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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옵션 절대 잊지 마세요-1> (175/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75화

50. 이 옵션 절대 잊지 마세요-1

여의도는 빌딩 숲이었다.

풍수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랐다. 그 아래가 모래땅이라는 걸 누가 알까? 관상으로 치면 화장술이다.

그러나 채 대인쯤 되는 사람은 알 것 같았다. 경도가 성형까지 짚어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차는 두 대였다. 강남숙이 그녀의 차를 가져온 것이다. 경도가 뒤따르겠다고 했지만 혼자 가게 할 수 없다며 이상록이 동승을 했다. 강남숙은 윤지와 함께 뒤에 오는 것이다.

“한강은 정말 기막히죠? 민족의 젖줄이자 수도권의 상수원이니까요.”

여의도에 들어서며 이상록이 말했다.

경도가 웃었다.

한강은 상수원이 아니다. 진짜 상수원은 산이다. 산이 물을 낳아 강이 된 것이지 강이 저절로 물을 낳는 게 아니었다.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런 설명은 오히려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

방송국과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김윤광이 생각났다. 캐서린과의 인연도 김윤광이 낳은 셈이다. 그의 후배 고세완에게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이게 인연이었다. 좋든 나쁘든 관계를 맺으면 라인이 확장된다. 그렇기에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강물과 같았다. 마음이야말로 인간성의 원천이다. 그 마음이 더러우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꼬인다. 원수가 더러운 강물이 깨끗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캐서린이 대만족을 하네요. 좋은 인재를 소개시켜줘서 고맙습니다.]

캐서린이 상황 보고를 한 걸까? 고세완의 문자가 들어왔다. 답문을 보내고 이상록에게 보여주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도 고무된다. 감격하고 있다는 건 표정으로도 알 수 있었다.

[초밥규장각]

초밥집 이름이 걸출했다.

“제가 단골로 다니던 곳인데요, 실장님이 아직 계시더라고요. 전에 이쪽 증권회사에 근무할 때 우리 부부가 데이트하던 곳이거든요.”

이상록의 표정이 더 밝아진다. 추억이 서린 곳이다. 새 직장을 얻었으니 그때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강남숙에게는 위로였고 윤지에게는 긍지였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머리가 새하얀 변상선 실장이 반색을 했다.

“안녕하세요?”

이상록 부부가 나란히 인사를 한다.

“우리 색시님은 아직도 그대로네?”

“색시는요. 저도 이제 할줌마가 다 됐는 걸요.”

“딸?”

실장의 시선이 윤지에게 옮겨갔다.

“윤지야, 인사드려. 이 세상에서 초밥을 제일 맛 있게 만드시는 쉐프님이셔.”

“안녕하세요?”

윤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여긴 저희 부부의 구세주이신 오경도 관상박사님이세요.”

경도까지 소개해 주니 꾸벅 예의를 갖췄다.

“관상박사?”

“실장님 초밥도 기막히지만 우리 오 박사님 관상은 아주 상상 불가라죠. 그동안 건강하셨죠?”

“그럼. 자자, 이쪽으로 앉아요. 원래는 예약이 되었던 자리인데 야근 때문에 취소가 되었어. 다른 예약자에게 넘겨야 했는데 오랜만에 이 과장이 온다니 새치기를 했지.”

실장이 구석의 바를 권했다.

초밥으로 달렸다.

윤지는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이상록의 사연을 들은 변 실장은 오늘 식사에 대해 프리를 선언했다. 이상록이 사양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비장의 생선들까지 다 쏟아냈다.

-잘 먹여야지.

-등푸른 생선에 DHA도 중요해.

그렇게 쥐어낸 초밥은 윤지가 다 받아먹었다.

간장을 찍으라면 찍고, 생고추냉이를 바르라면 바른다. 콧김을 뿜고 눈물까지 빼면서도…….

“맛있어요.”

……하고 웃으니 실장이 감춰둔 비장의 생선들이 새록새록 기어 나왔다.

처음에는 광어에 숭어였지만

도미와 참치가 이어지더니

참치 중에서도 고급진 부위가 나오고 귀한 꽃새우에 민어회까지 이어졌다. 이때까지 윤지가 해치운 초밥만 해도 2개씩 12접시였다.

이상록과 강남숙은 콧등 시큰이다. 맛난 거 한 번 제대로 먹이지 못한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든 것이다.

발작과 경련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마운 부부였다.

“어디라고요?”

대화 중에 실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OAC입니다.”

“우와, 그 회사 요즘 한참 뜨던데?”

변 실장의 평가가 후했다.

“그래요?”

“내가 여기 터줏대감으로 있다 보니 세 가지는 확실하게 꿰고 있잖습니까? 연예인 누가 인기 상한가인지, 국회의원 누가 잘 나가는지, 그리고 어느 금융회사가 실적이 좋은지.”

“괜찮은 뎁니까?”

이상록이 모른 척 되묻는다.

“요즘 최고로 핫하죠. 세움증권과 한가투자증권, 미래오션증권 등에서 최고 실력파들만 몇 추려갔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엘리트들이 웬만해서 움직입니까? 요즘 여의도에서 OAC 모르면 대화에 못 껴요.”

“실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 체면이 사는 데요?”

“야인으로 고생하더니 결국 빛을 보는군요. 사실 그때 이 과장님 얘기 듣고 마음 많이 아팠습니다. 여의도 금융판의 지도를 바꿀만한 그릇이었는데…….”

“아유, 왜 이러십니까? 실은 저 폐인으로 구르다가 여기 오 박사님 덕분에 살아난 겁니다. OAC도 이분 추천이었고요.”

“그래요?”

“관상이 이거라니까요.”

엄지척을 날리는 이상록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강남숙도 뿌듯해진다. 부부는 공동운명이다. 남편이 대우받는데 기가 살지 않을 아내는 없었다.

“그럼 언제 한 번 따로 찾아뵈어야겠네요. 저도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요.”

변 실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초밥 맛처럼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는 제대로 된 상인이었으니 예의를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십중팔구……

-저 관상 좀 봐주시죠?

……하고 얼굴을 들이댔을 일이었다.

“부모님 때문에 그러시죠? 두 분 다 병환이 깊으시군요?”

경도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뜻깊은 자리인 데다 좋은 초밥을 공짜로 내주니 작은 답례를 하는 것이다.

“이야, 진짜 족집게시네?”

“부모님 자리는 이마의 일각과 월각인데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하네요. 죄송하지만 두 분 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무거운 상괘가 나간다. 목숨꽃이 지는 일은 미화가 능사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시름 속에 빛이 보이니 나쁜 일을 앞세워놓고 위로를 줄 생각이었다.

“…….”

“다행히 외아드님 쪽은 운이 좋아 올해 취업에 성공하실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제가 일비일희로군요. 그 아들놈이 무려 취업 4수 중이랍니다.”

변 실장의 얼굴이 조금 펴지니 경도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하긴 인명은 재천이니 어쩔 수 없죠.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오는 것이니 계시는 동안이나마 잘해드릴 수밖에. 기막힌 관상을 보여주셨으니 특별 서비스 좀 올리겠습니다.”

변 실장이 주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이상록이 경도의 수고에 감사를 전한다.

변 실장은 곧 돌아왔다.

“이게 아침에 제주에서 들어온 진짜 다금바리인데요. 오늘 국회의원 예약이 있어 준비한 거거든요. 조금 남을 테니 맛 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귀한 걸 주시면…….”

“아들이 취직한다면서요? 내가 그놈 때문에 어딜 가도 기를 못 폈는데 한턱내야죠.”

다금바리 초밥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초밥도 매번 다르다. 그냥 저며내는 것도 있고 칼집을 넣기고 한다.

그 칼집도 생선에 따라 다르다. 어쩌면 변 실장은 생선 살의 관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야, 기막히네요?”

이상록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입안에 감칠맛이 넘쳐요. 차마 삼키지를 못하겠어요.”

강남숙의 감탄도 이어진다.

그때 손님 두 사람이 들어섰다.

“석 의원님, 오셨습니까.”

변 실장이 정중해진다. 순간 경도 시야에 뭔가 익숙한 얼굴이 잡힌다. 돌아보니 둘 중 한 사람이 바로 김윤광이었다.

“어, 오 박사님.”

김윤광도 경도를 알아보았다.

“의원님.”

“아니, 이런 일이…… 여긴 웬일입니까?”

“여기 초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요?”

“일행이 계시군요?”

그의 시선이 윤지네로 향한다.

“후배이신 고세완 대표님께서 채용을 해주신 분입니다. 가족 파티에 제가 염치없이 따라와서 얻어먹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식후에 커피라도 한잔해야죠?”

“의원님이 시간이 되시겠습니까?”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윤광은 앞서간 석종배 의원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김 의원님도 아세요?”

변 실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조금요.”

“어익쿠, 이제 보니 진짜 보통 분이 아니시군.”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주방 안으로 걸었다.

“아빠, 배가 불러 죽겠어요.”

한참 후에 윤지가 젓가락을 놓았다. 작은 배가 봉긋 솟았다. 변 실장의 특급서비스는 계속 이어졌지만 배라는 에너지통의 용적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졸려요.”

급기야 이상록에게 기댄다. 아이들의 특징이었다.

“그만 가시죠.”

경도가 마무리를 권했다.

“아까 의원님이 뭐라고 하시던 거 같던데?”

이상록이 내실을 돌아본다.

“윤지 데리고 먼저 가시면 저는 조금 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애 때문에…….”

“조심해서 가세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밖으로 나온 경도가 이상록을 배웅했다. 김윤광의 차에 있던 노성봉이 경도를 알아보고 뛰어나왔다.

“오 박사님.”

“어, 성봉 씨.”

“우와, 진짜 오 박사님이네. 여긴 웬일이세요?”

“맛집이라기에 따라왔다가…… 방금 안에서 김 의원님 만났습니다.”

“오늘 굉장히 중요한 일이시거든요.”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명궁이 밝은 걸 보니 좋은 일인 것 같던데요?”

“대선이 코앞이잖아요? 아마 좋은 제의를 받으실 거 같습니다.”

“낭보로군요.”

둘이 대화할 때 석 의원과 김윤광이 나왔다. 배웅을 마친 김윤광이 경도에게 다가왔다.

“손님은 가셨습니까?”

“예, 방금.”

“괜찮으면 잠깐 들어가시죠. 상 치우고 차를 좀 달라고 했거든요.”

“그러죠.”

김윤광을 따라 내실로 향했다.

내실은 단아했다. 식사의 흔적은 사라지고 차가 놓여 있었다.

“한 잔 마셔요.”

김윤광이 경도 잔을 채워주었다.

“제가 먼저 올려야 하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귀한 분이 오셨는데.”

“의원님도…….”

“아까 그분 고세완 대표가 채용했다고요?”

“예. 의원님 덕분에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아닙니다. 그 친구가 워낙 깐깐해서 제 후광으로 인심 쓸 사람이 아니지요. 모르긴 해도 아까 그분의 능력을 높이 산 걸 겁니다. 거기에 오 박사님 관상 보증도 있었을 테고요”

“저는 뭐 슬쩍 거든 것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이거 굉장한 우연이네요. 안 그래도 오늘 받은 제의 때문에 찾아뵈어야 할 판이었는데…….”

“좋은 일이신 것 같습니다. 명문과 인당에 햇살이 든 것 같은데 관골까지 번지고 있으니 총애를 받는 상입니다.”

“역시 오 박사님이시군요.”

“말씀해 보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경도가 테이블에 다가앉았다.

“실은 아까 그분이 석종세 의원님이라고 우리 당의 전전 당대표십니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우리 당 대선후보가 이경문 전임총리로 결정된 것도 알고 계시죠?”

“예.”

“그 대선 선거캠프의 선대 위원장에 내락되신 분입니다.”

“예…….”

“그런데 오늘 엄청난 제의를 해오셨습니다.”

“…….”

“저보고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선대위 부위원장요?”

경도가 소스라쳤다. 선대위 부위원장이면 굉장하다. 김윤광이 초선이기에 더욱 그랬다.

“오 박사님도 놀라시는군요. 사실 뭔가 역할을 주실 걸로 짐작은 했습니다. 해서 구체화가 되면 오 박사님께 논의를 하려던 차인데 이런 엄청난 제의를 받은 차에 오 박사님을 만나게 되니 고민을 덜게 되었습니다.”

“…….”

“석 의원님 말씀이 본래는 외부 인사 중에서 중량급으로 초빙하는 게 관례인데 그걸 깨보자고 하셨습니다. 제 이미지면 충분히 그럴 만한 데다 젊은 당이라는 이미지도 굳힐 수 있다고…….”

“…….”

“어떻습니까? 제가 이렇게 막중한 자리를 맡아도 되겠습니까?”

김윤광이 얼굴을 반듯이 세웠다.

[대선 선대위 부위원장]

3-4선의 중진들도 탐내는 자리다.

그 제의를 받았다.

김윤광에게 독배가 될까 성배가 될까?

이경문의 관상을 보았던 경도였다. 그 눈에 두 사람의 상이 저절로 매칭되기 시작했으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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