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사의 탈을 써도 소용없어요-1> (18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84화

55. 천사의 탈을 써도 소용없어요-1

“오 박사님.”

메밀국수를 맛나게 먹고 정원으로 나올 때였다. 경도가 조금 늦게 나오자 가정부가 손짓을 했다.

“제 아들이에요.”

가정부가 20대 중반의 남자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얼굴을 보니 공무원이다. 언젠가 말했던 그 아들이다. 무재칠시의 공덕을 쌓다 보니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던…….

“인상이 좋으신 데요?”

경도가 덕담을 건넸다.

“박사님 덕분에 우리 아들이 공무원이 되었지 뭐예요. 비록 말단이지만…….”

가정부가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경도 눈에는 보인다. 가정부에게는 그 아들의 9급 합격이 다른 집 5급 합격보다 기쁜 일이었다.

“어디 근무하세요?”

“전라도 쪽 군청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에 승진하시겠네요.”

“네? 저 아직 몇 년 안 되었는데요?”

“인사이동이 언제쯤인지 아세요?”

“말로는 다음 달에 난다고 들었어요.”

“그때 승진해요. 단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내시면 안 됩니다.”

“엄마.”

그가 가정부를 돌아본다.

“아유, 우리 오 박사님이 승진이라면 승진인 거야. 그냥 닥치고 들어.”

가정부의 입이 찢어진다. 어쩔 줄을 모르는 모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입술 위의 식록에 미색이 떴다. 그 색이 법령의 바깥쪽까지 서리니 즐거운 일이 다가오고 있다.

아들보다도 가정부가 고마웠다.

첫 대면 때 가정부에게 권한 게 무재칠시였다. 가진 게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석들.

화안시와 언사시…….

밝은 미소와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씨, 부드러운 눈빛, 솔선수범, 온정, 양보, 도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걸 실천하며 살았기에 흉격의 인생에 꽃이 피는 것이다.

이날 가정부는 OK 후원회에 30만 원의 후원금을 보냈다. 나중에 조경철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한때는 신세타령으로 허비하던 세월이었지만 이제 그녀의 하루하루는 희망이자 즐거움이었다.

“오 박사님.”

정원의 끝에서 차 여사가 경도를 불렀다.

“목련이 필 것 같네요?”

그녀의 시선은 백목련가지에 있었다.

“좋아하는 꽃이세요?”

“다 좋아하죠. 그런데 꽃에도 관상이 있을까요?”

“있죠. 그걸 보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꽃의 제왕은 모란이라면서요?”

“예.”

“기억나세요? 전에 제가 미뤄둔 관상 말이에요.”

“그럼요.”

“그거 지금 볼 수 있을까요? 박사님 관상이 너무 귀신 같아서 아주 조바심이 나요.”

“죄송하지만 여사님은 이제 관상을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요?”

“이미 극귀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단 한마디를 던지고 고개를 숙였다.

이경문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최고를 이루었다. 천하의 경도라고 해도 더 좋은 상괘를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대통령의 여자답게 바로 알아듣는다.

당선인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다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안선주 부녀회장에게 걸리고 말았다.

작은 다리 앞에 부녀회장단이 나와 있었다. 무려 일곱 명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안선주의 집으로 납치가 되었다.

차를 마시며 그녀들의 수다를 들었다. 기분이 통하니 남편들의 사업이나 바람기(?) 같은 것들도 체크해 주었다.

이들은 경도의 유산이다. 당선인과의 시간보다 편하고 좋았다.

얼마 후에 한 여중생이 불려왔다. 경도의 OK 후원회에서 매월 30만 원씩 장학금을 주는 아이다. 안선주의 집에서 가까우니 인사를 시키려고 부른 모양이었다.

“아유, 애 엄마가 아파 누워서 그렇지 애는 아주 당차. 공부도 잘한대요.”

여중생이 돌아가자 안선주가 말했다.

“관상은 어때요? 요즘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이 아닌데…….”

다른 부녀회장이 물었다.

“용이 될 아이입니다.”

경도가 답했다.

“진짜?”

부녀회장들이 입을 모은다.

“가난한 집 아이치고 눈과 눈썹 사이의 전택궁이 넓습니다. 저런 아이는 큰 부자인 남자를 만나게 되니 출세의 관상입니다.”

“아유, 애가 효녀니까 복 받네. 우리 미정이 이 년은 지 빤쓰하고 브라자도 안 빠는데 쟤는 지 엄마 기저귀까지 다 빨아서 갈아준다지? 자식복이네, 자식복이야.”

부녀회장이 몸서리를 친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 걱정하던 말이 나왔다.

“우리 오 박사님 용포읍으로는 언제 오는 거야?”

“저 주책하곤. 아, 지금 시청 인사팀에서 잘 나가는데 용포읍에는 왜 와?”

“그럼 용포읍에도 인사팀 만들면 되지. 우리가 시장실 쳐들어가?”

“그러지 말고 아예 오 박사님을 시장으로 앉히자고. 아, 말이 났으니 말이지 오 박사님이 시장 같은 거 못하겠어?”

부녀회장들이 폭주한다.

“왜들 이러세요? 우리 시장님이 들으시면 저 괘씸죄로 짤리겠습니다.”

경도가 손사래를 치며 무마를 했다.

천하무적 부녀회장들. 그들에게는 경도가 이미 시장 이상이었다.

***

대통령 취임식은 소박하게 끝났다. 여느 대통령들이 3만-5만 명의 하객을 초청하던 것을 3,000여 명의 초청으로 갈음한 것이다.

경도는 공무원 초청 케이스에 끼어 취임식을 함께 했다.

류성곤은 과학정보통신기술부 장관에 인선이 되었다. 김윤광 역시 행정안전부와 교육부, 복지부 장관 물망에 올랐지만 그가 고사를 하며 당에 남았다.

그 토요일에 경도는 마포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영화촬영장이었다. 오늘 운전자는 염정아였다. 조수석에는 11살 먹은 그녀의 조카가 앉았다.

경도는 뒷좌석이었다. 옆에는 유빈이 버티고 있었다.

염정아가 합류한 건 조카 때문이었다. 이 조카가 유빈의 팬이다. 유빈앓이를 한다고 하기에 촬영장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경도가 가는 건 명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명혜는 지금 앞 차에서 달리고 있다. 안계홍의 포터다.

“명혜 관상 보셨어요?”

한강을 끼고 돌 때 유빈이 물었다.

“좋아요.”

“어우, 역시 아시네.”

“디테일은 모르니 유빈 씨가 알려주세요.”

“분량이 확 늘어났어요. 대본도 대폭 수정되었고.”

“진짜요?”

“우리 대표님, 투자대표님, 감독님이 이구동성으로 결정한 거예요. 몇 신 가다 보니 애가 평범하지 않거든요. 평범하면서도 야무진 연기가 사람을 중독시켜버려요.”

“명혜 이 길로 쭉 나가야겠네?”

“덕분에 주연 맡은 반우진 씨가 울상이죠. 자기 분량이 줄게 되잖아요?”

“유빈 씨는요?”

“저는 까메오 역할이라 큰 상관 없어요.”

“명혜가 잘한다니 좋네요.”

“아유, 고게 오 박사님 생각을 얼마나 하는데요? 자칫하면 나중에 오 박사님한테 청혼할 각이라니까요.”

“풉.”

경도가 실소를 터뜨렸다.

그사이에 촬영 세트장이 가까워졌다. 명혜는 먼저 도착해서 경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경도가 내리자 달려와 다리에 매달린다.

“멀미 안 했어?”

“오늘은 괜찮아요.”

“여기 인사해. 나랑 같이 일하는 분 조카야. 이름은 염채영.”

“언니, 나는 명혜야, 안명혜.”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달려가 얼굴을 마주 본다.

“오 박사님.”

저만치에 있던 탁홍걸이 다가왔다.

“대표님도 오셨어요?”

“저야 당연히 와야죠. 오 박사님이 오신다는데.”

“분위기 좋은 데요?”

경도의 시선이 세트장으로 옮겨갔다.

“오 박사님 덕분에 예산이 120억 정도 더 들어왔습니다. 감독님도 싱글벙글이에요. 가서 인사 나누실래요?”

탁홍걸이 권하니 스태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유빈 누님에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도입부 20% 정도 진행되었는데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다시 가고 있습니다. 명혜 연기가 아주 혼을 뺍니다. 예산 올릴 때 영상 보여줬더니 투자자들도 만장일치로 찬성하더라고요.”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네요.”

“이게 암으로 투병하는 걸 숨기고 재직하는 소방관 이야기인데 아내는 가출하고 딸을 기르는 육아남이거든요. 병을 감춘 아빠는 애처롭지만 딸은 씩씩하고 용감합니다. 아빠가 흔들리면 오히려 닦달하는 귀여운 악마 같은 거죠. 명혜가 어찌나 야무지고 당찬지, 찍다 보면 감독도 넋 놓고 말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대표님 눈이 무섭군요.”

“이번 관객은 얼마나 예상해 주실 겁니까?”

“그러자면 주연을 봐야겠죠.”

“우리 반우진 씨도 이 캐릭을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명혜하고 기가 막히게 잘 맞아요. 곧 도착할 테니 슬쩍 한 번 봐주시겠어요?”

“그러죠.”

흔쾌히 콜을 받았다.

명혜가 잘되는 일이니 주저할 것도 없었다.

권 시장의 임기말, 새로운 인사안을 준비하느라 큰 신경을 못 써준 미안함도 있었다.

“감독님, 탁 대표님.”

반우진의 차가 도착했다. 그는 롱코트 차림이었다. 얼굴에는 파란 선글라스를 썼다.

인상이 기막히게 좋다. 이마부터 시원하다. 그 살집도 두툼하니 강한 운이다. 코는 성낭비다. 이 코는 코끝이 풍성하고 살짝 길어 보여 부귀해 보인다.

콧대까지 바르니 귀격이다. 윗사람의 신임이나 후원을 받는다. 쏟아지는 팬들의 사랑은 괜한 게 아니었다.

인중도 살짝 기니 예술이다. 윗입술이 치아를 가려 잇몸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훌륭하다. 궁한 사람을 돕는 자비심이 있다. 그 권위로써 주변 사람을 지배하는 능력도 지닌다.

입술도 격에 맞게 만궁구다. 이제 중년에 접어드는 시기에 만궁구를 갖췄으니 앞으로도 더 발전할 상이었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 부위를 못 보는 게 아쉽지만 길상이다. 연예인의 전형적인 얼굴에서도 우월한 마스크였다.

더 중요한 건 그의 공덕이었다.

이 남자는 아프리카 내전의 와중에서 희생된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돕는 NGO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동남아의 내전이나 분쟁지역도 쫓아가 성폭행이나 강간 등을 당한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돕는다.

그런 사람의 음즐궁은 어떨까? 와잠은 어떨까? 일반적인 광채보다 눈부신 윤기를 기대하며 슬쩍 다가섰다.

‘윽.’

경도 걸음이 멈춰버렸다.

입술 끝의 구각에 푸른 기색이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머플러가 같은 색이다. 반사일 수도 있으니 한 발 더 다가섰다.

‘이런.’

반사가 아니었다.

경도의 시선이 아찔해진다.

대한민국 10대 선남이자 개념연예인으로 꼽히는 미혼의 톱스타 반우진이다.

성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도우며 세계를 누빈다. 자기 돈 내는 적은 별로 없지만 후원금 모금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 결과 대통령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다.

‘잘못 봤겠지.’

시선을 가다듬고 다시 관상안을 쏘았다.

“……!”

이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구각에 맺힌 색은 푸른 기색이 맞았다. 만렙의 관상안으로 세 번이나 보았다. 착각일리 없었다.

[구각의 푸른 기색]

마음이 간교할 때 나오는 찰색이다.

저렇게 선량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좋은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당혹을 접어두고 와잠으로 올라간다. 선글라스 사이로 간간이 엿보이는 눈 밑의 와잠.

마음이 선한 사람은 여기서 윤기가 난다. 눈과 더불어 선한 것을 비추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경도 고개가 한 번 더 큰 경사를 그리며 기운다.

반우진의 와잠은.

대실망.

완전 너저분했다.

옥에 티다.

그러나 실망으로만 넘길 수 없는 티가 나왔다. 이런 티는 빙산의 일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차분하게 선글라스가 벗겨지길 기다렸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그가 마침내 외투를 벗어 코디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다음 선글라스를 벗어들었다.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얼굴이 경도의 관상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건 대체?’

남녀궁의 간문을 확인하는 순간 경도의 머릿속은 미친 듯이 엉켜버렸다. 경도조차 독해가 어려운 난해한 상괘가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