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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좀 쌓겠습니다-1> (20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202화

64. 공덕 좀 쌓겠습니다-1

강재은과 마득렬.

경도와 함께 호흡을 맞춘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달리 말하자면 다음번 인사 때는 다른 부서로 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재은은 8급이고 득렬은 7급이다. 8급을 7급으로 승진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득렬이었다. 7급에서 6급이 되는 것은 팀장을 의미한다. 박 터지는 경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7급이 6급으로 가려면 일단 최근 근무평정부터 잘 받아야 했다. 7급 이하의 근무평정은 5급 과장이 하고, 6급과 5급의 근무평정은 4급 국장이 한다.

9-8-7급의 근무성적표 권한을 틀어쥔 과장들은 이때가 되면 인간적인 집중 로비에 시달린다.

-과장님, 애가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팀장 될 기회 좀 주십시오.

-동기들보다 3년이나 처졌습니다. 한 번만 밀어주세요.

-저만 맨날 B입니까? 저도 한 번 A 주세요.

읍소에 더불어 반협박(?)도 불사한다.

자치행정과는 나름 순도가 좋은 직원들이 포진을 했다. 학력이 좋은 직원도 있고, 엘리트 코스를 달리는 직원도 있고, 인맥 라인을 갖췄거나, 실력을 인정받은 직원들이 많은 것이다.

육 과장 머리가 뽀개질 일이었다. 직원들을 무리 없이 데리고 있으려면 고과평점에서 잡음이 없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능력이 엇비슷한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A를 주는 때가 많았다.

육 과장이 매긴 근무평정은 고스란히 경도 손에 들어온다. 아니, K 시청의 모든 고과평정이 그랬으니 그들 모두의 평정 취향을 꿰고 있는 경도였다.

물론 고과평정이 승진으로 100퍼 이어지는 건 아니다. 마지막 뒤집기로 ‘인사위원회’의 취향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성향의 심사진들이 포진하니 때로는 역전도, 반전도 가능했다.

아무튼.

육 과장의 눈에 들려면 한 건이 필요했다. 그는 루틴에 충실하는 동시에 창의적인 업무를 중시했다.

창의적인 업무를 못할 바에는 루틴에 충실하면 B는 받는다. 그러나 루틴은 여간해서 부각이 되지 않는다.

“마 주임.”

경도가 득렬을 불렀다.

“예, 팀장님.”

“커피 뭐 마실래?”

“드시게요? 제가 타오겠습니다.”

“아니야. 오늘은 내가.”

“그럼 저는 라떼로 하겠습니다.”

“알았어. 상담실에 들어가 있어.”

그를 먼저 들여보내고 커피를 뽑아왔다. 팀원이 넷이니 당연히 네 잔이고, 두 잔은 재은과 보라에게 건네주었다.

“저한테 시키시지요.”

보라가 어쩔 줄을 모른다. 조직에 적응하려는 그 모습이 고맙다. 주관적인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돌아보라.

똘망하고 성실한 후임 싫어하는 선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기주장만 강한 신규들이 바글거리는데 보라는 그러지 않으니 정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마셔.”

상담실에 들어선 경도가 득렬에게 커피를 건넸다.

“하실 말 있으세요?”

“있지.”

“이번 인사에서 저 보내시게요?”

미리 알고 묻는다. 짬으로 쳐도 인사팀 왕고였다. 경도보다 먼저 온 고참이니 분위기 모를 리 없었다.

“팀장님 밑에서 좀 더 배우고 싶은데…….”

“나 가르친 사람이 왜 그래?”

인사팀으로 왔을 때의 일을 상기시켰다. 득렬이 고참이었으니 적응하는데 여러 신세를 졌었다.

“곧 근평이잖아?”

“예…….”

“승진하려면 준비 좀 해야지.”

“예?”

“육 과장님 말이야, 근평 좀 빡센 분이야. 웬만해서는 읍소 같은 거 칼거절이고.”

“알고 있습니다. 미스터 객관이시라는 거.”

“그렇다고 주는 대로 받을 수 없잖아?”

“…….”

“사고 한 번 쳐봐.”

“사고요?”

“현재 우리 시 내부승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직급이 몇 급이야?”

“4급입니다.”

“정원이 몇이지?”

“7국에 보건소장까지 합쳐 8명입니다.”

“각 국장이 거느린 과는?”

“보통 5-6과입니다.”

“바꿔 말하면 5-6과의 편제라면 국장 한 자리가 나온다는 뜻이네?”

“그렇습니다.”

“그럼 국장이 여덟이면 어떻게 되는 거야?”

“팀장님?”

경도의 의도를 알아차린 득렬의 눈빛이 튀었다.

“대답이나 해.”

“국이 여덟이면 부이사관이 하나나 둘은…….”

“우리 시 실정은?”

“없죠.”

“그거 한 번 만들어 봐.”

“예?”

“부이사관 자리 하나 만들어보라고.”

“팀장님?”

“뭐 어쩌라는 게 아니야. 딱지 맞으면 어때? 내가 보기에 과장님들도 국장님들도 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게 3급 부이사관 자리야. 조건이 맞는데 왜 못해? 누군가 깨뜨리고 나가야지.”

“하지만…….”

“인사팀 역할이 뭐야? 언제까지 시장님이 내려주는 기준에 목을 맬 건데?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닌데 궁극적인 기획안 한 번 못 올려? 한 번 만들어 봐. 결재가 되든 안 되든 내가 밀어줄 테니까. 그걸로 시 인사행정의 변화는 물론이고 마 주임 근무평정도 A 한 번 노려보자고.”

“팀장님.”

“못하겠어?”

“아닙니다. 해보겠습니다.”

득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도 알고 있다. 이대로는 A등급 받기 어렵다는 거.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기획안 같은 것을 올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팀장이 올리라고 해도 큰 기대는 어렵다.

그러나.

이 팀장은 오경도였다.

육 과장은 물론이고 이 국장에 권 시장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저 위로는 도경의 최고 간부들, 대통령과 국회까지도 인맥이 있으니 시장결재에 더불어 조례 통과도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굳은 각오를 남긴 득렬이 상담실에서 나갔다.

재은도 눈치를 깐다.

그러나 불만 같은 건 없었다. 다른 팀장이라면 자기 살 궁리만 한다. 경도는 팀원도 자기 일처럼 챙기고 있었다. 그러니 불만 따위는 저 먼 안드로메다의 일이었다.

나흘 후에 초안이 나왔다.

<일자리복지처장>

최근 정부의 기조처럼 일자리와 복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둘 다 격무부서이자 기피부서들이다. 복지민원의 어려움은 경도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좋은데?”

방향이 잘 맞았다. 득렬의 기를 살려주었다. 국장이라고 다 같은 무게가 아니다. 국장도 기피하는 자리가 있으니 이런 업무를 관장하는 국이었다.

업무는 늘어나고 국민의 눈높이는 한이 없다. 온갖 풍상을 겪은 민원을 대하다 보니 깨지는 건 일선 공무원들뿐이다. 그 고충은 팀장을 거쳐 과장과 국장에게 전가된다.

그러면서도 파워는 없다. 그렇게 희생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니 경도의 칭찬은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잘 마무리 지어봐. 시장님 책상까지 택배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득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희미하던 그의 중정과 인당이 조금 밝아진 게 느껴졌다. 자신감이다. 슬슬 윤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팀장님, 국장님요.”

오후에 보라가 전화를 돌려주었다.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전화를 받았다.

“바쁜가?”

“괜찮습니다.”

“그럼 내 방에 좀 오시게.”

“알겠습니다.”

통화는 짧았다.

“마 주임, 잠깐.”

득렬을 불러 초안 출력물을 받아들었다. 원래는 완성된 기획안을 보여주려던 경도. 득렬이 그린 밑그림이 좋으니 미리 선을 보일 참이었다.

득렬의 어깨를 툭 쳐주고 복도로 나왔다.

“어서 오게.”

문을 열자 이 국장이 경도를 반겼다. 상의를 벗지 않은 상태였다. 그건 외출이거나 청내 순시를 마치고 왔다는 뜻이었다.

“2시간 연가를 썼네.”

이 국장이 먼저 경로를 밝혔다. 얼핏 본 이마는 더 밝아졌다. 길조였다.

“안 그래도 한 번 뵈려던 참이었습니다.”

경도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결재의 요령이다. 상사가 기분 좋을 때를 이용하면 확률이 높았다.

“왜?”

“실은 저희 팀에서 이런 기획안을 한 번 만들어보았습니다.”

경도가 득렬의 출력물을 건네주었다.

“부이사관 신설?”

이 국장도 놀란다. 그만큼 3급 부이사관 자리는 한계선이자 넘사벽이었다. 어쩌면 부시장 때문일 수도 있었다. 부시장 역시 3급 부이사관이다. 주로 국가직에서 내려온다. 민선 시장을 보완하는 제도다.

그런데 지자체 자체에서 3급이 나오면 부시장의 자리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지자체들은 아예 생각 자체를 않고 있었다.

“우리 마 주임 생각인데 과거 정부에도 부총리는 한 분뿐이셨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격무부서를 우대한다는 정부 방침도 있으니 그 국을 격상시켜 처로 만들면 부시장 직제와 충돌없이 직원 사기를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경도가 쫙 질러나갔다. 혹시라도 그냥 사장될까 싶은 우려 때문이었다.

“절묘하군.”

다행히 이 국장은 긍정적이었다.

“그렇습니까? 관철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과장님 결재 맡은 후에 국장님과 시장님께 차례로 올려 보려 합니다.”

“나는 찬성일세.”

“감사합니다.”

“기안자가 마득렬 주임이라고?”

“방향이 옳은 거 같아서 제가 지원하고 있는데 곧 완성본이 나올 거 같습니다.”

“역시 자네가 팀장이 되니 스케일이 커지는군. 그래야지.”

“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팀원 챙기려는 그 마음 내가 모를까? 그보다 자네 다른 걸 고백하게. 이것보다 더 큰 사고를 쳤던데?”

“제가요?”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사고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또 저에 대한 투서가 들어왔습니까?”

“들어왔지. 아주 굉장한 투서.”

“혹시 OK 후원회나 상포읍 장학회 건입니까?”

“그것도 있었지? 후원회관이 입주 직전이라고?”

“예. 하지만 특혜나 비리는 없었습니다.”

“그걸 누가 모를까? 그런데 상포읍 장학회 건은 또 뭔가?”

“실은…….”

경도가 쌍둥이 건에 대한 자백(?)을 했다.

“맙소사, 상포읍을 대표하는 일천 장학회가 자네의 후원회로 흡수되었다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 이제 보니 큰일 날 사람이군. 그걸 왜 나한테 말 안 했나?”

“너무 제 자랑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그럼 자네 자랑을 나한테 해야지 누구한테 하나? 내가 자네한테 그것 밖에 안 되나?”

“죄송합니다.”

“됐고, 그게 아니고 다른 일이네.”

“그것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왜 없어? 듣고 보니 일천 장학회 일이랑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인데?”

“같은 장소라고요? 아…….”

경도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같은 장소라면 김윤광이었다. 그렇다면 시장 공천?

“국장님.”

경도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당의 접촉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도 말게. 흉측한 사람 같으니…….”

“김윤광 의원님을 만나셨습니까?”

“일을 다 꾸며놓고 시치미를 뗄 텐가?”

“시장 공천을 내락 받으셨군요?”

경도 표정이 자꾸 밝아졌다.

“아니면? 자네를 철썩처럼 믿는 분에게 마치 내가 당선이라도 할 것처럼 말해버렸으니 무슨 재주로 고사를 한단 말인가?”

“축하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경도가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아부나 아첨이 아니었다. 행정의 능력자이자 충분한 인품을 갖춘 예비시장에 대한 경의였다.

“나참…….”

“잘 하실 겁니다.”

“매번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용포읍에서는 국장으로 밀어내면서 간 떨어지게 하더니.”

“저는 좋기만 한 걸요.”

“덕분에 권 시장님 하고는 원수 제대로 지게 생겼네.”

“시를 위하는 길이니 감수해 주십시오.”

“끙.”

“출마하시는 거죠?”

“글쎄, 내 능력봐서는 여기 국장자리도 벅찬데 자네를 제대로 밀어주려면 시장이 되면 더 좋기는 하겠고.”

“저 안 밀어주셔도 되니까 시장이 되셔서 국장님의 시정포부를 시원하게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오 팀장.”

“이건 제 관상이 아니라 국장님 운명 같습니다. 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여당에서 선택한 것이니까요.”

“김윤광 의원님을 국회로 보낸 건 자네가 아닌가?”

“그분도 그분 역량으로 당선되신 겁니다. 국장님도 그 길을 가실 거고요.”

“허어, 이것 참.”

“그럼 사퇴기한이 임박하니 사표나 준비하시죠? 문구는 제가 추천해드릴 수 있습니다. 저 신규 때 사표 많이 준비해본 경험자거든요.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해 사직합니다.”

“이 사람…….”

기초단체장 출마를 위한 공무원의 사퇴 기한은 90일 전이다. 이제 코앞이었다. 그러나 권 시장은 사퇴하지 않는다. 그는 재선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재선이나 3선에 도전하는 현직 단체장은 별도의 사퇴 규정이 없었다.

‘이 국장님이 시장 출마?’

와우.

복도로 나오자 괜히 신바람이 났다. 그라면 최고의 시장이 될 것만 같았다. 당선되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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