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94화
61. 파릇한 신입을 받았습니다-1
“인사드려. 여기 K시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인사팀장님.”
조수석에서 나온 계 경감이 차 안을 향해 말했다.
“유미란입니다.”
뒷좌석에서 여형사 목소리가 나왔다.
“천준기입니다.”
운전석에는 남자 형사도 있었다.
“사설 도박장은 대개 조폭들이 관여하고 있어서요.”
계 경감이 두 형사를 동반하는 이유를 밝혔다.
“괜히 저 때문에 수고들이 많습니다.”
경도가 예의를 갖췄다.
“무슨 말씀입니까? 잘하면 실적도 올리고 좋죠.”
“K공원까지 가야 할 것 같은 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거기서 만나는 모양이죠?”
“예.”
“천 형사, 뒤따라와라.”
부하에게 지시한 계 경감이 경도 차에 올랐다.
“자살사건은요?”
경도가 어제 일에 대해 물었다.
“전모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두어 달 전부터 모의를 했더군요. 두 형제가 아버지 유산을 노리는데 아버지는 꿈쩍도 않고 사업자금은 필요하고…… 그래서 모의를 했다는군요. 세상 말세예요.”
“예.”
“같이 모의한 우리 형사가 좀 문제긴 했더라고요. 맨날 때려친다 친다 하면서 불만만 쏟고 다니더니 결국 이렇게 때려치우게 되는군요.”
“구속입니까?”
“어쩌겠습니까? 20년 가까이 근무했는데 기여금도 못 찾게 생겼어요.”
기여금도 못 찾는다면 파면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중대한 범죄라는 뜻이었다.
“원래 퇴직한다 한다 하는 분들은 장기 근속하시죠.”
“그렇죠. 진짜 그만두는 사람은 조용히 준비하다가 조용히 사직하더군요.”
“맞습니다.”
경도도 공감이다.
인사팀 짬밥도 꽤 쌓였다. 그동안 처리한 사표만 50건이 넘었다. 개중에는 신규임용자의 것도 있지만 8급이나, 7급의 사표도 많았다.
그런데.
받고 보면 그만둔다는 풍문이 전혀 없었던 직원들이었다. 그만둔다 그만둔다 노래를 부른다는 직원들 사표는 거의 없었다.
“사표라는 게 가슴 떨릴 때 내는 거지 다리 떨리는 나이가 되면 못 내시더라고요.”
계 경감이 정곡을 찌른다. 경찰 쪽에도 사직서 노래를 부르는 직원이 많은 모양이었다.
“많죠.”
계 경감의 인증이 나왔다.
“중징계 먹었을 때 특히 그래요. 더구나 일 열심히 하다가 징계 먹었을 때. 그거 굉장한 상실감이 들거든요.”
“다 왔습니다.”
달리던 경도 눈에 공원 입구가 들어왔다. 차가 갓길에 멈췄다. 이해인이 멤버를 만나는 장소였다.
이해인의 차는 이미 도착해 있다. 정순홍 과장과 노해찬도 도착이다. 셋은 차에서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곧 두 대의 차가 더 합류했다. 조철주와 박경동이었다.
멤버들은 차량 두 대에 분승을 했다. 이해인이 정순흥 과장을 태우고 나머지가 한 차였다.
“저분들이군요?”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매번 부탁만 드려서.”
“아니라니까요. 저, 이런 부탁이면 닥치고 환영입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퇴근하십시오. 상황이 나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계 경감이 천 형사의 차로 옮겨 탔다.
“강남 쪽으로 간다니까 놓치지 말고 따라가.”
철컥.
계 경감의 안전벨트가 채워졌다.
백미러로 보니 경도 차량은 그 자리다.
이제는 경도를 아는 계 경감이었다. 자기 직원 다섯이 연루되는 마당이니 편할 리가 없었다.
이해인 멤버의 차량은 서울까지 쉬지 않았다. 익숙한 길인 듯 헤매지도 않았다. 차는 역삼동 쪽으로 진입했다.
정차한 곳은 대로변 뒤였다. 주변을 살피더니 한 까페로 들어갔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간판에는 불이 꺼져있다. 상점 이름은 유토피아 보드 까페였다.
“간판은 보드 까페인데, 불은 꺼져 있고, 아리송한데요?”
상황을 체크하고 온 천 형사가 계 경감에게 보고를 했다.
“강남서 관할인가?”
“예.”
“잠깐만…….”
계 경감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는 오래지 않아 끝났다.
“내 동기야. 강남서에 지능팀장으로 있는데 이게 원래 보드 까페 간판 달고 불법게임 도박을 하던 곳이었다네? 단속에 걸렸다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 최근에 사설 FX마진거래 체험장으로 쓰인다는 첩보가 있어 주목하던 중이라고.”
“FX라면 외환거래인데 사설이면 불법으로 판결이 났잖습니까?”
“말이 체험장이지 결국 도박 아니겠어?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지는 아직 모르지만.”
“들어갈까요?”
“잠깐만, 이 친구가 온다고 했어. 안에 사람이 많으면 연행에 곤란하니까 합동으로 하는 게 낫겠지?”
“좋죠. 어차피 저희도 제보받고 온 거 아닙니까.”
형사들과 대화하는 사이에 차량 두 대가 다가왔다.
“계치훈.”
앞차에서 내린 경찰이 손을 흔든다. 계 경감의 동기였다. 둘이 의견을 나눈 후에 진입 명령을 내렸다. 출입구와 더불어 비상문까지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우리 가게는 멤버십입니다.”
입구에서 건장한 종업원 둘이 계 경감을 막아섰다.
“경찰이야.”
신분증을 내밀며 진입을 했다.
“……!”
잠깐 동안 당황했다. 안은 좁았다. 게다가 진짜 보드 게임장이었다. 남녀 한 쌍과 대학생 셋이 게임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의 구조를 알고 온 계 경감의 동기가 연결문을 열었다.
“여긴 창고입니다.”
종업원이 막아서지만 때는 늦었다. 실랑이를 틈타 안으로 들어간 유 형사가 이중문을 찾은 것이다.
“……!”
여기서 한 번 더 놀랐다. 진짜 불법 도박게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손님은 약 20여 명이었다.
“짭새야.”
허를 찔린 종업원이 악을 썼다. 도박게임장 안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안에 있던 종업원 셋이 물병과 칩을 던지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강남서의 직원들이 막았다. 손님들도 일부는 육탄으로 돌진하지만 소용없었다.
K시의 직원 다섯은 어쩌지도 못하고 사색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돌발이었다.
“어이쿠, 이분은 오늘 끝발 좀 받으셨네?”
계 경감이 게임판의 칩을 보며 빈정을 날렸다. 그 자리의 주인은 이해인이었다.
“저기요, 저희가 맥주 한잔하다가 호기심으로 잠깐 들렸거든요.”
겨우 정신을 차린 이해인이 미인계로 나왔다. 그러자 강남서 형사가 친절한 가이드로 나섰다.
“서가 5분 거리입니다. 잠깐만 조사 받으시면 되니 이쪽으로…….”
“…….”
K시의 멤버 다섯은 꼼짝없이 연행되고 말았다.
경도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후였다.
“계 경감님.”
“오 박사님, 상황종료입니다.”
“역시 도박이었나요?”
“도박게임장 맞습니다. 겉은 일반 보드게임장이고 안쪽에 따로 도박장이 갖춰져 있더군요. 오 박사님이 말씀하신 시청 직원들도 여기 관할서로 연행되었습니다.”
“도박 중이었나요?”
“예.”
“…….”
“기분 안 좋으시군요?”
“그게 아니라…….”
“저한테 안 속이셔도 됩니다. 같은 시 직원 아닙니까? 그래도 아니기를 바라셨겠죠.”
“씁쓸하기는 하네요.”
“내부 CCTV를 일자별로 체크해 보니 그 멤버들은 매주 목요일에 왔더군요. 이번 달에는 한 번만 빼고 출석입니다.”
“…….”
“저희가 진입했을 때 팀장님 부서의 여직원이 끝발 날리던 중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따는 날 걸려서 더 억울하겠어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출입횟수와 도박금액에 따라 분류를 할 겁니다. 오늘 처음 온 거라면 큰 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처음도 아닌 데다 직업이 공무원들이라는 거죠.”
“…….”
“공무원 신분은 까지 말라고 부탁할까요?”
계 경감의 말에 경도 표정이 굳는다. 공직자에게 도박은 쥐약이다. 거액의 판돈이 걸린 것은 아니라지만 공무원이기에 빼박이다. 게다가 무려 다섯 명이다.
뉴스에 이런 타이틀이라도 붙으면 시 직원 전체의 위상이 추락할 게 뻔했다.
“뉴스가 될까요?”
경도가 되물었다.
“도박게임장이지만 오늘 판돈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거기 관리자들도 다른 거물들에게서 갓 독립한 친구들이라 크게 주목받을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부탁하실 말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원칙대로 가십시오. 공무원의 위신을 추락시킨 사람들이니 특별히 구제해 달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경도의 결단이었다.
“입장을 알겠습니다. 조금 더 알아본 후에 제가 따로 들르겠습니다.”
계 경감이 통화를 끊었다.
“……!”
이 국장 표정이 굳어버렸다. 출근하기 무섭게 경도의 보고를 받은 것이다.
“현장 검거?”
“그렇습니다.”
“서울 강남까지 원정?”
“…….”
“게다가 무려 다섯 명?”
“예.”
“이런 정신 나간 친구들을 봤나?”
이 국장이 들고 있던 신문을 팽개쳤다.
“과장 한 명에 팀장이 둘?”
“죄송합니다.”
“관상인가?”
“예. 해서 이해인 씨에게 언질을 주기는 했는데…….”
“무슨 언질? 이런 인간들은 일벌백계를 받아야지. 실형 말이야.”
“…….”
“이 인간들 지금 어디에 있나?”
“서울 강남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곧 경찰서에서 통보가 올 겁니다. 그래서…….”
경도의 선수였다. 공무원의 범법은 감사담당관실로 통보가 된다. 정 과장의 입지로 보아 구명운동이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소모전이다.
구명하려는 측을 대놓고 말릴 수도 없으니 더러는 불법을 저지른 공무원도 구명탄원서를 돌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는 나서지 말게.”
경도의 의중을 간파한 이 국장이 일어섰다.
그 길로 시장을 방문한 이 국장이었다. 놀란 권 시장이 직접 사건파악에 나섰다. 이 국장이 제시한 명단 중에 자신과 케미가 되는 직원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다.
“공직기강 한 번 잡으셔야겠습니다.”
이 국장의 요청이었다.
사안이 사실로 확인되자 간부회의가 열렸다. 전에 없는 공직기강 확립이 주문되었다.
감사담당관실 전 직원이 감찰에 나섰다. 사후약방문이지만 사태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오후에 경찰의 통보가 왔지만 장두환 계보의 간부들은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이 국장의 선조치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오 팀장.”
이튿날 권 시장이 경도를 불러들였다.
“직위 해제된 다섯 명의 후속 인사안 만들어오게.”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
“특이사항은요?”
“자네 방식대로 하게.”
권 시장의 답이었다. 방 팀장을 내세워 브레이크를 걸던 인사행정. 사필귀정이라고 다시 경도 방식으로 회귀하는 순간이었다.
“팀장님.”
인사팀으로 돌아오자 재은의 넋이 반은 나가 있다.
“왜?”
“새로 온 이해은 주임님 말이에요. 도박하다 걸린 거…….”
“들었어?”
“탕비실에서 다른 팀 여직원들이 그래요. 남자직원들이랑 GW 카지노도 여러 번 갔었다고……”
“……”
“뿐만 아니라 경마와 경정도……”
“……”
“이제 짤리는 거예요?”
“글쎄, 일단은 직위해제니까 판결 나오는 거 봐야겠지? 뭐 본인이 알아서 그만 둘 수도 있을 테고.”
“내가 너무 심했나 봐요.”
재은이 고개를 숙인다.
“강 주임이 왜?”
“제가 너무 미워해서…… 이렇게까지 되기를 바란 건 아닌데……”
마음 약한 재은, 결국 눈물을 떨구고 만다.
“뭐야? 그럼 다시 저 자리에 복귀 시켜?”
“아, 아뇨. 그건 아니에요.”
놀란 재은이 손사래를 쳤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대로 질린 모양이었다.
“그럼 임용후보자 명부에서 9급 신규 두 명 골라서 임용 준비해.”
“신규가 오는 거예요?”
“아니면? 일도 많은데 자리 비워놓을까?”
“아뇨. 저야 신규가 오면 좋죠.”
재은의 손이 자판 위에서 날아다닌다. 합격자는 이미 발표가 난 상태였다.
“여기요, 팀장님.”
둘을 골라온 재은의 표정이 기대에 넘친다. 파릇한 9급 신규를 받는 건 8급들의 로망이기도 했다.
“이 친구는 좀 나중에.”
경도가 한 사진을 짚었다.
“왜요? 우리 시 수석이고 지원부서도 감사업무 1지망에 인사 2지망이라 맞는 편인데요?”
임용은 대개 성적순이니 보통 상위권에서 추린다. 하지만 임용후보자의 지원부서나 지역에서 갈릴 수도 있다. 서울이라면 강동구를 지망하는 사람을 강서구로 발령내기는 난감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도 더러는 있다. 지망하는 지역이 겹치면 그 또한 성적순으로 운명이 갈린다.
“그 친구는 마지막에 발령내는 게 좋을 거 같아.”
“혹시 관상이 안 좋아요?”
“그 반대.”
“반대요?”
“그 친구 이마에 관운이 세 개나 떴어. 뭔지 알지?”
“법원검찰직, 국가직, 지방직 3관왕요?”
“잘은 모르지만 비슷할 거 같아. 우리 시 시험은 보험용으로 본 걸 거야. 국가직 발령이 우리보다 빠를 예정이라니 그거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까 인사업무를 1지망으로 쓴 친구 중에서 골라봐.”
경도가 정리를 했다. 지자체 인사팀은 이게 골치였다. 초상위권 합격자들은 K시 시험만 보는 게 아니었다. 대기업도 보고 국가직에 특정직 시험까지 합격증 컬렉션에 나선다. 그들에게 지방직은 대개 보험용이다. 지방직에 발령이 나면 일단 와서 경험(?)을 쌓는다. 그런 다음에 본인이 원하는 부처나 기관의 발령이 나면 보란 듯이 사직서를 날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서울시까지도 지방의 경쟁자였다. 다행히 서울시는 지방과 같은 날에 시험을 치르게 되어 그 병폐만은 사라졌다.
다시 두 후보자 사진이 경도 앞에 준비되었다.
“이제 괜찮네. 둘 중 누구?”
재은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며칠 안 되지만 이해인에게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을 주고 싶었다.
“제가 선택해도 되요?”
“당연하지. 강 주임은 우리 팀원 아니야?”
“팀장님…….”
“빨리, 시장님 마음 변하기 전에 결재 올리자고.”
“알았어요. 그럼 저는 이 친구 신보라로 할래요.”
재은의 낙점이 끝났다. 유유상종이다. 자기처럼 평범하면서 밝은 사람을 택했다. 하긴 두 신규의 관상은 비슷하게 무난했다. 그렇기에 낙점의 영광을 맡겼던 경도였다.
혹시라도 잘못해서 너무 되바라진 신규가 오면 재은의 스트레스가 연장될 판이기 때문이었다.
‘신규라?’
시장실로 향하는 경도도 살짝 기대감에 젖었다. 9급 신규를 부하로 받는 건 경도도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