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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수선화를 만났습니다-2> (19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90화

58. 살아 있는 수선화를 만났습니다-2

경도 기억이 회귀했다.

그녀를 만나던 그 날로.

그녀의 순백 청초함은 뼈에 새겨진 관상이었다.

시작은 오른쪽 이마의 점이었다. 미릉골에서 시작해 코를 덮고 있던 먹구름은 흔적조차 없었다. 완벽하게 개었다. 이마 오른쪽 월각 자리에 맺혔던 청색의 불운도 가셨다. 어머니도 완쾌되었다는 뜻이다.

짙은 눈썹이 아름답던 아안의 눈동자는 더 크고 검게 보인다. 그 난관 속에서도 생동하던 눈두덩이는 마침내 활기에 넘치고 눈동자의 흑백은 더욱 선명해졌다.

이 모든 기운이 그녀의 관골에 모였다. 양 관골은 홍색을 품은 듯 화사하고 천창과 지고가 빛난다. 불운이 끝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마의 점에 더해 왼쪽 입술에 찍힌 점.

남편에게 대운을 안겨줄 저 점 역시 기세가 좋아 보인다.

그렇기에 그 고난의 흙 속에서도 반짝이던 진주였던 채두나.

책상 위의 물품을 정리하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 앞에 여자를 데려가야 한다면 이런 여자이고 싶었던 경도였다. 여자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 그녀가.

돌아왔다.

더욱 아름답고 청초한 순백으로.

그녀 스스로 고난의 사슬을 깨고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채.

‘왜 이래?’

잠시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고른다. 자신에 대한 꾸짖음이었다.

그녀의 역경 극복은 경이롭지만 경도가 흥분할 일은 아니었다.

축하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정신 차려.

물을 한 잔 마시고 청사를 나섰다.

좋은 날, 좋은 일이 겹치니 좋네.

달아오르던 마음은 이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약속된 한정식집에 도착하니 그녀의 어머니 유송화가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니가 인사를 한다.

맞인사를 하고 관상을 체크한다. 병은 질액궁에 보인다. 질액궁이 어두우면 백발백중이다. 이제는 역마도 빛나고 변지는 안정적이며 인당까지 단정하다.

딸을 사지로 내몰던 병마는 사라진 것 같았다. 처절한 위기를 넘겼으니 기색이 피고 있다.

두나는 효녀다.

유송화의 얼굴에도 쓰여 있다.

와잠을 본다.

좌남우녀이니 오른쪽 와잠에 윤기가 흐른다.

와잠이 윤택하면 말년이 평안하다. 집안을 일으키는 자식이 있다. 두나의 미래가 밝은 것은 어머니의 관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나에게 얘기 들었어요. 전에 수술이 끝나고 회복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두나가 괜한 폐를 끼치지 말라고 당부해서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

“늦게나마 감사를 드립니다.”

단정하게 고개를 숙이는 유송화가 고아하다. 삶은 천격이었지만 관상과 심상은 귀격인 두 사람. 그 딸에 그 어머니였다.

식사가 나왔다.

두 여종업원이 양쪽에서 잡고 들어오는 상은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대충 확인한 반찬만 60가지가 넘었으니 왕이 먹는 12첩 반상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드세요, 선생님.”

두나가 식사를 권한다.

“잘 먹겠습니다.”

군더더기 달지 않고 열심히 수저를 움직였다. 그것만이 모녀를 축하해주는 일일 것 같았다.

“미시간 주립대를 나오셨다고요?”

식사를 하며 경도가 물었다.

“네.”

“심리학 전공이에요?”

“네, 저처럼 갈등하는 사람들, 나아가 마음이 허전한 사람들의 빈 곳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처럼요.”

“저요?”

“선생님의 관상, 저에게는 굉장한 은혜였거든요. 솔직히 전공 중에 관상학이 있으면 그걸 배웠을 거예요. 하지만 미국에는 관상학과가 없더군요.”

두나가 차분하게 웃는다.

“대단하네요. 미시간대면 굉장한 명문일 텐데.”

“심리학 분야에서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요. 실은 1-2등 하는 대학을 목표로 했는데 둘 다 합격했지만 미시간대에서 장학혜택을 준다고 하길래 선택했어요.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거든요.”

“대단한데요? 장학금까지…….”

“선생님이 만들어준 인생 장학금만이야 하겠어요?”

“아뇨. 저는 관상 보면서 그런 말 자주 하는데 그건 제 덕이 아니라 두나 씨 덕입니다. 난관의 극복은 자기 힘으로 개척하는 거지 관상이 해주는 게 아니거든요.”

“그건 알아요. 하지만 계기와 확신도 중요하죠.”

“직장도 구하셨네요?”

경도가 웃었다. 인당이 밝고 보골이 대들보처럼 당당하게 섰으니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신호였다.

“지도교수님이 미국 심리학회 회장이세요. 그분 소개로 SS병원에 수석상담사 자리를 얻었고요 몇 년 경력을 쌓은 후에 대학 강단으로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잘하실 겁니다.”

“이제 선생님 얘기를 들려주세요.”

두나의 포커스가 경도 얼굴로 고정되었다.

“에? 저야 말단 공무원 생활이 뻔한 데요, 뭐.”

“선생님이 그냥 말단 공무원이세요?”

“그럼요? 어제까지만 해도 지방행정주사보였는 걸요.”

“그건 눈에 보이는 직책이고 관상이 있잖아요? 미국으로 간 후에 하루 4시간만 자면서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선생님 일은 챙겨보고 있었어요. 관상으로 살려내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운명…….”

“그래요?”

“그것만으로도 큰 자극이었거든요. 그런 선생님에게 부끄럽지 말자.”

“햐,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뭐나 된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잘 모르시네요. 그 관상의 위력을.”

“그거야…….”

“선생님이 살린 아이들과 선생님이 도와준 사람들…… 그중에는 굉장하신 분들도 많더군요. 그러면서도 말단 공무원으로 묵묵하게 정진하는 걸 보면서 또 다른 울림이 있었어요.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아닙니다. 저도 실은 허접한 공무원이었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거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인사팀장…… 작지만 선생님에게 딱 맞는 자리 같네요. K시는 복 받은 도시 같아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까도 인사 잘못되었다고 깨지고 나온 걸요.”

“하느님도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칭송받지는 못하니까요.”

그녀가 웃는다. 원래도 우아하고 수려했던 채두나. 이제 학식에 성취까지 갖추고 나니 더 품격이 높아 보였다.

어머니 얘기도 나온다.

병에서 나은 후에 작은 전통반찬점을 열었단다. 그녀가 이사장집의 파출부를 할 수 있던 것도, 그들 부부의 눈에 든 것도 반찬 솜씨 때문이었다.

겸손하고 차분한 어머니는 그게 자랑인 줄도 몰랐다. 두나가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진짜 요리사였다.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고 요란한 스펙도 없지만 손맛은 최강이다. 무슨 고명이 어쩌고 플레이팅이 저쩌고 하는 잔재주 안 부려도 질박하게 담아낸 음식은 맛깔스럽기 그지없었다.

“엄마, 반찬점 그거 유튜브에 올려.”

두나의 제의였다. 다른 유튜브를 하던 절친에게 부탁해 동영상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쪽박이었다. 이제는 개나 소나 뛰어드는 유튜브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만든 건 개나 소나 만드는 그런 반찬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종갓집 할머니에게 배운 정통의 맛과 멋이 서렸다.

그걸 궁중요리 전문가가 알아보았다. 먹어보니 맛도 좋았다. 그렇게 매칭이 되면서 어머니의 유튜브는 30만 구독을 찍었다.

돈 따위는 욕심이 없었던 분. 자기가 정성껏 만드는 반찬이 대우받는 게 좋았을 뿐이니 다른 유튜브들처럼 발악하지 않아도 저절로 구독자가 늘어갔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던 절친이 자기 유튜브를 접고 어머니 전속이 되었다. 두나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인생도 핀 것이다.

“이야.”

방송을 찾아본 경도가 입을 벌렸다.

경도 어머니도 가정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그 동네에서는 손맛 좋기로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러나 두나의 어머니는 그 이상이었다. 무엇 하나 꾸미지 않는 손길과 재료, 양념 등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방송을 위해 꾸미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일 팔기 위해 만드는 반찬의 제작과장일 뿐이다.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매력을 높여주고 있었다.

“멋지네요.”

경도의 엄지척이 저절로 나간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아유, 칭찬 들을 정도는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이 워낙 음식을 안 하다 보니…….”

어머니가 얼굴을 붉힌다.

이런저런 대화 속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두나의 미국 이야기가 나온다.

코로나 초기에는 그녀도 고전을 했다. 입으로는 인권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동양인을 경시하는 미국 사회였다.

마스크를 쓰면 썼다고 경원하고 벗으면 벗었다고 경원을 한다.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동양인으로서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조차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할 공부는 많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많았다.

한 번은 교수가 남학생 다섯에 여학생 둘을 묶어 이웃한 주에 인턴쉽으로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학생들과 사귈 기회를 준 거였다. 같이 간 여학생이 분위기 조성의 밀명을 받았다.

일이 끝나는 5시 이후에 매번 어울려 다녔지만 남학생들과는 친구 이상으로 가지 않았다.

“왜요? 어차피 떠난 유학인데 거기 남자랑 결혼해서 눌러 살 수도 있잖아요?”

경도가 물었다.

“그런 건 제 계획에 없었어요.”

한국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나요?

이 질문은 하지 않았다.

속 보이는 질문이었으니 당시의 사정을 아는 까닭이었다. 대리모 제의를 받은 그녀였다. 좋아하는 남자는 없었고 그녀의 남녀궁에서도 확인한 바였다.

지금 돌아보면 마지막에 약간의 기색은 엿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고난에서 벗어나던 때였으니 주변의 윤기가 반사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정말 잘 됐네요.”

경도의 마무리였다.

행복한 순간이다.

어제 오늘은 경도도 행복하다.

그래서 헤어질 시간이었다. 뭐든 늘어져서 좋을 것은 없다. 관상조차 그랬다.

“다른 약속이 있으세요?”

경도가 일어설 눈치를 보이자 두나가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어머니랑 좋은 시간 보내셔야죠.”

“배려해 주시니 고맙네요.”

“뭘요.”

“엄마.”

두나가 어머니를 돌아본다. 미리 약속이 된 건지 어머니가 먼저 일어나 작별을 고한다.

“선생님께 관상 한 가지 부탁드려야 해서요.”

어머니가 먼저 나가는 이유를 두나가 밝혔다.

“관상요?”

“네.”

“취업은 하셨고…… 뭐가 궁금하세요?”

“선생님은 아직 미혼이시더군요. 죄송하지만 제가 다른 분들에게 알아보았습니다.”

“아, 그게…… 아직 재주가 없어서…….”

“제 결혼운을 좀 봐주세요.”

두나가 얼굴을 바로 세웠다. 자동으로 어깨가 서고 척추도 바로 선다. 반듯하다. 둥글게 일어서는 어깨만 봐도 좋은 신붓감이 분명했다.

결혼운을 묻는다.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걸까?

“좋아하는 분이 있으세요?”

“네.”

“그럼 그분의 사진도 같이 보여주시면…….”

“일단 제 관상부터 보시면 안 될까요?”

두나가 눈빛을 바로 세운다.

“그러죠.”

사진 보여주기가 곤란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굳이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결혼운]

불운을 떨치고 일어난 청초의 천사.

이 여자의 결혼운은 언제쯤일까?

남녀궁을 벗겨본다.

맑은 기색이 유려하다. 그 기색은 갓 핀 꽃의 홍조처럼 아름답다. 코의 준두도 밝고 명궁과 인당에는 자색이 깃들었다. 혼담이 오갈 징조였다.

‘마음에 정해둔 남자가 있었군.’

경도가 웃었다.

하긴 이렇게 맑은 여자가 남자가 없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유년운기부위를 체크하니 올해부터 수 삼 년간 광명이 깃든다. 그 후의 운도 좋지만 두나는 3년 안에 결혼할 운이었다.

“빠르면 1년이고, 늦어도 3년 안에 결혼할 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 있는 사람이 제 마음을 받아줄까요?”

두나의 목소리가 경도 귀에 녹는다.

“간문의 기색을 보니 그럴 것 같네요.”

“정말이시죠?”

“네. 관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그분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아무래도 같이 봐야 더 확실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낸다. 그러더니 그대로 경도 앞에 내밀었다. 바탕화면이었다. 거기 한 남자의 사진이 빛나고 있었다.

그 사진은…….

“……?”

경도였다.

“두나 씨.”

경도 시선이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미국으로 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성공해서 돌아오면, 그때까지도 선생님이 결혼하지 않고 있으면 청혼하겠다고. 그래서 저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일 년이라도 더 걸리면, 선생님을 놓칠 가능성이 더 높아지니까요.”

“…….”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이 되든 당신에게는 부족하다는 거. 하지만 당신이 저를 구원하던 그 순간, 제 마음은 그렇게 정해져 버렸습니다. 어차피 구해준 인생이니 이제 제대로 구해주세요.”

채두나.

그녀의 시선은 경도에게 꽂혀 떨어지지 않았다.

경도는 그저 경련할 뿐이다.

따닥따닥, 이빨까지 부딪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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