팀장을 달았다. 4명의 후보자 명부에서는 밀렸지만 경도가 5명 후보군으로 바꿔서 밀었다. 마득렬의 인당과 역마의 기색이 밝아졌으니 그걸 믿은 것이다.

결과는 승진으로 돌아왔다. 인사위원회 심사에서 3급 부이사관직제제안 기획력이 공감을 산 것이다.

“팀장님.”

결재가 떨어지자 마득렬이 펑펑 울었다. 후보자 명부에서 밀리자 포기하고 있던 그였다. 그걸 밀어 승진을 관철시킨 경도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나 참, 마 주임도 이제 나랑 같은 팀장이야.”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거 마 주임 힘으로 따낸 승진이야. 3급 부이사관 직제신설은 아무나 제안하나?”

“그거야 팀장님께서…….”

“와이프한테 연락했어?”

“아직요.”

“그럼 빨리 전화해. 가족들이 가장 기뻐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건 먼저 받고.”

경도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보라에게 부탁해 미리 준비한 꽃이다.

“팀장님…….”

“나도 초보 팀장이라 부족한 것뿐이었을 텐데 여러모로 도와줘서 고마워. 그래서 꽃다발은 내가 1등으로 주고 싶었어.”

“팀장님…….”

“저는 2등요.”

재은의 꽃다발이 그 위로 올라갔다.

“시보지만 3등으로 올려도 될까요?”

보라도 꽃을 든 채 물었다.

“당연하지.”

마득렬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아, 진짜 저놈의 승진이 뭔지. 마음 같아서는 재은도 보라도 6급에 5급까지 펑펑 달아주고 싶은 경도였다.

득렬의 가족 통화를 위해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제 강재은 차례네…….’

복도로 나오며 생각했다. 재은의 승진은 무리가 없었다. 워낙 무난한 탓에 최근 3년간의 근무평정이 압도적이었다.

문제는 자리였다.

어떤 자리로 보내야 할까?

인사팀장 자격으로 7급 자리 정도는 경도가 정할 수 있었다. 역량도 좋아 어디로 찔러넣어도 제 몫을 할 직원이었다. 마득렬이 승진이니 제 자리 발령을 낼 수도 있다.

보라도 쓸만하니 인사팀에 눌러 앉힐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직원 하나는 새로 받아야 했다.

‘누가 좋을까?’

곰곰 생각하는데 계단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창교 국장님요?”

남자 직원의 목소리였다.

“그래.”

권태술이다.

경도 걸음이 본능적으로 멈췄다.

“뭐 소스 좀 없어? 수행 많이 했잖아?”

권태술이 묻는다. 좋은 뉘앙스가 아니었다.

“글쎄요. 워낙 반듯한 분이시라서.”

“이거 왜 이래? 그분이 무슨 공자님이야? 겉으로는 그래도 단점이나 비위가 있었을 거 아니야?”

“굳이 털자면 그렇기야 하지요.”

“그것 좀 입수해서 가져와. 그럼 내가 이번 실수 눈감아줄 테니까.”

“…….”

“이번 주말까지야. 아니면 근무 중에 모텔 들어간 거 징계 올릴 줄 알아.”

“아, 그거야 여친이 갑자기 마산으로 내려가는데 만날 시간이 마땅치 않아서 그런 건데…… 처음에는 얼굴만 보고 오려던 거라고요.”

남자 직원이 한숨을 쉰다.

태술이 복도로 나왔다. 메모를 보며 화장실로 들어선다. 거기서 경도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 오 팀장?”

태술의 액션이 과했다.

“바쁘네?”

“선거기간이잖냐? 시장님 공직기강 특별령 떨어졌다. 너네 팀원들도 사소한 거 잘 지키라고 전해라.”

“고맙다.”

“아, 이놈의 선거. 이제 시작이니…….”

태술이 괜한 짜증을 낸다.

그 관상이 고스란히 경도 눈으로 분석이 되었다.

이마는 예술이다. 그는 원래 그랬다. 아빠 찬스에 이어 엄마 찬스도 가능한 나름 금수저 집안이다. 현 시장과도 연결이 된다. 어쩌면 권 시장은 지능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거리 두는 척 한직에 방치했다. 용포읍의 태술을 불러들이지 않은 게 증거였다. 그러다 결국 칼을 뽑았다. 임기 말, 재선을 앞두고 적절한 시기에 친위대로 컴백 시킨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상황으로 인해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게 되었다.

4년 후 5급.

어쩌면 태술이 그리는 미래일 것이다. 권 시장이 재선을 한다면 가능하다. 6급에서 5급이 되는 승진 최저연한은 4년이다. 산술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팀장 승진으로 미간을 물들인 엷은 핑크색은 아직 유효했다. 그러나 확장형이 아니다. 8급에서 7급까지 초고속으로 달리던 때와는 기세가 달랐다.

용포읍에서 쌓은 공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답은 역시 코의 산근이었다. 그대로 공덕을 쌓으면 무난하게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어이 횡액의 봉인을 열어버린 것이다.

허영심에 더불어 권모술수에 능한 성격. 잠자던 봉인이 열린 것은 아무래도 권 시장 탓이었다. 당숙의 신뢰가 실리니 제 버릇이 튀어나온 것이다.

징조는 눈에 있었다. 붉은 기색이 서리기 시작했다.

“권 팀장.”

상괘를 엿본 경도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왜?”

“용포읍 어땠냐?”

“좋았지.”

“다시 가고 싶지 않냐?”

“간다면 읍장으로나?”

“내가 동기에다 같은 팀에서 일한 인연으로 말해주는데 너는 이제부터 진짜 공덕을 베풀어야 돼. 그러면 읍장으로 갈 수 있을 거다.”

“너한테는 최대한 베푸마.”

“…….”

“간다.”

태술이 경도 어깨를 두드리고 나갔다.

승진.

때로는 독이 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태술이 그랬다. 그는 다시 브레이크 밟는 것을 잊었다. 시장이 밀고 있으니 가속이 붙을 뿐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감사담당관실 팀장이다. 용포읍처럼 경도가 옆에 끼고 ‘교육’ 시킬 수 없었다.

하위직 후속인사가 단행되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종합민원실과 용포읍은 신경 좀 써주었다. 용포읍이 각별한 것은 경도가 근무한 곳이라서가 아니었다.

다른 읍면동 대비 인구가 5배 이상 많다. 동시에 K시의 중심 야전이다. 여기가 흔들리면 시의 모든 지표가 흔들린다.

떠나는 마득렬 후임은 김수홍으로 정했다. 지방 전문대 출신으로 읍면동에서만 굴렀다. 지난번 인사이동 때는 경도에게 인사고충상담을 했었다. 그때 눈여겨보았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K시에 혈혈단신이었다. 성실하지만 묵묵했다. 하필이면 아부 좋아하는 팀장과 면장을 만나 근무평정도 죽을 쒔다. 성과상여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심복(心福)이 있었다. 인중 좌우의 식록이 밝았다.

뜻밖에도 그의 상담주제는 그가 데리고 있던 신규에 관한 것이었다.

여직원인데 면장이 성추행성 추파가 심하다고 했다. 요로를 통해 알아보니 그 면장의 성향이 그랬다. 공무원에는 아직도 이런 성향의 고참들이 많았다.

자기보다 동료의 고충.

그 마음이 바르니 다음 인사에 반영해야겠다고 기억하던 차였다.

식록 때문인지 인중도 길었다. 윗입술이 치아를 가린다. 사람을 부릴 줄 알고 어려운 사람을 대변한다.

관골에 홍색, 황색, 미색의 3색이 조화를 이루니 평판도 좋았다. 그 매력은 눈으로 옮겨간다. 눈동자가 작으니 신중하고 야무진 데다 사려심도 깊다.

최상은 아니지만 K시의 인사행정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 나이도 재은 보다 한 살이 어려 맞춤했다.

자료실의 송혜영은 공보실로 보내주었다. 그녀의 인당에 미색이 피고 있으니 이제는 뭐든 잘할 것 같았다.

인사 파일을 업로드하고 서둘렀다.

오늘은 특별한 행사가 있다.

바로 OK후원회관 입주식이었다.

“오 팀장님.”

축제 분위기는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민지와 은빛이었다. 엄 과장에 육 과장, 김상국 국장 등도 보였다.

“오늘 후원회관 입주식이지? 우리도 참석 가능해?”

은빛이 살갑게 물었다.

“읭?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일급보안이었는데?”

“조 지국장님 쪼았지. 우릴 뭘로 아는 거야?”

“아, 조 회장님…….”

경도가 웃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핵심멤버들만 초대해 조촐하게 치르려던 일이었다.

“그럼 즉석 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순발력으로 때우고 차에 올랐다.

“와아.”

후원회관에 도착하자 민지와 은빛의 입이 벌어진다. 4층 규모의 후원회관은 설계부터 기가 막혔다.

사실 돈은 들어가지 않았다. 경도의 관상 도움을 받은 설계사가 무료봉사를 했고 건설회사까지 소개했으니 거의 헐값에 지은 셈이었다.

경도 마음에 드는 건 조경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정다운 나무와 꽃들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지친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줄 것 같았다.

차량은 이미 수십 대가 도착을 했다. 그중 한 대에서 두나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시청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는 사람은 이미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던 터였다.

“들어가시죠.”

경도가 입구를 가리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입구 쪽에서 조경철과 이상록이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K시의 잠룡들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지역구 후보자는 물론이오, 시장후보자들까지 다 몰려와 있었다.

아직은 본격 선거운동 전이었다. 그래서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 자격으로 온 것까지 뭐라 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요구하는 예우였다. 그러나 그들은 후원회의 정예 멤버가 아니다. 조경철이 단호하니 작은 실랑이가 생긴 것이다.

정리는 문 여사의 등장으로 시원하게 끝이 났다. 문 여사는 장관직을 수행 중인 아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 차 뒤에서 내린 사람은 김윤광이었다.

“무슨 문제죠?”

문 여사의 목소리는 준엄했다. K시에서 행세하는 사람치고 문 여사를 모를 수 없었다.

대통령이 자문역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그 아들은 차기 총리로 꼽히고 있다.

당이 달라도 그 파워를 모를 수 없는 것이다. 문 여사는 아들인 차 장관, 김윤광 등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그게 시위였다. 상석을 요구하던 K시의 잠룡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그 뒤에 앉았다. 권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가 앉은 자리는 하필 이창교의 옆이었다. 미리 도착한 이창교는 군말 없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엄청난 대조가 되는 순간이었다.

경도가 들어서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선생님.”

이제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던 명혜가 윤지와 함께 달려왔다. 어린이는 둘만이 아니었다.

용포읍을 중심으로 수백 어린이를 지원했으니 고마움을 표하러 참석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죄다 상석이었다. 조경철의 결정이었고 경도도 환영이었다.

어린이 우선에 시비를 걸 인간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 박사.”

안선주와 부녀회장단이 그냥 있을 리 없다. 그녀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극성(?)에 밀렸지만 김재웅과 전혁근, 홍상표, 박경국 등의 이장단도 나름 구름 떼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도와 인사를 나누었다.

김윤광의 부친인 김병로 교수 형제는 물론이오, 고세완 대표에 백지애, 노성봉, 계치훈, 계순철, 유빈과 TNTS에 탁홍걸 대표, 심지어는 방 기자와 양왈종 기자 등도 취재에 더불어 축하차 참석해 주었다.

“아버님이십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자 하종규가 부친을 소개했다. 부친은 아내 은희경이 부축하고 있었다.

“늙어 눈먼 내 허물을 잡아주어 고맙소.”

하일천이 경도 손을 잡았다.

다시 보아도 그 운명의 촛불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입과 코의 준두, 명궁과 귀에 상극의 기색이 선명하니 목숨이 경각이다.

어쩌면 경도의 예상보다도 빨라 며칠 내로 영면에 들지도 몰랐다.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될 일이었다.

이날 하객의 백미는 대통령의 영애 이규리였다. 대통령 부부는 중국 국빈방문 중이었다. 그럼에도 부득 영애를 보내 자리를 빛내주었다.

“……!”

구석진 자리의 권 시장은 애가 끓었다. 처음에는 현직 시장을 홀대하는 것에 대한 불쾌였다. 그러나 거물들조차 이런 상황이니 고이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이창교와 경도를 번갈아 훑었다. 만만하게 보던 이창교가 문득 거인처럼 보였다.

그렇게.

경도를 돌아보는 순간 그는 문득 알 수 없는 절망과 낙담을 느꼈다.

만약.

오경도가 시장에 출마한다면?

그런 가정을 가지고 입주 축하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일면을 체크해 나갔다.

용포읍 최고의 후원단체로 거듭난 OK후원회. 이제는 상포읍의 자랑이던 일천 장학회까지 흡수 통합.

열광적인 부녀회장단과 이장단들.

등골이 오싹했다. 이런 지지기반에 이런 열광이라면 오경도는 당장 지역구 의원에 나가도 당선이었다.

‘윽.’

가슴이 콱 막혀왔다.

그래 봤자 6급이었다. 시청 안에서 경도의 위치는 낮고 또 낮았다. 여기서 보니 경도의 능력이 제대로 보였다. 진짜 강적은 이창교가 아니라 오경도였던 것이다.

“오늘 우리 OK후원회관에 더불어 상포읍 일천장학회와의 통합식 축하를 위해 참석해 주신 내외귀빈 여러분, 후원회 멤버 여러분 고맙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후원회의 관례에 따라 참석 내빈의 소개는 생략하고 축사를 해주실 고문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경철이 마이크를 잡자 문 여사가 일어섰다.

문 여사가 고문?

권 시장은 한 번 더 아찔해졌다. 온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전임 총리의 부인이자 현직 장관의 어머니.

현대판 신사임당으로도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 어떤 공직이나 감투도 마다하는 사람.

그렇기에 권 시장도 지난 선거전 때 지지연설을 부탁하다 칼거절을 먹었다.

그러나 경도의 후원회는 달랐다. 축사를 받아들였다는 건 경도를 향한 마음이 각별하다는 방증이었다.

‘오경도…….’

관상 잘 보는 6급 팀장.

그것도 자신의 허락하에 겨우 승인이 난 승진.

이때까지 권 시장의 뇌리에 자리 잡았던 우월감이 산산 조각나고 있었다.

짝짝짝.

그 아찔함 위로 박수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행사가 끝난 것이다. 돌아보니 뒤쪽의 경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초로의 노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 뒤로는 어느새 인의 장막이 펼쳐졌다.

언제 왔는지 하객은 1,000여 명에 가까웠다. 경도에게 관상도움을 받은 이들과 후원을 받은 이들이 SNS를 가동해 몰려온 것이다. 경도는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공식 행사가 끝날 때까지도 결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 마음에는 오직 경도가 우뚝했다.

인사말이 끝나자 그들의 박수가 경도를 향했다.

뜨겁고 따뜻했다.

오경도.

권 시장의 눈에 비친 그는 더 이상 6급 팀장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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