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국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2> (19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97화

62. 이 국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2

‘김 의원님?’

[김윤광 의원님]

핸드폰에 반가운 이름이 떴다.

“의원님,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전화를 받았다.

-오 박사님, 잘 계시죠?

“그럼요? 의원님은 바쁘시죠?”

-그렇긴 하네요. 제가 이번 총선에 총대를 빡세게 매게 될 거 같아서요.

“공천심사 맡으시는 겁니까?”

경도가 물었다. 방송과 정계에서 자주 나오던 달이었다.

-뭐 두루두루…… 능력도 없는데 자꾸 일을 떠맡기니 난감하네요.

“능력이 없다뇨? 대통령님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인정하신 분인데.”

-그게 제 실력입니까? 오 박사님 조언 덕분이지.

“의원님 실력 맞습니다.”

-머리도 어수선한데 시간 좀 되시겠어요?

“오늘 말입니까?”

-어렵겠죠?

“아닙니다. 제가 서울로 갈까요?”

-아유, 그러면 안 되죠. 제가 갑니다.

“그럼 식사 예약 해놓겠습니다.”

-그러면 좋죠.

김윤광의 수락을 들으며 통화를 마쳤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팔자 좋은 직업이다. 무노동무임금 원칙도 없고 김영란법도 예외다. 지자체의 지역사업안 카피해다 자기 업적이라고 우기면 그만이고 적당히 외유나 즐기다 큰 사건 터지면 날쌔게 법률안 하나 상정해 실적으로 포장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온몸에 ‘구애’라는 아부의 향수를 뿌리고 지역주민들 앞에 나와 굽신굽신 개소리 신공을 펼친다.

-한 표줍쇼.

-당신의 발이 되겠습니다.

4년 동안 선거철에 한 번만 바쁘면 되는 국회의원들. 그렇기에 국민들의 신뢰도 개바닥이지만 개중에는 그 개바닥을 역행하며 정신줄 제대로 박힌 사람이 있었다. 김윤광이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지역구 사랑은 유별나다. 권위나 오만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죽하면 시민단체에서 그 가면을 벗기겠다고 미행을 했다.

두 달간의 미행 끝에 얻은 건 닥치고 인정이었다. 선거철이 아님에도 한 결 같은 활동에 손발을 든 것이다.

그렇기에 초선이면서도 청렴상을 시작으로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 의원상 등 국회가 주는 그럴 듯한 상은 죄다 휩쓸어버린 김윤광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일반 의원들은 외부 기관에 ‘돈 내고’ 상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뭐 하나 받아야 선거 때 스팩으로 쓰기 때문이었다.

한국 미래의 희망사전.

그의 새로운 닉네임이었다. 처음부터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당과 국민들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졌다.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를 구현해내니 소위 몇 선 몇 선 할 일 없이 관록만 쌓은 원로들과 정치거물들도 그를 폄하하지 못했다.

급기야는 대통령까지 구해냈다. 그때 그 제주행 비행기. 김윤광이 직을 걸고 막아준 까닭에 화를 피했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야근이 생겼어. 같이 저녁 먹을까 했는데 미뤄야겠네.]

두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계곡이 가까운 산장음식점에 전화를 했다. 부녀회장 안선주의 계원이 하는 곳인데 인기가 좋아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사정이라도 해볼까했는데 안선주의 이름을 대니 바로 예약이 되었다.

도착은 경도가 먼저 했다.

차에서 내려 두나에게 온 문자를 확인할 때였다.

“어머, 오 박사님.”

짧은 호명이 들려왔다. 부녀회장 안선주였다.

“어머어머, 이게 웬일이래? 여기 어쩐 일이세요?”

“회장님은요? 저는 회장님 이름 팔아서 예약하고 왔는데…… 갑자기 귀한 손님을 좀 만나야 해서요.”

“우리 배 사장이 잘 들어줘요?”

“그럼요. 회장님 이름대니까 바로 OK던데요.”

“그래야지. 지가 누구 때문에 자리 잡았는데 오 박사님 괄시하면 나한테 죽지.”

안선주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 모임 있으세요?”

“친구 만나요. 혹시 상포읍에서 장학회하는 하일천 회장님 아세요?”

“아, 메모리폼 매트리스 만드시는 분요?”

“아시네. 그분 며느리가 제 친구인데 요즘 속이 속이 아니라네요.”

“그러시군요.”

“박사님은요? 혹시 데이트?”

“아닙니다. 중요한 분이 오신다고 해서요.”

“빨리 애인 만드세요. 그렇잖아도 부녀회장들이 중매선다고 난리들이에요.”

“예, 그럼…….”

인사를 나누고 예약석으로 향했다. 테라스 앞으로 오래된 돌확들이 가득하다. 그 안에 온갖 우리꽃들이 우거진다. 두나와 함께 와도 좋을 자리였다.

김윤광은 40분 쯤 후에 도착을 했다.

“안녕하세요?”

운전을 맡은 노성봉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 물러간다.

“제가 많이 늦었죠?”

김윤광이 겉옷을 벗었다.

“아닙니다. 저도 금방 도착해서 엔진 열도 안 식은 걸요.”

“죄송합니다. 예정도 없이 불쑥…….”

“괜찮습니다. 저도 이제 칼퇴근할 짬은 되거든요.”

“짬만 그렇습니까? 시청에서도 평판이 굉장하시던데.”

“어, 의원님이 저희 시청 모니터링도 하십니까?”

“했죠. 이번에 좀 필요해서 말입니다.”

“진짜입니까?”

“제가 왜 허튼 소리를 하겠습니까? 관상박사님 앞에서.”

“그러시군요.”

김윤광이 허심탄회하니 더 묻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농담은 아닌 것이다.

식사는 보리굴비구이에 게장을 시켰다.

둘 다 비싼 거라 하나면 된다고 했지만 김윤광이 고집을 했다.

“저도 이 정도 쏠 능력은 됩니다.”

쐐기까지 박으니 더 말릴 수도 없었다.

둘 다 발효식품이다. 음미하면서 먹으면 더 맛이 좋다.

“많이 드십시오.”

경도가 수저들기도 전에 김윤광이 권한다.

“의원님이 많이 드십시오. 큰일을 맡으셨다면서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만의 정치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초선부터 주목을 받으니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잘 하실 겁니다.”

“오 박사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 당장인가요?”

“아이코, 제 얼굴에 다 나타납니까?”

“아니더라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맨날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무슨 그런 말씀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또 한 번 신세를 지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총선에 제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게 될 분위기입니다.”

“선대위원장 말씀입니까?”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대선의 부위원장에 이어 선대위원장. 공동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당내의 신임이 더 두터워졌다는 방증이었다.

“석종세 고문님께서 대선에 이어 다시 한번 승리의 깃발을 꽂아보자며 반협박을 하시길래 수락을 했는데 이번에는 부위원장이 아니라 공동위원장이 아니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아이코, 우리 오 박사님도 이러시네. 제가 아직 초선입니다.”

“젊은 피들이 역동하는 나라를 만드신다면서요? 대통령님의 신념도 그거 아니었습니까?”

“아무튼 그래서 얼떨결에 공동선대위원장이 될 것 같습니다만 덕분에 부담도 떠안았습니다.”

“어떤 부담일까요?”

“지역의원과 광역단체장 등의 후보자 사전심사 말입니다.”

“아.”

경도 입에서 감탄이 새었다. 공천권까지 행사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잘 되었군요. 의원님이라면 명분이나 계파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잘 하실 겁니다.”

“당에서 추린 인물들 중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이 제 몫으로 넘어왔는데 제가 돌리는 라인으로 검증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말입니다. 해서 오 박사님이 도와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은 가져 오셨나요?”

“저 그럼 꺼냅니다?”

“예, 의원님.”

경도가 수락하자 김윤광의 행동이 바빠졌다.

그런데.

“……?”

첫 사진부터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경도였다.

“의원님?”

“워낙 사양을 하시니 이번은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오 박사님을 추천할 겁니다. 지역구 의원이 싫다시면 K시 시장자리라도 말입니다.”

“…….”

“여기 있습니다.”

김윤광이 진짜 서류를 펼쳐놓았다. 후보들 얼굴은 사진으로 준비되었다. 경도의 편의를 위해 준비에 신경을 쓴 것이다.

후보자는 30여 명이었다. 지역구 의원부터 시작을 했다. 김윤광은 그저 주목이다. 경도를 믿으니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전체를 관조한 경도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기준을 주셔야 합니다.”

“기준?”

“오직 당선 가능성을 볼 것인가? 아니면 정책능력과 인품을 볼 것인가?”

“둘 다는 안 되는 것입니까?”

“정답이군요?”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경도가 첫 후보를 골라놓았다.

“이분은 무조건 안 됩니다.”

“그분은 청와대에서 미는 분인데…… 평판이 굉장히 좋거든요. 다만 정치 초년생이다 보니 경쟁력이 어떨지 몰라 이 그룹에 들었습니다만.”

재고가 안 될까요?

그 말이 어렵게 나왔다.

“평판 좋은 거 맞습니다. 이분은 아무 하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다 좋은데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이마의 양 천창과 양 관골, 그리고 지고가 어두운 데다 입술에 검푸른 기색이 완연하니 올해는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예?”

“선거전에 뛰어들면 명이 더 빨라집니다. 그러니 아쉽더라도…….”

“아…….”

김윤광이 이마의 땀을 훔친다. 첫 선택부터 뼈를 치는 상괘가 나왔다.

“다음은 이분입니다. 입술이 윤택해 운이 좋을 듯하지만 치아가 벌어지니 복이 새나갑니다. 연설이다 뭐다 대중을 많이 만나야 하는 선거전이니 결국 낙선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공천해야 한다면 비례로 돌리시고 대변인 같은 것은 절대 맡기시면 안 됩니다.”

또 한 명이 경도의 기준에서 잘려나갔다.

“이분은 전택궁의 점이 불운합니다. 겉보기에는 온화해 보이지만 가정사에 문제가 많습니다. 간문이 막히고 어미에 주름이 있으니 여자관계가……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부인 외에 숨겨놓은 여자가 있고 거기서 태어난 아들이 있습니다.”

“허엇.”

“그리고 이분, 미릉골의 기세가 좋아 추진력에 통솔력까지 갖췄지만 마음이 흉악하고 이기적입니다. 관록궁에 흉터까지 있으니 당선이 되면 온갖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분은 돈으로 이 자리에 낀 분입니다. 예로부터 매관매직으로 성공하려면 이마의 천창과 관록, 명궁의 세 곳이 밝아야 하는데 명궁이 어둡습니다. 돈으로 산 공천도 문제겠지만 결국 낙마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내고 후보가 되었다는 겁니까?”

“예.”

“이런…….”

김윤광의 미간이 거칠게 구겨졌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 이 두 사람은 어떨까요? 제가 발굴한 신인들인데 예비 심사에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못 받았습니다. 오 박사님께 부탁하는 김에 확인해보려고 가져왔습니다.”

김윤광이 다른 사진을 내놓았다.

“……?”

그걸 본 경도의 눈빛이 튀었다.

“당선 운이십니다.”

경도가 환하게 웃었다.

“정말입니까?”

“이분은 턱, 즉 노복궁이 입과 접하고 둥글고 풍만한 데다 입이 사(四)자 형태입니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당선되실 겁니다.”

“아…….”

“이분 역시 이마에 세 개의 기둥으로 불리는 양 보골과 천주골이 내 천(川)자를 이루니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두 분 다 입술이 두텁고 코의 준두가 크니 의리와 신뢰를 아는 분들입니다. 가능하면 공천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어쩐지 포기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더니…….”

김윤광이 환하게 웃었다. 그는 정치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인물 보는 법도 터득하고 있었다.

광역자치단체장의 후보들은 많지 않았다.

쥐의 눈을 한 사람만 골라냈다.

범법자의 눈이다. 모르긴 해도 크고 작은 전과가 여러 건 있을 것 같았다.

쥐의 눈이나 뱀의 눈, 까마귀와 돼지 눈 등은 형옥의 눈이다. 교도소를 드나들 확률이 컸다.

“끝났습니다.”

경도가 사진꾸러미를 김윤광에게 밀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럼 주세요.”

경도가 말하자 또 다른 봉투가 나왔다.

“이분은 기초단체장 후보입니다. 기초단체장까지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 내부정리를 했는데 이 건만은 오 박사님이 봐주셔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김윤광이 신중해진다. 경도도 살짝 궁금증이 일었다. 김윤광이 따로 챙겨온 기초단체장 후보. 대체 어떤 인물일까?

번쩍.

“……!”

사진을 꺼내던 경도 뇌리에 섬광이 스쳐갔다.

‘이 국장님?’

사진 속 인물은 자치행정국장 이창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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