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림에서 온 비구니 관상가-4> (17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74화

49. 계림에서 온 비구니 관상가-4

런창둥은 76세였다.

유년운기부위만 확인하고 곽징이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은퇴를 생각하고 계신 데 아들이 없습니다. 둘이 있었는데 어릴 때 사고로 잃고 말았지요.”

“…….”

“미력한 제가 이 기업의 자문을 맡고 있어 중역회의에도 더러 참가를 합니다. 채 대인님도 그럴 때가 있고요. 회장님께서 역학이나 풍수 같은 것을 좋아하시거든요. 그분 선친께서 관상가이자 풍수가이기도 하셨고요.”

“…….”

“얼마 전 부르시기에 달려갔더니 후계자 문제를 말씀하시더군요. 세 명의 중역을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

“그와 더불어 회장님의 소원이 해외진출입니다. 그동안 여러 나라에 걸쳐 시장조사를 해오던 중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미뤄진 것이죠. 아마도 죽기 전에 그 꿈을 실현시키고 싶은가 봅니다.”

“…….”

“제게 그 두 가지를 묻는데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세 분 다 장점이 뚜렷하거든요. 고민 중에 채 대인께서 오시니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께서 오 박사님 말을 하시더군요. 해서 한국 관상가도 뵐 겸 캐서린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채 대인의 소개로 말입니다.”

“…….”

“런 회장님께 받은 사례금입니다.”

이번에는 봉투가 나왔다.

“복채로 생각지 마시고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저희 절도 그렇고 제 부친과도 특별한 사이시라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

“솔직히 말하면 저희 부친께서는 사실 저의 이런 생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대륙의 관상이 한국에 기대야 하겠냐는 거죠. 하지만 채 대인께서 거드시니 이해를 하시더군요. 근래로 들어오면서 중국 관상 신안의 맥이 끊긴 까닭도 있지요. 제가 그 축을 감당하고 있지만 반쪽 관상가에 불과하다는 것, 부친께서 모를 리 없습니다.”

“…….”

“오늘 오 박사님을 뵙고 보니 채 대인의 권유가 기가 막히니 부디 좋은 상괘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예.”

“중국 관상의 태산이신 곽 거사님의 딸이자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관상 경력이 일천한 제게 이런 영광을 주시니 황망합니다. 채 대인의 추천으로 일부러 오셨고 제 상괘가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다만 두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첫째는 그처럼 중요한 일이라 하니 린 회장님과의 영상통화를 주선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영상통화를요?”

“곤란합니까?”

경도의 눈빛이 단단하게 빛난다.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역시 중요성 때문이었다.

둘째는 런 회장에게 한국 관상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 다리 건너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요?”

“나머지는 그 결과에 부속됩니다. 런 회장께서 만족하면 저 봉투를 받을 것이고 만족하지 않으면 받지 않습니다.”

“명쾌하시군요. 제가 감히 다른 말을 달지 못하겠습니다. 어쩌면 회장님께서도 이 통화를 반길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일본의 관상가들 얘기를 하셨으니 한국의 관상가라고 해서 배척할 것 같지 않습니다.”

곽징이가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중국으로 전화를 건다.

“당 간부를 만나는 중이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곽징이가 상황을 설명했다.

10분쯤 지나자 전화가 들어왔다. 곽징이가 상황설명에 들어간다.

“통화하시겠답니다.”

런 회장의 수락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중국으로, 중국어 통화가 시작되었다. 경과 소개는 곽징이가 마쳤으니 관상만 보면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런창둥 회장이 자연조명 아래로 이동했다. 그는 관상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세계적인 부호들.

본래는 미국 쪽이 강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이제 부자의 지도도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런창둥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으니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재벌 리스트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코부터 우람했다. 현담비 중에서도 S급이었다. 이마는 여의도만큼이나 넓었고 다림질을 한 듯 가지런한 주름살도 압권이었다.

입은 주먹이 다 들어갈 듯 크다. 이러니 용의 여의주라고 물지 못할까?

법령 역시 양쪽으로 길게 늘어지고 귀는 감춘 듯 보이지 않는다.

‘극귀상…….’

경도의 눈이 맑아졌다. 좋은 관상을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콸콸 솟는 것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덕도 보았다. 좋은 관상이라고 해도 좁은 땅에서 살게 되면 큰 운을 누리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극귀상도 부족한 게 있었다.

자식은 둘이었다.

곁에 없다.

와잠을 뜯어보니 한 살과 다섯 살에 앞세워 버렸다.

이유가 있었다.

잠시 내려두고 세 중역에 대한 상괘부터 내주었다.

“우선 진레이입니다. 이분은 올해 52세시군요?”

-그렇소.

“아마도 지난해 실적에서 창사 이래 발군의 실력을 보였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맞소이다.

런창둥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그건 곽징이도 모르는 사항이었다.

“기색이 기막히니 승승장구하며 온갖 실적을 갈아치웠겠지요. 작년 한 해 동안 이분의 기세는 그야말로 승천하는 용의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색은 바탕으로부터 들뜬 것이라 화사한 황색 속에 창백한 흰색이 들었으니 빛나는 공적의 유효기간은 1년에 불과합니다.”

-……?

“게다가 모든 상이 기막힌데 오른쪽 귀가 살짝 굽었고 천창과 지고가 깎인 느낌이라 54세가 되기 전에 심장에 치명타가 올 겁니다. 이분은 큰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

“그렇다고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남은 두 사람 중에서 회장님과 기막힌 궁합을 이루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다행이구려.

런창둥이 한숨을 돌린다.

“먼저 왕비우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골격에 더불어 삼정, 사독, 오악, 육요에 십이궁까지 다 좋습니다. 특히 이마가 둥글고 도톰하니 정계 인맥이 많을 것이며 인당이 넓고 수려하니 귀인들과 교류하면서 발전을 도모하는 복덕이 있습니다. 능력만 본다면 이분이 적합할 것으로 봅니다.”

-오호.

“하지만 아마도 회장님의 마음은 마지막 남은 황하오펑에게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요?

“원래는 아드님이 두 분 계셨죠?”

-……?

돌연한 질문에 런창둥의 미간이 좁아졌다.

“두 분 다 죽고 한 분이 남았습니다.”

-무슨 뜻이오? 둘 다 죽었는데 하나가 남았다니?

“그 하나는 하나가 아니고 둘입니다.”

-……?

“회장님은 자식 둘을 두었지만 잃어버렸죠. 이유는 양자를 둘 운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자?

“아마도 사모님께서 아기를 갖기 어렵지 않았습니까?”

-…….

“이마의 일각과 월각을 아십니까?”

-그야…….

“원래는 거기에 곱슬한 털이 있으셨죠?”

-……?

런창둥이 소스라쳤다. 그 또한 귀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마의 털이다 보니 성가셨다. 그렇기에 20살이 되면서 병원의 도움을 받아 제거했던 것이다.

“그 털은 양자를 두게 되는 운명입니다.”

-허어.

기가 막힌다. 영상통화로도 그 반응을 알 수 있었다. 곽징이는 물론이오, 중국 관상의 대부라는 곽후닝도 몰랐던 것을 한국의 젊은 관상쟁이가 밝혀낸 것이다.

‘이거야 원…….’

런창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양자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

경도가 묻자 런창둥은 잠시 주저한다. 그러나 이내 결심한 듯 동의를 하고 나왔다.

-천기를 보는 분인데 무얼 감추겠소. 보이는 대로 다 봐주시오.

“황하오펑, 이분이 바로 회장님의 양자십니다.”

-……?

“세 사람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관상입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군요. 그러나 금형 기본의 체형에 수형이 조금 깃든 것에 더불어 이마의 산림에서 미간에 거쳐 주름이 많으니 이것이 이 사람을 살렸습니다. 겉으로 보기보다 운이 강하니 출세하고 발전합니다.”

-……?

“보아하니 저 밑바닥에서 오직 뚝심 하나로 밀고 올라온 분입니다. 볼품없는 관상이지만 턱의 힘이 강한 편이라 앞으로도 그 운이 꺾이지 않을 겁니다.”

-…….

“이분의 관상 역시 양자로 갈 운명이었습니다. 다만 회장님의 복이었던 건 비록 천격이되 이마가 그리 좁지 않고 눈이 알맞으며 눈썹이 평탄하며 코가 날카롭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인당 바로 위가 낮지 않으니 가까이 두어도 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양자들 중에는 입양부모를 극하는 상도 많으니까요.”

-…….

“나아가 관골이 높고 준두가 크니 충성스럽고 눈이 둥근 데다 눈빛이 바르니 회장님의 고난을 대신하기로는 이만한 사람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황하오펑…….

경도는 보았다. 그 이름을 중얼거리는 런창둥의 눈 밑 와잠이 밝아지는 것. 그건 곧 경도의 상괘가 그의 의중을 관통했다는 뜻이었다.

“표정이 밝으시니 해외 진출 건에 대한 상괘도 드리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오.

“이 상괘 역시 황하오펑으로 이어집니다.”

-…….

“현재 회장님의 기색으로 보면 원거리 거래나 투자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래요?

“이마의 변지에 어두운 적색이 서립니다. 원거리 거래에서 이익을 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천창까지 푸른 기색이니 멀리 오가는 일도 좋지 않습니다. 회사 실적을 보시면 가까운 곳의 지사보다 먼 곳의 지사들 실적이 나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

런창둥이 잠시 눈을 감는다. 사실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먼 지역의 지사들에 더 많은 투자를 하지만 실적은 늘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럼 언제 때가 오는 것이오?

“지금입니다.”

-예?

“회장님의 기색은 그렇지만 황하오펑의 기색은 반대입니다. 변지와 천창에 윤기가 맴도니 외국과의 거래에서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이분을 앞세우면 지금 밀어붙여도 무방합니다. 만약 여의치 않다면 먼 지역의 경영을 이분에게 일임하시기 바랍니다.”

-허어.

감탄 속에서 런창둥 명궁의 윤기가 더 밝아진다.

황하오펑.

낙점이었다.

런창둥의 표정으로 그걸 알았다. 이 사람은 황하오펑을 신뢰한다. 그는 현장통이다. 뚝심에 성실한 모습이 신뢰가 갔다.

제일 말석의 중역에 끼워놓고 숱하게 담금질을 했다. 그래도 싫은 기색 한 번 없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래서 끼워놓은 것이다. 자기 자신의 입보다 다른 사람의 확인이 필요했다. 그만한 인물이 된다는 그 확인. 런창둥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그 확인 말이다.

그 속마음을 경도가 관통해 버린 것이다.

-고맙소.

런창둥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왔다. 경도에 대한 인정이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스님 좀 바꿔주시오.

런창둥이 원하니 경도가 핸드폰을 넘겼다.

“회장님.”

곽징이가 통화하는 동안 경도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오 박사님.”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곽징이의 미소가 더 환해져 있었다.

“혹시 주식계좌가 있으신지요?”

“예.”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건 왜요?”

“런 회장님 지시입니다. 제게 준 사례는 제 사례고 오 박사님께 따로 복채를 드려야 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됩니다만.”

“그러시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지금 굉장히 뿌듯하신 모양인데 저런 기분은 저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 번 더 제 체면을 살려주십시오.”

“그러시면 그냥 인사치레 정도만 해달라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경도가 계좌 자료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채일천 대인님과도 통화를 했습니다.”

“그새요?”

“그분이 먼저 궁금하다며 연락을 하셨네요. 제가 이 시간에 뵙는다고 말씀드렸거든요.”

“…….”

“회장님이 흡족해한다고 했더니 공치사를 하시네요. 돌아오면 자기에게 한턱 단단히 내라고 말입니다. 꼭 그러마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저도 이상록 선생님 관상 신세를 진 차에 너무 과분한 반응이십니다.”

“이것도 인연이니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만.”

“말씀하세요.”

“언제 시간이 되면 계림 첩채산의 저희 절에 한 번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제 부친께서도 굉장히 좋아하실 겁니다.”

“꼭 한 번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요,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여러분이 다시 만나는 건 우리 재키 결혼식 때로 하면 어떨까요? 오 박사님에 채 대인님, 스님과 곽 거사님까지 와주시면 최고의 결혼이 될 거 같은데요.”

캐서린의 제의는 거의 강요에 가까웠다.

“와아, 내 말이…… 두 분 꼭 와주실 거죠?”

재키도 바로 합세한다.

“저야 걸어서라도 가겠지만 여기 오 박사님에게는 전세기라도 보내주세요.”

곽징이가 재치로 받아넘긴다.

캐서린과의 비즈니스(?)는 이렇게 마감이 되었다. 작별인사까지 나누었으니 이제 귀가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윤지와 강남숙이 경도 앞을 막아선 것이다.

“강 주임님.”

“윤지야, 니가 말씀드려.”

강남숙이 윤지를 내세웠다.

“오 선생님, 죄송하지만 아빠가 취직된 기념으로 맛있는 초밥을 사주신다고 했어요. 선생님도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윤지는 간절하다.

완전 빼박이다. 꼼짝없이 이상록의 가족에게 납치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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