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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도 만렙입니다만-1> (18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81화

53. 인맥도 만렙입니다만-1

이경문일세.

다시 듣는 목소리가 반가웠다.

“후보님.”

“덕분에 살았네.”

“아닙니다. 김 의원님 덕분이지요.”

“그렇기도 하지만 결국 오 박사의 관상 아니었나?”

“관상보다 실행이 우선입니다. 어쨌든 많이 놀라셨을 테니 송구합니다.”

“이런 송구라면 백 번이라도 환영이네.”

“…….”

“다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다 뉴스 보고 충격을 먹었네. 첫째는 오 박사의 관상 때문이고 둘째는 대형사고 때문이네. 나야 사고를 면했지만 다른 승객들은 피해가 크지 않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곧 내 비행기 편 체크인이네. 제주공항 사정으로 약간 딜레이가 되는 모양인데 측근들은 제주행을 포기하라고 하고 있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야 하네.”

“예?”

“제주에서의 연설은 제주도민들과의 약속이야. 더구나 비행기 사고까지 겹쳤네. 내가 그 아픔을 위로해야 하지 않겠나?”

“……!”

말을 듣던 경도 등골에 오싹한 냉기가 스쳐 갔다.

대권운.

그 대운을 받은 사람의 진가가 느껴졌다. 많은 경우, 관상보다 심상으로 일을 그르친다. 그러나 이경문은 조금 달랐다. 심상으로 관상에 시너지를 퍼붓는 것이다.

자신이 탑승하려던 비행기에 대형사고가 터졌다.

만약 탔더라면.

사망 아니면 중상이었다.

그건 뉴스의 그래픽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비행기가 머리를 들이박는 바람에 앞쪽 승객들의 피해가 컸다.

이경문과 수행의원들의 좌석은 비즈니스석 2열에서 3열에 배정되어 있었다. 4열의 승객 중까지도 사망과 중상이 나왔으니 쉽게 알 일이었다.

그 정도 상황이면 보통 일정을 포기한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주저가 없었다.

“하지만 놀란 측근들이 만류하니 어쩌겠나? 미안하지만 오 박사께서 내 관상을 한 번 더 봐주면 안 되겠나?”

“관상을요?”

“오 박사도 만류한다면 따르겠네.”

“…….”

“부탁하네.”

“…….”

경도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이경문의 의지는 확고했다. 천운으로 횡액은 면했다. 다시 살펴볼 가치가 충분했다.

“그럼 화상통화를 눌러주시겠습니까?”

경도의 요청이 나갔다.

“눌렀네.”

이경문의 목소리와 함께 얼굴이 나왔다. 공항이었다. 주변에는 김윤광밖에 없었다.

“가게 되면 김 의원이 나를 수행하게 될 걸세. 캠프는 선대위원장께서 킾하실 거고.”

“고개 각도를 좀 바꿔보시죠.”

이마부터 체크할 생각이었다. 외국이나 원행길의 운은 이마가 시작되는 양 모서리의 변지가 좌우한다.

거기 기색이 좋으면 먼 곳에서의 일정이 괜찮다.

“…….”

경도의 눈살이 살포시 찡그려진다.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맑지 않았다. 그러나 최악은 피했다.

상괘를 주기 난감할 때 아래쪽에서 빛이 올라왔다. 명궁이었다. 동이 터오듯 조금씩 밝아진다.

변지의 기색은 썩 좋지 않지만 명궁의 기세가 괜찮다. 이런 기세라면 변지의 기색도 조금씩 나아질 것 같았다.

“가셔도 되겠습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갔다.

“정말인가?”

“변지의 찰색과 명궁의 기세를 종합하니 큰 횡액은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고맙네.”

이경문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박사님.”

김윤광이 통화를 이어받았다.

“의원님이 수행하신다고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들 제가 통찰력이 있다며 제 등을 미네요.”

“후보님을 구하셨으니까요.”

“오 박사님 덕분이죠. 아무튼 허락이 떨어졌으니 잘 모시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세요.”

통화가 끝났다.

후아.

경도 입에서 가쁜 숨이 밀려 나왔다. 이제는 안심이었다.

제주공항은 2시간 후에 다시 열렸다.

제주에 도착한 이경문은 병원부터 찾아갔다. 부상자와 보호자들을 위로했다. 나아가 즉석 회견을 열어 정부의 발 빠른 대처를 촉구했다.

제주시청 앞의 연설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원래 예상하던 인원보다 4-5배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이경문의 빠른 사고대처가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이경문 42%

박중경 39%

결국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상황이 뒤집혔다. 사고에서 기사회생한 이경문의 기사가 나가면서 ‘하늘이 정한 대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윤광의 불손한 예지도 함께 부각이 되었다.

<김윤광 부위원장 빛나는 예감 덕분에 참사 면하고 기사회생한 이경문 후보>

<사고를 예감하고 결사적으로 이경문 후보의 제주행을 막은 김윤광 부위원장>

기사는 드라마틱했다.

김윤광의 예감이 이경문을 살린 것으로 나온 것이다. 이경문이 살아난 건 팩트였으니 무당층의 표심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대세론의 기폭제였다.

대통령 선거.

그 축제의 주인공은 국민이지만 진행은 다시 공무원의 몫이었다. 후보자 인쇄물 발송작업을 시작으로 대선투개표의 막이 올랐다.

“……?”

투개표종사원 명단을 본 경도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투개표종사원 명단에 없는 것이다. 인사팀 차석이라 대우를 받은 걸까?

그렇지는 않다.

이유는 대선이기 때문이다. 대선은 지방선거와 다르다. 광역자치단체장에 기초자치단체장, 심지어는 교육감까지 동시에 뽑는 지방선거는 엄청난 인력이 필요하다.

그에 비하면 대선은 간단하다. 그렇기에 읍면동의 직원들도 투개표종사원에 차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강재은은 당첨(?)이다. 그녀는 개표종사원으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아, 이날 아빠 제사인데…….”

강재은이 쓴 물을 넘긴다. 강재은은 어머니와 둘이 산다. 아버지가 몇 해 전에 암으로 세상을 뜬 것이다.

“내가 바꿔줄까?”

경도가 슬쩍 인심을 쓴다.

“정말요?”

“제사라며?”

“하지만 주임님은 쉬는 날이잖아요?”

“재은 씨가 가서 명령 바꿔달라고 해. 내 허락 받았다고 말하고.”

“진짜죠?”

“응.”

“그럼 제가 미안해서…….”

“나중에 일직 같은 거 걸리면 한 번 서줘.”

“알았어요. 그럼 저 진짜 담당자 찾아가요?”

“오케이.”

흔쾌하게 수락을 했다. 굳이 개표종사에 들어가려는 건 현장분위기를 보고 싶어서였다.

사전투표가 실시되었다.

꽤 높은 투표율이 나왔다.

코로나 전성기 이후로 대세가 되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아예 투표일을 일주일로 하는 게 어떻냐는 의견도 나온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결사 반대다.

투표일이 늘어나면 차출이 많아진다.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최근 들어 민원인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투표종사가 이유가 될 수 없으니 인력운용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투표 전날, 후보자들이 각자의 선거운동 소회를 발표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발표문은 대동소이했다. 그래도 이경문의 라스트는 강렬했다. 백지애에 더불어 진짜 언어장애인 학생들의 수어통역 때문이었다.

김윤광의 선거전략이기도 했던 수어통역은 선거의 마무리에서도 멋진 역할을 했다. 선거운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전 6시, 투표가 시작되었다. 이 대선의 최종 투표율은 76.3%가 나왔다.

경도는 시청 특설 개표장에 도착해 있었다. 모두가 분주한 가운데 벽면의 초대형 영상에서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다.

박중경 38.9%

이경문 45.2%

“와아아.”

이경문의 캠프가 환호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 안에는 김윤광의 모습도 있었다.

개표장의 공무원들도 조용히 사견을 나눈다.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중경의 캠프는 사전투표함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격차가 벌어졌다. 밤 10시가 되자 당선 윤곽이 나왔다.

[이경문 당선확실시]

기세는 그대로 이어졌다.

밤 10시 25분, K시의 개표가 완료되었다. K시에서도 이경문의 우세였다.

“오 박사.”

취재를 나와 있던 조경철이 다가왔다.

“축하해.”

“왜요?”

“왜라니? 김윤광 의원님 띄워놓았잖아? 김 의원님은 이경문에게 대권을 안겼고.”

“그렇기는 하네요.”

“그 제주행 비행기 사고방지, 오 박사 관상이었지?”

“묵비권 택하겠습니다.”

“말 안 해도 상관없어. 내가 바보야? 전에 이경문 후보하고 그 딸이 낸 후원금봉투도 기억하는데?”

“그 공은 다 김 의원님 몫입니다. 제주행 막으려고 공항까지 들어가 물세례 퍼붓고 짤렸던 거 들으셨잖아요? 비록 잠깐이긴 해도…….”

“그 김 의원 누가 국회로 보냈는데?”

“그 부친 덕분이죠.”

“오 박사.”

“그렇게 아세요. 신은 실천하는 사람 편이니까요.”

“아무튼 이거 불안해.”

“뭐가요?”

“뭐가라니? 완전 청와대 진출각이잖아?”

“뭐로요? 관상비서관요?”

“안 될 것도 없지. 비서관 직제개편은 대통령 마음이야.”

“됐고요, 이상록 선생님 쪽이나 말해보세요.”

“아우, 그 정신에 챙긴 건 다 챙긴다니까. 이번 달 추천종목 투자결과는 27% 수익이야.”

27%

그 정도면 대박이다.

경도가 웃었다.

이상록은 OAC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동시에 OK 후원회의 자문위원역이다. 한 달에 한두 번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이건 OAC 대표 고세완에게도 정식 허락을 받은 일이었다.

“용포읍 후원은요?”

“권태술 주임이 추천한 세 명에 읍장님 추천 다섯 명, 합이 여덟 명에 대해 300만 원씩 지원했어. 그중 한 명은 2천만 원을 들여 희귀병 수술비 보탰고.”

“흐음, 우리 회장님 공덕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데요?”

“오 박사 공덕이지. 나는 심부름을 할 뿐이고.”

“회장님, 쫌.”

“그러니까 자꾸 내 공으로 돌리지 말라고. 얼굴 뜨겁거든.”

“제가 부탁한 건요?”

“부지 말이지? 알아봤는데 공판장이 파리를 날리기는 하더라고. 일단 아는 중개업자 통해서 간은 보고 있어.”

조경철이 메모를 보며 답한다. 공판장이라는 건 싸목 할아버지의 컨테이너가 있던 자리에 들어온 건물이다.

파리만 날린다는 소리를 듣던 중에 경도가 매입을 생각하게 되었다. 후원회 자금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가능하면 거기다 OK 후원회관을 지을 생각이었다. 당장은 필요 없지만 길게 보면 필요한 일이었다. 찰진 대화가 오갈 때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김 의원님이네요.”

조경철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축하드립니다. 의원님.”

-고맙습니다. 어디세요?

“저 개표종사자 끝나고 시청 개표장 앞인데요.”

-잘됐네요, 곧 도착할 것 같은데 저한테 차 한 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차를요? 당사에 계신 거 아니고요?”

-개표방송에서 당선확정이 뜨자 후보님 특명이 내려왔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오 박사님께 감사부터 전하라고요.

“……?”

-5분이면 도착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김윤광의 차가 시청으로 들어섰다. 그 차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경도가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오 박사님.”

김윤광이 달려와 경도 손을 잡는다.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그야말로 위기일발이었습니다.”

“하긴 저도 아직 심쿵이네요. 제주도 일만 생각하면…….”

“제 잘못입니다.”

“아뇨. 나중에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잘된 일 같더군요. 공항으로 떠나기 전이라면 후보님 머리에 물을 부어도 소용이 없었지 않았을까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아무튼 부위원장 역할을 멋지게 해내셨어요. 축하드립니다.”

경도가 고개를 숙였다. 조경철도 같이 고개를 숙인다. 당선은 이경문이 되었지만 김윤광의 당내 위상도 폭발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건 빼박이었다. 조금 전의 뉴스에서도 이경문 캠프의 일등공신으로 김윤광을 꼽고 있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눌 때였다. 김윤광의 뒤에 선 백지애의 얼굴이 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이마도 마치 등불처럼 밝았다.

‘억.’

경도 입에서 비명이 새었다.

운이 터진 건 이경문과 김윤광만이 아니었다. 백지애의 관운도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의원님, 우리 백 선생님도 좋은 소식이 있군요?”

경도가 물었다.

그러자.

김윤광이 시원하게 답했다.

“관상박사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좋은 소식,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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