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179화
52. 이것이 신들린 상괘입니다-1
대선의 시절이 돌아왔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말만 그렇다.
현실적으로 공무원은 정치와 뗄 수 없다. 일단 지자체 단체장부터가 정통관료가 아니라 정치인이었다. 선거판을 준비하는 것도 공무원이고 마무리를 하는 것도 공무원이다. 정치적인 견해만 밝힐 수 없을 뿐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었다.
첫 월급을 받은 이상록은 산삼 한 뿌리를 가져왔다. 그 자신이 산삼 동호회에 가입해 영주시의 산에 가서 직접 캔 거라고 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자연인이다 부류의 누군가가 뿌린 인종삼이 아니라 천종삼이었다. 진짜 자연이 길러낸 것이다.
돌려주고 싶었지만 워낙 완강하게 나오니 그럴 수 없었다.
산삼은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걸 먹고 하루 반나절을 잤다고 했다. 그런 다음에 일어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단다.
반 이상이 거짓말이다.
착하게 속아주었다.
대선은 이제 점입가경으로 달리고 있었다.
초반 판세는 박중경이 10% 가까이 유리했다. 여당의 프리미엄이었다. 그 판세는 선거전의 막이 오르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김윤광 때문이었다.
그를 지원하던 대학생 휠체어봉사단이 더 조직적으로 출격한 것이다. 김윤광의 장학금으로 사회인이 된 사람들도 대거 가세를 했다.
거기에 백지애가 이끄는 수어봉사단도 한몫을 했다. 당을 상징하는 연두색 장갑을 끼고 그려대는 단체 수어는 거의 연주에 가까웠다.
<사람 사는 세상>
<미래세대에 희망을 주는 나라>
<이 나라 국민인 것이 자랑이 되는 대한민국>
이경문의 구호는 간단했다.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은 김윤광은 혼신으로 선거전에 임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겠다는 그의 그림은 싸목싸목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권 시장이 경도를 불렀다. 점심시간이 가까운 때였다.
“부르셨습니까?”
시장실에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어, 오 주임, 점심에 시간 좀 비워.”
“예?”
“나랑 식사 좀 하자고. 귀한 손님이 오는데 오 주임 좀 보고 싶다네.”
안 봐도 관상이다.
갑작스러운 지시지만 받아들였다.
“인사드리게. 여기 우리 큐란 유통 대표님.”
삼계탕집 안채에 들어서자 권 시장이 기업가 한 사람을 소개했다. 지난 선거 때 후원을 해준 사람인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마치도 자리를 잡았다.
“우리 오 주임입니다. 나보다 더 유명한 친구죠. 아마 다음에 이 친구가 출마하면 제가 딸릴 겁니다.”
권 시장이 경도를 띄운다.
시장 출마.
경도가 처음으로 듣게 되는 단어였다.
“얘기 많이 들었소이다. 관상이 거의 족집게급이시라고?”
기업가가 미소를 짓는다. 경도 마음의 그늘에 미늘처럼 걸려버린다. 편안하고 친근한 미소가 아니라 거만이 뚝뚝 묻어나는 미소였다.
“실은 나도 관상 좀 보고 싶은데…….”
“아, 회장님도. 뭘 그렇게 조심하십니까? 그래서 제가 데리고 나온 거 아닙니까?”
권 시장이 경도 앞에 돗자리를 펼친다.
“그럼 좀 봐주시겠소?”
기업가가 얼굴을 들이댔다. 아까부터 그랬지만 목소리도 탁하다.
그러나.
-안 됩니다.
……라고 선을 긋기 어려웠다.
권 시장이 이렇게 챙길 정도면 다음에라도 또 온다. 싫은 만남을 두 번이나 할 필요는 없었다. 싸가지 권 시장을 탓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게 정치였다.
권 시장 역시 재선을 노린다. 다양다종한 계층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러니 이런 사람도 품고 저런 사람도 품는 것이다.
“아드님 일이 궁금하신 것 같군요?”
한 방에 끝내고 싶어 정곡을 찌르고 들어갔다.
“역시.”
경도가 운을 떼자 바로 반응이 나온다.
기업가는 악상이었다. 그러나 사실 제대로 된 기업가가 아니었다. 하는 짓으로 보아 천박한 태생이다. 하지만 전택궁이 넓으니 좋은 집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십중팔구 유흥업에 종사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사람은 유흥업소용 주류 도매를 기반으로 대형 물류창고를 여럿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리의 눈에다 눈동자가 수시로 굴러다니니 광포하다. 눈가의 주름 또한 겹겹을 이루니 흉상이오, 꺼진 눈에 눈동자까지 누런 색이라 아내와 자식들에게 해를 가한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꺼진 지각에 피부까지 거칠어 효도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좋았으니 와잠의 빛과 입술이었다. 와잠을 보니 아들 생각은 한다. 넓고 붉은 입술은 식탐에 제격이다. 그렇기에 자칭 K시 대표 미식가였다.
“사진이 있으신가요?”
“있다마다.”
경도가 요청하니 핸드폰이 아니라 지갑을 펼친다. 거기서 진짜 사진을 꺼내놓았다.
“고등학생인데 지금 전교회장이라오. 앞으로 뭘 시켰으면 좋을지 좀 봐주시오. 남들 말로는 미국 유학을 보내서 의사를 만들든지 아니면 한국에서 판검사 한 번 시켜보라고 하던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다. 그 마음만은 갸륵했다. 저 성깔에 자식까지 배척한다면 답이 없을 일이었다.
“…….”
경도 눈에 작은 파문이 인다.
유전자는 훔칠 수 없다.
아들의 관상도 아버지와 닮았다. 다만 귀가 곧으니 머리는 좀 될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하는 아드님이군요.”
“오, 역시, 역시…… 다르네, 달라.”
기업가의 반응은 천박했다. 꾹 참고 상괘로 달려갔다.
머리는 둥글다. 이마도 컸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도톰하지 않고 밋밋 평평하다. 게다가 눈썹이 눈을 향해 하강한다. 이런 사람은 차라리 종교가가 되는 게 바람직했다. 옛날 말로 하면 속세를 등지고 절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색도 불손하게 붉어 좋은 친구도 없다.
코로 내려가니 산근의 기세는 좋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양 콧날인 금궤와 갑궤가 얇아 아버지의 가업조차 이어갈 재량이 아니다. 가진 재산이 있어도 다 까먹는 상이지 키워나갈 관상은 아닌 것이다.
“상괘를 드리겠습니다.”
불쾌한 자리지만 꾹 참고 마무리에 들어갔다.
“오, 그래, 그래. 어떻게 나오는 거요?”
기업가가 테이블에 바짝 붙는다.
“아직은 아드님 성정이 완성되지 않아 기복이 있지만 선천은 맑은 샘입니다. 그러니 의사나 판검사도 좋지만 가장 적합한 것은 종교 쪽입니다.”
“종교?”
기업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사나 판검사는 안 되는 거요?”
급한 성질답게 바로 질문이 들어온다.
“가장 이상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종교…… 그럼 땡중이나 목사 같은 걸 시키란 말이오?”
목소리에 불만이 끼어든다.
“교황 같은 분도 계시지요.”
경도가 되받았다.
“아, 교황.”
그제야 자기 무릎을 치는 기업가.
“다음으로 회장님입니다.”
“나? 나도 보았나?”
그새 은근슬쩍 반말 모드로 들어가신다.
“회장님은 성정에 불이 들어 매사가 너무 뜨겁습니다. 그 불길을 좀 식히지 않으면 집 밖에서 매사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뜨겁다? 하긴 내가 좀 화끈하긴 하지.”
“…….”
“교황이라…… 종교도 그 정도면 괜찮지. 기분이니 술 한 잔 받게나.”
이제는 완전한 반말로 변한 사업가. 마시던 인삼주 잔을 원샷으로 비워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경도에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근무 중이기도 하고 제가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그래? 그럼 복채를 줘야겠군.”
바로 지갑을 꺼내더니 100만 원 수표를 내민다.
“복채도 괜찮습니다.”
거절을 했다. 억만금을 줘도 받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받아. 회장님이 격려차 주시는 건데.”
권 회장이 훈수를 놓으니 하는 수 없이 받아놓았다.
수표를 보며 상괘를 생각했다. 순화시킨 그 상괘의 진짜 내용들은 이런 것이었다.
<이리의 눈으로 성질이 지랄 맞고 흉포하니 자연사하시기는 글렀습니다. 부디 밖에 나가면 뒤통수 조심, 차 조심, 객사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 아들은 스님이 되는 게 딱입니다. 가문을 세우기는커녕 당신 재산도 못 지킬 테니 일찌감치 마음 수양을 시켜 아들이라도 천수를 누리게 하세요.>
그가 알아들었을까?
권 시장과 함께 돌아오다가 원스톱 민원실 앞에서 멈췄다. 그 앞의 성금함에 수표를 넣었다. 짜증 나는 돈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긴요한 100만 원으로 쓰이길 바라면서.
***
대선의 전쟁은 점점 깊어갔다.
박중경은 이경문의 비리나 빈 곳을 털기 시작했다. 이른바 네거티브의 동원이었다. 처음 문제가 된 게 딸이었다.
취업압력과 부동산 문제가 나왔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경도의 상괘에 따른 덕분이었다.
몇 해 전, 이경문이 문 여사를 찾아온 날, 이규리가 매입하려던 건물은 문제가 있었다. 그걸 덥석 물었더라면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이경문의 딸도 그릇이 컸다. 그 이후에 더 가격을 낮춰 제의가 왔음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저는 부동산 투기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나왔다.
대체 누가 녹음을 한 걸까?
그녀 자신도 어떻게 새어나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새어나감으로써 이경문을 부각시켰다.
또 하나는 취업이었다. 공기업이었다. 당시 자리를 비워놓고 이규리에게 제의를 했었다. 그것도 이규리가 잘랐다. 그걸 제의한 사람은 원장이었다. 그는 비리가 많았다. 그걸 무마하기 위해 권력자의 가족을 끌어들이려 했었다. 만약 그 제의를 받아 공기업의 3급 직원 자리를 냉큼 물었더라면…….
이경문의 지지율은 10% 가까이 떡락할 수 있었다.
‘으어업.’
경도가 몸서리를 친다.
이제야 알았다. 몇 해 전, 이규리의 관상에서 엿보이던 7년간의 잠행운.
가만히 세어본다.
만약 이경문이 당선된다면?
딱 임기 말까지다.
그러니까 이규리의 잠행운은 아버지의 대운을 비추는 곁가지의 등불이었던 셈이다.
딸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덕분에 이규리에게 제시된 의혹들은 오히려 지지율을 올려주는 반전을 이뤄냈다.
<저는 부동산 투기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
그 음성이 방송을 타는 날, 이규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운 인사이동의 밑그림을 그리던 날이었다.
“오 박사님.”
그녀의 번호는 몰랐지만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려 봉황의 혈육이었다. 직접 관상까지 보았으니 모를 수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복도로 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통화 괜찮으세요?”
“네…….”
“저에 관한 뉴스 보셨어요?”
“예…….”
“정말 고마워요. 저 아직도 전율이에요.”
“아닙니다. 상괘는 제가 드리지만 그걸 지키는 건 각자의 복입니다.”
“아니에요. 누가 그렇게 정확한 상괘를 내겠어요. 저 그때 오 박사님 안 만났으면 그 건물도 매입하고 취업제의도 받아들였을 거예요. 그랬으면…… 아, 정말 생각만 해도…….”
“후보님은 건강하시죠? 사모님도?”
“예.”
“할머니 일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제 주제를 알기에 조문은 마음으로 했습니다.”
이경문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 사모님과 했던 약속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사모님은 그 후에 오지 않았다.
“오시지 그랬어요.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께서도 오 박사님 얘기 간간이 하시는데…….”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현재 선대위 부위원장님과도 인연이 깊으시다면서요?”
“예…….”
“아버지께서 그러셔요, 잠깐이었지만 오 박사님과의 만남은 커다란 행운이었다고. 당선되시면 꼭 인사하실 거예요.”
“아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바른생활의 남자시군요. 오늘은 피로도 달랠 겸 감사를 겸해서 전화 드린 거고요, 다음에 뵈어요.”
이규리의 전화가 끊겼다.
고마운 건 경도였다.
상괘 하나를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걸 대충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면 참 허망하다.
그러나 이규리 같기만 하면 경도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관상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선천과 현재운을 살펴 복은 받아들이고 화는 피해가는 것. 그것이 관상이었다.
하지만.
이경문은 아직 당선이 아니었다.
박중경 측도 다 2안, 3안이 있었다. 그들의 선거 브레인은 만민연구소였다. 이럴 경우의 대안은 정기룡이 박중경을 지지 선언한 후의 자진탈퇴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 대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기룡은 단 1%가 나와도 완주하겠다고 천명해 버린 것이다. 경도 상괘가 또 한 번 적중된 것이다.
이경문 40%.
박중경 41%.
중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경문의 선전으로 격차가 박빙으로 좁혀졌으니 환호로 캠프가 떠나갈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대선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진 두 후보의 기세는 오늘도 전국에서 이어집니다. 박중경 후보는 세종을 중심으로 충청권 표밭을 갈고 이경문 후보는 제주를 시작으로 세를 몰아오기 위해 오늘 오전 9시 비행기 편으로 제주로 향할 예정입니다. 각 후보의 캠프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합니다. 먼저…….”
끼익.
달리던 경도 차가 갓길에 급정거를 했다.
“야, 이, 이 개자식아? 너 미쳤어?”
뒤따르던 택시가 욕설을 퍼붓고 지나갔다.
그 욕설조차 듣지 못한 채 경도는 김윤광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미친 듯이.
정말이지 미친 듯이였다.
제주라니?
김윤광이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는데 내주었던 단 하나의 금기. 그러나 이경문의 운명을 좌우할 그 금기가 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