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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반전-2> (18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87화

56. 반전의 반전-2

귀를 보았다.

귀가 마르면 운이 따르지 않는다.

인당을 보았다.

점이나 흉터가 생기면 좋지 않다.

관록궁도 마찬가지니 체크를 한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법령선도 뜯어본다. 바깥에 미색이 돌아도 안 쪽이 어두우면 실익이 없다.

보이지 않았다.

쌀알의 색도 골라내는 경도지만 자신의 관상만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무장해제를 당했다.

발령 이후로 인사팀의 실무를 도맡았던 차석이 인사업무에서 배제가 되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방 팀장은 분주하다. 강재은과 마득렬을 수시로 불러 직원 고과와 평판수집을 다시 했다. 경도가 올린 것 외에 다른 평가법으로 체크하는 것이다.

“죄송해요. 주임님.”

강재은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팀장님 잘 도와드려.”

따뜻한 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허망했다.

인사팀에 온지도 수 년.

어떤 사심도 갖지 않고 적재적소와 공평의 원칙을 지켰다. 그렇기에 직원들과 권 시장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니 이번 인사안이 시장의 비위를 건드렸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뭐가 원인일까?

큰 건은 국장 자리다.

권 시장은 산림농지과장 정철은을 밀고 있다. 경도 생각은 달랐다. 그는 무사태평주의이자 보신주의자였다. 시정을 위해 후보군에서 빼는 게 당연했다.

두 번째는 과장급이다. 권 시장이 운을 떼던 사람은 넷이었다. 그러나 둘만 넣었다.

경도가 제외한 인물들 속에는 방 팀장도 있었다. 경도의 상사였으니 슬쩍 밀어넣을 수도 있었지만 다면평가에 돌려보니 후보순위자들 중에서 6등이었다. 평가의 원칙이라는 게 있으니 별 수 없었다.

마지막은 권태술 같았다.

이게 마음에 걸리는 건 시장 때문이었다.

‘자네 기수는?’

그 기수 중에서 앞서 간 건 태술과 염정아였다. 그리고 태술은 권 시장과 각별(?)한 관계이기도 했다.

“오경도.”

복도로 나와 자판 커피를 마실 때 염정아가 다가왔다.

“뭐냐? 그 얼굴? 시장님께 깨졌냐?”

“그렇다, 왜?”

“그럼 누나 커피도 한 잔 뽑아봐라. 같이 마셔줄게.”

“헙, 사주는 것도 아니고.”

“사주고 싶은데 이미 뽑았잖아?”

“알았다, 알았어.”

경도가 버튼을 눌렀다.

“안 그래도 할 말 있었는데?”

“나한테?”

“그럼 내가 지금 귀신하고 토킹 중이냐?”

“인사 얘기면 관둬라. 나 이제 힘 없다.”

“내 동생 얘긴데.”

“공무원 시험 공부하던?”

“응, 오늘 가게 오픈인데 너 좀 왔으면 하는 눈치더라?”

“공무원 되는 거 접었네?”

“니가 접으라고 했잖아?”

“무슨 가게야?”

“엔틴 전문가구점.”

“엔틱 전문가구?”

“나는 특선요리점 차리나 싶었는데 그걸로 가더라. 니가 넓은 가게로 시작하면 좋다고 했다며?”

“그랬지.”

“그러니까 가서 책임 져줘야 하는 거 아니냐? 신부감도 볼 겸.”

“신부감?”

“그것도 니가 결혼하라고 등 밀었잖아? 우리 오빠, 그 다음 날로 엄마 아빠한테 딜을 걸었나보더라. 천기를 받았으니 결혼비용은 창업자금으로 내달라고.”

“…….”

“원래 꼰대처럼 옛날 것들도 좋아했거든. 그런데 여친이랑 둘이 해외여행 다녀오더니 엔틱 쪽으로 가더라. 동남아의 고가구를 헐값에 사다가 수리해서 엔틱으로 팔면 비전이 있다는 거야. 유럽으로 수출도 할 거라고 의기양양이야. 나는 좀 걱정이긴 하지만.”

“가자.”

경도가 답했다.

그렇잖아도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진짜?”

“네, 퇴근 후에 뵙시다.”

경도는 다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염정아 오빠의 기세는 좋았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목소리도 밝았다.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은 모습이었다.

다소 성급하지 않았나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게의 위용을 보니 우려가 가셨다. 신붓감 때문이었다. 응용미술을 전공했다는 그녀의 눈썰미가 수준급이었다. 전시가구와 작업실 풍경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고난도의 작업은 전문가들에게 맡기지만 간단한 작업은 작업실에서 한다. 고객관리에 좋은 결정이었다.

“어때요?”

가게 안을 소개한 정아 오빠가 경도 의견을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엔틱 가구에는 문외한이라서요.”

“괜찮습니다. 느낌만 말해주시면…….”

“다른 건 몰라도 관상은 훤해졌네요. 머잖아 대박 내시겠습니다.”

“자기, 들었지?”

정아 오빠가 신붓감 보란 듯이 목에 힘을 준다.

“오 주임님도 미혼이시라면서요?”

“예.”

“나중에 결혼할 때 말만 하세요. 제가 장사 잘 되면 신혼가구 쫙 제공하겠습니다.”

“오빠, 나는?”

염정아가 끼어들었다.

“야, 너는 니가 벌어서 사.”

“오경도 소개해준 게 누군데?”

“알았다. 너도 가구 하나 정도는 제공한다.”

“아오, 개쫌팽이.”

“아니면? 내가 여기 저기 다 퍼돌려서 가게 거덜내버릴까?”

“그건 안 돼지.”

“자, 이제 오 주임님 평가도 받았으니 개업식 진행해볼까요?”

오빠의 시선이 신붓감에게 돌아간다.

떡이 오고 돼지머리가 오고 북어와 실타래가 나온다. 엔틱 가구들이다 보니 옛날식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염정아의 부친이 돼지코에 5만원을 찔렀다. 경도도 5만원을 찔러주었다.

간단한 의례 후에 즉석 파티가 열렸다. 술은 동동주가 준비되었다.

“저 이 사람이랑 상의했는데요, 가게가 자리 잡으면 오 주임님의 OK후원회에 이익금의 1%씩 후원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이 고마워 군소리 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정아 씨랑 오 주임님도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두 분도 애정해보는 거 어때요?”

술이 오가는 도중에 신붓감이 폭탄발언을 해버렸다.

“우리 어울려요?”

순발력의 염정아가 경도 팔짱을 끼며 밀착해왔다.

“어, 이제 보니 진짜 그런데?”

오빠도 가세를 한다.

“오경도, 나 어때?”

재기발랄 염정아가 그냥 넘어갈리 없다.

“K시청 여직원 중에서 톱이지.”

“그래서 콜?”

“그래, 그런데 너 찜한 동기들이 많아서 서넛 해치우고 와야 할 것 같은데?”

경도가 웃었다. 염정아는 동기 모임에서도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결정은 내가 하거든.”

“너는 나 오케이?”

“나는 닥치고 오케이.”

염정아가 오버를 한다. 술이 오른 것이다. 경도도 계속 마셨다. 술이 좀 취하니 시청이 일이 많이 멀어졌다. 염정아 오빠를 돕는 게 아니라 그의 도움을 받은 꼴이었다.

적어도 오늘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많이 마시진 않았으니 술이 깨버렸다.

‘할아버지.’

싸목 도감을 보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경도는 바닥이었다. 할아버지의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사표를 냈을 지도 모른다.

그 후로 8급, 7급을 초고속으로 꿰어 찼다. 현재는 인사팀 차석이다. 좋게 보면 여전히 좋았다.

이번 일도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역대를 돌아보면 인사팀장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허다했다. 그렇게 보자면 방 팀장은 그동안 경도를 많이 밀어준 셈이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질 때 형 경규가 쳐들어왔다. 예고도 없었으니 난입이었다.

“짜잔.”

어울리지 않게 아양까지 떨며 치킨박스를 내밀었다.

“뭐야? 애들처럼?”

경도가 핀잔을 주었다.

“야, 네가 그렇게 바라던 형수감 데려왔는데도 핀잔이냐?”

형수?

그 단어에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난해?”

“장난 아니거든.”

경규가 돌아보니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뭐하냐? 인사 안 하고.”

경규가 경도의 머리를 강제로 눌러버렸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인사는 여자가 먼저 했다. 서른 두 살이다. 본능적으로 유년운기부위를 읽어버렸다.

“자, 인사 받았으면 손님 접대해야지. 5분 동안 나가줄 테니까 누에 걸리는 거 쫙 치워라. 특히 양말, 팬티, 홀아비 냄새.”

“형?”

경도가 항명할 사이도 없이 문이 닫혀버렸다.

“아, 씨.”

바빠졌다.

군데군데 엉망인 것들을 정리하고 먼지도 닦는다. 구석에 던져둔 빨랫감도 세탁기 속에 은폐를 한다. 창문을 열고 향도 좀 뿌린다.

하다 보니 좀 화가 난다. 형 여자가 오는데 내가 왜? 그래도 다시 미소가 찾아온다. 이건 닥치고 좋은 일이었다.

“들어오셔.”

긴급 정비를 마치고 문을 열어주었다.

“음, 좀 나은데?”

형이 봐주는 척 들어섰다.

“실례해요.”

여자는 싱그럽다. 일단 간문부터 체크한다. 언젠가도 형의 이런 장난에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찐이다.

기색은 숨길 수 없다. 기는 한 달 정도 이어져야 색으로 변한다. 그 색이 피부 밖으로 나와 길흉을 정하니 포커페이스니 뭐니 하는 것도 소용없었다.

‘진짜네?’

경도의 만면에 미소가 피었다. 두 사람의 간문에는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었다.

대략 두 달 전이다. 여자는 음즐궁이 좋았다. 밝은 표정에 맑은 마음이다. 남자를 극하는 상도 없으니 체크를 멈추려는 순간, 경규가 돌발선언을 해버렸다.

“미리 말하는데 우리 미리 씨가 타로 전문이다. 너 관상 좀 본다고 까불지 마라. 요즘은 관상보다 타로야.”

“타로?”

“대표님, 그거 그냥 취미로 배웠다고 했잖아요?”

여자가 바로 수습에 들어간다.

“뭐가 취미야? 내가 보기엔 굉장한 수준이던데. 이번에 우리 신입직원들 성향도 다 맞췄잖아?”

“그래도요, 동생분 관상은 유명하던데…….”

“그러지 말고 실력 한 번 보여줘 봐. 얘가 승승장구였는데 언제까지 그럴지.”

“부탁합니다.”

왜 형제일까? 경도가 넙죽 장단을 맞춰주었다.

“둘이 짜고 나오니 대책 없네요.”

미리가 가방을 열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니 좋았다.

“하나 골라보세요.”

그녀가 타로카드를 내밀었다. 그냥 맨 위의 것을 집어 엎어놓았다.

태양이 나왔다.

“좋네요.”

그녀가 웃는다.

‘지금 안 좋은데?’

경도는 두고 보자는 표정이었다. 인사팀으로 간 이후로 가장 꿀꿀한 날이었다. 그런데 좋다니? 카드를 바라보는 사이에 미리의 해석이 나왔다.

“이 카드는 타로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카드예요. 슬픔이나 우울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죠. 정방향이건 역방향이건 다 나쁘지 않은데 정방향이네요. 이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두 만족감을 얻게 될 징조예요.”

“…….”

“얌마, 기막힌 점괘를 내주는데 공짜로 듣냐? 저는 복채 왕창 받아먹으면서.”

경규가 경도 등짝을 후려쳤다.

“뭐가 필요한데?”

“미리 씨는 와인 아니면 못 마신다. 고리타분한 공무원이 와인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사왔으니까 따기나 해라.”

“고리타분은 옛말이거든.”

“알았으니까 오픈.”

“예, 형님.”

미리가 있으니 프라이드 좀 살려주었다.

그런데.

“받으세요. 태양 카드에 대한 축하의 의미로 제가 한 잔 줄 게요.”

미리가 술병을 경도에게 겨누었다.

“예?”

“제가 타로 한 3년 정도 배우고 있는 데요 태양 뽑은 사람은 몇 안 돼요.”

“…….”

찍소리 못하고 술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에 인사팀의 참사를 공개할 수도 없었다.

“엄마한테도 전화했으니까 그런 줄 알아라. 우리 다음 주에 내려갈 것 같은데 너도 시간되면 동행하고.”

“가고는 싶은데 눈치 보여서 따라가겠어?”

“아이고, 니가 그런 눈치나 보냐? 우리 간다.”

“벌써?”

“미리 씨가 학예사인데 내일 아침에 외국 명화들이 온단다. 전시회 시작되면 너도 와라. 여자 데려오면 더 환영이고.”

“둘 다 여자 생기면 우리 엄마 기절하라고?”

“원래 세상 일이 도미노 아니냐?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거.”

“가기나 하셔. 다음부터는 절대 연락 먼저하고 쳐들어오고.”

“알았다. 형님 퇴장한다.”

경규는 경도의 머리에 불이 나도록 문지르고 돌아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 풀렸다.

다음 날 오후, 퇴근시간을 앞두고 연가대장을 작성했다. 아무래도 한 이틀 쉬고 싶었다. 돌아보니 방 팀장 자리는 아직도 비었다. 최종 인사안을 가지고 시장 결재에 들어간 후로 함흥차사가 된 것이다.

막 전자결재를 올리려는데 방 팀장이 돌아왔다. 발걸음이 가볍다. 동시에 확 넓어진 듯 한 인당이 경도 눈으로 들어왔다.

비량의 윤기가 청명하다. 명궁에도 홍색 기색이 찬란하고 눈썹 꼬리가 자색으로 물결을 친다.

‘승진하셨군.’

영전이었다. 경도의 인사안과 얼마나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알 것 같았다.

“축하합니다.”

먼저 인사를 했다. 그녀를 탓할 일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그게 관상에 나와?”

“그럼요. 승진이시네요.”

“아유, 진짜 오 주임은 못 속인다니까.”

“저 연가 좀 올렸습니다. 내일하고 모레하고…….”

“연가?”

“예.”

“안 돼.”

그녀가 단칼에 잘랐다.

“예?”

“아마 가기 어려울 거야.”

“급한 사안이 있습니까?”

“나 지금 인사발표 올려야 하거든. 오 팀, 주임도 본 다음에 얘기하자고.”

그녀가 경도 직책을 살짝 더듬었다. 승진으로 흥분한 모양이었다.

“오케이, 다들 확인하고 퇴근하자고. 보나마나 전화기에 이 날 테니까.”

인사 파일을 올려놓은 방 팀장이 책상 정리에 들어갔다.

경도도 일단 클릭을 했다.

경도의 최초 안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궁금했다.

그런데.

“……!”

국장 자리는 역시 정철은 산림농지과장이 먹었다. 방서나 팀장은 문화관광과장을 꿰어 찼다.

그 아래에 또 낯익은 이름이 있었으니 권태술이었다. 감사담당관실 팀장으로의 승진 컴백이었다.

권 시장의 가려운 곳을 모조리 긁어준 모양이었다. 약간의 실망감에 젖을 때 더 낯익은 이름 하나가 아른거렸다.

인사팀장 오경도.

‘응?’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을 했다.

[승진 : 인사팀 지방행정주사보 오경도 → 지방행정주사 인사팀장에 임함]

인사팀장?

놀란 경도가 돌아보자 방 팀장이 악수를 청해왔다.

“축하해. 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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