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86화
56. 반전의 반전-1
이틀 후, 방송과 인터넷이 들끓었다.
[톱스타 반우진 소아성애 불법파일 소지로 경찰수사]
[경찰, 사안의 심각성 주목해 구속영장 청구]
[소속사는 단순 호기심일 거라는 입장 표명]
[촬영 중인 영화 긴급 배역 교체]
뉴스 화면은 온통 반우진 뿐이었다.
초반 팬들의 반응은 반우진의 편이었다.
음해.
시기.
모함.
온갖 단어로 반우진을 감싸고 돌았다. 뉴스도 역시 그의 선행과 국제 NGO의 성폭력피해 여성들을 위해 헌신한 홍보친선대사의 모습을 부각 시키며 동조했다.
그러나 경찰이 일부 파일을 공개하면서 여론은 급반전되었다. 영상 속의 남자가 반우진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쓰레기였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전형이었으니 미소년, 그것도 주로 가난한 집안의 미소년들을 후원을 미끼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인간 개쓰뤡이었네. 재활용봉투도 아깝다.
=교도소 가면 딱이네, 눈치도 안 보고 공짜로 실컷 할 수 있어서.
=호박씨 제대로 깠구낭
=우진아, 학교 가즈아~
=배신감 찐 작렬.
=아예 양자로 들이고 편하게 하지 그랬니?
댓글을 보다 말았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바뀐 법도 한몫을 했다. n번방 이후로 미성년자 불법파일은 가지고만 있어도 불법이었다.
경도는 경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 전날 저녁에 탁홍걸이 찾아온 것이다.
“반우진 씨 핸드폰을 제 지인 경찰에게 넘겼습니다.”
그의 첫 마디였다.
그날 반우진의 핸드폰은 분실로 처리되었다.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니 핸드폰이 사라진 것이다. 박 대리가 들어가는 걸 본 사람이 없으니 의심도 받지 않았다.
코디들이 나서 사방을 뒤졌지만 나올 리 없었다. 촬영은 거기서 중단되었다. 반우진의 요청이었다. 탁홍걸도 바라는 바였으니 토를 달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탁홍걸이 두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남자 주연의 교체였다. 혼자 결정한 게 아니었으니 반영희를 필두로 하는 투자자 대표단의 요청도 있었다.
한 사람을 골라주었다. 반우진의 일로 놀란 제작사가 돌다리를 두드리는 것이다. 그나마 촬영분량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경도에게도 그랬다. 이번 배우가 명혜에게 더 잘 어울렸다. 영화에도 배우 간의 궁합이 필요한 것이니 액땜한 것으로 치면 되었다.
만약 개봉 직전에 터졌다면 제작비 전체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 제작에 관여한 투자사나 기획사들에게도 치명타가 될 일이었다.
그래도 명혜는 씩씩했다.
“명혜 괜찮아?”
경도가 위로 전화를 걸자,
“네, 명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빼액 자신감 샤우팅을 내지른다.
“그럼 새로 올 오빠 하고 영화 잘 찍어.”
“네, 선생님.”
목소리가 밝으니 경도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맑은 아이들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은 반우진은 지옥에나 가라지.
경도는 다시 인사업무에 열중했다.
“여기.”
저녁시간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엄낙기 과장이었다.
“바쁘지?”
그가 반색을 한다. 용포읍에서는 지긋지긋(?)하게도 보았던 얼굴. 같은 시청으로 갔음에도 하루 한 번 보기도 바빴다.
그런데?
엄낙기 기색이 좋았다.
“왜?”
그가 묻는다.
“기색이 괜찮아서요.”
“역시 귀신.”
“좋은 일 있으셨죠?”
“시장님에게 칭찬 좀 받았지.”
엄낙기의 입끝이 쭈욱 올라간다.
“과 실적이 좋았나봐요?”
“처음에는 개판이었지. 내가 오 박사한테 배운 게 있으니 그 방식으로 좀 끌어올렸어.”
“얼마나 올렸길래요?”
“30등권에서 다섯 손가락 안으로.”
“우와, 대박인데요?”
“까짓 거 경기도 꼴찌하던 용포읍 맞복팀을 선두권으로도 올려봤는데 K시 안에서 못하겠어?”
“이야, 과장님이 이제 슬슬 전성기가 오는군요?”
“관상도 그래?”
엄낙기가 고개를 든다.
“……?”
무심결에 마주친 얼굴에 경도가 놀라버린다. 관록궁에 햇살이 들고 있었다.
‘설마?’
이번 년도 정기 인사안은 경도가 짜고 있다. 그 인사에 엄낙기의 등극은 없었다. 자세히 보니 이번 인사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먼 미래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용포읍에서 보았던 상괘와 맥락이 연결된다. 엄낙기의 부상(浮上)이다.
모르긴 해도 권 시장 임기가 끝나기 전후로 승진할 기세였다.
“공덕만 더 쌓으시면 머잖아 좋은 소식 올 것 같습니다.”
“진짜?”
엄낙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방행정서기관.
무려 4급이다.
9급이나 7급으로 들어온 공무원에게는 그냥 꿈이다.
K시의 직제상 4급 서기관 자리는 열 자리 정도에 불과하다. 개중에는 행정고시 출신이나 도청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6-7자리 정도가 된다.
보건소장을 의사가 가져가면 한 자리가 준다. 따라서 하위직에서 4급이 된다는 건 그야말로가 아니라, 진짜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 4급 서기관이 엄낙기의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몇 해전, 용포읍에서 잔머리 굴릴 때를 생각하면 일대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직원들 잘 챙기신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것도 자네한테 배운 거잖나? 힘들고 어려운 일은 간부가 나서달라. 칭찬은 앞에서 하고 지적은 아무도 없는 데서 해라. 아니면 꼰대다.”
“과장님.”
“요즘 복지 일이 좀 어렵나? 예전 코로나 전성기 때 재난지원금 문제가 아직까지도 연결이네. 지난주에는 그 직전에 교도소에 들어간 남편이 세대 구분 안하고 마누라에게 주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며 취중 난동을 부리고 갔다네.”
“과장님이 나서셨군요?”
“담당이 8급 단지 네 달 된 친구였어. 팀장도 여자라 어쩔 줄 모르니 내가 몸빵 노릇 좀 해줬지.”
“이야, 최고십니다.”
“뭐 그러면서 나도 젊은 친구들 사고방식을 공유해가니까 공부하는 거지.”
엄낙기가 웃는다. 웃음이 많이 착해졌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그의 운을 바꾸고 있다. 그렇기에 얼굴 전반의 기색이 맑은 것이다.
“오늘은 왜요? 관상입니까? 아니면 인사 문제입니까?”
“후자일세.”
“청탁은 안 되는 데요?”
“당연하지. 천하의 관상박사 앞에 청탁을 할까? 그게 아니고 요청일세.”
“말씀해 보세요.”
“우리 자립지원팀 말일세, 팀장에 팀원까지 모두 여섯인데 다 여자야. 뭐 여자라서 편견을 가진 건 아니고 남자직원이 한두 명 있었으면 하는 필요성이 있어서 말일세. 보아하니 여자끼리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업무추진이나 대외출장, 민원문제해결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더라고. 그 부탁 좀 하려고 왔네.”
“그런 거라면 당연히 고려해 보겠습니다.”
“하나 더 있네.”
“말씀하세요.”
“조사관리팀 있잖나? 그 팀은 이번 인사에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지금 팀 케미가 최상이거든. 인구유입이 많아지면서 통합조사 업무가 대폭 증가했어. 여기서 팀워크를 흔들면 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네.”
“그것도 참고해드리죠.”
“고맙네만 대신 내가 다른 자리로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이제 식사하세.”
용모를 끝낸 엄낙기가 수저를 들었다.
경도도 가뜬하게 식사를 했다.
노력하는 사람은 밀어준다.
경도 마음 속 기준의 하나였다. 관상안이 있어도 전체 부서의 사정까지는 볼 수 없다.
그러니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해주는 건 언제나 고마웠다. 그러는 가운데 경도도 노하우가 쌓이는 것이다.
이 청탁 아닌 청탁이 새 인사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긍정으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인사 고충상담이 부쩍 늘어났다.
하루에도 서너 명씩 상담을 요청하니 정말이지 머리에 지진이 났다. 간부회의에서 인사청탁을 금한다는 시장의 엄명이 있었지만 먹히지 않았다.
청탁이 아니라 고충이라니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 국장은 달랐다. 그는 수년 째 경도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 국장의 양날개로 꼽히는 감사실장과 자치행정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인사철이 다가오면 경도를 따로 부르는 것조차 자중하니 괜한 오해조차 봉쇄하고 있었다.
-4급 서기관 1 자리.
-5급 사무관 4 자리.
-6급 행정주사 8 자리.
간부급 승진자는 13명으로 결정되었다. 서기관 한 명과 사무관 넷은 정년에 의한 퇴직이고 주사 8 자리는 일반승진에 더한 7급 장기근속승진의 숫자였다.
윤지 엄마 강남숙은 이번에도 후보자 명부에 오르지 못했다.
승진후보자 명부에 들기 위한 로비의 서막이 올랐다. 각각의 자리에는 3배수 내지는 5배수의 후보군이 물망에 오른다. 일단은 명부에 들어야 승진을 바라볼 수 있으니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원칙대로 1차 후보군을 정했다. 이 후보군에서 두 명을 골라냈다. 한 명은 금품청탁의 기미가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사생활이 문란한 사람이었다.
시장실 앞에 서자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경도 발이 비서 앞에서 멈췄다. 안에 손님이 있는 것이다.
“이거 왜 이러시나? 그 친구가 당신 당선에 얼마나 애쓴지 알아?”
소리는 계속 흘러나온다.
척 들어도 인사청탁이다.
인사철이 다가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니, 시장은 왜 된 거야? 자기 사람도 못 챙길 거 뭣하러 하냐고? 나하고 영영 등지고 싶어?”
상대가 권 시장을 몰아세운다.
혼자서는 당선될 수 없는 시장 자리다. 이제는 선거의 생리도 조금 아는 경도였다.
“알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장의 반응이다.
“알기는? 지난번에도 물 먹였잖아?”
“…….”
“이번에는 두 눈 부릅 뜨고 지켜볼 거야. 나랑 담 쌓지 않으려면 알아서 하라고.”
쐐기와 함께 시장실 문이 열린다.
60대 후반의 지역유지다. 그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나가버렸다.
“인사팀 오 주임님 오셨는데요?”
기척을 낸 여비서가 시장실에 대고 말했다.
“들어와.”
시장의 콜이 떨어지니 경도가 들어섰다.
“1차 후보군인가?”
권 시장이 후보자 명부를 받아들었다.
“예.”
“…….”
시장 시선이 굳는다.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자네 기수는 없군?”
경도네 기수.
문득 태술이 떠올랐다. 그는 경도보다 일찍 7급을 달았다. 어찌 보면 권 시장이 챙길 때도 되었다.
그래서 고려해봤지만 최근 3년 이내의 고과에서 다른 직원들에게 근소하게 밀려 코앞에서 밀렸다.
“두고 가게.”
“알겠습니다.”
긴 말하지 않고 나왔다. 명부 수정은 다섯 번을 한 적도 있었다. 혹은 세 번 올린 명부에서 재조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시장의 의중과 맞을 때까지 가는 것이다.
시장의 임기 종반.
처음과 달리 인사문제에 대한 개입이 많아졌다. 재선 고지를 위한 안배가 고려되는 것이니 권 시장의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귀였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장점도 이렇게 변질 될 수가 있었다.
이틀 후, 결국 새로운 오더가 나왔다.
행정직 보강이었다.
경도가 만든 1차 명부는 행정직과 기술직에 구분을 두지 않았다. 보직의 직군규정에 더해 오직 능력과 실적, 평판만을 반영했다.
약 50여 명의 후보군 중에서 공적이 우월한 여덟 명은 직접 현장확인에 관상확인까지 마친 상태였다.
[행정직] 대 [기술직]
인사 때마다 충돌하는 문제였다. 보직 상으로도 그랬으니 행정직은 거의 모든 보직에 포진해 있지만 기술직의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기술직 입장에서는 거의 모든 보직을 행정직이 ‘해먹고’ 있으니 피해의식을 느낀다. 전체 간부비율을 봐도 행정직이 압도적인 것은 팩트였다.
5급 행정직 한 자리에서 기술직 후보군을 줄이고 행정직으로 대체를 했다. 6급 역시 2할 정도의 후보군을 교체했다.
“…….”
새 후보군 명부를 본 시장 표정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여러 평가를 종합한 결과 그 이상으로 가면 인사의 공정성을 해치게 됩니다.”
“두고 가게.”
시장의 답이었다.
“오 주임.”
오후가 되자 시장실에 불려갔던 방 팀장이 경도를 회의실로 호출했다.
“머리 아프네.”
방 팀장이 고개를 흔든다.
“시장님이 또 틀었습니까?”
“그러시네.”
“거기서 더는 곤란합니다. 나머지 후보자들과 교체가 되면 문제가 커집니다. 제가 가서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방 팀장이 선을 그었다.
“팀장님.”
“방금 시장님 특명이 떨어졌어.”
“특명이라고요?”
“이번 인사 말이야, 오 주임은 손 떼고 당분간 좀 쉬어. 이번 건은 내가 맡을게.”
“예?”
“내가 맡는다고.”
방 팀장의 미릉골에 힘이 팍 들어갔다. 손을 떼라는 건 인사작업에서의 배제를 의미한다. 인사 담당자인 경도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특명.
-인사작업 배제.
두 단어가 경도 뇌리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더니 충격적인 단어로 변신을 했다.
팽…….
말로만 듣던 그 단어.
‘토사구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