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80화
52. 이것이 신들린 상괘입니다-2
-방금 거신 번호는 통화 중…….
-방금 거신 번호는 통화 중…….
열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
이 또한 운명인가?
맥이 쫙 풀려 나갔다.
어제 뉴스를 검색해 이경문의 얼굴을 체크했다.
이마의 변지에 불길한 색이 깃들었다. 수삼 일 전의 것들을 전부 체크한다.
콧방울과 입 주변도 검은색이다. 불행한 기색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전화.
-방금 거신 번호는 통화 중…….
후우.
무거운 숨을 내쉴 때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백지애였다.
-오 박사님.
“어, 백 선생님.”
-의원님께 전화하셨어요?
“예.”
-의원님은 지금 후보님 스케줄 관리에 인터뷰에 정신이 없으십니다. 나중에 연락을 달라고 하십니다. 외신의 인터뷰까지 밀려서 2시간은 족히 걸리실 거 같네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지금 이 후보께서 제주로 가시는 겁니까?”
-네, 선대 위원장님이 수행하고 있어요.
“김 의원님도 아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최근 며칠 동안 김 의원님이 파김치라 일부 사안은 위원장님이 직접 관리하고 계시거든요.
“김 의원님 좀 바꿔주세요.”
-지금은 안 돼요. 언론사들과 인터뷰 중이라니까요.
“백 선생님, 제 말 잘 들으세요. 김 의원님이 선대위 부위원장 수락하시기 전에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때 제가 비방 하나를 드렸습니다. 그것만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요.”
-……?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인터뷰고 뭐고 그 말씀부터 전하세요. 지금 인터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 박사님…….
“어서요. 시간 없어요.”
경도가 소리쳤다.
-알겠어요. 그럼…….
통화가 끝났다. 경도는 잠시 멍을 때렸다. 몸이 늘어진다.
시계를 보니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달고나 라테가 당겼다.
혹시 몰라 용포읍 행정복지센터로 달렸다.
다행히 체리 커피점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다.
“옵뽜.”
돌아서려 할 때 안에 있던 인희가 달려 나왔다.
“뭐야? 얼굴이 왜 이래요?”
인희가 소스라쳤다.
“미안, 웹툰 작업 중인가 본데 나 달고나 라테 한 잔만 안 될까?”
겨우 그 말을 마치고 테이블 의자에 늘어졌다.
“자, 따따블. 마시고 힘내요.”
인희가 가져온 건 두 잔이었다. 몇 모금 넘기니 방전된 배터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뭐래? 무슨 일 있어요?”
“번아웃이야.”
“시청 일이 너무 힘들어요?”
“아니, 그런 거 있잖아? 일에 너무 몰두하면 에너지가 바닥나는 거.”
“맞다. 나도 가끔 그러는데…….”
“열심이네?”
“저 이 가게 인수했어요.”
그제야 인희가 웃는다.
“정말?”
“옵빠 말 듣고 질러 버렸죠. 그랬더니 내 마음대로 왔다 가도 되고, 어쩌다 진상 손님 와도 주인이다 보니 느긋해지고…….”
“잘했다.”
“또 좋은 소식 있는데?”
“오, 이마의 변지가 반짝거리네? 혹시 외국에서의 제의?”
“역쉬 우리 옵빠! 제 웹툰, 중국과 프랑스에 정식 서비스 계약 맺었어요.”
“나이스.”
경도가 주먹을 내민다. 인희의 주먹이 거침없이 와닿는다.
“안 그래도 옵빠한테 인사가려던 참인데 이렇게 와주네? 요즘 제가 운발이 좀 되나 봐요.”
“돼야지. 커피 알바하면서 눈물의 분투를 한 게 누군데?”
“그 분투의 가능성을 알아준 게 누군데요?”
“그건 네 복이야. 좋은 운명이 펼쳐졌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먹는 건 아니거든.”
“저는 아니에요. 오빠가 주는 상괘는 뭐든 받아먹을 거예요. 내 마음의 교주님이시거든요.”
“좋다. 좋은 소식 들으니 기운도 나고…… 출근 점검 걸리기 전에 간다.”
“옵빠, 잊지 않고 와주셔서 고마워요.”
인희의 배웅을 받으며 나왔다.
차에 막 오르려는데 주차장에 낯익은 차가 보였다.
“오 주임?”
운전사의 목소리도 낯익다. 권태술이었다.
“뭐야? 대인사팀 차석께서 여긴 웬일로?”
차에서 내린 태술이 다가왔다.
“우리 센터 직원 중에 문제 생겼냐? 설마 나?”
“아니, 생뚱맞게 여기 달고나 라테가 생각나서.”
“깜놀했네. 투서 들어가서 조사나온 줄 알고.”
“쫄리냐?”
“쳇, 투서가 뭐 쫄린 일에만 들어가냐? 상대방 죽이기 위해 괜한 모략으로도 들어가는 거지.”
“요즘 어떠냐?”
“말도 마라. 너 때문에 초주검이다. 부녀회장님들, 이장님들…… 대체 얼마나 구워 삶아놨길래 너 때의 반의 반도 못한다고 난리냐?”
“그냥 하시는 소리야.”
“아무튼 덕분에 내공수련은 제대로 하고 있다. 아, 그런데 누가 찾아오지 않았냐?”
“나?”
“응, 얼마 전에 굉장한 미녀가 왔었는데…… 오 주임 찾길래 시청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줬는데?”
“장난하냐?”
“농담 아니야? 진짜 예뻐서 나 눈 머는 줄 알았다.”
태술이 강변한다. 과장이겠지. 그도 아니면 어떤 여자 민원인이 경도를 찾은 거겠지. 가볍게 흘려들었다.
그런데.
명궁과 귀 언저리의 빛깔이 좋았다. 조금 올려보니, 이마 전체로 번져간다.
좋은 일이 있군.
그 정도로 끝냈다. 디테일하게 볼 기분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굿모닝.”
아침 인사를 나누며 시청 인사팀에 들어섰다. 테이블에 놓인 신문들이 보였다. 1면은 어김없이 대선 뉴스였다.
현재 시각 8시 52분.
이경문은 결국 비행기에 오를까?
9시 30분.
경도는 핸드폰을 체크했다.
김윤광의 것도 백지애의 전화도 기척이 없다.
토독토돗.
입력 작업은 한없이 느리다. 오타도 엄청나다. 몇 자 치다가 돌아보면 화면에는 외계어가 떠 있다. 세종대왕이 보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걸 수정할 때였다. 회의실에서 나온 교류협력팀의 한 팀장이 엄청난 사고 소식을 전했다.
“제주공항에서 비행기 사고가 났어.”
“……?”
경도가 제일 먼저 반응을 했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로 착륙하던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면서 다른 비행기와 충돌했대. 승객이 320명 정도 타고 있었는데 100여 명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다네. 이 비행기 탑승자 명단에 이경문 후보도 있다고 하고.”
결국?
“……!”
경도가 회의실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경도 말고도 십수 명이 들어섰다.
80여 명 사상이면 대형사고였다.
제주도 공무원들에게 비상이 걸리는 것이다.
“이경문 후보가 탔다고?”
“죽은 거 아니야?”
“아직 사상자 명단은 안 나왔다는데?”
“제주도 난리 났네. 초비상이겠어.”
공무원들의 촌평이 쏟아진다.
“오경도.”
넋을 놓고 있는 경도의 등을 누군가가 건드렸다. 돌아보니 염정아였다.
“어디 아파?”
“아? 아니…….”
고개를 저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핸드폰으로 속보를 이어본다. 기자들이 아우성이다. 의료진도 아우성이다. 코로나 전성기가 떠오른다. 그때는 대구가 저렇게 아우성이었다.
불타는 비행기가 보인다. 바퀴가 부러지면서 기수 쪽의 타격이 컸다. 불까지 났다. 덕분에 앞쪽 승객들 피해가 늘었다.
앞쪽이라면 비즈니스석이다. 이경문이 탔다면 저 자리일 테니 사고는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기자들의 관심도 이경문이었다.
사망이냐.
부상이냐.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대권은 물을 건너간다. 그렇기에 외신기자들까지 총 출동해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건 현장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상자는 8명이 더 늘어 87명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사망자는 3명입니다. 그러나 이송 중인 승객 중에 화상을 입은 중상자가 있어 사망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비행기에서 탈출하지 못한 승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제주 소방당국이 기내 진입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편 이 비행기 탑승자 명단에 있던 이경문 후보의 생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국은 신원을 밝히지 못한 사망자와 부상자 중에서…….]
87명 사상.
[속보입니다. 제주도 비행기 착륙사고의 사망자가 2명 더 늘었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진입한 기내 비지니스석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서귀포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한 명이 숨을 거두어 2명의 추가 사망자가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5명 사망.
그 숫자를 바라볼 때 핸드폰에 통화에 불이 들어왔다.
‘김 의원님?’
밖으로 뛰며 전화를 받았다.
“오 박사님.”
“어디십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계단참에서야 경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죄송합니다. 아침 일정이 몰리는 바람에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이 후보님은요? 결국 비행기에 타신 겁니까?”
“천천히요, 천천히…… 저도 죽었다가 살았습니다.”
“죽었다 살아요? 그럼 김 의원님도 제주도 비행기를 타신 겁니까?”
“아뇨. 저는 일정 때문에…….”
“그럼 이 후보님만?”
“선대 위원장님과 후보님, 그리고 찬조 연설을 해줄 의원님과 수행원 몇 사람이 같이 갔습니다.”
“맙소사, 제 말씀 잊었습니까? 이즈음에 원행은 절대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제가 잊을 리가 있습니까? 다만, 선거라는 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깜빡 잊었습니다. 후보님도 그렇지만 저희 캠프 멤버들도 하루 2~3시간 자면서 버티고 있으니 하루 종일 비몽사몽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렇지…….”
“외신기자들과 회견 중일 때 백 보좌관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캠프 멤버들이 입구에서 그녀를 막았습니다. 기자회견장의 열기가 뜨거우니 그녀가 소리치는 걸 듣지 못했습니다. 겨우 준비한 외신 기자회견이라 중단할 수도 없었습니다. 박빙의 승부다 보니 외신의 반응이 중요했거든요.”
“맙소사.”
“그런데…… 백 보좌관이 미친 듯이 수어를 날려요. 수어 아시죠?”
“알죠.”
“긴급 상황이라고 했어요. 초비상사태.”
“…….”
“오 박사님 이름이 나와요. 그제야 생각이 나더군요. 박사님이 내준 단 하나의 옵션.”
“…….”
“기자회견을 중지하고 백 보좌관을 불렀습니다. 미친 듯이 달려온 그녀가 목이 터져라 외치더군요.”
<오 박사님이 주신 비방요, 당장 지켜야 한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후보님 스케줄을 체크했습니다. 제주도행이더군요. 현장 수행 책임자와 연락을 했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후보님은 계속 통화 중이었고…… 별수 없이 캠프 안전관리를 위해 나와 있던 경찰을 설득해 김포공항으로 달렸습니다.”
“…….”
“탑승구에서 막 체크인을 하려는 후보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후보님도 난색을 표해요. 오 박사님 관상은 믿지만 예정된 연설을 취소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제주부터 서울까지 세를 몰아치려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물론이오, 제주도민을 무시했다는 프레임이 나오게 되면 오히려 악재가 된다면서…….”
“결국…… 그렇게 가신 겁니까?”
“어쩌겠습니까? 후보님이 직접 내린 결정인 다음에야…….”
“맙소사.”
“결국, 최후의 방법을 썼습니다.”
“최후의 방법?”
“가까운 곳의 화장실로 달려가 물을 받아왔습니다. 그걸 후보님 머리에 들이부었죠.”
“……?”
“저는 현장에서 잘렸습니다. 격노한 선대위 위원장님께서 부위원장 직을 박탈하시더군요.”
“그러고도 결국?”
“아닙니다. 물을 뒤집어썼으니 후보님은 그 비행기에 타지 못했습니다. 해서 2시간 후의 비행기 편으로 변경하고 기다리던 차에 앞선 비행기의 참사를 듣게 된 거죠.”
“사셨군요?”
경도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예, 오 박사님 덕분입니다. 그 관상안 덕분에 후보님은 사고를 면했고 제 부위원장직 박탈 또한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전화위복이라, 그 비행기를 예약했던 모든분들에게 생명의 은인으로 대접받으며 제 위상까지 높아졌습니다.”
“와우.”
경도가 주먹을 쥐며 포효했다.
“지금 제 옆에 후보님이 계십니다. 오 박사님과 통화를 원하십니다.”
“후보님이오?”
“아무래도 감사를 전해야겠다고…….”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받아보세요. 제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잠깐의 고요 뒤에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박사, 나 이경문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