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반전의 반전-3> (188/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88화

56. 반전의 반전-3

6급.

공무원에서는 간부대접을 받는다. 옛날 호칭으로는 계장이다. 9급부터 6급까지는 다 같은 주무관이지만 6급은 ‘팀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사팀장에 임함]

그 한 줄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토사구팽인 줄 알았다. 시 인사의 맥을 잡아주니 더는 필요가 없어 정리가 되는 신세. 그렇게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승진이다.

다른 보직도 아니고 인사팀장으로 바로 올라갔다.

[태양]

형수 후보자가 봐준 타로점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타로의 대가인 것일까?

하지만.

그걸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시청 안에 있었다.

“팔 떨어지겠다.”

방 팀장이 주의를 환기 시킨다. 그제야 알았다. 그녀의 흰 손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는 걸.

“팀장님.”

“흐음, 표정 보니 내가 천하의 관상박사를 제대로 속인 모양인데? 나 사무관 거부하고 연예계로 나갈까?”

“팀장님!”

“아아, 나는 죄 없어. 시장님하고 이 국장님 합작품이니까.”

“그 두 분이오?”

“나중에 따로 물어보고, 일단 악수.”

방 팀장의 손은 그때까지도 내밀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경도가 그 손을 잡았다.

“축하해.”

“팀장님.”

“능력 없는 내 밑에서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아니긴. 나는 능력자 차석 때문에 완전 꿀 빨았거든.”

“인정 못합니다. 팀장님도 제가 모신 팀장님들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아주 나쁘지는 않았나보네. 엄낙기 팀장님도 과장으로 밀어주더니 나도 밀어준 거 보면…….”

“아닙니다. 저는…….”

“결과가 말하고 있잖아?”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내 몫 아니니까 이 국장님한테 가봐. 나 내려오는데 발표 끝나면 저기 사거리 복어집으로 오 주임 좀 보내달라고 하시더라고.”

“이 국장님…….”

대화하는 사이에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오, 전쟁 시작이네. 내일 보자.”

방 팀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이번에는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태술이었다.

“오 팀장.”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권태술.”

“축하는 안 해주냐?”

“어? 축하한다.”

“나도 축하한다. 인사팀장,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해.”

“감사실 복귀 축하한다.”

“그래. 앞으로 자주 보자.”

태술의 전화가 끊겼다. 그러자 어깨 뒤에서 꽃이 불쑥 넘어왔다. 염정아였다.

“뭐야? 팀장으로 승진하더니 꽃도 안 보여?”

“염정아…….”

“축하한다. 앞으로 잘 좀 봐줘.”

“고맙다.”

“그런데 그 표정 뭐야? 마치 팀장이 아니라 사무관이라도 노리다 물 먹은 사람 같네?”

“아니, 그게 아니라…….”

“오 팀장님.”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섰다. 감사담당관실의 마지웅이었다.

“으아, 능력자는 역시 다르구나. 축하해.”

그가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권태술도 승진해서 우리 감사담당관실로 오던데?”

“그렇더라.”

“이야, 우리 기수가 팍팍 나가네. 둘이 한 턱 제대로 내라.”

마지웅은 경도 어깨를 두드려주고 나갔다.

“축하합니다.”

“축하해.”

퇴근 중이던 자치행정과 직원들의 축하가 이어진다. 돌아보니 육 과장은 자리에 없다. 오늘도 일찌감치 퇴근을 한 모양이었다.

“어서 오게.”

복어집 예약실에서 이 국장이 경도를 맞았다. 옆에는 육 과장이 동석하고 있었다.

“국장님, 과장님.”

“축하하네.”

육 과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다음은 이 국장이었다.

“오경도 팀장.”

이 국장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국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이렇게 되지 않았나?”

이 국장이 웃는다.

“일단 앉게.”

육 과장이 옆자리를 권한다.

“국장님…….”

“어려워할 거 없네. 자네도 이제 간부야. 한 번만 더 승진하면 과장이라고.”

이 국장이 표정은 한없이 온화했다.

“저는 뭐가 뭔지…….”

“인사에서 배제되어서 놀랐지?”

“예, 조금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식사부터 하세나. 메뉴를 고르시게.”

“저야 뭔들 못 먹겠습니까?”

“오늘 주인공은 자네야.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비싼 걸로 고르게. 자초지종을 미리 말하지 못한 사과까지 겸하는 거니까.”

“비싼 거 시켜도 됩니까?”

“당연하지.”

“그럼 저 복어회 하나 시켜주십시오. 그게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하더군요.”

“그러세. 복어회에 지리 하나 시키면 되겠군.”

이 국장이 오더를 넣었다.

복어회가 나왔다.

종잇장 같은 색감이 기가 막혔다. 마치 쌀알의 찰색을 보는 느낌이었다. 

“축하주네.”

이 국장이 청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꼴꼬꼬.

술 나오는 소리도 청량했다.

“이번 일은 한 마디로 오월동주가 아니었나 싶네.”

마침내 이 국장의 설명이 나왔다. 오월동주라면 적과의 동침이다.

“시장님은 그동안 자네 덕을 많이 보았지. 자네의 관상안으로 거른 인사로 시를 도약 시키고 직원들 불만을 최소화했으니까.”

“…….”

“하지만 그 분도 정치인일세. 이 말을 유념하게.”

‘정치인…….’

“정치란 세력이지. 임기 동안 세력을 갖추지 못하면 재선은 요원하네. 그런데 이제 다음 선거가 코앞 아닌가? 여기서 정비하지 않으면 시간이 없어.”

“…….”

“그렇게 따지면 자네의 실수이기도 했네. 결코 탓할 수 없는.”

“실수라고요?”

“현명한 부하라면 수장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어야지. 하지만 자네는 정도를 걸었지.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자네를 좋아하는 거기도 하지만.”

“국장님.”

“모난 돌은 정을 맞기도 한다네. 내 경우를 알지 않는가?”

“…….”

“자네의 초안이 두어 번 퇴짜를 맞는 것을 보고 알았지. 이번 인사에서는 시장님이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것.”

‘……?’

“그러나 시장님은 자네를 아네. 만만한 7급이 아니라는 거. 그렇기에 직구를 못 뿌리고 변화구로 돌리고 있던 참인데 자네가 캐치를 못한 거야.”

“…….”

“그냥 두면 자네가 다칠 것 같더군. 아부 떠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오경도 오만하네, 많이 컸네 하고 바람을 넣으면 시장님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세상은 올바른 자만이 승리하는 곳이 아니거든.”

“…….”

“해서 시장님께 슬쩍 제안을 드렸네. 이번 인사 기획은 방 팀장에게 넘기자고.”

“국장님.”

“인사 초안이 나오기 전에 핵심회의를 가진 적이 있었네. 내가 자네 승진안을 냈어. 하지만 다른 국장들이 호응하지 않으니 시장님도 그냥 넘어가더군. 그러니 기브 앤 테이크했다고나 할까?”

“국장님?”

“지금까지 자네의 인사업무는 거의 만점이었네. 내가 임용된 후로 이런 평가는 처음이야. 그런데 승진 못할 게 뭔가? 하지만 중이 자기 머리는 못 깎는 법이라고 자네 인품에 6급 승진후보자 명단에서 고참들 밀어내고 자네 이름을 적어내지는 못하겠지.”

“…….”

“그래서 이번 인사를 방 팀장에게 맡기는 쪽으로 선회를 한 거네.”

“…….”

“자네에게 귀띔을 넣지 않은 건 분위기를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였네. 미리 말해주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는 것이니 진짜 같은 분위기 형성이 필요했지.”

‘매애매애(買哀賣愛).’

사자성어 하나가 머리를 치고 갔다. 의역을 하자면 인정할 건 인정하고 실속을 차린다는 뜻이었다.

“방 팀장의 승진은 그 부담을 대리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권 시장님 인맥이 여럿 약진을 했네. 지방공사 쪽에도 10여 명 밀어넣었고……. 그건 내가 보기에도 좀 무리인데 말이야.”

이 국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 일은 결국 다가오는 시장선거에서 권 시장에게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는 거였습니까?”

“자네는 다른 사람들처럼 한 번 쓰고 버릴 카드가 아니기에 가능했던 일이네.”

“국장님.”

“자의건 타의건 인사업무 오래 하면 직원들에게 원한을 사게 되지. 생각해 보게나. 이번에 자네가 자네 손으로 인사팀장이 되는 초안을 올려 통과가 되면 자네의 공도 폄훼가 될 걸세. 지 놈 승진하려고 머리 굴린 거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저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배구를 좀 좋아한다네. 거기 보면 팀을 이끄는 게 세터인데 훌륭한 세터는 자기 편 선수조차 속여가면서 공을 올려준다고 하더군. 이번에 자네의 산교육을 위해 흉내 좀 내보았네.”

“여러 비난을 국장님이 받아내셨군요. 시장님과 껄끄러워지셨겠습니다.”

“그게 자치행정국장의 존재 가치 아닌가? 내가 또 딸랑딸랑 아부나 비벼대는 스타일도 아니고. 자치행정국장 몇 해 해먹었으니 당장 나가도 여한 없네.”

“국장님.”

“이제 속이 시원한가?”

“부끄럽습니다. 죄송하기도 하고요.”

“좌절했었나?”

“예.”

“좋은 현상이네.”

“예?”

“좌절 말이야. 그걸 모르고 승승장구만 하는 건 좋지 않아. 자네는 좀 특별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이지. 자네가 시장이 아닌 한 꿈꾸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네. 우리 직원들 성향이 굉장히 다양하거든.”

“…….”

“자네가 관상에서 쓰는 말처럼 액땜했다 생각하고 각오를 다지시게나. 그럼 인사팀장 직책도 훌륭하게 수행할 거야. 기왕 인사팀에 몸 담은 거 욕 좀 먹더라도 과장 달고 나와야지.”

“감사합니다.”

이 국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인품과 깊은 배려가 뼈를 치고 지나갔다.

즉 권 시장의 가려운 곳을 눈 감아주고 경도를 살린 것이다. 직선제 시장 체제에서 피할 수 없는 관행(?)이기도 했다.

시장 라인의 강화.

그 시점이었다.

정도를 가는 경도는 그걸 몰랐고 직선 시장 체제의 생리를 잘 아는 이 국장은 그 수를 내다보고 있었다.

“자, 고비를 넘겼으니 앞으로도 멋진 인사행정을 부탁하네.”

이 국장의 격려가 나왔다.

육 과장은 더하는 말 없이 술잔만 채워주었다. 넙죽넙죽 받아마시다 보니 술이 알딸딸하게 올랐다.

6급이다.

7급과는 또 다른 이 성취감.

그걸 감추기 위해 또 잔을 비웠다.

“그럼 내일 보세.”

술자리가 끝났다. 이 국장과 육 과장이 떠났다.

‘후우.’

숨을 고르기도 전에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샤우팅부터 질렀다.

“깜짝이야, 웬일이냐?”

“웬일은? 엄마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무슨 일 있냐?”

“엄마는, 보고싶어서 했다는데 뭐가 무슨 일?”

“너도 애인 생겼어?”

“아니, 형이 전화했어?”

“그래. 여자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

“그거 진짜야. 내가 봤거든.”

“참하든?”

“엄마 마음에 딱 들겠던데?”

“아유, 니 형이 그래도 여자 보는 눈은 있구나. 기왕이면 너도 여자랑 같이 오면 좋은데?”

“엄마, 나는 그보다 더 좋은 소식 있는데?”

“좋은 소식? 또 상 받았니?”

“아니, 나 승진 먹었어.”

“승진?”

“그래. 엄마 아들 오경도가 이제 팀장이 되었다고.”

“아이고야, 팀장? 그게 정말이냐?”

어머니의 숨소리가 절반은 넘어간다.

“그래. 엄마 덕분에 7급에서 6급으로 올랐어. 고마워.”

“고맙기는, 니가 고생이 많았지. 아유, 니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뭐야? 또 우는 거야?”

“울기는…… 그냥…….”

“엄마.”

“응?”

“좋지?”

“좋다마다, 내가 어깨춤이 저절로 나온다. 요 며칠 무르팍이 좀 시큰거렸는데 하나도 안 아파.”

“그건 보건소 가보고, 아무튼 그런 줄 알아.”

“그래. 고맙다. 경도야, 경규야. 엄마가 도와준 것도 없는데 잘들 자라줘서.”

“나도 고마워. 엄마, 날도 어두운데 괜히 동네방네 자랑질 말고 일찌감치 주무세요. 알았죠?”

“알았어. 너도 푹 자렴.”

어머니와의 통화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형에게 걸었다.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경규는 잘 믿지 않았다.

“알았다. 사기꾼 동생은 의무 다했으니까 전화 끊는다.”

“야, 너 진짜냐?”

“아니면? 형수후보님께서 봐준 타로점도 가짜냐?”

“진짜구나?”

“그래. 동생 말도 못 믿는 벼락성장 출판사 대표님, 나중에 봅시다.”

애정 섞인 빈정을 남기고 전화를 끊자 벨소리에 불이 난다.

“야, 짜식이 농담 한 번 한 걸 가지고 삐지긴? 엄마한테는 알렸냐?”

“당연히 보고했지.”

“그럼 이제 시청 인사팀장님?”

“뭐 그렇다고 봐야겠지?”

“축하한다. 너 우리 미리 씨 덕분이니까 나중에 한 턱 내라.”

“형이 내는 게 아니고?”

“야, 너 우리 미리 씨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어. 타로 점 때문인 거잖아?”

“…….”

“아무튼 대박 축하한다. 아, 세로토닌 팍팍 나오네.”

경규도 흥분 모드다. 일대 반전으로 승진을 먹은 날의 밤이 신나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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