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85화
55. 천사의 탈을 써도 소용없어요-2
남녀궁은 간문이다. 눈꼬리가 끝나는 곳에서 귀로 이어지는 곳이다. 반우진은 미혼이다. 스캔들도 하나 없다.
여자 보기를 돌처럼 하는 돌부처일까?
그도 아니면 인기관리를 위해 멀리하는 걸까?
혹은 첫사랑의 아픔이라도 있는 건가?
그 어떤 경우라도 해도 그의 간문은 맑아야 했다.
맑았다.
다만 그 맑은 게 좀 달랐다.
간문에 오른 살집 때문인지도 모른다. 간문이 조금 높은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는 다 길상이 아니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게 관상이었다.
‘다시 한번.’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이마에 서린 땀을 닦고 시선을 가다듬었다.
방금 경도가 읽은 상괘가 ‘첩’일 때 나오는 찰색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쾌락을 위한 애정이다.
그런데 반우진은 결혼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쾌락이라면 단순 파트너라는 뜻이다. 미혼의 재력가에 인기남이 파트너가 있는 게 무슨 흠일까?
사귀다 정이 들면 결혼하면 그만이고 싫증 나서 헤어져도 그만이다.
그런데 왜.
경도의 관상안에는 첩이라는 직관이 먼저 치고 들어온단 말인가?
더욱 난해한 건 그 찰색이 왼쪽 어미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보통 세컨드를 두면 오른쪽 어미의 가장자리가 밝아진다. 인당에도 영향을 미치니 황색이 서리면서 중앙에 자색이 비치면 세컨드가 미인임을 뜻한다. 그 미인에게 흠뻑 빠졌으니 얼핏 보면 찰색도 아름답다.
반우진의 간문은 절정이었다. 좋은 운을 상징하는 자색이 맺혔고 얼굴 전면에도 붉은 기색이 화사하다. 미인 첩을 얻어 기분이 좋으니 만사가 잘 나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찰색이 왼쪽 어미다.
간단히 생각하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뜻이었다.
상대가 남자?
그렇다면 반우진은 퀴어라는 건가?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다만…….
‘천창, 명궁…….’
여기 맺힌 황색 찰색들이 마음을 밟고 들어왔다. 만약 관록궁까지 같이 밝다면 돈으로 매관매직에 성공해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나 관록궁이 빠졌으니 관직을 산 게 아니다. 즐거움을 산 것이다.
일각과 월각에도 빛이 성성하다.
승승장구다.
그런데.
그 빛의 물결들이 이마 모서리의 변지로 향하고 있었다.
변지는 외국을 뜻한다.
-외국에서 돈을 주고 산 즐거움.
-여자가 아니라 남자.
다시 숨을 고르고 변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인 여행의 궤적을 건져내는 것이다. 그것들은 다시 간문과 유년운기부위, 일진, 월진의 대조를 거쳤다.
반우진의 해외행은 3년 사이에 20여 회였다. 그때마다 이 기묘한 즐거움(?)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설마.’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의자로 걸었다.
“오 박사님.”
분장을 끝내고 대기 중이던 유빈이 경도를 보았다.
“괜찮아요?”
“예…….”
이마를 잡고 충격을 달랜다. 이건 정말 쓰나미급의 충격이었다.
“물 좀 드려요?”
“예.”
경도가 답하자 유빈이 생수를 가져왔다.
“피곤하신가 봐요. 좀 쉬고 계세요. 제가 챙겨드려야 하는데 곧 제 차례거든요.”
“아뇨.”
돌아서는 유빈의 손을 경도가 잡았다.
“오 박사님.”
“유빈 씨 촬영분 때 잠깐 쉬자고 하고 탁 대표님 좀 저한테 보내주세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
탁 대표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반우진 씨가 문제가 있는 거 같다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 말입니까?”
“그전에 먼저 묻고 싶습니다. 저 사람에 대해 잘 아십니까?”
“조금은 아는 편이죠. 이번 영화가 잘 되면 내년부터 저희 기획사로 옮겨올 예정이거든요.”
“그것도 안 됩니다. 대표님께 해가 됩니다.”
“오 박사님.”
“각설하고 저 사람의 성 취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성 취향?”
“뭐든 말해보세요. 대표님이 아는 대로, 만약 모른다면 그걸 아는 사람을 수배하세요.”
“대체 무슨 일인지?”
“제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반우진 형, 저하고는 사석에서 형 아우 하며 지냅니다. 제가 공 좀 들였거든요.”
“…….”
“다른 건 몰라도 여자 관계 하나는 깨끗합니다. 어릴 때는 몰라도 스타로 뜨고 난 후에는 스캔들의 ‘스’자도 없고 룸싸롱이나 클럽 같은 데를 가도 여자들 거들떠도 안 보는 사람입니다.”
“…….”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죠. 3년 전의 드라마 쫑파티였는데요 시청률 42%짜리였습니다. 초대박이었죠. 시즌2를 약속하며 거나하게들 퍼마셨나봅니다. 그 드라마가 좀 열악한 분위기에서 시작했고 당시의 경쟁작이 29%를 찍고 있을 때 시작한 거라서 초반 고전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걸 뛰어넘고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다들 취할 만했죠. 호텔 야외테라스에서 새벽까지 마시고 우석 형이 먼저 침대로 향합니다. 파티가 끝난 후에 조연을 맡던 신인 여가수 하나가 이 방에 몰래 들어갑니다. 이 여자애가 우석 형을 짝사랑하던 차에 취기를 빌어 슬쩍 접선을 시도한 거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아이돌이 현재 아이돌 몸매 톱 5 안에 들어갑니다. 알몸으로 우석 형을 자극했지만 그 취기 중에도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답니다. 결국 모욕감을 느낀 아이돌이 포기를 하고 나옵니다. 그녀가 얻은 건 잠자는 우석의 얼굴 사진뿐이었죠. 이건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
“남자가 그런 상황이면 사고 칠 확률이 99퍼 아닙니까?”
“…….”
“처음에는 잘 믿지 않았지만 술자리를 여러 번 가지면서 믿게 되었습니다. 술에 취해도 여자를 탐하지 않습니다. 아니,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오죽하면 남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ㄱㅈ나 부처님 유전자로 불리겠습니까?”
“여자 문제는 절대보증이군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 박사님의 관상을 믿는 것과 비슷한 믿음입니다. 여자 문제에 관해서는요.”
“그럼 리얼돌을 쓸까요?”
“박사님.”
탁홍걸이 울상을 짓는다.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자는요?”
“남자요?”
“예?”
“우석 형이 동성애자라는 겁니까?”
“아마도.”
“오 박사님?”
“놀랄 거 없습니다. 이제는 동성애가 안드로메다의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만은 아무래도 오 박사님이 잘못 짚으신 것 같습니다. 동성애는 더욱 아닙니다. 남자들과의 관계도 선을 넘지 않습니다. 숱한 후배들이 우석 형을 따르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불미스러운 말이 나온 적이 없어요. 동성애자라면 남자 연예인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두 가지 선입견부터 버려주세요. 반우진 씨의 좋은 인상과 좋은 이미지.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놓고 돌아보자고요.”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래 뵈도 저런 대형 연예인과 계약을 추진할 때는 평판까지 다 조사를 하거든요.”
탁홍걸이 다이어리를 열었다. 거기 반우진에 대한 깨알 정보가 적혀 있었다. 탁홍걸의 성공은 단순한 운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기 때문에 뒷받침이 되는 것이다.
“장점 부분이 있군요. 좀 불러주시겠어요?”
“그러죠. 일단 인간성이 대박, 인간관계가 대박, 선후배관계 대박, 여자연예인들에게 호감도도 대박, 사생활 모범적, 꽃은 검은장미를 좋아하고, 애마는 에스턴마틴, 운동은 수영, 넥타이는 보라색, 지갑은 행롱, 아이들, 진정한 배낭여행…….”
“잠깐만요.”
탁홍걸의 폭주를 경도가 막았다.
“아이들, 거기 다른 메모도 있네요?”
“이거요? 주로 남자아이들이네요. 여자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을 귀여워하는 편입니다.”
“그겁니다.”
“예?”
“반우진의 파트너들.”
잔잔하던 경도 목소리에 천둥 같은 힘이 실렸다.
“오 박사님.”
“결혼하지 않았지만 잠자리를 갖습니다. 여자가 아닙니다. 리얼돌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맑고 미색입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미소년밖에 없습니다.”
“오 박사님.”
탁홍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유년운기부위와 일진 월진을 짚어 찾아낸 잠자리 일자입니다. 저 사람이 성 피해 여성을 돕는 국제 NGO의 홍보친선대사를 맡고 있죠? 해외출장이나 여행도 잦은 편이더군요. 제가 짚은 날짜와 출국일자를 맞춰 보세요. 만약 틀리다면 오늘 상괘는 깨끗이 접겠습니다.”
메모를 내민 경도가 돌아섰다.
신뢰는 막강한 실드다. 그렇게 눈에 쓰인 것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탁홍걸도 그랬다. 만약 상대가 경도가 아니었다만 무조건 무시했을 제의였다. 그만큼 반우진에 대한 신뢰는 높았다. 탁홍걸 자신도, 연예계의 평판도.
그러나 오경도였다.
탁홍걸의 오늘을 있게 해준 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빗나감도 없었다. 잠깐 동안의 생각을 떨쳐낸 탁홍걸이 전화를 걸었다. 아직은 다른 기획사 소속이지만 그런 스케줄 정도 알아낼 능력은 있었다.
“응, 지난 스케줄 말이야. 개인적인 것까지 전부.”
탁홍걸의 요청이 날아갔다.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붙인 건 반우진의 취향 때문이었다. NGO의 홍보대사가 된 후로 그는 기부에 푹 빠졌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루트까지 개척했다. 재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으로 날아간다. 매니저도 없이 홀몸이다. 진정한 배낭여행의 끝판왕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작은 도시의 고아원을 찾아간다. 그곳에 약간의 후원금을 내주고 아이들과 놀아준다. 그 자신이 한국의 연예인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다른 스타들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그는 이제 노하우까지 있었다.
그런 선행이지만 자랑도 하지 않는다. 그는 평범한 입장에서 그들을 돕는 게 편하다고 했다. 스타 반우진으로 나서면 행차가 요란해진다. 그게 싫었다. 그런 스케줄은 소속사에도 알리지 않는다. 덕분에 공항에서도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그 변장법도 알고 있다. 홀가분하게 떠나는 봉사여행. 알려지는 것조차 번거로워하는 게 반우진이었다.
“공식일정은 다 받았고요 나머지는 우석 형이 ‘나 며칠 찾지마라’ 했던 스케줄들입니다.”
통화를 끝내고 파일을 연다. 경도가 준 메모도 함께 펼쳐놓는다.
“…….……!”
세 번째 대조에서 탁홍걸의 호흡이 멈췄다. 거기까지 일치였다.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심지어는 최근 2년 간의 거의 모든 스케줄이 경도가 찍어준 날짜에 포함되고 있었다.
벌컥벌컥.
물부터 마셨다. 혼란해진 속을 달래고 다시 한번 대조한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경도에게 기울어버린 후였다.
“박 대리.”
측근 하나를 은밀히 불렀다. 컴퓨터를 기막히게 다루는 직원이었다. 탁홍걸이 지시를 내린다면 소속 연예인들의 핸드폰 해킹도 가능한 실력자였다.
그가 분장실로 향한다. 거기 반우진의 옷과 소지품이 있었다. 핸드폰도 당연히 거기 있었다. 코디들이 촬영장으로 나간 사이에 슬쩍 집어들었다.
10분이 지났다.
박 대리가 다가왔다.
끄덕.
그가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
탁홍걸의 표정이 흑빛으로 변했다. 카피한 파일이 열렸다.
“윽.”
탁홍걸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반우진이었다. 옆에 미소년이 보였다. 잘 해야 열 살을 갓 넘었다. 옷은 하나도 입지 않았다. 탐닉에 들어간다. 탁홍걸 눈에 지진이 인다. 말로는 설명 못할 장면들이었다. 경도의 의심은 의심이 아니라 팩트였다. 상대로 나오는 소년은 한둘도 아니었다.
“핸드폰 안에만 20개 정도 있습니다.”
“20개나…….”
“소년이 다 다릅니다.”
“우어억.”
탁홍걸은 쏠려오는 오바이트를 간신히 참았다.
“영상 속 침대 탁자에 놓인 메모장과 볼펜 등을 확대해서 호텔을 알아봤습니다. 필리핀과 베트남 쪽입니다. 고급은 아니고 2성이나 3성급이더군요. 관광지에서도 좋은 편은 아니라 한국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박 대리가 멀어졌다. 탁홍걸의 손에는 반우진의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위선이었다.
반우진은 동성애자였다.
그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소아성애자였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물론, 그 어떤 미녀 선후배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이다.
국제 NGO의 홍보대사로 개념 있는 연예인처럼 행세하던 인간이다.
뒷구멍으로 까발려놓은 호박씨치고는 덩어리가 너무 컸다.
‘X발놈.’
욕설이 나왔다. 핸드폰을 쥔 손은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자박.
발소리와 함께 경도가 다가왔다. 왕을 영접하듯 경도에게 허리를 조아렸다. 천기누설의 상괘를 감히 의심한 것에 대한 사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