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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도 만렙입니다만-2> (18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82화

54. 인맥도 만렙입니다만-2

“어디 좀 볼까요?”

경도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그러잖아도 그녀와의 첫 만남 때, 관록궁에서 보았던 윤기가 궁금했던 차였다.

생각할수록 기막힌 중정이었다. 하급 공무원의 상으로는 차고 넘쳤다. 그렇기에 김윤광의 보좌관이 된 후에도 다 가시지 않았던 의문이었다.

당시 경도가 짚은 시기는 4년 이후였다. 아직은 조금 더 남았다.

중정의 윤기는 여전했다. 이마의 윤기도 나아졌다. 그 빛의 출발이 일각과 월각에서 나오니 윗사람의 도움이 있다는 신호다. 백지애에게 있어 윗사람이라면 김윤광이었다.

입술 바로 위의 식록에 미색이 피어난다. 그 색이 법령 바깥쪽에서 슬금슬금 표시를 내고 있다. 아직은 결정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확인사살을 위해서는 귀의 퐁당이 필요하다.

‘빙고.’

그곳에도 윤기가 보였다. 이건 이경문 후보가 당선되어 대관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했다. 때가 되면 된다는 뜻이었다.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졌군요? 그것도 김 의원님 도움으로?”

경도가 상괘를 밝혔다.

“어느 정도 굉장할까요? 오 박사님이 천기로 짚어주시죠.”

김윤광이 궁금증을 더한다.

“의원님의 보좌관이라면 4급 상당이 최고인데 그보다 더 위쪽 같습니다. 유년운기부위를 짚어보니 정점은 돌아오는 총선 정도일 것 같은데…… 그럼 국회의원? 혹은 정부투자기관의 임직원?”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어헛, 이거야 원.”

김윤광의 맥이 빠진다. 백지애 역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뭡니까? 제가 맞춘 겁니까?”

“아주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이번 대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돌아오는 총선에서 우리 당 비례대표 앞번호를 약속받았습니다.”

“와우, 대박.”

조경철의 비명이 터졌다.

“비례대표…….”

경도도 차마 믿기지 않는다.

“그만한 자격 있는 분이죠? 코로나 때 그 헌신적인 수어통역에 이번 대선에서 장애인단체를 아우르며 그들의 가치를 돋보이게 만든 분입니다. 이런저런 사회단체랍시고 만들어서 후원금이나 후리고 국고보조나 받으려고 혈안이 된 인간들이나 이슈 하나 타고 공천 먹는 사람들보다 백배, 천배 나은 분이니까요. 물론, 그런 분의 보좌를 받은 저는 영광이지만요.”

“그렇군요.”

경도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백지애의 중정이 그토록 빛났던 거였다. 그 빛나는 운의 연결고리는 김윤광이었다.

그가 그녀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그녀는 주어진 기회 속에서 그 가치를 더욱 빛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중심은 김윤광이었다. 이경문의 당선도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님…….’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10청의 귀격이 어디 갈까? 이번 일 때문인지 더 수려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간단히 맥주라도 한잔하죠?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냥은 못 잘 것 같습니다.”

김윤광이 신나는 제의를 했다.

내일은 개표종사원 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대체 휴일인 경도였다. 사양할 수 없었다.

“가시죠. 다들 고생하셨으니 제가 쏘겠습니다.”

경도가 앞장을 섰다.

그 어깨를 김윤광이 잡았다.

“가장 늦게까지 고생한 건 오 박사님입니다. 당선 상괘를 주신 분이기도 하니 당연히 선대위 부위원장인 제가 쏩니다. 덕분에 짤리지도 않았으니까요.”

이번에는 김윤광의 팔을 백지애가 잡는다.

“오늘은 제가 쏘고 싶어요. 저도 오 박사님께 한턱낼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러자 조경철도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아, 그럼 나는요? 나는 대체 언제 기회가 오는 겁니까?”

***

“건배.”

조경철이 단골로 가는 전기통닭구이집에서 잔을 부딪쳤다.

500㏄ 원샷이었다.

기름 빠진 전기구이통닭 맛도 제대로였다.

[당선확정 이경문, 최종 득표 13,884,222표 득표율 약 42%]

심야 술집의 텔레비전에 최종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이경문의 당선소감도 나온다.

“음지에서 양지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준 분들과 위대한 선택을 해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영광을 바칩니다.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시키는데 제 역량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경문이 고개를 숙인다.

그가 고개를 들자 또 한 사람의 세종대왕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5,0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 그로부터 600여 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또 한 사람의 세종대왕이 나올 때도 되었다.

‘축하합니다. 꼭 좋은 대통령이 되어주세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도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오 박사님.”

대선 선거운동의 여러 에피소드가 나온 뒤에 김윤광이 경도를 불렀다.

“예, 의원님.”

“내가 우리 백 보좌관을 보면서 생각한 건데 오 박사님도 정계로 입문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정치를요?”

“대환영입니다.”

듣고 있던 조경철이 반색을 했다.

“제가 여의도로 가면서 생각한 건데 오 박사님만 한 인재도 드뭅니다. 솔직히 입이나 털고 다니는 술수꾼 정치인들보다야 백 배 낫지요. 막말로 지금까지 후원회로 도와온 사람이 몇입니까? 가까이 있는 저와 백 보좌관도 박사님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역에 헌신한 것만 봐도 국회 배지 달만 합니다.”

“아유, 은혜에 헌신이라니 말도 아닙니다.”

“저는 말 된다고 생각하는 데요?”

이번에는 백지애가 지원사격에 나선다.

“아니, 세 분이 짜셨어요? 왜들 이러시나요? 저 이제 K시 행정주사보입니다.”

경도가 울상을 지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마침 소방관 출신으로 공무원이 된 분도 계십니다. 나아가 게임이나 하던 사람, 심지어는 사회 소수파를 대표하는 사람들도 그걸 앞세워 의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 박사님이 행정7급으로 쌓아온 업적은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백 배는 나은 쪽입니다.”

“의원님.”

“이번 당선자님 신념도 그런 쪽입니다. 30대, 40대 초반의 젊은 파워들이 나라의 전면에 나서서 노령화되는 대한민국의 선봉이 되어주길 바라시죠. 저 같은 초선에게 선대위 부위원장의 파격을 주신 걸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공무원을 천직으로…….”

“국회의원도 공무원입니다. 어공이고 단공의 차이일 뿐이지요.”

“…….”

“혹시 국회를 혐오하십니까? 그렇다면 시도지사나 시장군수는 어떻습니까? 그렇게라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셔야죠. 지금 현재의 오 박사님은 능력이 아까울 뿐입니다.”

“…….”

“저 이거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아직 이런 말씀은 시기상조지만 제가 이번 공으로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을 지로 모릅니다. 곧 다가올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는 공천심사위원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건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때 오 박사님을 추천하고 싶다는 걸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

“나는 찬성.”

또 조경철이 나선다. 백지애는 말 대신 손을 들어 한 표를 보탠다.

“보세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지 않습니까?”

김윤광이 기세를 등에 업었다.

“당선 축하 자리에서 저를 닦아세우니 혼란스럽네요. 천천히 생각해 볼 테니 오늘은 당선자님 축하만 하시죠?”

경도는 답을 유보했다.

술자리는 새벽 1시를 넘어서야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그런 다음 우두커니 관상책들을 바라보았다. 그중에서도 싸목도감이었다.

그걸 펼치니 화롯불이 보이는 듯했다. 그 재 위에 할아버지가 상을 그린다. 이번에는 경도 얼굴이었다.

<관의 운명으로 내 상법을 받았으니 공직을 떠나서는 안 된다. 관상의 통쾌함은 관직을 가지고 있어야만 발현되고 유지될 것이다.>

‘공직.’

김윤광의 열변이 귀 안에 메아리친다.

-국회의원도 공무원입니다.

-시장도 공무원입니다.

<시장>

경도가 두 번째로 들은 말이었다.

이틀 후, 놀라운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 고충상담을 하던 중이었다. 이번에는 6급 팀장이었다.

인사고충상담은 9-8-7급이나 받는 게 아니다. 팀장이나 과장들도 인사상담을 온다. 그들의 애로는 주로 부하직원들이다.

5급 과장보다는 6급 팀장의 경우가 많다. 5급은 인사권에 근무평정권, 성과급 결정권한이 있지만 6급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애로가 더 많았다.

이 팀장님의 요청도 그런 쪽이었다.

“이 직원 좀 다른 데로 보내주세요. 아니면 나를 보내든지.”

공무원은 민간기업과 완전히 다르다. 9급이든 8급이든 대놓고 엇가면 대책이 없다.

민간처럼 사표 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차선책이 바로 감사담당관실이나 인사팀을 찾는 것이다.

징계나 인사이동 시켜버리는 게 그나마 대안이었다.

“업무분장의 업무 외에는 손도 까닥 안 하려고 합니다. 전화도 자기 앞의 것이 아니면 당겨 받지 않고 민원인이 와도 자기 업무 아니면 모른 척, 심지어는 업무가 산더미처럼 밀려도 자기 연가는 가고 칼퇴근을 하려고 하니…….”

팀장이 열변을 토한다.

열심히 들어준다.

네네, 그렇군요, 좀 심한데요, 장단도 맞춘다.

그렇게라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인사팀에서도 내 말 듣더니 학을 떼더라고.>

그런 빌미가 필요하다. 자신은 옳고 부하가 틀리다는. 팀장쯤 되면 인사팀에서 고충상담을 한다고 해서 내일 당장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고충을 들으며 관상을 본다.

아래도 막히고 위도 막혔다.

팀장의 이마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살에서도 알 수 있었다.

세 주름은 각각 천문, 인문, 지문이다. 일단 천문부터 꽝이다. 너무 희미한 데다 힘도 없다. 게다가 중간에 뚝, 끊어졌다.

셋 중 하나라도 윗사람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윗사람은 5급 과장이나 4급 국장이다. 윗선의 신뢰가 실리지 않으면 말단들에게 더 우습게 보일 수도 있었다.

부하운에 관한 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 주름 중의 맨 아래에 속하는 지문이고 또 하나는 노복궁으로 불리는 턱이다.

지문이 깊고 선명하면 부하운이 좋다. 그게 희미한데 노복궁에는 흉터까지 나 있다. 부하들 일로 온갖 속을 끓을 상이었다.

천문과 지문의 중간에는 인문이라는 주름살이 있다. 이 인문이 좋으면 관운도 좋다. 승진을 잘하는 것이다.

이 팀장이 그랬으니 그나마 인문이었다. 그걸로 동기들에게 밀리지 않고 6급을 달았다. 그러나 위아래가 막혔으니 고생문이 열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팀원이 적은 부서가 좋다. 아래턱으로 불리는 해골 부위에 살집이 넉넉한 부하를 붙여주면 상쇄가 된다. 그런 부하들은 비교적 상사에게 순종하기 때문이었다.

시험 삼아 물어보았다.

“그럼 혹시 마음에 드시는 직원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말이죠.”

“있죠.”

“누구일까요?”

“수질정책과에 한우길이라는 직원이 있는데 그 친구라면 내가 업어줍니다. 신규 때 내가 잠깐 데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반듯할 수가 없어요.”

“한우길 주임님이라고요.”

경도가 인사 파일을 넘긴다. 사진이 나온다.

“…….”

경도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경도가 짚어낸 관상과 복사본이었다. 해골 부위가 풍후한 직원이었다.

“알겠습니다. 돌아오는 인사에서 가능한 한 반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올 때 핸드폰이 울렸다.

‘문 여사님?’

오로의 귀격 문 여사가 전화를 한 것이다.

“여사님.”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지만 저녁에 시간이 좀 나실까?”

“오늘 말입니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오늘이라면 숙직이 있는 날이었다. 시청의 남자직원들은 숙직을 선다.

어떤 지자체는 여자도 숙직을 서기는 하지만 K시는 남자만 서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대답을 했다. 여간해서는 연락하지 않는 분이니 중요한 일이 틀림없었다.

마득렬 주임에게 물으니 오늘 약속이 있단다. 별수 없이 동기 나도규와 근무명령을 바꾸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6시가 넘자 경도가 먼저 일어섰다.

문 여사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안선주 부녀회장을 만났다.

“아유, 이게 누구야? 우리 관상박사 오 주임님.”

그녀가 펄쩍 뛰며 반색을 한다.

짧은 정을 나누고 언덕을 올랐다. 마당 쪽에 차가 여러 대 보였다. 그리고 이쪽 풍경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젊은 여자 둘도 보였다. 웃고 있지만 눈매가 맵다. 행동에도 절도가 엿보인다.

‘혹시?’

차량부터 확인했다. 그중 하나의 번호판이 눈에 익었다. 경도가 기억하는 한 그 차는 이경문의 영애 이규리의 차였다.

이규리?

그렇다면 그 옆의 차는?

맙소사.

온몸에 전율이 스쳐 갈 때 문 여사 목소리가 들렸다.

“왔으면 들어오시게. 기다리는 분이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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