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징크스 따위-1> (19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91화

59. 징크스 따위-1

고백이었다.

동시에 청혼이었다.

경도는 넋을 놓고 있었다.

채두나.

그녀가 돌아왔다. 금의환향이다. 보란 듯이 자기 운명을 극복한 것이다. 그 마중물은 경도였다. 정확히는 경도가 봐준 관상이었다.

그녀가 미국으로 갈 때 체리 커피점에서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도는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걸 몰랐다.

그러나.

돌아보면 약간의 기미는 있었다. 다만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다.

경도는 어땠을까?

경도 역시 그녀를 허투루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머니께 여자를 데려가야 한다면 이런 여자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채두나의 핸드폰이 시선을 차고 들어온다.

바탕화면.

경도 얼굴이다.

용포읍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건 또 언제 찍은 걸까? 그러나 그 핸드폰 안에는 그 사진 하나만 들어 있지 않았다.

그 후로 경도가 언론에 나오거나 지역신문에 나온 모습 등이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경도가 멍을 때리는 순간에도 두나의 시선은 불변의 고정이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

“…….”

둘은 마치 이 순간에 감전된 것 같았다. 경도가 두나에게 그랬고 두나가 경도에게 그랬다.

“왜.”

경도 입이 느리게 열렸다.

“말하지 않았나요?”

“……?”

“중간에 귀띔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텐데.”

“조금 늦는 것도 있는 법이죠.”

“두나 씨는 다 극적이군요. 처음에 볼 때도 오늘도…….”

“그 극적에 열매를 맺어주세요.”

“…….”

“…….”

“고맙습니다. 나에게 이런 굉장한 기회를 주어서. 솔직히 정신이 어디로 간 건지 멍할 뿐이네요.”

“선생님.”

“그래도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

“신이라도 이 기회를 거절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

“선생님.”

두나 표정이 햇살처럼 환해진다. 그 손을 당겨 두나를 안았다. 그녀에게서 수선화향이 났다. 그 향은 조금씩 경도를 물들여버렸다. 손에서 시작해 얼굴과 가슴, 그리고 모든 것…….

경도는 그 밤 내내 수선화향을 맡았다. 싸목 할아버지 이후에 최고로 행복한 밤이었다.

이틀 후에 경도는 또 한 번의 인생 축하를 받았다.

이번에는 명혜와 윤지였다.

둘이 시청까지 찾아와 꽃다발을 전한 것이다. 부상도 있었으니 사탕 두 봉지였다.

“용돈 모아서 샀어요.”

명혜와 윤지가 새처럼 합창을 한다.

명혜는 새로 바뀐 주연 소방수와 함께 열연 로케 중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달려와 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일단.

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런 다음 자치행정과에 쫙 뿌렸다. 그래도 남으니 엄 과장의 과에도 나눠주었다.

“명혜 사탕이면 닥치고 먹어야지.”

올해 정기 건강검진에서 당뇨 수치가 조금 높아져 정밀검사까지 받았다고 걱정하던 엄 과장이다. 그래도 그 사탕만은 주저 없이 까 넣었다.

“안녕하세요?”

전입자 이해인이 경도에게 인사를 했다. 7급 4년 차 미혼이다. 이제는 그녀가 인사팀 차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득렬보다는 세 살이 어리다. 마득렬보다 빨리 임용된 까닭이었다. 공무원은 역시 일찍 들어오는 게 찐이다. 호봉제의 위력이었다.

인맵.

그녀의 닉네임이었다. 인맥의 지도를 줄인 말이다. 동기회 회장이었고 노조에서도 부지부장을 맡은 적이 있다.

권 시장의 등산모임에도 간간이 끼고 몇몇 간부들이 의기투합한 투자클럽에도 참가한다는 소문이다. 그만큼 사교성이 좋은 데다 애교도 만점이었다.

“그 책상 써.”

경도가 쓰던 책상을 지정해 주었다.

하지만.

바로 주특기인 애교가 발사되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피부가 좀 안 좋아서요. 햇살이 드는 저 자리에 앉으면 안 될까요? 병원 자주 다니면 팀원들에게 민폐잖아요.”

이해인이 가리킨 건 마득렬의 자리였다.

마득렬이 뜨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공서의 책상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직급이나 직책에 따른 의전을 적용해 배치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고참들 책상은 안쪽으로 들어간다. 마득렬의 책상은 강재은과 마주 보는 곳이니 차석의 자리는 아니었다.

“거기가 차석 자리인데?”

경도가 배치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책상 자리 같은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경도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자칫하면 윙크까지 나올 눈웃음이었다.

“마 주임?”

경도가 마득렬을 바라보았다. 책상을 바꾸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성격상 마득렬의 동의가 필요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마득렬이 수락했다.

표정을 보니 괜찮아서 괜찮은 게 아니었다. 선임이 원하니 내주는 것이다. 책상을 옮기는 것도 생각보다 귀찮다. 소소한 물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득렬이 짐을 옮기자 또 다른 요청이 나왔다.

“미안하지만 컴퓨터 모니터는 그 책상 걸로 쓸게요.”

생글거리면서 실속은 다 챙긴다. 오만 가지 관상을 본 경도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세요.”

마득렬이 뒷목을 긁는다. 좋은 것만 챙기니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인맥퀸이래요.

경도 귓가에 강재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인사팀 발령자 이름을 보기 무섭게 나온 말이다.

책상을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온 직원에게 관상안을 들이댈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저절로 발현이 되었다.

이마의 관록궁에 윤기가 떴다. 영전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얼핏 본 첫인상은 좋았다. 턱이 짧은 귀요미였다. 전체적으로 애교가 넘치는 것이다. 이런 턱은 노는 거 좋아한다. 이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의상도 남달라 톡톡 튄다. 원피스의 길이가 무릎 위로 한참 올라갔으니 용포읍의 은빛을 보는 기분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다음 것이 눈에 걸렸다.

검은자위가 갈색의 원숭이 눈이다. 고집이 세고 자기 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주변 사람이야 어떻든 자신만 편하면 그만이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이해득실에는 강하다. 득이 된다 싶으면 적극파로 변신하는 관상이었다.

입술도 흰 편이었는데 이건 좀 더 두고 봐야 했다. 입술은 건강상태에 따라 색이 변한다.

“팀장님.”

관상은 거기서 끝났다. 책상 정리를 마친 이해인이 경도에게 다가온 것이다.

“업무분장은요?”

“강 주임.”

경도가 재은을 불렀다. 방 팀장이 과장으로 가면서 경도가 팀장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다소 불합리한 업무체계를 조금 손을 보았던 차였다.

“제가 강재은 씨에게 업무를 받아야 하나요?”

또 애교 섞인 항의가 나온다. 재은은 8급이다. 이해인은 7급이니 팀장에게 지시를 받겠다는 뜻이었다.

원칙적으로 경도의 실수였다. 목에 힘주지 않으려던 일이 재은에게 파편을 튀게 만들었다.

“하위직 인사에, 징계관리, 현원관리, 임기제공무원관리를 맡아줘.”

경도가 업무분장표를 내밀었다.

“이거 언제 분장하신 거죠?”

바로 의견부터 낸다.

“문제 있어?”

“제가 저번에 홈피에서 본 분장하고 다른 거 같아서요?”

“인사팀에 관심이 많았네?”

“인사팀은 처음이지만 분장은 팀원이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서로 불만이 없지 않을까요?”

팩트 폭격이 나왔다. 경도도 동의하는 바였으니 그녀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의견 있으면 말해봐.”

“현재의 분장에서 임기제공무원관리는 배제하고 공로연수와 인사기록관리를 붙여야 업무의 효율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공로연수를 지목한다. 이 업무에는 퇴임식이라는 게 수반된다. 그 말은 곧 공로연수에 들어갈 사람을 관리하겠다는 뜻이었다.

공로연수는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이 사회적응을 위해 받는 교육이자 준비 기간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는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든 마음에 들지 않은 간부를 찍어 공로연수를 강요해 버리면 사실상의 퇴직 압박이 될 수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공로연수와 인사기록관리는 내가 맡았어. 아무것도 안 하고 직원들 성과 가로채는 무능한 팀장 소리는 듣기 싫어서 말이야.”

“……!”

이해인의 입술이 살짝 오므라지는 게 보였다.

공직 팀장들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직접 업무를 보며 팀을 지휘하는 실무형 팀장과 업무는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형 팀장.

경도는 전자였으니 이해인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일하지 않는 팀장이야 문제라지만 일하는 팀장은 문제 될 게 없었다.

“저 행정팀에 가서 작별인사 좀 하고 올게요.”

깔끔하게 승복한 이해인이 핸드폰을 챙겨 들고 나선다.

슬쩍 보니 강재은과 마득렬의 인상이 많이 구겨졌다.

“왜? 닉네임답게 성격 화끈, 애교 충천이라 좋은 거 같은데?”

경도가 미리 선수를 쳤다. 팀원들은 촌평을 삼간다.

사실 경도도 조금 찜찜하기는 했다.

그 찜찜이 교류팀장 한인섭에게서 증폭되었다. 경도의 도움으로 이빨을 뽑고 임플란트를 해 넣은 그 사람이었다.

“오 팀장.”

6급 이상의 정례조례를 마치고 나올 때 그와 만났다. 팀장의 자격으로 경도가 참석한 첫 정례조례였다.

“승진 축하해.”

“또요?”

경도가 웃었다. 축하인사는 이미 받은 후였다.

“백 번이면 어때? 내 일처럼 기분 좋은데.”

“욕도 많이 먹습니다.”

노조 홈피에 올라온 반응을 전했다. 두 개의 게시물이 그랬다. 경도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승승장구하는 경도에 대한 폄훼와 비판이었다.

“그런 거 신경 쓸 거 없어. 루저들은 평생 그렇게 살라지.”

“예.”

“그나저나 이해인이 오 팀장 팀으로 갔대?”

“잘 아세요?”

“나는 잘 모르지만 내 동기가 잘 알지.”

“그래요?”

“일자리경제과에 있다가 자치행정과로 왔잖아? 그때 팀장이 내 동기야.”

“그렇군요.”

“듣자니 이번 인사는 방 팀장이 짰다면서?”

“예…….”

“하긴 오 팀장이 짰으면 그럴 리가 없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인 말이야, 관상 봤어?”

“제대로 본 건 이제 겨우 한 번 본 걸요.”

“그럼 언제 제대로 봐봐.”

“혹시 사교성 때문입니까?”

“그것도 가끔 구설수가 되기는 하지만 그건 아니고. 나도 들은 얘기라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까 오 팀장이 직접 확인하라고. 그래도 다행인 건 오 팀장 밑이네. 임자 제대로 만난 건지도 모르지.”

말에 복잡한 복선이 깔린다.

“이해인 주임, 권 시장님 라인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사표 낸 장두환 국장 라인이기도 하지.”

“장두환 국장님요?”

장두환이라면 이 국장 사건을 해결할 때 용의선상에 있던 그 국장이었다. 방 팀장은 시보를 그의 휘하에서 시작했다.

일이 그렇게 되는 건가?

“아무튼 그래. 일단 관상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한 팀장이 계단을 내려갔다.

이해인.

인사팀에 컴백하니 그녀는 상담실에 있었다. 방문객도 있었다.

“아는 직원들이래요.”

강재은이 볼멘소리를 낸다. 첫인상부터 감점을 받은 이해인이었다.

“이야, 우리 견우회도 이제 막강하네? 이해인이 인사팀 차석이라니?”

“한턱 단단히 내야 하는 거 알지?”

“이러다 인사팀장에 자치행정과장까지 다 해먹는 거 아니야?”

안에서 흘러나오는 건 남자직원들 목소리였다.

“그만들 하고 가셔. 남은 얘기는 모임에서 하자고.”

이해인이 몰아낸 남자는 무려 셋이었다.

꾸벅.

그들은 경도에게 대충 인사를 남기고 퇴장했다.

성격 좋다.

견우회는 동년배 모임이다. 그녀가 홍일점이다. 그것 외에 시장과 몇몇 간부들의 등산모임에도 여자로는 방 과장을 빼면 유일한 존재다. 투자모임에도 홍일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관상 보고 얘기하자고.>

한 팀장의 말이 스쳐 간다. 별수 없이 이해인의 관상에 디테일을 수행하게 되었다.

갈색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술의 흰 기색은 변했다. 그새 립스틱을 바른 것이다.

다시 보니 춘심미에 도화안이다. 눈썹을 밀고 그렸지만 경도 눈을 속일 수 없다.

춘심미는 도화안과 단짝이다. 가늘고 둥근 채 높이 떠서 긴 궤적을 그리며 눈을 지난다. 눈 역시 화답이라도 하듯 활처럼 가늘게 휘며 교태를 부린다.

광대와 명문의 혈색도 너무 좋다. 이는 유흥을 좋아해 남녀관계가 왕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녀관계는 이성친구 정도가 된다. 육체를 왕성하게 섞으면 광대와 명문의 색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폭발적인 사교성.

이것도 문제가 될까?

대다수가 남자직원들이니 시기?

‘괜한 구설수 덩어리를 받은 건가?’

경도가 골똘해졌다.

승진 때마다 연례행사로 달려들던 시련 아닌 시련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이런 형태로 온 걸까? 감을 잡기 어려울 때 단서 하나를 잡게 되었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들른 정순흥 과장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국에서 기업지업과장을 맡고 있다. 그 관상에서 위험한 힌트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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