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93화
60. 징크스 따위-3
“……?”
체리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던 계 경감이 잔을 내려놓았다.
“공무원 도박이오?”
“그렇게 보입니다.”
“오 박사님 휘하 직원이고요?”
“예.”
“이야, 오 박사님 관상이라면 거의 100퍼인데…….”
계 경감은 목이 타는지 커피 대신 물잔을 비워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때에.”
“아닙니다. 자살사건이야 더러 일어나는데 이게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서요.”
“어떤 내용이죠?”
“용포읍 최고 갑부 복성호 씨 있잖습니까? 그분이 목을 매고 죽은 사체로 나왔어요. 그런데 재산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기자들이 몰려드는 통에…….”
“그런 분도 자살을 하는군요. 이유가 뭐죠?”
“유족들 말로는 최근에 투자한 부동산이 사기를 당하면서 상심이 컸다고 하더군요. 특이하게도 줄이 끓어져서 사체가 목매단 지점에서 몇 미터 이동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현장감식반도 타살을 의심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살이다?”
“일단은 동기가 되니까요. 이분이 부동산 투자의 귀재라더군요. 지금까지 실패를 몰랐는데 이번에 제대로 당한 모양입니다. 그 수치심 때문이겠죠.”
“그런데 어떻게 사체가 이동을 하죠?”
“드물지만 가능합니다. 전에 범죄실무에서 배운 건데 줄이 끊어진 후에 몇십 미터를 이동하기도 한다더군요.”
“줄이 끊어졌으면 사는 거 아닙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경동맥이나 정맥이 제대로 조여지면 뇌로 올라가는 산소가 차단되어 그럴 수 있다고 하네요. 의흔에도 타살 의심이 가는 게 없고 시신 검안을 맡은 의사 역시 이의가 없었습니다.”
“신기한데요? 목을 매단 사체가 움직인다?”
“한 번 보시겠어요? 기자들에게 브리핑 자료 만드느라 강력팀에서 받아둔 사진이 있는데…….”
계 경감이 핸드폰을 꺼냈다. 현장 사진이었다. 허공에 묶은 줄은 끊겨 있다. 사망자는 거기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숨졌다.
“유족으로는 두 아들이 있는 데요, 그제 밤에 세 부자가 바다낚시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아버지 기분을 풀어드리려 했다는데 큰 효과가 없었다네요.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도 손실에 대한 상심이 컸다고 합니다.”
“잠깐만요, 복성호 씨라면 제가 아는 그 복성호 씨겠죠?”
“그럴 겁니다. 재테크의 달인으로 엊그제도 방송을 탔더군요.”
“맞네요.”
경도가 검색어를 쳤다. 그러자 복성호의 이미지와 동영상이 주르륵 떠올랐다. 투자 때문이라니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읭?’
엊그제 방송분에서 시선이 멈췄다.
눈빛이 나쁘지 않았다.
두피와 목의 피부도 윤기가 보였다.
그렇다면 자살이 아니다. 죽음이 임박하면 눈빛이 흐려지고 두피와 목의 피부가 건조해진다. 게다가 이삼일 전의 방송이라니?
“아, 그건 2주 전에 녹화 뜬 걸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계 경감이 바른 정보를 주었다. 그래도 경도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달 전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죄송하지만 현장 사진 말입니다. 목 부분이 제대로 나온 게 있을까요?”
“있죠.”
“그거 좀 부탁합니다.”
경도가 요청하자 계 경감이 알맞은 사진을 열어놓았다. 목의 의흔을 보기 위해 근접 촬영한 것이었다.
“……!”
사진을 본 경도 눈빛이 구겨졌다.
“오 박사님.”
“잠깐만요.”
경도가 화면을 확대한다. 이런 일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주목하는 건 목 아래의 주름이었다.
여기 주름이 생기면 목을 매고 자살을 한다. 이는 유장상법에 전하는 관상비법이다. 그러나 복성호는 목에 주름도 없었다.
다시 정리에 들어간다.
몇 년 전의 사진을 확인한다.
이때는 아무런 기색이 없다. 눈빛도 좋고 두피와 피부도 윤기가 났다.
몇 달 전의 사진을 본다.
마찬가지다.
“오 박사님.”
애가 타는 건 계 경감이다. 경도와 한두 번 호흡을 맞춰본 게 아니다. 분명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이니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이 사건…….”
사진에 꽂힌 경도의 입이 다음 말을 쏟아놓았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네요.”
타살.
그 단어가 계 경감의 귀를 뚫고 들어왔다.
“예에?”
계 경감이 경악을 한다. 검안의도 문제없다고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사체가 국과수로 갔나요?”
“아뇨. 현장 수사진과 검안의가 모두 문제가 없다고 하니…… 게다가 유족도 원치 않고요. 그런 경우에는 부검을 생략합니다.”
“복성호 씨 관상을 보니 재복은 하늘이 내렸는데 처자운이 없네요. 두 아들은 아마도 효자가 아니었을 겁니다. 타살이 확실하니 부검을 의뢰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오 박사님.”
“부담이 되시면 현장 형사들이나 검안의 관계 좀 살펴보시죠. 혹시라도 두 아들과 연관이 있는지…….”
“잠깐만요.”
계 경감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나갔다.
“옵빠, 오늘 무지 심각하네요?”
주인 인희가 궁금한 눈치를 보인다.
“경찰은 자살이라는데 살인 같다고 했거든.”
“우와, 진짜요?”
“쉬잇, 우리 계 경감님 들어오신다.”
경도 손가락이 입술로 올라갔다. 계 경감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섰다.
“오 박사님.”
목소리가 떨린다.
“어제 강력팀장이 비번이라 차석이 출동했는데 복성호 씨 작은 아들과 중학교 동창이네요. 검안의는 큰아들 고등학교 직속 선배고요.”
“제 생각에는 부검이 먼저일 거 같은 데요?”
“알겠습니다. 제가 서장님께 의견 드려서 재수사 지시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서로 돌아가셔야겠군요?”
“예, 뭐…….”
“저는 내일 저녁에 시간 좀 내달랄 참이었는데 안 되면 다음 주 목요일도 괜찮습니다. 도박보다야 살인사건 해결이 먼저죠.”
“내일 콜입니다. 재수사 명이 떨어지면 수사는 강력팀이 하는 거니까요.”
“그럼 고맙고요.”
“고마운 건 저죠. 검안까지 떨어진 사건이라 좀 떨리기도 합니다만…….”
“수십 년 옥살이 후에 범인이 바뀌는 사건도 있잖습니까? 마음 급해 보이는데 어서 가세요.”
“알겠습니다.”
계 경감이 다시 일어섰다.
“와아, 저 심장이 막 쿵쿵거려요. 자살사건이 살인사건으로?”
계 경감이 나가자 인희가 가슴을 쓰다듬었다.
“나도 그래. 가게 문 안 닫아?”
“닫아야죠. 그런데 옵빠, 이거 제가 소재로 써도 돼요?”
“당연하지. 살짝 리폼만 하면.”
“좋아요. 그럼 소재 제공료로 계 경감님 찻값 공짜.”
“나는?”
“옵빠는 평생무료권이잖아요?”
“그럼 내가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머, 애인 생겼어요?”
“억, 관상 웹툰 그리더니 인희도 관상 보네?”
“옵빠…….”
“내 질문에 대답 안 해?”
“당연히 무료죠. 옵빠가 2세를 낳으면 걔들도…….”
“많이 낳으면?”
“그래도 문제없어요. 제가 이제 그 정도 수입은 되거든요.”
“말이라도 고맙다.”
“옵빠 마음을 잡은 그 언니가 너무너무 궁금해요. 꼭 데려오세요. 제가 절대 질투 안 할게요.”
“궁금하기는 이미 한 번 봤는데?”
“제가요?”
“간다. 조심해 들어가고.”
인사를 하고 체리카페를 나섰다.
혼자 남은 인희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경도가 만나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경도를 좋아하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 하나를 집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오, 미치겠다.”
인희는 애꿎은 머리만 긁을 뿐이었다.
잠자긴 전, 경도는 계 경감의 문자를 받았다.
[서장님께서 전격 재수사 결정하셨고 유족들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부검을 보냈습니다.]
[오 박사님 말대로 되면 두 아들이 도주의 우려가 있기에 형사들 감시도 붙였으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계 경감에게 답문을 보내고 잠을 청했다.
***
“옴마야.”
이튿날 아침, 강재은이 경기를 했다. 마득렬도 놀라는 눈치였다. 이해인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레깅스와 유사한 하의에 가슴골 볼륨이 신랄하게 드러나는 상의를 입고 출근한 것이다. 은빛보다도 한 수 더 뜨는 차림이었다.
“왜?”
재은이 넋을 놓자 이해인이 물었다.
“아뇨.”
강재은은 황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팀장님, 좋은 아침.”
경도를 향한 인사는 잊지 않는다.
“좋은 아침.”
인사를 받으며 재은에게 참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조신한 재은과는 극과 극의 패션이었으니 그 또한 은빛이 막 나갈 때의 민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코끝이 밝다.
이마의 천양에서 관록궁으로 내려오는 윤기도 밝았다. 일진을 체크하니 밤에 임시수입이 예정되었다.
오늘 투자(?)에서 재미를 좀 볼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청색이 숨어 있다. 횡액의 그림자였다.
“이 주임.”
“예?”
“오늘 재복 있어 보이네?”
“진짜요? 로또 살까요?”
그녀의 얼굴이 전격적으로 반응한다.
“내 생각에는 투자 클럽 말이야, 그거 그만두면 좋겠는데.”
“아오, 좋은 상괘주시고 왜 그러세요. 3만불 시대에 투자는 기본이자 필수고요, 게다가 중독이에요.”
경도 말을 흘려듣고는 시계를 본다.
“오늘 인사고충상담 올 사람 있지?”
“걱정 마세요. 제가 블라블라 해서 다 무마할 테니까요.”
이해인은 자신만만이었다.
“그게 아니고 너무 확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거야. 그분들 그거 기억했다가 다음 인사에 채권처럼 들이밀거든. 잘못된 인사는 개선해야 하지만 그 주장에 일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인사방침도 매번 변하니까.”
“네, 팀장님.”
머쓱할 정도로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그때마다 재은은 혀를 내두른다. 여우도 이런 여우가 없다. 발령받은 지 고작 3일 차였다. 설령 팀장이나 과장으로 왔다고 해도 기존에 있던 직원들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각 팀마다 고유의 애로와 업무상의 특징이 있으니 그걸 모르고는 업무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해인은 주객전도의 태세다. 3일이 아니라 300일쯤 근무한 것처럼 굴었으니 경도가 자리를 비우면 차석 대우를 찰지게도 챙겼다.
그래도 고충상담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낸다. 보증수표를 남발해서 그렇지 펄펄 뛰던 남자 직원들도 상담실에만 들어가면 누그러졌다. 과잉애교와 친절에 녹아나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밖에서 들으니 누가 저 여자를 3일 차로 볼까 싶었다. 인사행정과는 상관없는 감언이설로 살살거리며 불만을 잠재워버린 것이다.
‘음.’
경도가 쓴 입맛을 다셨다.
재주는 아깝다. 민원실이나 불만접수창구로 가면 굉장한 재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 호의를 물지 않으니 도리가 없었다.
오후 5시, 계 경감에게서 쾌거가 들려왔다.
“오 박사님, 접니다.”
목소리에서 벌써 감이 왔다.
“부검결과 나왔나요?”
“예, 타살이 맞답니다.”
“…….”
“방금 두 아들을 긴급 체포해 왔는데요, 작은 아들이 자백을 했습니다. 유산을 빨리 물려받기 위해서였다네요. 아버지가 술에 약한데 술을 권하고 잠들자 줄을 걸어놓고 이불로 아버지의 몸을 감싼 채 들어 올려 목을 걸었답니다. 그런 다음에 의자를 치워 거의 전형적인 자살 의흔이 되도록 위장을 한 거죠. 줄이 끊어진 건 목이 조여지자 잠에서 깬 아버지가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랍니다. 뒤에서 아버지를 들고 끌고 가는 바람에 뒤꿈치에 아주 작은 상처가 생겼는데 바닥의 화문석 조각이 묻어서 뒤에서 끌었다는 자백과 일치합니다. 줄에서는 큰아들의 DNA가 나왔고 저희 강력팀 차석에게 1억, 검안의에게 1억을 주기로 합의가 되었답니다. 그 두 사람도 긴급 체포가 되었습니다.”
“잘됐네요.”
“서장님이 오 박사님 관상에 혀를 내두르더군요. 자칫하면 자살로 넘어갈 뻔했다면서 표창을 상신하라고 하세요.”
“아, 아닙니다. 표창은 절대 사양이고요, 오늘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바쁘시겠죠?”
“천만에요. 정식 부검결과는 월요일쯤에 올 예정이라 오늘은 가능합니다. 저도 오 박사님께 면목 좀 세워야죠.”
“그럼 부탁드립니다.”
계 경감과의 통화를 끝냈다.
기분이 홀가분했다.
퇴근 시간 직전.
이해인이 바빠졌다. 투자 클럽 멤버들과 주고받는 카톡에 불이 났다. 6시가 되자 명품으로 보이는 가방을 챙겨 들고 제일 먼저 일어섰다.
“팀장님, 저 먼저 가요.”
“그래.”
“재은 씨, 득렬 씨, 낼 봐.”
날렵하게 나가면서 두 직원들에게도 일방통행식 애정(?)을 표시한다.
“재은 씨 낼 봐.”
재은이 그 말투를 중얼거리며 몸서리를 친다.
“이해인 씨 스트레스 말이야, 곧 괜찮아질 거야.”
경도가 재은을 위로했다.
“어떻게요? 다른 팀으로 가나요?”
“그건 내일 얘기하고 퇴근들 해.”
경도가 두 직원을 내보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칼퇴근이 좋다. 팀장이 챙겨주면 부담 없이 나갈 수 있는 건 대한민국 모든 직장의 공통이었다.
그 길로 이 국장을 찾아가 언질을 주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충격을 줄이려는 생각이었다.
“직원들 도박?”
이 국장이 소스라쳤다.
“제 판단이 틀리길 바라지만…….”
“누구인가?”
“몇 명됩니다.”
“알겠네.”
이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도와는 통하는 사이니 두고 보겠다는 뜻이었다.
6시 20분이 되자 계 경감의 문자가 들어왔다.
[저 주차장에 도착했는데요?]
[내려갑니다.]
답문과 함께 바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