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92화
59. 징크스 따위-2
“이여, 이 주임.”
정순홍이 큰 목소리로 들어섰다.
“어머.”
인사 관련 파일을 숙지하던 이해인이 반색을 했다.
“영전 축하해.”
“아우, 말로만요?”
축하 악수를 받는 이해인의 눈이 저절로 눈웃음을 친다.
“좋은 자리 있을 때 나 좀 잘 봐줘.”
“쳇, 제가 할 말이에요.”
붙임성 있는 이해인이 애교로 받아친다.
“오 팀장.”
정 과장의 시선이 경도에게 향했다.
“우리 이 주임 말이야, 제대로 좀 굴려먹으라고. 애교만 만점이지 실력은 형편 없거든.”
“아, 예.”
“시간 되면 밥이나 한 번 하자고.”
정 과장의 관심은 다시 이해인 쪽이었다.
“과장님이 쏘실 거예요?”
“그 정도 못 하겠어?”
인사를 남긴 정 과장이 돌아섰다. 이해인은 그를 배웅하러 나갔다.
“과-장-님이 쏘실 거예요? 아우, 닭살.”
정재은이 리액션을 하며 몸서리를 친다.
“이 주임님 진짜 성격 좋다니까.”
마득렬도 혀를 내두른다.
“저게 성격 좋은 거예요? 꼬리 치는 거지?”
정재은이 핏대를 올린다. 선임이라고 해도 이 팀에는 처음이었다. 그 입지를 무시하고 폭주하니 고와보일 리 없었다.
“쉬잇.”
인기척을 느낀 마득렬이 업무로 돌아갔다. 이해인이 돌아온 것이다. 재은은 불쾌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로 나가버렸다.
“…….”
경도는 곰곰이다.
머리 속에는 정순흥의 관상이 들어 있었다.
관골 위의 일자주름이 눈에 밟힌다. 재산이 새고 있다는 증거였다. 눈썹 끝에 찍힌 점이 원인이었다.
이런 점은 금전출입점이다.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 빈도가 잦다.
그는 공무원이다. 따로 부업을 하지 않는 한 그럴 수가 없었다.
연관되는 관상이 있었다. 짧은 턱이다. 사행성 게임 같은 것에 빠지기 쉬운 관상이었다. 그렇다면 투자클럽이다. 그가 투자클럽 멤버라는 소문은 들었으니 거기서 손실과 이익을 반복하는 것일까?
‘읭?’
여기에 이해인의 관상이 겹쳤다. 그녀도 짧은 턱이다.
“에이, 저 과장님은 맨날 말만…….”
이해인은 과시성 여운을 남기며 자리에 앉았다. 경도의 관상안이 그녀에게 향한다.
춘심미와 도화안은 무시해 버린다. 여기에 너무 현혹된 면이 있었다. 눈웃음 때문에 선입견이 작렬한 것이다.
콧방울부터 정밀 체크한다. 정위와 난대는 섬세하도록 약했다. 이런 사람은 사치와 소비를 즐긴다. 옷과 화장품 등에 투자가 많으니 그쪽일 걸로 생각했던 경도였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도박이다. 이런 콧방울을 가진 사람 역시 도박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자칫 패가망신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정 과장 덕분에 재조명하는 턱도 그랬다. 이런 턱은 노는 거 좋아한다. 애교가 있어 사람들에게 인기도 좋다. 그러나 금전관리 능력이 취약하다. 이 또한 도박 등의 내기나 사행성 게임에 빠지기 쉬운 측면이 있었다.
“…….”
확인사살은 그녀의 눈썹 끝이었다. 자세히 보니 점을 지운 자국이 있었다. 빼기는 했지만 깔끔하지 못했으니 미세한 차이로 남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트리플 크라운이다. 눈썹 끝에 달린 점 또한 과소비와 지출은 물론 도박의 유혹을 받는다.
‘도박.’
공무원에게는 음주나 불륜에 못지않은 금지어였다.
그러나.
공직사회에는 ‘도박’이 곳곳에 남았다. 경도 생각으로는 숙직과 비상대기 등이 원인이었을 것 같았다.
과거, 읍면동이나 작은 사업소들도 전부 숙직을 했었다. 기관에 따라서는 2명에서 10여 명까지도 밤을 새운다. 긴 밤이 지루하니 내기 화투를 친다.
비상대기도 그랬다.
비가 오면, 눈이 많이 내리면, 건조주의보에 태풍경보가 내려도 비상대기라는 걸 발령한다.
하지만 관련부서가 아닌 곳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는 곳이 많다. 언제 해제될 지도 모르는 대기를 하자니 지루하다. 또 화투가 동원된다.
과거의 병폐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하게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 그 잘못된 ‘유산’을 버리지 못하고 휴일이나 퇴근 후에 내기와 도박의 경계가 모호한 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쪽은 아니었다.
K시에서 화투나 카드를 치다가 걸린 공무원은 5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 자료를 찾았다.
“……?”
징계 파일에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식품위생팀장 정순흥-불문경고에 처함>
함께 이름을 올린 직원은 다섯 명이었다. 모두 불문경고다. 판돈이 적었고 습관적이지 않았다는 사유가 붙었다. 그러나 정순흥의 관상으로 보았을 때는 ‘습관적’이었다.
“팀장님.”
교류팀으로 가서 한 팀장을 불러냈다.
“직원 투자클럽?”
“예, 아는 거 있으세요?”
“듣기는 했지.”
“간부라고 들었는데 멤버가 궁금해서요.”
“나도 조금 밖에 몰라.”
“그거라도 부탁합니다.”
“그 이해인 주임하고 기업지원과장. 도시계획팀장 조철주도 멤버라는 소리도 있고.”
도시계획팀장은 경도도 얼굴만 본 정도였다.
“이해인 관상은 봤어?”
“바빠서 조금 밖에 못 봤습니다.”
대략 핑계를 대고 엄낙기 과장을 찾아갔다. 그 또한 K시의 마당발이기 때문이었다.
“투자클럽?”
경도의 요청을 받더니 아는 눈치를 보인다.
“아세요?”
“알지, 왜? 문제 생겼어?”
“아닙니다. 참고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다행이고…… 우리 시 직원 투자클럽이라면 두 개가 있어. 하나는 하위직 모임이고 또 하나는 간부급 모임인데 IBS라고 장두환 국장이 만든 모임이야.”
“퇴직한 장 국장님 말입니까?”
“처음에는 증권투자도 하고 하더니 그 양반 퇴직한 후로 과장 몇이 그만두고 장 과장 주재로 바뀌었지 아마? 최근에는 경매니 뭐니 해서 서울의 학원에 다닌다는 것 같던데?”
“학원요?”
“증권이 쉽나? 전에도 이상배 과장인가? 억 단위로 털렸다고 들었어. 멤버 명단 필요해?”
“예.”
“잠깐만…… 누구누구더라?”
엄낙기의 메모에 이름이 씌여지기 시작했다.
<정순흥, 조철주, 박경동, 노해찬, 이해인>
다섯 명의 이름이 나왔다.
“고맙습니다.”
명단을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정순흥은 5급이고 조철주와 박경동은 6급이다. 나머지 둘은 7급 주사보였다.
사안이 만만치 않으니 조철주와 박경동, 노해찬까지 전부 체크를 했다. 인사업무를 빙자해 각 과를 돌며 관상을 본 것이다.
“……!”
마지막으로 노해찬의 관상을 확인한 경도의 심장이 출렁거렸다.
후우.
계단참으로 나와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모두가 도박에 빠지기 쉬운 관상들이었다. 재복궁을 보니 재산이 들고 난 흔적이 심했다.
수익을 본 건 노해찬 뿐이다. 조철주와 박경동은 콧방울 인근의 찰색이 어두우니 꽤 많은 손실을 보고 있었다.
징크스.
그 단어가 뼈를 치고 갔다.
9급, 8급, 7급…….
임용이나 승진 직후에는 매번 위기가 있었다. 그 시즌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해인은 경도의 팀원이 되었다. 도박을 한다면 더욱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쿠, 오 팀장님.”
감사담당관실에서 마지웅이 나왔다.
“이리…….”
그를 계단참으로 끌고 갔다.
“도박 투서?”
“있어, 없어?”
“없는데?”
“확실해?”
“응, 과거에는 간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온 후로도 한 건도 없었어.”
“정보도 없고?”
“없지, 왜 그러는데?”
“그냥…….”
“관상이야?”
“아니, 나중에 말해줄게.”
마지웅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돌아섰다.
이해인은 자리에 있었다. 인사불만으로 찾아온 직원의 고충상담 중이다. 인사업무도 모르면서 생글생글 비위를 맞춘다. 인간관계 하나는 타고 난 것 같았다.
“잘하네?”
경도가 칭찬을 했다.
“그냥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준 거뿐이에요.”
대답에도 애교가 넘친다. 좋게 보려면 한없이 좋은 사람이다. 나이 좀 먹은 상사들이라면 녹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상황이 아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도박이었으니 끝장을 보고 가야 했다.
유년운기부위에 이어 그녀의 일진과 월진을 짚었다.
[목요일]
그녀의 일진과 월진도 다른 멤버들 것과 같았다. 즉 이들은 목요일에 ‘투자’를 한다는 뜻이었다.
어디서 할까?
이마의 변지를 짚는다.
변지는 원래 먼 곳의 운을 짚어보는 곳이다. 그러나 집중하면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당길 수 있다. 당시 방각을 보니 서쪽이다. K시에서 서쪽이면 서울이었다.
목요일 저녁 서울.
이들 멤버들은 목요일에 서울로 간다. 엄 과장의 말처럼 학원을 다닐 수도 있다. 그럼 학원에서 실전투자를 한다는 건가?
‘아니지.’
경도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 투자와 도박의 기색은 다르다. 그걸 모를 경도가 아니었으니 이들 다섯 멤버들의 기색은 하나같이 탁했다.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었다.
생각에 골똘할 때 두나의 카톡이 들어왔다.
[바쁘시죠?]
[그래도 가끔 숨을 돌리고 일하세요.]
[문득문득 당신을 생각합니다.]
[좋네요. 이렇게 가까이 있어서, 당신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사랑해요.]
꿀꿀하던 기분이 풀렸다. 요즘은 두나와 카톡하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았다. 경도가 보내지 않으면 두나가 보내고 두나가 잠잠하면 경도가 보냈다.
할 일 없는 인간들의 카톡질로 매도하던 일에 경도가 매몰될 줄은 몰랐다.
[보고싶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짧게 보냈다.
당장은 이해인에 대한 일이 먼저였다.
“이 주임.”
경도가 탐색에 돌입했다.
“네, 팀장님.”
경도보다 조금 어리지만 굉장히 깍듯하다. 대답하는 눈과 입이 생글거리니 의심을 하면서도 표시하기도 어려웠다.
“직원 투자클럽 정규멤버라며?”
빙빙 돌리지 않고 돌직구를 꽂아버렸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누가 그러더라고. 이 주임이 그 분야 전문가라고.”
“아니에요. 전문가는 무슨…….”
“하긴 관상 보니 최근에는 손실 좀 보는 모양인데?”
“어머, 그런 것도 보이세요?”
“대충 때려잡은 거야.”
“에이, 겸손하시긴. 팀장님이 관상 잘 보신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어요.”
“좋은 투자처 있으면 나도 좀 끼워줘. 혼자만 재미 보지 말고.”
“아니에요. 투자도 아무나 못해요. 때로는 손실도 많고요.”
“증권이야?”
“증권도 하고 경매도 환율도 하고…… 그냥 공부 차원이에요. 그리고 멤버는 더 받지 않기로 했어요.”
그녀가 선을 긋는다.
“하긴 이 주임도 투자 관상이 아니라서 재미는 못 볼 거 같은데?”
“어머, 저 투자관상 아니에요? 한때는 미다스의 손이라고도 불렸는데…….”
“2년 전이네?”
“어머?”
“그때 피부도 굉장히 좋았을 거야.”
“어머머머, 진짜 족집게.”
“그때 손 떼었으면 좋았을 걸.”
“맞아요. 그런데 이게 또 사는 재미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면 좀이 쑤시는 체질이라…….”
이해인이 오버하니 강재은의 눈동자와 입술이 소리없이 실룩거린다.
‘〷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것 같다. 팀 분위기가 나빠진다. 팀을 위해서도 빠른 정리가 필요했다.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을 떠올렸다.
경찰서의 계 경감이었다.
목요일이 내일이니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 K시에는 유력자의 자살사건이 터졌다. 수사는 강력팀이 하지만 지원부서인 경무계도 바빴다. 세 번 전화를 건 후에야 겨우 통화가 되었다.
“부탁이 있어서요. 사무실에 있을 테니 시간 되면 연락주세요.”
용건을 전하고 통화를 끊었다.
[기자회견 끝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계 경감의 문자가 들어왔다.
밤 9시.
그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안이 중대하니 도박조사 도와달라고 생떼를 쓸 수도 없어 퇴근 준비를 했다.
지문체크를 하고 나올 때 차량 한 대가 청사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 박사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 문을 열고 나온 건 계 경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