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함살殺을 맞았어요-1> (17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77화

51. 모함살殺을 맞았어요-1

“알았으니까 문은 열어놔.”

경도가 웃었다.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요. 박사님 오신다길래 우리 연습시간까지 바꾸고 기다렸어요.”

채서는 조바심이 난다.

“안다니까. 스캔들 아니면 모함이지?”

“악.”

멤버들이 동시에 자지러진다. 하루 대다수의 시간을 같이 먹고 같이 자다 보니 감정도 비슷해지는 모양이었다.

“벌써 우리 관상 보신 거예요?”

“그래. 코끝 준두에서 시작한 검붉은 기색이 양쪽 뺨까지 퍼졌잖아? 특히 채서가 그런데?”

“옴마, 홈마, 족집게.”

멤버들의 입이 벌어진다.

그때 탁 대표가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문을 연 멤버들이 뒤로 물러선다.

“너희들 뭐야?”

탁 대표의 힐책이 나왔다. 이제는 연예기획사 쪽에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은 탁 대표다.

그런 그에게도 경도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차에 멤버들이 납치(?)를 해갔으니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나가 있어.”

탁 대표가 말하니 멤버들은 주저주저 퇴장이다. 탁홍걸의 권위는 이 바닥에서 이미 절대적이었다.

“죄송합니다. 애들이 결례를 했네요.”

“아닙니다.”

“제 방으로 가시죠.”

탁홍걸이 문을 가리켰다. 잠시 뻘쭘했지만 그를 따라 걸었다.

방 안에는 손님이 한 사람 있었다. 60대의 투자자 반영희였다.

“반 여사님, 이분이 바로 제가 존경하는 오경도 관상박사님이십니다.”

바로 경도 소개에 들어간다.

“반가워요. 관상 실력이 대단하시다고요?”

“과찬이십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반영희의 관상도 굉장했다. 특히 드물게 보는 호랑이코 호비가 붙었다. 콧망울이 너그러운 데다 산근까지 넓으니 금은보화가 쌓이는 상이다. 이런 기세라면 적어도 천억대 이상의 부호였다.

그래도 빈 곳이 하나 있었으니 와잠이었다. 눈 밑의 와잠에 근심이 쌓였다. 보아하니 외동아들인데 그 속을 썩는 것이다.

“제가 오늘 일진이 좋네요. 신선한 아역 후보가 온다길래 나와봤는데 이렇게 귀한 분을 뵙다뇨?”

반영희가 호감을 보인다.

탁 대표도 도울 겸 상괘 하나를 던져주었다.

“코가 예술이라 금은보화가 쌓이는데 그 보화 속에 근심 하나가 보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상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요?”

반영희가 반응을 보였다.

“아, 두 분이 말씀 나누고 계세요. 저는 나가서 점검 좀 하겠습니다.”

젊은 탁홍걸은 눈치가 귀신이었다. 바로 자리를 비켰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근심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외동아드님 일이죠?”

“어머.”

“여사님은 부귀상이나 지각이 조금 약한 편입니다. 그런데 피부가 말라가는 형세니 방치하시면 늙어 효도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효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밥값이나 했으면 하는 바람 밖에.”

“사진이 있으면 좀 볼 수 있을까요? 가장 최근의 것으로.”

“그거야 뭐 어렵겠어요.”

반영희가 핸드폰을 열었다.

“지난 주말에 찍은 거예요. 수입 차 뽑아준 지 얼마나 됐다고 작살을 내는 통에 이번에는 국산을 뽑아줬더니 이런 사진을 보내왔더라고요.”

사진이 나온다. 국산 차 앞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아들이었다.

실패.

실패.

그 단어가 얼굴에 덕지덕지 묻었다.

관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부모덕을 제대로 보고 태어났으니 이마도 쓸만하다. 그러나 어미에도 청색, 인중에도 청색이 드리워졌다. 제대로 된 실패의 기색이었다.

눈을 보니 검은자위가 위쪽이다. 뜻이 높고 강하다. 남에게 지는 것도 싫어한다. 결정적으로 수기(水氣)가 약하고 토기(土氣)가 많은 게 원인이었다.

나이는 32살이다. 유년운기부위를 짚으니 지금이 중요한 시기였다.

“제가 상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머, 벌써요?”

“예.”

“그럼 그냥 볼 수는 없고…… 복채를 받아주세요.”

“아닙니다. 탁 대표님 손님이니 그냥 보셔도 됩니다.”

“그럴 수는 없죠. 저는 공짜 점심 즐기는 성향이 아니거든요.”

“그럼 상괘를 들으신 후에 주십시오. 값이라는 게 물건을 본 다음에 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명혜가 오디션을 봐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제안이네요.”

반영희가 봉투를 거두었다.

“일단 이 차 말입니다.”

경도가 핸드폰 속의 차를 가리켰다.

“실수하신 겁니다.”

“실수라고요?”

“아드님은 뜻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 기를 살리려면 이런 차로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지난번에 망가뜨린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사주시길 권합니다.”

“예?”

“그리고 아드님이 혹시 외국 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맞아요. 자기는 미국에 가서 사업하고 싶다고…… 그런데 지 분수를 알아야지. 그놈이 영어도 기본 밖에 못하거든요.”

“그래도 보내셔야 합니다.”

“예?”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아드님은 검은자위가 위쪽이라 뜻이 높고 강합니다. 남에게 지는 것도 싫어하고요. 그게 잘 되지 않으니 눈가 어미와 인중에 푸른 좌절이 들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드님은 본시 수기가 약하고 토기가 강하니 이런 사람은 서방으로 가야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국 땅에서는 뭐랄까요, 너무 작은 연못이라 용에게 알맞지 않다고나 할까요?”

“어머.”

“유년운기부위를 짚어보니 대운이 두 번 있습니다. 하나는 4년 전이었고…….”

“어머, 그때도 미국에서 사업하겠다고 설레발을 치는 걸 제가 눌러놨는데…….”

“그리고 올해 연말입니다. 이거까지 놓치면 여사님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고…… 더불어 여사님의 노후까지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

“미국으로 보내세요. 이마의 변지 또한 다른 사람에 비해 윤기가 강하니 그 또한 외국에서의 운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

“그리고 이건 여벌로 드리는 상괘인데 여사님께서는 새 건물의 공사를 준비하고 계시죠?”

“어머.”

반영희가 또 한 번 자지러진다. 이 일의 결정은 오는 길에 내린 것이었다. 부동산 쪽에서 알맞은 물건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계약 날을 잡았다. 그것조차 집어내니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죄송하지만 올해는 공사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지금 역마의 기색이 어두우니 건물을 짓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기색의 정도로 보아 2년 정도 지나면 나아질 것 같으니 그때 착공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세상에!”

반영희가 자기 무릎을 쳤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하고 등도 흥건했다. 소름과 전율을 번갈아 느끼면서 흠씬 젖어버린 것이다.

“이건 족집게가 아니라 그냥 천리안이네요, 천리안.”

반영희는 몇 번이고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봉투의 내용물을 바꾸어 내놓았다.

무려 천만 원이었다.

“너무 많아 받을 수 없습니다.”

경도가 사양하자 천만 원 수표를 한 장 더 올려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들의 장래를 위해 내로라하는 외국 명사들과 오찬이나 조찬 자리를 마련해준 적도 있어요. 그 사람들 하고 30분 정도 식사하면서 듣는 강의비가 얼만 줄 아세요?”

“죄송합니다. 그런 쪽은 잘…….”

“기본이 천만 원이고 제대로 나가는 분은 1억도 불사예요. 그렇다고 뭐 뾰족한 대안이 나오는 것도 아니죠. 그거 생각하면 오늘 박사님이 주신 상괘의 컨설팅비는 5억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이 정도는 받으시는 게 당연합니다.”

“제 생각에도 그리 과한 컨설팅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온 탁홍걸까지 거드니 경도가 봉투를 챙기게 되었다.

“탁 대표님, 저 오늘 기분 최고예요. 이번 영화 제작비 100억 정도 더 쏘면 좋을 것 같다고 했었죠? 제가 투자자들 대표해서 허락할 테니 그렇게 진행하세요.”

“앗, 감사합니다.”

행복 파편을 얻어맞은 탁홍걸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

“명혜, 언니 말 잘 들어.”

스튜디오 앞에서 유빈이 명혜 볼을 잡았다.

“다른 거 생각할 거 없어.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틀려도 괜찮아.”

“네.”

“저기 저 감독님 보이지? 그냥 동네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진짜 아저씬데요 뭐.”

“야아, 나 아직 미혼이야.”

그 말을 들은 감독이 울상을 지었다.

“잘할 수 있지.”

“명혜 잘할 수 있어요.”

“자.”

유빈이 손바닥을 내밀지만 명혜는 주먹이었다.

“요즘은 이렇게 하는 거예요.”

“……!”

유빈도 1패를 당했다. 지켜보던 경도가 웃었다. 역시 명혜다. 불치병을 극복하면서 생긴 내공은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짝퉁이 아니었다.

“선생님.”

경도에게 손까지 흔들어주는 저 위엄을 보라.

“아유, 저 촐랑이. 정신 바짝 차려.”

애가 타는 건 오히려 부모 쪽이었다.

“자자, 유빈 언니 말처럼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

감독이 임시 무대를 가리켰다.

“레디.”

마침내 사인이 떨어졌다. 고정 카메라가 돌아간다. 또 다른 카메라는 명혜를 따라다니며 표정들을 잡아낸다.

“웃어요.”

감독의 요청이 나오면 명혜가 팔색조의 웃음을 선보인다.

“우는 표정.”

이것도 어렵지 않다. 실제로 눈물까지 흘려버리는 명혜였다.

“쟤 카메라 앞이 처음인 거 맞아요?”

탁홍걸 옆의 반영희가 혀를 내두른다.

“우리 오 박사님의 선택을 받은 아이거든요. 어련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여기 전부…… 탁 대표에 유빈 씨에 저기 TNTS, 그리고 이제는 나도?”

“앗, 그런 데요?”

탁홍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묘하게 동질감을 형성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쟤 표정이 완전 중독성이네요. 뭔가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어요.”

반영희는 명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케이입니까?”

“당장 전속계약하시는 게 좋겠네요. 다른 데서 채가기 전에.”

“알겠습니다.”

탁홍걸이 답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다 만족스러웠다.

“고마워. 우리랑 계약해줘서.”

계약이 끝나자 탁홍걸이 명혜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끝낸 명혜가 두 손을 모으고 배꼽 인사를 작렬한다. 정말이지 앙증의 화신 같은 아이였다.

“두 분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저희 전문팀에서 케어해 드릴 테니 걱정일랑 마시기 바랍니다.”

탁홍걸의 인사가 부모에게 건너갔다. 즉석에서 내준 계약금만 2천만 원이었다.

“아유, 이렇게 큰돈을…….”

명혜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몰랐다.

“자, 다들 고맙습니다. 오늘은 명혜가 힘들 테니 다음에 점심식사 한 번 모시러 가겠습니다.”

탁홍걸이 마무리를 선언했다.

그런데.

복도로 나오니 TNTS 멤버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뭐야?”

탁홍걸이 엄한 샤우팅을 날린다. 멤버들은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애만 태운다.

“너희들 이제 보니?”

“죄송해요.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오 박사님 뵙겠어요? 그러니……”

“아, 얘들이 진짜…… 그거 내가 조사 중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멤버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대표님이 한 번 봐주셔.”

유빈의 지원사격이 날아왔다.

“누님까지 왜 이러세요?”

탁홍걸이 난감해하자 경도가 자진납세에 들어갔다.

“대표님, 저는 괜찮습니다. 명혜는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하면 되고요.”

“그래도 염치가 있지…… 게다가 조사 중인 일이고…….”

“멤버들 모함 건 말이죠?”

경도의 먼저 의표를 찔러버렸다.

“뭐야? 너희들, 벌써 말씀드린 거야?”

탁홍걸의 질책이 멤버들에게 향했다.

“아, 아니에요.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오 박사님이 척 보고 맞추신 거라고요.”

곽수잉이 손사래를 치고 나섰다.

“맞습니다. 얼굴에 다 나와 있는 데요, 뭐. 특히 채서.”

“…….”

“자자, 일단들 들어가셔서 얘기들 하세요. 명혜는 내가 책임지고 있을게.”

유빈이 모두의 등을 미니 대표실로 밀려 들어가게 되었다.

소파에 앉은 탁홍걸이 멤버들을 쏘아본다. 멤버들이 기가 죽는다. 그러자 탁홍걸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너희들, 나보다 오 박사님이다, 이거지?”

“…….”

“솔직히 말해봐. 솔까 나도 그러니까.”

“우왕, 대표님.”

탁홍걸이 커밍아웃을 하자 멤버들이 자지러졌다.

“에이, 이런 것까지 오 박사님 신세 지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탁홍걸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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