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201화
63. 그 쌍둥이는 아빠가 ‘둘’입니다-4
“아기 유전자 검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경도가 물었다.
가장 궁금한 일이었다.
하일천의 관상에서 해독된 천기는 아들 둘이었다. 그것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도 오 박사님 말이 맞았습니다. 아들은 저희 아버님 유전자였고 딸은 그 남편의 유전자였습니다. 유전자 검사소에서도 굉장히 드문 일이라 세 번이나 반복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
경도 표정이 정지되었다.
-이런 관상이라니.
스스로 상괘를 내고도 감탄할 뿐이었다.
“여자와 그녀의 남자는 중국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왔더군요. 여자는 절도에 사기죄였고 남자는 살인미수에 사기, 폭행까지 다양했습니다.”
“…….”
“그럼 부친은요? 검사를 해보셨습니까?”
“그것도 오 박사님 말이 맞았습니다.”
“그렇죠?”
“쌍둥이 일이 맞아떨어지니 아버님이 기절하시더군요. 남자를 만나는 눈치는 차렸는데 친오빠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해서 제가 오 박사님 일을 전해드렸습니다. 제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
“아버님이 또 한 번 놀라시더군요. 신이 아니냐면서…….”
“…….”
“해서 건강 문제도 이야기 드렸더니 다리 수술 후로 괜찮다가 최근 몇 달 전부터 은근한 몸살 기운이 사라지지를 않는다며 응하셨습니다. 강남에 있는 SS 병원으로 갔는데…….”
“…….”
“폐암 말기가 나왔습니다.”
“……?”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데까지 번졌더군요. 올 초의 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때 X-레이를 찍은지라 그때 별문제가 없었던 게 이렇게 되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의사가 그러더군요. 건강검진 X-레이로는 한계가 있는 거라고.”
“말기…….”
“오 박사님 말대로 3-4개월 정도 남았다고 하시면서 병원에서는 해드릴 게 없다고 그냥 편안하게 모시다가 통증이 심해지면 오라고 하더군요. 말기 암환자들 전문요양원에 입원서 써드린다고…….”
“…….”
“그다음 날은 온종일 일어나지 않으시더니 아까 일어나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
“저한테 오 박사님에 대해 물어요. 제가 사방으로 수소문해서 OK 후원회 설립자인 것 같다고 했더니 이걸 내놓으셨습니다.”
하종규가 봉투를 내밀었다.
“뭐죠?”
“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노욕에 눈이 멀어 부끄러운 짓을 했다. 모든 게 부끄럽지만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건 내 장학회뿐이다. 그러니 오 박사님께 넘겨드리라고 하더군요.”
“장학회를 제게요?”
“제게는 재산 일체를 넘겨주셨습니다.”
“권사님.”
“이건 제가 내는 복채입니다.”
그가 또 하나의 봉투를 올려놓았다.
“권사님.”
“저는 제 부친보다도 더 부끄럽습니다. 진실한 종교인이라면 그 마음이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어야 하거늘 실제로는 오직 제가 가는 길만 꽃길이고 다른 것들은 죄다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그 편협함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오 박사님처럼 한길로 매진해 일가를 이룬 분조차 관상이라는 말을 영적 능력으로 포장하고 나왔지 않습니까? 부끄러움이 하늘에 닿을 지경입니다.”
“…….”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성의를 담았으니 제 부친께서 양도하는 장학회에 더불어 좋은 일에 보태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사님, 이럴 수 없습니다. 장학회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더구나 일천 장학회는 그 규모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제가 미리 조경천 기자님께 전화해서 상담을 마쳤습니다. 부친께서 운영하던 장학회의 역사가 무구하기는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실질적으로 돕는 데는 OK 장학회를 쫓아갈 수 없겠더군요. 더구나 곧 후원회관까지 개관하신다니 이 기회에 K시의 후원기관을 합쳐 더 큰 길로 가는 밀알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사님.”
“자칫했으면 저 사기꾼들에게 송두리째 뺏겼을 일입니다. 오 박사님이 맡아주시면 아버님도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겁니다.”
“…….”
“그렇게 하세요. 우리 희경이 생각도 그렇답니다. 장학회라는 게 어려운 아이들 많이 돕자는 건데 아, 까놓고 말해서 오 박사님보다 더 적격인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안선주가 마음을 보탠다.
“부탁드립니다.”
은희경도 가세한다.
두 개의 봉투는 꼼짝없이 경도에게 귀속되고 말았다.
반가운 손님은 또 있었다.
수사를 종결한 배한길 형사가 계 경감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집 앞입니다.”
예고 없는 방문이지만 경도가 기꺼이 만났다.
그런데.
계 경감 차 안이 조금 수상했다. 뒷좌석에 꽃다발이 쌓여 있지 않은가?
‘혹시?’
재빨리 계 경감의 얼굴을 보았다. 이마의 천이궁에서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천이궁은 보통 이사운을 본다. 그러나 승진운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마의 천창과 턱뼈 옆의 지고도 열렸다. 귀 앞의 명문이 진달래꽃 빛인가 하면 귀도 훤하게 밝아오니…….
이것은?
승진?
“계 경감님.”
감을 잡은 경도의 목소리가 튀었다.
“아이코, 벌써 눈치 챈 겁니까?”
“승진이군요?”
“아, 진짜…… 이번에는 제가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축하드립니다. 이제 경정이시군요?”
“덕분에 미력한 제가 수사과장 자리 하나 맡았습니다.”
“진짜 잘됐네요.”
“그래서 닥치고 쳐들어왔습니다. 저 맥주 한 잔 사주실 거죠?”
“사드리죠. 백 잔이라도…….”
“대신 오 박사님은 우리 배 형사 맥주 한 잔 얻어 마셔야 합니다. 저 친구가 생명의 은인에게 술 한 잔 사고 싶다며 묻어오지 뭡니까?”
“저도 인간적인 도리 좀 다해야겠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과장님.”
배 형사가 항변을 토했다.
“이 친구도 수사과로 발령인데 앞으로 제 밑에서 좀 구르게 생겼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제보한 사건해결한 공도 있어 데려왔으니 양해 바랍니다.”
계 경감이 웃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어디든 가시죠.”
경도가 계치훈의 차에 올랐다.
턱.
수제맥주집에서 경도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어? 이거 사러 간 거였습니까?”
축하 문자를 체크하던 계치훈이 고개를 들었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잠시 시간을 달라던 경도였었다.
“꽃다발은 챙겨드려야죠. 저도 몇 번 받았는데…….”
“고맙습니다. 앞으로 한 세 번만 더 받으면 좋겠어요.”
경정에서 세 번 더 올라가면 치안감이다. 경찰청 국장급이다. 거기서 하나만 더 승진하면 시도경찰청장이 되는 것이다.
“기왕이면 네 번은 올라가야죠.”
경도가 긍정의 시그널을 보냈다.
“오 박사님이 힘을 보태주시면 한 번 도전해보죠.”
“그게 저 혼자만으로 안 되니까 지지자를 한 명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지자요? 저야 좋죠.”
“여기.”
계치훈이 수락하자 경도가 손을 들었다.
“……!”
맥주를 마시던 계치훈과 배 형사가 잔을 내려놓았다. 둘의 표정은 물가에 얼굴을 비춘 나르시스의 넋 나간 모습이다. 등장한 사람은 두나였다. 그 청초함에 홀려 말을 잃는 두 사람이었다.
“제가 혼자 살기 어려워서 짝꿍을 구했습니다. 인사드려. 여긴 계치훈 경정님, 옆은 배한길 형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채두나입니다.”
두나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으아, 오 박사님이 이제 품절남 되는 겁니까?”
계치훈이 몸서리를 친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너무 하시네. 예고도 없다가…….”
“저도 예고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럴 만하군요. 두 분이 진짜 잘 어울립니다.”
“우리 계 경감님이 오늘 경정으로 승진을 하셨대. 경정이면 우리 시청 과장급이셔.”
경도가 경찰 직급 호칭에 대해 설명했다.
“축하드립니다.”
두나가 경의를 표했다.
“그럼 이것도 혹시 운명 아닐까요?”
계치훈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뭐가요?”
“그거 기억나십니까? 처음으로 제 관상 봐주던 날, 저한테 그랬죠? 몇 년 후에 중매를 받으면 결혼운이 제대로 풀릴 거라고.”
“그랬죠.”
“두나 씨, 죄송하지만 오 박사님이 날린 상괘 책임 좀 져주시면 안 될까요? 경찰이 남편감으로 인기는 없지만 그래도 경정쯤 되면 어느 정도 정상적인 결혼생활 가능합니다.”
“소개팅 원하세요?”
“네, 절친이면 더 좋고요.”
“절친이 있기는 한데 얘가 연상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두나가 사진을 보여준다. 계치훈은 마음에 드는 눈치다.
하지만 연상이라는 팩트가 장벽이다.
“아이코, 이 쓸데없이 쌓인 나이…….”
계치훈이 급 좌절모드로 들어갔다.
“그래도 모르니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두나가 화상통화를 시작했다. 그녀의 절친 한다혜였다. 그녀도 경도에 대해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경도를 보여주고 슬쩍 주변 인물들도 보여주었다.
“오 박사님 옆이 절친이셔. 여친 구한다는데 어때?”
자연스럽게 의사를 묻는다.
“나 지금 가면 오 박사님이 관상 봐주는 거야?”
“기집애. 그런 걸 지금…….”
“봐준다고 나오시라 해.”
계치훈이 아쉬운 눈치를 보이니 경도가 지원사격을 날렸다.
그때부터 계치훈의 술 마시는 속도가 느려졌다.
“오, 우리 과장님 여자 의식하시는 거임?”
배 형사가 조크를 던졌다.
“의식은 누가 의식을 한다고 그래?”
그제야 한 모금을 더 마시며 초연함을 과시하지만 경도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계치훈이 그토록 기대를 한 것도 상괘 때문이었다. 귀신 같은 관상으로 사람 얼굴을 뚫어보는 혜안. 그렇기에 3년이 지난 후에 중매하라는 말을 잊지 않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한다혜가 등장했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두나와 유유상종이다. 청순에는 조금 못 미쳐도 수수한 이미지가 푸근한 여자였다.
술 한 잔 먹은 마음에 조금 색다른 접근을 했다.
얼굴이 아니라 체상(體相)이었다. 샌들을 신었으니 발부터 보았다.
발은 신체를 지탱한다. 도톰하고 네모지면 좋다. 발등이나 바닥에 살이 있으면 복록을 누린다.
중지는 약간 긴 듯하고 엄지는 약간 짧은 듯하면 좋다. 발등에 부드러운 털이 있으면 총명하다.
그러나 발꿈치가 빈약하면 삶이 고되다. 한다혜의 발은 네모진 형태에 발등 살이 봉긋했으니 좋았다.
다음은 팔과 다리다. 몸의 근본이다. 이 둘을 일러 ‘고굉’이라 하니 팔다리는 풍요로운 게 으뜸이다.
여자라 해도 다리 살이 가늘면 길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꿀벅지도 좋은 상은 아니다. 한다혜는 다리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엉덩이다. 엉덩이는 넓고 관대한 것이 좋다. 엉덩이가 뾰족하면 악녀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른 사람이 엉덩이가 없으면 노력을 해도 얻는 것이 적고 비만한 사람이 엉덩이가 없으면 허드레 직업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제 목으로 올라갔다. 목은 머리를 받치는 기둥이다. 그렇기에 관상에서는 쉽게 보지 않았다.
여자의 목은 둥굴고 긴 것이 길상이다. 마른 사람이 목이 짧으면 30세를 전후해 난관에 직면한다. 뚱뚱한 사람이 목이 길면 36세에 위험에 닥친다.
모든 게 무난하니 누당과 입술의 구각만 체크했다. 그 또한 별문제가 없었다.
“오 박사님.”
한다혜의 관심은 경도 쪽이었다.
“머잖아 두나랑 결혼할 거죠? 저는 언제가 결혼운이에요?”
경도에게 닿을 듯 얼굴을 들이민다.
여자가 결혼이 임박하면 명궁의 자색이 위쪽 이마로 올라간다. 코끝의 준두가 빛나면 좋은 남편을 얻는다. 한다혜의 관상이 그런 징조였다.
명궁의 빛깔은 아직 자색이 아니다. 그러나 남색으로 아른거리니 머잖아 자색으로 변할 태세다. 준두 역시 아름아름 맑아지고 있다.
경도가 계치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명궁도 한다혜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푸허.”
신나는 날숨이 나왔다.
“왜요?”
한다혜의 눈빛은 경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분 어떠세요?”
술도 한 잔씩 마셨겠다, 계치훈을 가리키며 대놓고 물어보았다.
“음, 별론데?”
한다혜가 콧등을 찡그렸다.
“얘…….”
두나가 견제구를 날렸다.
그런데.
“그런데 저 아저씨는 내가 마음에 든대요?”
여운을 남기는 질문이 나왔다.
“저는 마음에 듭니다.”
계치훈이 바로 답변을 해버렸다.
“경찰이라매요? 나는 경찰 싫은데, 맨날 사건에, 맨날 범인에, 맨날 비상에…….”
“아, 그건 오해십니다. 그런 노가다는 저희 같은 하위직들 몫이고 경정쯤 되면 저희가 차리는 밥상만 잘 받으면 됩니다.”
배 형사의 설명이 돌직구였다.
“경정이 그렇게 높은 사람이에요?”
“그럼요. 저는 평생 굴러도 경정 못 됩니다.”
“그럼 한 번 사귀어볼까?”
배 형사의 쐐기가 통했을까? 한다혜가 두나 의견을 물었다.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 먼저 들어갑니다.”
배 형사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우리도…….”
경도와 두나도 슬쩍 핑계를 대고 일어섰다.
“어, 오 박사님까지?”
“두나야아.”
계치훈과 한다혜가 울상을 짓지만 극구 말리는 컨셉은 아니었다.
“어때?”
밖으로 나온 경도가 두나에게 물었다.
“잘 될 거 같은데요?”
“그렇지?”
“박사님이 보증하는 사람인데 어련하겠어요?”
“두나 씨 친구는? 수수하고 좋아 보이네.”
“관상 보셨어요?”
“대충. 나머지는 저 두 사람 몫이잖아?”
경도가 창 안을 돌아보았다. 어색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분위기였다. 경도에게는 소중한 지인인 계치훈. 이제야 관운이 제대로 터지고 있다. 경정이 되었으니 더 높은 도약도 가능해진 것이다.
‘잘 되기를.’
경도 눈에는 잘 어울려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계치훈에게는 어쩌면 승진보다 더 신나는 밤이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