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83화
54. 인맥도 만렙입니다만-3
“……!”
안으로 들어선 경도가 걸음을 멈췄다.
거실 소파의 상석에 천국의 기둥처럼 자리 잡은 사람이 있었다.
“당선인님.”
경도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천국의 기둥은 이경문이었다.
옆으로 영부인이 될 차 여사와 영애 이규리가 보였다.
“어서 오세요.”
세 사람이 한목소리처럼 말했다. 경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로 표시가 났다.
“앉으시게. 아까부터 기다리셨네.”
문 여사가 자리를 권한다.
어려워서 선뜻 앉지 못했다.
7급 공무원과 대통령이다.
시에서는 4급 국장도 어려운 게 하위직들이다. 하물며 행정부의 지존인 대통령 앞이라니…….
“앉게.”
이경문이 다시 권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당선인의 명령이니 따라야 했다.
“고맙네.”
그가 손을 내민다. 고개를 숙인 채 그 손을 잡았다.
“저도요.”
이규리 차례다. 그녀가 고마워하는 이유는 전화로 들었던 경도였다.
“우리 김 의원이 다녀갔었다고?”
“예.”
“맛있는 것 좀 사주시던가? 내가 신신당부를 했는데…….”
“저희 K시에서 최고로 맛난 전기구이 통닭을 사주셨습니다.”
“그 사람, 기왕이면 황금통닭 정도 사주지 않고.”
“황금통닭보다 더 맛난 시간이었습니다.”
“나도 같이 오고 싶었지만 축하 인사 받는 게 길었다네. 선거기간 내내 생사고락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보니 내칠 수도 없고…….”
“당연한 일입니다.”
“제주도 비행기 말이네.”
이경문이 운을 떼고 나왔다.
“죄송하지만 지나간 횡액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경도가 선을 그었다. 횡액은 흐르는 물과 같다. 멀어지는 것을 당겨놓을 필요는 없다. 멀리멀리 흘러가 영영 멀어지도록 두는 게 상책이었다.
“아무튼 고맙네. 오 박사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김 의원이 아니었으면…….”
“다 당선인님의 복입니다.”
“김 의원이 자백을 하더군. 부위원장 자리에 부담이 컸는데 오 박사께서 필사의 상괘를 주었다고.”
“그분은 10청의 맑은 상을 지닌 분입니다. 경륜은 약하지만 다른 어느 인물들보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랬네. 내가 김 의원에게도 큰 신세를 졌어.”
“김 의원님에게도 득이 된 일이었습니다. 오래 생각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또한 그렇군.”
대화 중에 문 여사 핸드폰이 울렸다.
문 여사가 주방 쪽으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전 같으면 그냥 받았을 전화였다. 그러나 오늘의 이경문은 예전의 이경문이 아니었다.
“우리 류 박사가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통화를 끝낸 문 여사가 거실로 나왔다.
“그래요?”
이경문이 반색을 한다. 류성곤 박사는 문 여사의 아들이었다. 미국 NASA의 국장보에서 국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이렇게 시기를 맞춰 오는 걸 보니 단순한 휴가 같은 게 아닌 것 같았다.
이경문이 일어선다.
행동을 보니 초면이 아니다.
“총리님.”
차에서 내린 장년의 남자가 이경문을 향해 잰걸음을 걸었다. 그러더니 뜰의 잔디 위에서 바로 큰절을 올렸다.
“축하드립니다.”
“아이쿠, 이거 왜 이러시나?”
이경문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비행기에서 오는 내내 가슴이 설렜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다 류 박사 덕분이네. 미국에서 음양으로 지원해 주지 않았나?”
“교민들에게 바른 정보 전해준 게 무슨 공이 되겠습니까? 오직 총리님의 덕으로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아니 이제 당선인님이시군요.”
“어른께는 오는 길에 들러 인사를 드렸네.”
“아버님…….”
류 박사의 눈이 황급히 젖는다. 부친 생각이 난 것이다.
“어허, 대업을 이룬 분 앞에서.”
문 여사가 엄중한 주의를 준다. 매운 꾸짖음에 류 박사의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인사 나누시게. 사실 진짜 공로자는 여기 계시는 오 박사시네.”
이경문이 경도를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경도입니다.”
경도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분이군요? 제가 국장보가 되기도 전에 맞춰버리셨다던?”
“아니, 류 박사도 오 박사와 인연이었나?”
“우리 오 박사가 보기만 하면 다 맞춰버리니 어쩌겠어요? 초면에 신세를 진 게 바로 우리 류 박사 승진 소식이었습니다.”
이경문이 물으니 문 여사가 배경상황을 설명했다.
“어헛, 이것 참…….”
“들어들 가시죠.”
문 여사가 거실을 가리켰다. 일동은 거실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피곤하지는 않은가? 나는 전에 미국에서 돌아올 때 긴 비행시간에 몸서리를 쳤네만.”
이경문이 류 박사에게 물었다.
“다른 때는 피곤했는데 이번에는 괜찮았습니다. 총리님 생각을 하니 잠도 안 오더라고요. 아이코, 이게 총리님이 입에 붙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총리 일도 평균은 되었다는 거겠지.”
“평균뿐이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예.”
“다른 총리들은 나한테 못 미친다?”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숱한 정권 아래서 수많은 총리들이 부침해갔지만 다들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불행이 아닌가? 나 정도는 가볍게 넘어서는 총리들이 많이 나와야지.”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 박사.”
대화하던 이경문이 돌연 경도를 불렀다.
“예.”
“관상으로 총리상도 알 수 있으시겠지?”
“그야…….”
“류 박사.”
이제 그 시선이 류성곤에게 건너갔다.
“다행히 우리 오 박사의 관상실력을 안다고?”
“예.”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네만.”
“저도 그렇습니다.”
“미안하지만 당신하고 규리는 문 여사님 모시고 잠깐 좀 비켜주시겠소?”
이경문이 차 여사를 바라본다. 눈치를 차린 여자들이 주섬주섬 일어섰다.
“……?”
순간 경도의 촉각이 우수수 일어서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러자.
“복채일세.”
이경문이 흰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
“당선인님.”
“많이 넣지는 않았네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처음 꺼내는 봉투라네.”
“……?”
“그러니 이걸 억만금으로 생각하고 여기 류성곤 박사의 관상을 좀 봐주시길 바라네.”
“총리님.”
류 박사의 시선이 튀었다. 그도 경도처럼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것이다.
“설명은 오 박사의 상괘가 나온 후에.”
이경문이 선을 쫙 그어버린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오, 민주화가 절정에 달한 시대라지만 여전히 지엄한 대통령이었다. 경도는 물론이고 류 박사 역시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부탁하네.”
이경문의 재촉이 나왔다.
“예.”
대답과 함께 숨을 고른 경도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류성곤의 관상.
차에서 내릴 때부터 첫인상이 좋았다. 문 여사의 오로 때문에 더욱 부각이 되었다.
문 여사의 다섯 부위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그래서 귀격이었던 문 여사. 그러나 류성곤은 그와 달랐으니 아버지를 닮은 모양이었다.
‘귀십요(貴十要).’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 하나를 찾아내고는 현미경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어깨가 떨리고 척추가 흔들린다. 대통령의 될 사람의 분부라서가 아니었다.
귀십요는 열 가지가 좋아야 한다. 척 보기에는 귀십요에 근접하는 상이었다. 그러나 이 열 가지를 다 갖추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니 시작부터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귀십요가 나온다면 총리의 소임을 감당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1요…….’
경도의 관상안이 스타트를 끊는다.
두상의 정수리가 높고 평평하면 1요라 한다.
‘2요…….’
귀가 단단하면 2요라 한다.
‘3요…….’
어깨가 높으면 3요라 한다.
‘4요…….’
관골이 높으면 4요라 한다.
‘5요…….’
눈동자가 맑으면 5요라 한다.
다섯까지 짚었다. 높은 정수리도 기준이 있고 높은 어깨 또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일반적인 사람의 관상에 당사자의 골격구조를 참고로 한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등이 젖어버렸다. 앞가슴으로도 땀이 흘러내린다. 절반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꿀꺽.
침을 넘기고 길게 숨을 고른다. 그런 다음에 다시 관상안을 겨누었다.
‘6요.’
6요의 미덕은 입술이다. 입술이 붉으면 6요가 되니 류성곤의 입이 그랬다
‘7요.’
일곱 번째 관건은 치아였다.
“이를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류성곤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요청을 던졌다. 류성곤의 이가 하얗게 드러났다. 7요가 되려면 치아가 두꺼워야 한다. 이것도 합격선이었다.
‘후우.’
경도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세 가지였다.
‘8요.’
시선이 류성곤의 허리로 향한다. 허리가 둥그니 8요까지 넘어갔다.
‘9요…….’
이번에는 손가락이다. 손가락은 길어야 길하다. 모든 상이 짧아서 좋은 경우도 있지만 귀십요의 경우에는 긴 것이 귀격이었다.
길다.
유난히 긴 손이 경도 눈을 차고 들어온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경도의 시선이 높은 곳으로 향한다. 머리카락이다. 굵고 윤택하면 귀십요를 충족하는 것이다.
“……!”
시선이 머리카락에서 멈췄다. 한 올 한 올 뜯어보듯 확인하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귀십요를 충족하는 귀인이었다.
설렘을 참는 건 유년운기부위 때문이었다.
이경문은 왜 총리상을 보라고 했을까? 할 일 없이 짚어보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도 전에 없이 숙연한 게 증거였다. 그렇다면 총리다.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각료의 한 사람이었다.
“…….”
경도의 시선이 잠시 흔들린다. 류성곤의 중정에 서린 빛은 청수하다. 그러나 아직 전성은 아니었다. 귓바퀴에 서리는 윤기도 아직은 세력이 약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개화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2년은 걸려야 할 것 같았다.
내친김에 깜냥까지 체크해버린다.
귀십요를 확인할 때 보지 않은 눈빛이었다. 눈동자가 맑아도 탁한 기상이면 허당이다.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눈빛이 흔들려도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그런 눈은 자신감이 부족하다. 눈빛은 맑음 속에서 은은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을 인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떠올린다. 목소리에는 울림과 경쾌함이 겸비되어야 한다. 만약 기어들어 가는 소리라면 귀십요의 귀격 관상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혹 빛나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방안퉁수에 불과하다. 작은 단위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큰 무리의 대중을 상대로는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눈빛 통과.
-목소리 통과.
마무리를 지은 경도가 휘청 흔들렸다.
“오 박사.”
놀란 이경문이 손을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며 숨을 골랐다. 그 사이에 온몸이 젖었으니 류성곤도 놀랄 뿐이었다.
“상괘를 드립니다.”
경도가 입을 열자 두 사람이 긴장하는 게 보였다.
“일인지상 만인천하의 여의주를 물었으나 아직 그 빛이 충분하지는 못합니다.”
“물기는 했군?”
조용하던 이경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 갔다. 경도는 우려했지만 그가 본 건 긍정이었다.
“들으셨나?”
이경문이 류 박사에게 물었다.
“예.”
“일단 과학기술부를 먼저 맡아주시게.”
이경문의 딜이 나왔다. 경도가 놀란다. 기가 막힌 순발력이다. 경도가 내놓은 상괘는 ‘시간의 문제’였다.
세월이 지나면 충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경문은 막연한 기다림보다 담금질을 택했다. 저력의 평가일 수도 있고 국정경험을 안겨주는 양수겸장일 수도 있었다.
역시.
경도 머릿속에 들어온 단어였다. 총리의 경륜으로는 약간 모자라지만 장관으로는 부족하지 않다.
이경문의 선택은 최상이었다.
류성곤의 이마 일각과 월각에 미색이 흐른다. 자신을 밀어줄 윗사람이 생겼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인연 역시 그토록 각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